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부는 세방그룹 사정권

‘기업 저승사자’ 검은돈 냄새 맡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세방그룹에 세풍이 몰아쳤다. 국세청 중수부로 불리는 조사4국이 움직인 만큼 눈길이 간다. 공교롭게도 세무조사는 이전부터 말이 많던 계열사를 상대로 이뤄졌다. 조사 배경을 두고 다양한 가능성이 제기된다.
 

▲ 세방건설 본사 ⓒ카카오맵

세방그룹은 지난 1960년 한국해운으로부터 출발했다. 창업주는 이의순 세방그룹 명예회장. 당시 회사는 소규모 해운 대리점에 불과했다. 이 명예회장은 세방기업을 설립하고, 세방전지를 인수하면서 사세 확장에 나섰다.

물류·전지
자산 2조원

두 회사는 세방그룹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세방(세방기업의 후신)은 물류업을, 세방전지는 ‘로케트 배터리’로 이름을 날리며 전지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회사는 성장을 거듭한 끝에 오늘날 자산 2조원을 자랑하는 그룹이 됐다.

세방그룹은 2세 경영 체제다. 이 명예회장은 2013년 장남 이상웅 세방그룹 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줬다. 지난 1984년 세방에 입사한 그는 30년 만에 회장 자리에 올랐다.

지난 5월 기준, 세방 최대주주는 계열사 이앤에스글로벌(18.52%)이다. 이 회장(17.94%)은 그 다음이다. 세방이의순재단(3.48%), 세방전지(2.07%)가 그 뒤를 잇는다. 이 외 계열사와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모두 더하면 44%를 상회한다.


그룹은 25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지배 구조는 ‘이앤에스글로벌→세방→이하 계열사’로 이어진다. 상장 계열사는 그룹 핵심사 세방전지 한 곳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비상장사다.

최근 3년간(2017∼2019) 그룹은 꾸준히 성장세를 기록했다. 연결 기준 매출액은 6661억원서 6516억원으로 소폭 하락했지만, 지난해 7232억원으로 반등했다. 영업이익은 114억원, 114억원, 161억원이었다. 순이익 역시 314억원, 435억원, 549억원으로 증가했다.

올해 역시 기대할만하다. 지난 1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은 215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5% 올랐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60.96% 상승한 64억원이었다. 반면 순이익은 1.49% 줄어든 152억원을 기록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국세청 조사4국 세무조사 착수

상승 분위기는 계속됐다. 2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은 직전년도에 비해 29.36% 상승한 2223억원이었다. 영업이익은 14.98% 감소한 50억원이었지만 순이익은 25.8% 증가한 128억원으로 마쳤다.

순항하는 듯했던 세방그룹은 최근 ‘세풍’을 맞았다. 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지방국세청이 지난 6월 초 세방그룹 본사와 계열사 이앤에스글로벌을 상대로 특별 세무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할만한 대목은 이번 세무조사를 조사4국서 담당했다는 점이다. 국세청 조사4국은 탈세 또는 비자금 조성 혐의가 명백한 경우에만 움직인다. ‘기업 저승사자’ ‘국세청 중수부’로 불리는 까닭이다. 조사4국 요원들은 세방그룹 본사서 강도 높은 세무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 세방산업 ⓒ카카오맵

눈길이 가는 건 조사 대상이 된 계열사 이앤에스글로벌이다. 이곳은 세방그룹을 비롯해 오너 일가와 밀접하게 닿아있다. 특히 그룹 지배구조 형성과 승계에 있어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가가 있다.

이앤에스글로벌은 SI(시스템통합) 업체다. 전산관리 등을 수행하는 IT기업이다. 세방그룹과 이앤에스글로벌의 관계는 지난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금융감독원 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앤에스글로벌은 그해 세방 지분 2.19%를 매수했다. 주식 매입 사유는 경영권 방어였다. 당시 오너 일가의 지분율 총합은 30%가 채 되지 않았다. 미약한 지배력을 계열사로 방어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이앤에스글로벌은 굵직굵직하게 세방 주식을 확보했다. 기존 지분 2.19%는 3.04%(1999년), 14.06%(2000년), 19.24%(2001년)로 크게 늘었다.

2세 경영
전초기지

2005년에는 유·무상증자로 주식 총수가 늘어나면서 지분율이 18.15%로 조정됐다. 2006년에는 창업주 배우자로부터의 주식을 증여받았고, 일부를 처분했다. 2008년 들어서는 세방 주식을 재매입했다. 지분율은 20.42%로 크게 늘었다.

마침표는 2015년에 찍혔다. 우선주 존속기간 만료로 변동이 발생하면서 이앤에스글로벌은 18.52%를 보유하게 됐다. 주식 수의 변동은 오늘날까지 없다.

이앤에스글로벌은 이 회장 개인회사로 통한다. 주주 명부를 살펴보면 그렇다. 이 회장(80%)이 최대주주로 있다. 나머지는 이상희씨(10%)와 세방(10%)서 보유 중이다. 상희씨는 이 회장의 여동생이다.
 

종합해보면, 이 회장은 이앤에스글로벌을 통해 세방 주식을 간접적으로 보유하는 셈이다. 동시에 지배력 행사도 가능하다. 지배구조는 ‘이 회장→이앤에스글로벌→세방→이하 계열사’로 분석할 수 있다.

이앤에스글로벌의 전신은 세방하이테크다. 회사는 산업용 전지를 판매하면서 괜찮은 수익을 올렸다. 설립 이듬해 매출이 100억원을 넘어설 정도였다. 다만 온전히 자력으로 이뤄낸 성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룹 계열사의 도움이 어느 정도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룹 계열사 세방전지는 내부거래를 맺었다. 파악할 수 있는 내부거래 비중은 최소 10.70%서 최대 27.29%사이를 오갔다. 평균 20%의 비중이었다. 공교롭게도 해당 기간에 회사는 세방 주식을 매입했다.

탈세? 
비자금?


세방서 1998년 2.19%에 불과했던 세방 지분율은 2001년 19.24%까지 상승한 바 있다. 사업이 안정적으로 운영된 데다 그룹 계열사의 도움까지 받고 있어, 자금 여력이 동반된 것으로 보인다. 성장을 통해 취득한 세방 주식은 이앤에스글로벌을 세방그룹 최대주주로 올려놨다.

동시에 회사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회장도 행동에 나섰다. 그 역시 해당 시기에 세방 지분을 취득했다.

이 회장은 이앤에스글로벌 설립 이듬해부터 세방 지분을 매입했다. 기존 8307주(0.6%)서 8만주(1998년), 22만4000주(2000년)를 사들였다. 이 회장 지분은 110만7070주(11.07%)까지 올라섰다.

2005년에는 유·무상증자로 주식 수가 195만7587주(11.65%)로 조정됐다. 2006년에 들어서는 8만6970주를 매수, 204만4377주(12.17%)로 확대됐다. 2007년에는 15만주를 매도하면서 189만4377주(11.28%)로 줄어들었다. 이후 주식 수는 10년 넘게 유지됐다. 줄어들거나 늘어나지 않았다. 올해 3월 부친의 증여로 346만3022주(17.94%)를 확보한 게 이후 첫 변화다.
 

이 회장이 세방 주식을 매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개인회사 이앤에스글로벌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바로 배당금을 통해서다.

이앤에스글로벌은 분할 전까지 배당을 실시했다. 지분 80%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배당금 대부분은 이 회장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공시자료서 확인할 수 있는 배당액의 총합은 60억원가량이다. 이 회장은 48억원 정도를 쥘 수 있었다.


지배구조 핵심 이앤에스글로벌 타깃?
내부거래…오너 일가 곳간으로 지목

회사 분할은 2010년 이뤄졌다. 이앤에스글로벌과 세방하이테크로 나뉜 것.

보유하고 있던 세방 지분은 이앤에스글로벌에 넘어갔다. 세방하이테크는 대양전기공업에 팔렸다. 당시 매각대금은 80억원이었다. 이 회장은 두둑한 현금도 챙길 수 있게 됐다. 이 회장은 개인회사를 십분 활용해 오늘날 자리에 올라설 수 있게 됐다.

일각서 제기하는 이 회장의 지분 매입용 자금 출처가 이앤에스글로벌로부터 비롯됐다는 시각의 배경이다. 이앤에스글로벌 내부거래는 현재진행형이다. 현재 회사는 세방그룹 계열사와 거래를 이어가고 있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이앤에스글로벌은 성장세를 보였다. 별도 기준 매출액은 690억원, 747억원, 969억원, 724억원, 682억원이었다. 계열사 등으로부터 지급 받은 용역수익은 같은 기간 603억원, 634억원, 860억원, 474억원, 629억원 순이었다.
 

▲ 차량용 전지

비중으로 따지면 전체 매출액서 87.31%, 84.97%, 88.75%, 65.48%, 92.22%로 상당히 높은 수치다.

또 이앤에스글로벌은 2015년부터 손자회사들을 두면서 이들과도 내부거래를 시작했다. 그 연유로 내부거래 규모는 더 커졌다.

물론 SI 계열사 특성상 내부거래 비중이 높을 수 있다. 그룹 계열사들의 전산을 통합 관리하기 때문이다. 또 영업비밀 등을 이유로 타 업체에 업무를 맡기는 게 부담일 수 있다. 다만 높은 내부거래로 매출이 형성되고, 배당으로 오너 일가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우고 있다는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칼끝
어디로?

이앤에스글로벌은 분할 이후에도 배당을 계속했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회사는 1억원(1.44%·이하 배당성향), 2억원(14.71%), 2억원(8.95%), 2억원(14.07%), 2억원(13.26%), 2억원(13.96%) 등 모두 11억원의 배당을 실시했다.

이앤에스글로벌은 상당한 이익잉여금을 쌓아두고 있기도 하다. 이익잉여금이란 벌어들인 이익 가운데 배당 등을 하지 않고 사내에 유보된 금액을 말한다. 액수는 매년 증가해 10년 전 4억원에 불과했던 이익잉여금은 지난해 104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똑 닮은’ 세방그룹 내부거래 계열사는?

이앤에스글로벌은 지난 2018년 내부거래 비중이 직전년도 88.75%서 65.48%로 감소했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일감 몰아주기 감시 범위를 중견그룹까지 확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그 연장선서 비롯된 결과라는 관측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이앤에스글로벌의 내부거래는 큰 폭으로 상승했다. 비중은 65.48%서 92.22%로 크게 뛰었다.

이앤에스글로벌을 포함해 세방그룹 내 몇몇 계열사들은 일감 몰아주기 이슈서 자유롭지 못하다.

눈길이 가는 건 이들에게서 보이는 공통점으로 모두 가족회사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앤에스글로벌의 경우, 이 회장이 80% 지분을 가지고 있다. 그의 동생 상희씨가 10%, 세방으로부터 10%를 나머지 지분을 보유한다. 사실상 오너 일가 회사다.

부동산임대업체 ‘세방이스테이트’도 마찬가지다. 최대주주 세방(40.2%)에 나머지 지분은 이 명예회장(11.1%)과 장녀 이려몽씨(20.7%), 상희씨(28%)가 소유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세방이스테이트 역시 내부거래 비중이 상당하다.

최근 5년간(2015∼2019) 세방이스테이트 매출액은 2억원, 18억원, 27억원, 37억원, 27억원이었다. 같은 기간 세방, 세방전지 등 계열사서 발생한 매출액은 0원, 17억원, 26억원, 36억원, 26억원 등이었다.

비중으로 따져본다면 0%, 93.51%, 96.13%, 96.81%, 94.67% 등으로 매우 높았다.

배당도 2017년부터 실시됐다. 금액은 2억원(25.53%·이하 배당성향), 4억원(49.59%), 4억원(29.91%)로 모두 10억원이 배당됐다. 주주 명부를 살펴보면 회사와 오너 일가 주머니로 들어가는 셈이다.

축전지 부품 계열사 세방산업도 같은 맥락이다. 내부거래 비중이 높고 주주 구성이 오너 일가다. 심지어 지분율까지 같다. 최대주주 세방전지(40.2%)에 상희씨(28%), 려몽씨(20.7%), 이 명예회장(11.1%) 순이다.

최근 5년간(2015∼2019) 세방산업 매출액은 740억원, 674억원, 505억원, 491억원, 340억원으로 꾸준히 하락세다. 같은 기간 계열사에 비롯된 매출액은 685억원, 589억원, 426억원, 386억원, 183억원 등이었다.

비중은 92.57%, 87.92%, 84.41%, 78.64%, 54.03%로 줄어들고 있다. 다만 지난해까지 절반 넘는 매출이 계열사에서 발생한 점은 간과하기 어렵다.

배당도 이어졌다. 배당액은 세방이스테이트와 비교될 정도다. 같은 기간 21억원(43.43%), 16억8000만원(34.63%), 10억5000만원(40.43%), 6억3000만원(44.28%) 등이었다. 지난해에도 6억3000만원이 배당됐다. 하지만 당시 세방산업은 적자로 전환돼 순손실 4억원이 발생한 때였다.

동기간 세방이스테이트와 세방산업으로부터 오너 일가가 수령한 금액은 전체 70억9000만원 가운데 42억원가량이었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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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