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 골육상쟁 서막 막전막후

누나의 선공…형까지 가세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최근 한국테크놀로지그룹에 전운이 드리운 형국이다. 조영래 회장의 장녀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이 성년후견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앞서 조 회장이 차남 조현범 사장에게 넘긴 지분 전량에 대해 자발적 결정이었는지 알아봐야 한다는 취지다. 경영권 다툼이 선명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회장의 장녀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 조 이사장은 최근 조 회장에 대한 성년후견을 신청했다. 성년후견이란 고령이나 장애, 질병 등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성인에게 후견인을 선임해 돕는 제도다. 조 이사장이 이를 제기한 배경은 ‘지분 양도’였다.

3남매 연합
분쟁 불붙나

조 회장은 지난해 경영 일선서 물러난 바 있다. 이후 장남 조현식 부회장과 차남 조현범 사장이 각각 한국테크놀로지그룹과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를 이끌면서 형제 경영을 이어왔다.

2세 경영은 궤도에 올랐지만 누가 조 회장의 뒤를 잇게 될지는 미지수였다. 그룹 내에서 이들의 역할이 일정하게 주어졌고, 지주사 지분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구조는 조 회장 23.59%, 조 부회장 19.32%, 조 사장 19.31% 순이었다.


하지만 조 회장이 차남 조 사장에게 지분을 전량 넘겨주면서 곧 지분구조에 변동이 발생했다. 지난 6월26일 조 회장은 보유 주식 전량을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형태로 조 사장에게 전량 매각했다. 장남이 아닌 차남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조 회장 지분을 모두 넘겨받은 조 사장은 단번에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최대주주가 됐다. 조 사장 지분은 42.9%로 껑충 뛰면서 형인 조 부회장(19.32%)을 훌쩍 앞섰다. 조 사장은 보유 주식을 담보로 2200억원을 대출 받아 매입 자금을 해결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에도 경영권 분쟁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갑작스럽게 지분 구도가 변화한 것에 대한 부작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지난 6월30일 “대주주 간 주식거래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형제경영 체제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공식 발표하며 진화에 나섰다. 또 조 부회장과 조 사장 지위에 당장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경영권 분쟁 가능성은 일축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장녀 조 이사장이 돌연 전면으로 나서며 반전이 시작됐다. 조 이사장은 조 사장의 지분 양도가 자발적인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는 취지로 성년후견을 신청했다.

장녀 조희경, 조양래 회장 성년후견 신청
형제간 경영다툼 가능성↑ 장남에 달렸다

조 이사장 측은 지난달 30일 서울가정법원에 조 회장에 대한 한정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성년후견은 법정후견과 임의후견으로 나뉜다. 이 중 법정후견은 다시 정신적 제약 정도와 후견 범위에 따라 성년후견·한정후견·특정후견으로 재분류된다.


조 이사장 측은 “(조 회장이)가지고 있던 신념이나 생각과 너무 다른 결정이 갑작스럽게 이뤄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분이 놀라고 당혹스러워했다”며 “이런 결정들이 건강한 정신 상태서 자발적 의사에 의해 내린 것인지 객관적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됐다”고 주장했다.

또 “조 회장이 지난 6월 급작스럽게 조 사장에게 지주사인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주식 전부를 2400억원에 매각했는데, 그 직전까지 그런 계획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며 “조 회장은 평소 주식을 공익재단 등 사회에 환원하고자 했으며, 사후에도 지속 가능한 재단 운영 방안을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조 이사장 측의 설명대로라면, 조 회장의 지분을 넘겨받은 조 사장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는 형국이다. 동시에 승계 자체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 ▲▲ (사진 왼쪽부터)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회장, 조현범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부회장,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사장 ⓒ한국테크놀로지

조 이사장 측은 이어 “대기업 승계 과정은 투명해야 하고 회사와 사회의 이익을 위해 이뤄져야 할 것이며 기업 총수의 노령과 판단능력 부족을 이용해 밀실서 몰래 이뤄지는 관행이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그룹 측은 조 회장의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이사장의 청구가 받아들여질 경우, 지정된 후견인은 조 회장과 조 사장의 블록딜을 무효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후견인 지정이 곧바로 기존 거래를 무효화하지는 않지만 가족 간 소송전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조 회장의 건강 상태 등은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된다. 성년후견심판 청구가 접수되면 법원은 의사 감정을 통해 당사자의 상태를 확인한다. 이후 진술을 받는 절차 등을 거쳐 후견인 지정 여부를 가리게 된다.

법원이 조 회장의 사무처리 능력이 결여됐다고 판단할 경우 한정후견인이 선임된다. 다만 조 회장 본인이나 배우자, 4촌 이내 친족 등이 항고 또는 재항고를 할 수 있다. 해당 절차가 진행된다면 후견인 업무는 정지된다.

법원에 의해 선임된 후견인은 재산과 신상 등을 보호하는 대리인 역할을 한다. 앞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넷째 여동생 신정숙씨는 성년후견 개시를 청구, 신 총괄회장에 대한 한정후견인으로 지정된 바 있다.

자발적 결정
아닐 수도

이른바 장녀의 반격으로 눈길은 남매들에게 향한다. 장남 조 부회장은 조 이사장의 성년후견신청에 대해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조 부회장 측이 공식 의사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성년후견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차녀 조희원씨에게도 관심이 쏠린다. 조씨는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 10.82%를 보유 중이다. 다만 조씨는 앞서 제기된 경영권 다툼 가능성에 대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전한 바 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장녀의 후견인 신청으로 한국테크놀로지그룹 4남매에 대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시장도 즉각 반응했다.


지난 7월3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전날보다 3400원(29.96%) 상승한 1만4750원에 장을 마감했다.

입장이 난처해진 쪽은 조 사장이다. 조 사장은 부친으로부터 지분을 물려받고, 사실상 후계 경쟁력을 선점했지만 신경 쓸 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장녀 조 이사장의 반격으로 조 사장의 리스크가 재조명되는 분위기다. 당장 해결해야하는 사안은 법적 문제다.
 

▲ 한국테크놀로지 본사 ⓒ한국테크놀로지

조 사장은 협력업체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구속된 바 있다. 조 사장은 협력업체에 납품 대가로 매달 수백만 원씩 6억여원을 챙긴 혐의와 계열사 자금 2억여원을 정기적으로 빼돌린 혐의를 받았다.

조 사장은 지난 4월 배임수재 및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잘못을 뉘우치고 있으며 배임수재 및 횡령금액 전부를 반환해 피해자들이 선처를 구하고 있다”며 “더는 제3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 벌금형을 넘는 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다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조 부사장은 지난 6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대표이사직서 물러났다. 사측은 일신상의 이유라고 전했지만, 재판 결과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현재 조 사장과 검찰은 2심 재판을 앞두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18일, 조 사장의 항소심 결심공판서 징역 4년의 실형과 함께 추징금 6억1500만원을 명령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흔들리는
조 사장?

검찰은 “조 사장은 대기업 사주 지위를 이용해 협력업체 직원들로부터 자금을 마련해 빼돌리고 차명계좌를 이용해 수익을 숨기는 등 장기간에 걸쳐 범행을 저질렀다”며 “원심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는 등 형이 너무 가벼워 항소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이어 “1억원 이상 배임수재 혐의에 가벌성이 있는 경우, 형량이 징역 3년서 5년 사이”라며 “조 사장에 대해 충분한 가벌성이 있는데, 원심은 조 사장이 자백했다는 이유로 배임수재 양형 기준 최하한인 징역 3년에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이 적절한 사안인지 심리해달라”고 밝혔다.

반면 조 사장 측은 형이 무겁다고 주장했다. 조 사장 측은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다시는 이 같은 잘못 저지르지 않도록 뉘우치고 있다”며 “이 사건으로 발생한 피해를 모두 갚아 피해자들이 조 사장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한국타이어에 실질적인 손해를 끼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원심의 형은 다소 무겁다”고 반박했다.

조 사장 역시 최후진술서 “어리석은 욕심과 안일한 행동으로 큰 물의를 일으켜 송구스럽다”며 “분별없는 행동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봤는지 뼈저리게 느껴 반성한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마음가짐을 바로 해 경영인으로서 주변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선고 공판은 오는 내달 9일에 열린다. 법원의 결정에 따라 조 부회장의 입지는 좌우될 전망이다. 최악의 경우, 경영 일선에 나서는 것이 자유롭지 못할 수도 있다.

조 사장이 넘어야 할 산은 하나 더 있다. 지난해 3월 교체한 사명과 관련해서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기존 한국타이어서 사명을 변경했다. 당시 이를 주도한 인물은 조 사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룹은 타이어 산업에만 머물지 않는 혁신 기술기업을 표방하며 사명을 변경한 바 있다. 당시 사측은 “이번 사명 변경은 미래 산업 생태계의 불확실성이 점차 커지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개별 계열사 비즈니스 경쟁력 강화를 넘어,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 개척에 도전하는 파괴적 혁신을 지속하게 해줄 초석을 다지기 위해 추진된다”며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자동차 전장 사업체 ‘한국테크놀로지’가 상표권을 침해했다며 상호 사용금지 가처분 소송을 낸 것이다.

한국테크놀로지는 가처분신청을 통해 “상호 사용으로 영업 기반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에 가처분신청을 결정했다”며 “특히 조 사장의 배임·횡령 사건이 발생한 이후 피해가 더욱 커졌다”고 설명했다.

1심 재판부는 한국테크놀로지 측의 손을 들어줬다.

“동생에 지분 넘긴 부친 결정
자발적 결정인지 판단 필요”

당시 재판부는 “‘한국테크놀로지 주식회사’ 또는 ‘HANKOOK TECHNOLOGY GROUP CO. LTD.’를 상호로 사용해서 안 된다“며 “자동차 부품류 제조·판매업이나 자동차 부품류 제조·판매업을 영위하는 회사를 소유·지배하는 지주사의 영업 표지로 사용하거나 영업과 관련된 간판, 거래서류, 선전광고물, 사업계획서, 명함, 책자, 인터넷 홈페이지 및 게시물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구체적인 사용금지 조치도 담았다.

재판부는 “채권자 코스닥 상장사 한국테크놀로지가 이미 8년 전부터 이 상호로 영업을 하고 있고, 특히 자동차 전장사업 부문에 진출해 해당 분야서 상호를 사용한 것도 2년 5개월 이상 광범위하게 사용된 만큼 주지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 ⓒ한국타이어

이어 “상호가 상당히 유사해 오인, 혼동 가능성이 있고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소정의 부정경쟁행위 요건으로서의 혼동 가능성’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당시 판결은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상호사용금지 소송서 승소한 첫 사례였다. 최악의 경우,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간판을 다시 바꿔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또 사명 변경 사업을 조 부사장이 이끌었던 만큼 리스크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경영권 분쟁이 가시권에 접어들면서 여러 시나리오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중 무게가 실리는 가능성은 남매 간 연합전이다.

조 이사장과 조 부회장, 그리고 조씨 등 3남매의 한국테크놀리지그룹 지분 합은 모두 30.97%다. 다만 조 사장 지분 42.9%와 큰 차이가 있다. 일각에선 6.24%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국민연금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지원이 있다 하더라도 조 사장과의 지분 격차는 상당하다.

1972년생인 조 사장은 1998년 한국타이어에 차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광고홍보팀장을 거치면서 4년 만에 임원으로 올랐다.

조 부사장은 마케팅본부장, 전략기획본부장 부사장, 경영기획본부장, 경영운영본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한국테크놀로지그룹 COO(최고운영책임자)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에 등극했다. 조 사장은 2001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셋째 딸 수연씨와 결혼해 이른바 ‘MB 사위’로 불린다.

그룹은 지주회사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을 정점으로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한국아트라스비엑스, 한국네트웍스, 한국카앤라이프 등의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당겨진 방아쇠
진흙탕 싸움?

주력 계열사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다. 올해 성적표는 낙관하기 어렵다. 지난 1분기 매출액은 12.5% 감소한 1조4357억원이었다. 영업이익은 24.6% 감소한 1060억원을 나타냈다. 순이익 역시 20.7% 하락한 976억원에 그쳤다. 2분기 실적은 장담하기 어렵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여파가 업계 전반에 드러나는 시기가 2분기로 점쳐지면서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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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