<이슈&인물> ‘포스트 아베’ 스가 총리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9.22 09:54:05
  • 호수 12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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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보다 더한 ‘간신’이 떴다

[일요시사 취재2팀] 구동환 기자 =일본 총리 ‘아베 신조’가 건강상의 문제로 물러났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후임을 맡게 됐다. 그는 2012년 12월 2차 아베 정권이 들어섰을 때부터 관방장관을 맡으며 정권 2인자로서 위기를 관리했다. 
 

▲ 스가 신임 일본 총리

자민당 스가 요시히데 총재가 지난 16일, 일본 제99대 총리로 선출됐다. 스가 신임 총리는 이날 오후 임시국회 중의원 본회의 총리 지명 투표서 전체 465표 가운데 314표를 득표했다. 입헌민주당 에다노 유키오 대표는 134표를 얻었으며 일본유신회 가타야마 도라노스케 공동대표는 11표를 얻는 데 그쳤다.

2인자서 
1인자로 

그 다음으로 열린 참의원 투표서도 스가 총리는 245표 가운데 142표를 획득했다. 에다노 대표는 78표, 가타야마 공동대표는 16표를 얻었다. 이후 스가 총리는 총리 관저서 연정 파트너인 야마구치 나쓰오 공명당 대표와 회담한 뒤 새 내각 명단을 발표한다.

일본 방송 <NHK>에 따르면 20명으로 구성되는 스가 내각에는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 ▲하기우다 고이치 문부과학상 ▲가지야마 히로시 경제산업상 등을 포함한 아베 내각의 주요 인사 11명이 계속 이름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스가 총리는 취임 첫날 기자회견서 외교와 관련해 “미일 동맹을 기축으로 하겠다”며 “중국, 러시아를 포함한 가까운 이웃 여러 나라와 안정적인 관계를 쌓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한국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스가 총리는 북한에 대해서는 주요하게 언급했다. 그는 “북한에 의한 납치 문제는 현 정권의 가장 중요한 문제”라며 “전후 외교의 총결산을 목표로 하고, 특히 (북한에 의한 일본인)납치 문제 해결에 전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전임자인 아베 전 총리와 가까워진 것도 납치 문제가 계기가 됐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일본의 새 정권이 향후 한일 관계보다는 북일 관계 개선에 중점을 두지 않겠느냐는 관측을 낳게 하는 대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서한을 보내 스가 총리 재임기간 중 한일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뜻을 전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기본적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고려할 뿐 아니라 지리적·문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친구인 일본 정부와 언제든지 마주해 대화하고 소통할 준비가 돼있다. 일본 측의 적극적인 호응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아베 전 총리에게도 쾌유를 기원하는 서한을 보냈다. 강 대변인은 “건강 문제로 사임한 아베 전 총리에게도 따뜻한 마음을 담은 서한을 보내 그간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한 아베 전 총리의 기여를 평가하고 조속한 쾌유와 건강을 기원했다”고 전했다.

스가 총리는 1948년 12월6일 아키타현 오가치군 오가치정(현재 유자와시)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 스가 와사부로는 남만주 철도 직원으로서, 당시 만주국의 수도였던 퉁에서 일본의 패전을 맞이했다.

한국에 대해서 언급 없어
중국·러시아 등 외교 집중


고국으로 돌아온 뒤 고향 아키노미야서 농업에 종사한 부친은 ‘아키노미야 딸기’를 브랜드화하는 데 성공했다. 아키노미야 딸기 생산출하조합의 조합장과 오가치정의회 의원, 유자와시 딸기 생산집출하조합 조합장 등을 역임하며 생을 보내다가 지난 2010년 93세로 사망했다. 

일본의 문화평론가 후루야 츠네히라는 “스가의 아버지 카즈사부로는 아키타현 오가가쓰정 마을 의회 의원을 4번 연임했으며, 딸기 농사로 성공해 1959년 지역 조합장이 된 인물”이라며 “2010년 별세 후 욱일장(훈장)을 받았을 정도로 성공적인 지역 명사였다”고 평가했다.

일본 주간지 <슈칸분슌>은 1980년대 딸기농가 판매액이 3억7000만엔(약 41억원)에 달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모친와 숙부·숙모는 전직 교사였으며, 두 누나도 고등학교 교사가 됐다. 정계에선 아주 오랫동안 빈농의 자식, 흙수저 출신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했으나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 후 거짓 미담이었음이 밝혀지면서 이미지에 흠집이 났다.

여성 대학 진학률이 낮던 당시 누나들이 대학을 나와 교사가 됐다는 것도, 학창 시절에 이발소를 자주 다니면서 머리를 관리받을 정도로 여유가 있는 집안이었다고 한다.

스가 총리가 골판지 공장서 막노동을 한 것을 두고 일본 내에선 농촌의 젊은이들이 집단으로 도시 공장에 취업하는 ‘집단취업’이라고 표현했었는데, 이도 사실이 아니라는 얘기도 나왔다.
 

▲ 아베 전 일본 총리로부터 꽃다발 건네 받는 스가 신임 총리

<슈칸분슌>은 스가 총리가 골판지 공장 취업 후 2개월 만에 퇴직했다고 했다. 또 대학 야간부를 다닌 것도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스가 총리는 호세이대 정치학과 주간부를 정식으로 졸업했다.

아베 전 총리와의 인연은 2002년부터였는데 당시 일본은 북한이 일본인을 납치하면서 반북 정서가 강했다. 자민당 총무였던 스가 총리는 이 문제를 빌미로 북한의 화물여객선 입항 금지를 주장했다. 이로 인해 아베 전 총리의 눈에 띄면서 협력을 요청했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의 사이가 가까워졌다.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3차 개각서 총무부대신에 임명됐던 스가 총리는 이듬해 자민당 총재선거 재도전지원의원연맹에 참가, 아베 전 총리(당시 총리)를 본격적으로 지원하게 된다.

한국?
패싱∼

같은 해 아베가 총리에 취임하면서 스가는 총무 대신으로 입각한다. 아베 총리가 2007년 9월,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을 이유로 사퇴하자, 스가 총리는 아베 전 총리에게 “재기하면 된다”고 위로하기도 했다. 

2012년 9월 아베 전 총리가 2차 집권을 하게 되면서 스가 총리는 동시에 자민당 간사장 대행이 됐다. 같은 해 말부터는 관방장관을 맡으며 줄곧 정권 2인자로 활약하게 된다.


스가 총리가 늘 아베 전 총리의 ‘그림자’였던 것은 아니다. 2013년 아베 전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땐 “경제가 우선”이라고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고, 지난해 말부터는 전 아베 전 총리의 사학 스캔들, 벚꽃 스캔들 등에 대해 자주 스가 총리 탓을 하면서 둘 사이가 소원해졌다는 보도도 나왔다.

후루야 평론가는 “스가 총리가 고생한 사람이라는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지만, 상당히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변함없는 건 스가 총리의 정치 인생이다. 일본은 세습정치가 유명한데 보통 부친이나 조부 때부터 출마해온 지역구에 자식이 출마에 손쉽게 정계에 입문하는 것이 관례다.

아베 전 총리는 10선 의원이자 전 자민당 간사장과 외무상을 역임했던 부친 신타로를 비롯해 ‘A급 전범’이자 전 총리인 기시 노부스케를 외조부로 둔 엘리트 정치집안의 후광을 입었다. 결국 가문이 득세하던 지역구서 정계에 무혈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도 이전 총리인 부친의 지역구를 시작으로 중앙정치에 입문했다. 반면 스가 총리는 첫 정계 입성부터 경쟁자들의 공격을 뚫어내고 혼자 힘으로 승리를 쟁취했다.

2009년 이후부턴 당내 어느 파벌에도 속해 있지 않았다. 그만큼 정치적 수완만큼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7일 일본 인터넷 경매 사이트 아마존 재팬에는 스가 총리가 8년 전 쓴 책 <정치가의 각오-관료를 움직이게 하라>가 9만9700엔(약 111만원)의 호가에 올라왔다. 2012년 분게이슌주서 나온 이 책의 정가는 1300엔(약 1만4500원). 정가의 약 80배까지 가격이 오른 셈이다.


지지통신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 책에서 스가 총리는 자신이 총무상으로 추진했던 정책 등을 소개하면서 관료를 잘 다루는 정치에 대해 다루고 있다.

본인이 쓴 책 뿐 아니라 <총리의 그림자-스가 요시히데의 정체> 등 스가 총리와 관련된 책들이 뒤늦게 일본 정치 분야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중고 물품 거래 사이트 메루카리에서는 스가 총리의 명함이 최고가 1만7000엔(약 19만원)에 팔리기도 했다. 

꼬인 
역사관

스가 총리는 과거 장관으로 재직한 2014년, 중국에 안중근 기념관이 개관한 후 “안중근은 우리나라의 초대 총리를 살해해 사형판결을 받은 테러리스트”라고 말하면서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아베 전 총리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스가 총리의 망언이 한국과 중국서 논란을 빚은 후 아베 총리는 이 같은 발언이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냐는 질문을 받고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해 사형판결을 받은 사람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과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서도 망언을 일삼았다. 스가 총리는 두 문제와 관련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언급하며 “청구권 문제는 이미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발언한 바 있다.

그는 징용 문제에 대해선 한국 대법원이 2018년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한일청구권협정 위반이자 국제법 위반”이라며 “한국 측이 주도적으로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대법원이 피고기업인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에 국내 자산 압류명령을 내린 것과 관련해 “한국산 제품 관세 인상, 한국기업에 대한 대출과 송금 중단 등 모든 종류의 보복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위안부 문제에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이 1993년 위안부 강제 동원을 사과하는 ‘고노 담화’를 발표한 것에 대해 “강제 연행을 입증하는 자료가 없는데도(이를 인정한 것이) 큰 문제였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이는 아베 전 총리가 일본군 위안부가 군이나 관에 의한 강제 연행 증거가 없고, 위안부 동원은 민간의 주도 하에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졌다고 주장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아베 전 총리는 2016년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정부가 발견한 자료에 군이나 관헌에 의한 강제 연행을 직접 나타내는 기술이 눈에 띄지 않았다”며 “입장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발언한 바 있다.

2002년 아베 전 총리와 인연
일 정계 정치적 수완 고평가

또 “일본군 위안부가 전쟁 범죄에 해당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라며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을 통해 이미 법적으로 해결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아베 전 총리와 스가 총리는 쌍둥이처럼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주장했다. 아베 전 총리 집권 후 일본은 외교청서를 통해 매년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어 명칭)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도, 국제법상으로도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주장해왔다. 동해 표기에 대해서도 일본해가 유일한 호칭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가 총리는 한국의 독도방어훈련에 항의하며 “역사적 사실에 비춰 봐도, 국제법상으로도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의 영토다. 매우 유감스럽다”고 독도 영유권을 주장했다.

다만 일각에선 스가 총리가 아베 전 총리보다는 유연한 역사관을 가졌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스가 총리는 2014년 일본 주간지 <선데이 마이니치>와의 인터뷰서 “솔직히 말하자면 제게는 국가관이란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스가 총리가 그간 개인적 정치 신념을 드러내기 보다는 한일 관계가 경색된 상황서 일본 정부의 대변인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스가 총리는 아베 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말려왔다. 2012년 12월 관방장관 직을 맡은 이후 스가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았다. 스가 총리 시대의 개막과 함께 부인 마리코 여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도쿄신문>은 지난 17일, 마리코 여사는 공식석상 노출을 극도로 자제하는 대신 스가 총리를 헌신적으로 내조해왔다고 보도했다.

마리코 여사는 통상 부인들이 지원에 나서는 선거 유세전에도 잘 등장하지 않았다. 자민당 총재 당선이 확정된 지난 14일,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등장한 것을 제외하면 유세에 참여한 유일한 기록이 지난 2017년 이뤄진 중의원 선거로 알려져 있다. 당시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잇따르는 상황서 위기관리를 총괄하던 스가 총재가 도쿄를 떠날 수 없게 되자 그를 대신해 마리코 여사가 유세차에 올랐다고 한다.

마리코 여사는 선거 등에 나서지 않겠다는 것을 조건으로 남편의 정치입문에 동의했으며 총리가 되는 것에도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9월 개각서 자신이 추천한 장관들이 줄줄이 출마하며 스가 총리가 위기에 빠지자 “이걸(남편의 정치적 기반 약화)로 총리 부인이 되는 일 없이 끝낼 수 있다”며 좋아했다는 주간지 보도도 있었다.

툭하면 
망언 논란

실제로 지난 9일 자민당 총재선거 토론회서 “총재 선거 출마와 관련해 지원하겠다는 답변을 받기 가장 어려웠던 사람이 부인”이라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돌출 행동이 많았던 직전 퍼스트 레이디 아키에 여사와는 정반대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키에 여사의 경우 아베 전 총리의 지지율을 끌어내린 모리토모 스캔들의 발단을 제공하기도 했으며 코로나19 기간 중 벚꽃놀이에 나서는 등 논란을 자초한 바 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스가 총리 연봉은?

스가 총리의 연봉은 얼마나 될까?

지난 17일 <닛칸스포츠> 보도에 따르면 최근 스가 총리는 보직이 바뀌면서 연봉이 약 1억2000만원 늘어났다.

현재 일본 총리의 월급은 201만엔(약 2250만원)이며 여기에 지역수당 40만2000엔을 포함하면 월급은 241만2000엔(약 2700만원)이다.

흔히 보너스로 불리는 연말 수당에 여러 가지 조정 금액을 다 포함하면 일본 총리의 연봉은 약 4049만엔(약 4억5000만원)이 된다.

스가 총리의 이전 직책이었던 관방장관을 포함한 일본 국무대신들의 월급은 146만6000엔이며 지역수당 29만3200엔을 더하면 175만9200엔(약 1970만원)이 된다.

연봉으로는 약 2953만엔(약 3억3000만원)을 받는다.

스가 총리는 관방장관 시절에 비해 연봉이 약 1096만엔(약 1억2000만원) 늘어났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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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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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C 빛고을 설립 초기 한양이 30%로 최대주주, 우빈산업(25%), 케이앤지스틸(24%), 파크엠(21%) 등이 주주로 참여했다. 한양이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의 SPC 빛고을 참여를 위한 초기자본 49억원을 댔다. 한양이 우빈산업에 49억원을 빌려주고 우빈산업이 다시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대여해 지분을 분배했다. 이때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콜옵션’ 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콜옵션은 특정한 기초자산을 만기일이나 만기일 이전에 미리 정한 행사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다시 말해 우빈산업은 언제든지 원할 때 케이앤지스틸의 지분을 회수할 수 있는 조건을 걸어둔 것이다. ‘초대형’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이면 한양-케이앤지스틸 모종의 관계 의혹 SPC 빛고을 주주구성에 변화가 생긴 시점은 컨소시엄 구성 당시 한양이 맡기로 한 시공권이 롯데건설로 넘어가면서부터다.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의 지분 24%를 위임받아 주주권을 행사해 롯데건설과 중앙공원 1지구 아파트 신축 도급 약정을 체결했다. 이 과정서 30% 지분의 한양은 배제됐다. 롯데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할 당시 우빈산업에 지분을 위임했던 케이앤지스틸의 태도가 변한 시기는 2022년 5월경으로 추정된다. SPC 빛고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25억3000만원(대여금 24억원+이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빌린 돈을 갚았으니 24% 지분만큼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맺었던 콜옵션을 행사하고 49%의 지분을 확보해 SPC 빛고을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우빈산업 내부 사정이 변하면서 한 차례 더 지분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우빈산업은 대출금 100억원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부도 처리됐다. 지급보증을 섰던 롯데건설은 우빈산업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넘겨 받으면서 49%를 확보했다. 지분양도는 롯데건설이 근질권(담보물에 대한 권리)을 행사해 채무를 대신 갚아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우빈산업이 빠진 자리에 롯데건설이 들어오면서 현재 기준 빛고을 SPC 지분구조는 한양 30%, 롯데건설 29.5%, ㈜파크엠 21%, 허브자산운용 19.5%로 재편된 상태다. 허브자산운용이 보유한 19.5%는 롯데건설로부터 양도받은 것이다. SPC 빛고을 내에서 롯데건설의 발언권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뉜 지분 콜옵션으로? 사업시행권과 시공권을 두고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이 궤를 같이 하면서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쟁점은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이 가진 지분이 최종적으로 누구의 소유냐는 것이다. 두 회사의 지분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바뀔 수 있다.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을 갚았으니 24%에 대한 주주권이 자사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양은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우빈산업에 49억원의 출자금을 대여하면서 맺은 특별약정을 내세웠다. 해당 약정에 한양이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비공원시설 시공권을 전부 갖는데 우빈산업이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항목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우빈산업이 주도해 롯데건설로 시공사를 바꾼 것은 특별약정에 어긋난다는 설명이다. 광주지방법원은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이 각각 우빈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서 모두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주주권 확인 소송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우리가 SPC 주식을 실제로 소유한 주주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한양 관계자도 “1심 법원은 우빈산업이 한양에게 49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보유 주식 25% 전량을 양도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반면 롯데건설은 소송 판결 한 달 전, 우빈산업의 지분을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우빈산업이 한양에 양도할 주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과정서 한양은 우빈산업의 ‘고의 부도’를 의심하고 있다. 한양은 1심 법원 판결을 근거로 자사가 지분 55%(한양 30%+우빈산업 25%)의 SPC 빛고을 최대주주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대법원서 한양에 ‘시공권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으면서 시공자 지위는 잃게 됐다. 소송 이겨도 지위 잃었다 최근 SPC 빛고을 지분 갈등서 케이앤지스틸의 역할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케이앤지스틸은 상하수도 설비공사 업체로 2003년에 설립됐다. SPC 빛고을에 우빈산업과 함께 참여했다가 현재는 빠진 상태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전 대표가 우빈산업과 친분이 있어서 (SPC 빛고을에)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 사태서 롯데건설과 우빈산업은 이른바 ‘비한양파’로 묶여있다. 두 업체의 지분 이동도 비교적 명확히 드러나 있는 상황이다. 반면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은 두 업체 모두 우빈산업과 소송을 진행하면서도 서로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적(우빈산업)이 같을 뿐 특별히 관계가 있는 업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양의 모기업인 보성그룹 계열사에 속한 ‘앤유’라는 업체가 케이앤지스틸에 2022년 4월, 2억원을 빌려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앤유는 이기승 보성그룹 회장의 동생인 이점식씨가 지분 83.6%를 가지고 있는 친족회사다. 전기 조명장치 제조업체로 2007년에 설립됐다. 2022년 기준 매출은 28억2900만원, 영업이익은 3억300만원으로 확인된다. 한양과의 거래를 통해 27억79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앤유는 케이지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주는 과정서 1주일짜리 주식근질권을 설정했다.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이 2억원을 갚지 못하면서 케이앤지스틸의 주식이 전부 앤유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의 대표이사를 비롯해 사내이사 3명 등 4명이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1명은 앤유 대표인 정모씨의 아내로 추정된다. 케이앤지스틸 수뇌부가 물갈이된 것이다. 당시 케이앤지스틸의 채무가 수십억원에 이를 정도로 적자가 누적된 상태였다고 해도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배권을 넘겨준 것을 두고 석연찮은 의문이 일었다. 1주일이라는 짧은 주식 근질권 설정도 의문으로 떠올랐다. 보성그룹에 기생하는 ‘앤유’ 푼돈 주고 1주 만 회사 꿀꺽? 더 흥미로운 대목은 같은 해 5월 케이앤지스틸이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 25억3000만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의혹이 동시에 불거진 점이다. 다시 말해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분 100%를 앤유에 넘겨주고 한 달 만에 20억원이 넘는 돈을 융통해 SPC 빛고을 지분을 확보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여기에 우빈산업을 상대로 한 주주권 확인 소송 등에 김앤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하면서 수임료에 대한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케이앤지스틸이 지분확보를 위해 사용한 자금 출처가 한양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양 입장서 케이앤지스틸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확보하면 54%로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법원 판결로 시공자 지위는 상실했지만 롯데건설에 넘어가 있는 시공권을 흔들 수 있는 상황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분 갈등 구조가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로 정리되는 셈이다. 하지만 한양과 케이앤지스틸 모두 두 업체 간 모종의 관계 의혹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앤유라는 계열사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앤유서 케이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줬다거나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우빈산업서 (1심)소송에 져서 계속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듯하다. 대응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보다 광주시가 우빈산업과 결탁해 여러 가지로 유리하게 상황을 봐주고 있다고 판단해 광주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광주시는 사업시행자이자 감독관청으로서 해야 할 일이 참 많은데 그런 일을 하지 않아 공모 제도가 다 무너졌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광주시의 행정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석연찮은 자금 출처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한양이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에 대해 “우빈산업서 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주주가 들어와 투자가 이뤄지면서 주금 대여금을 갚은 것이다. 우빈산업에서는 (우리가)한양의 위장계열사 아니냐, 대표이사 선임 과정이 의심스럽다, 자금 출처가 어디냐 같은 의혹을 제기하는데 그건 주주권 확인 소송서 져서 그러는 것이다. 한양이랑 우리랑은 큰 관계가 없는데 자꾸 엮어서 흠집을 내려 한다”고 주장했다. 2022년 4월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 케이앤지스틸 대표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 사업이 잘 마무리되면 우리 회사에 300억원 정도의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행이익을 1100억원으로 계산했을 때 우리 회사 지분이 24% 정도니까 그렇게 계산한 것이다. 수익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회사를 맡게 됐고, 새로운 주주들도 그 사업성을 보고 투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