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막힌’ 성호전자 대물림 타이밍

‘때는 이때다’ 빠진 틈에 쑤셔 넣기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성호전자가 2세 승계를 사실상 매듭지었다. 오너 2세는 창업주 지분을 뛰어넘었고, 개인회사를 통해서도 상당한 지배력을 확보했다. 승계 타이밍은 적절했다 평가다. 저평가된 주식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성호전자는 지난 1973년 설립된 전자부품 제조사다. 필름콘덴서와 전원공급장치(PSU)를 주력으로 한다. 회사 경영은 박현남·박환우 공동대표 체제서 지난 2015년 박현남 단일대표 체제로 전환됐다. 현재 성호전자는 연매출 1000억원 고지를 바라보고 있다.

전자부품
1000억

오너 2세는 박성재 부사장으로 박현남 회장의 장남이다. 박 부사장은 지난 2013년 임원으로 등재되면서 사실상 후계자로 낙점 받았다.

성호전자 주요 주주는 박 회장 일가였다. 모두 25% 정도의 지분을 쥐고 있었다. 이 중 박 회장은 12.75%로 가장 많았다. 변화가 발생한 시점은 그해 2월이다. 동시에 승계가 가시권에 들어온 때이기도 하다.

우선 성호전자 최대주주가 변경됐다. 박 회장 자리를 대신한 주주는 ‘서룡전자’라는 회사였다. 앞서 서룡전자는 성호전자의 유상증자 과정서 모습을 드러냈다.


성호전자는 지난 2018년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신주발행가액은 기준 주가서 10% 할인된 711원이었다. 서룡전자는 140만6469주를 배정받게 됐다.

성호전자는 유상증자를 추가로 진행했다. 지난해 모두 두 차례였다. 서룡전자는 이를 통해 277만4109주, 59만319주를 확보하게 됐다.

서룡전자는 세 차례 유상증자서 모두 477만897주(12.63%)를 쥐게 되면서 성호전자 최대주주가 됐다. 기존 최대주주였던 박 회장은 376만2480주(12.15%)로 밀렸다.

오너 2세 개인회사, 유증 참여 최대주주로
창업주 세대, 후계자에게 주식 대거 증여

눈길이 가는 건 서룡전자 최대주주가 박 부사장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성호전자 최대주주가 사실상 박 부사장으로 변동됐다고 볼 수 있다.

박 부사장은 서룡전자 대표다. 서룡전자는 지난 2017년 11월 설립됐고 사업장을 성호전자에 두고 있다. 사업 영역 역시 성호전자와 겹친다. 서룡전자는 전자부품 도소매 업체다.

업계 안팎에선 서룡전자를 박 부사장의 ‘승계 지렛대’로 본다. 성호전자가 유상증자를 진행하기 얼마 전 회사가 설립된 점, 유상증자 결과 성호전자 최대주주로 올라선 점, 대표가 박 부사장이라는 점, 성호전자와 사업 영역이 겹친다는 점 등을 미뤄봤을 때 ‘목적’이 있는 회사라는 분석이었다.


서룡전자는 성호전자를 통해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중소기업현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서룡전자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6억원, 27억원, 3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같은 기간 서룡전자는 성호전자로부터 6억원, 16억원, 2억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지난해 거래량은 눈에 띄게 줄었지만, 유상증자가 단행된 직전년도까지 내부거래 비중은 꽤 높았다.
 

서룡전자의 다음 행보는 박 부사장의 존재감을 한층 더 키워줬다. 서룡전자는 성호전자의 유상증자를 통해 최대주주 자리를 꿰찬 뒤, 차근차근 성호전자 주식을 사들였다.

서룡전자는 지난 3월 5차례에 걸쳐 89만455주를 매입했다. 당시 소요된 비용은 3억6581만원이었다. 서룡전자는 지난 4월 1만4900주를 722만6500원에 취득하기도 했다.

매입 결과, 서룡전자가 보유한 성호전자 주식수는 기존 477만897주(12.63%)서 567만6252주(15.95%)로 크게 늘었다. 동시에 박 부사장의 지배력까지 간접적으로 강화됐다. 서룡전자와 박 부사장의 지분을 단순히 더하면 22.29%(15.95%+6.34%)다.

존재감↑
주가↓

서룡전자의 성호전자 주식 매입은 적절한 ‘타이밍’에 이뤄졌다. 특히 지난해 3월과 4월 47만여주를 대량 매입한 시점을 살펴보면 그렇다. 성호전자 주가(종가 기준)는 지난해 3월6일 753원을 끝으로 내려앉았다. 성호전자 역시 코로나19 여파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가는 600원대로 서서히 감소하더니 400원대로 추락하면서 같은 달 19일 371원으로 최저점을 찍었다. 상장 이후 최저치로 액면가 500원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서룡전자는 이를 기회로 여겼을 공산이 크다. 서룡전자가 성호전자 주식을 매입한 때는 지난 3월20일, 23∼25일, 30일, 그리고 4월2일이다. 당시 서룡전자는 성호전자 주식을 390원, 391원, 424원, 482원, 484원, 485원 등 액면가 아래로 대량 매입할 수 있었다.

박 부사장은 개인적으로 성호전자 지분을 대거 확보하기도 했다. 박 회장과 부인 허순영씨가 그 역할을 했다. 이들은 상당수 주식을 박 부사장에게 넘겼다.

박 회장과 허씨는 지난 4월23일 박 부사장에게 각각 40만주와 100만주를 증여했다. 특히 박 회장은 박 부사장 외에도 하수경씨와 박건호씨에게 각각 100만주, 50만주를 증여하면서 모두 190만주를 처분했다.

증여 시기는 적절했다는 평가다. 당시 성호전자 주가는 액면가 500원을 겨우 넘는 데 그쳤다. 주식을 자녀에게 직접 증여할 때, 저평가된 상태라면 증여세를 줄일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진다.

부모 증여
주식 껑충

증여 결과, 박 회장 부부의 지분은 크게 줄었다. 박 회장은 기존 376만2480주서 186만2480주로 감소했다. 절반 가까운 주식을 정리한 셈이다. 부인 허씨는 219만7385주서 119만7385주로 떨어졌다.


반대로 박 부사장의 입지는 탄탄해졌다. 박 부사장은 지난 3월까지만 하더라도 85만7202주(2.41%)에 불과했다. 지분 순으로 따져봤을 때 5번째에 그쳤다. 하지만 박 회장 부부로부터 140만주를 수증하면서 225만7202주(6.34%)로 껑충 뛰었다.

종합해보면, 성호전자 지배구조는 ‘박 부사장→서룡전자→성호전자’로 재편됐다. 박 부사장은 자신의 성호전자 지분뿐만 아니라 서룡전자가 보유한 지분으로 지배력을 키울 수 있었다.
 

▲ PCB Assembly ⓒ성호전자 홈페이지

해당 과정에 저평가된 주식이 주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서룡전자는 성호전자 지분을 대량 매입할 수 있었고, 박 부사장은 박 회장 등으로부터 상당한 주식을 증여 받을 수 있었다.  이외에도 박 부사장은 승계에 있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성호전자는 오는 9월 다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한다. 참여 주주는 서룡전자와 박 부사장이다. 신주 발행 규모는 600만주로 발행가액은 500원이다. 주가가 낮게 책정된 만큼 발행가액을 줄일 수 있었다.

규모는 모두 30억원으로 서룡전자가 20억원, 박 부사장이 5억원을 맡게 됐다. 서룡전자 특수관계인으로 분류되는 하민수씨도 5억원을 지원하게 됐다.

코로나19·실적 악화…저평가 주식 원동력으로
회사 물려받아도 숙제 가득, 어떻게 풀어낼까?


유상증자 이후 사실상 박 부사장에게 대부분의 주식이 몰리는 만큼, 지배력 역시 한층 공고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서룡전자가 567만6252주(15.95%)를, 박 부사장은 225만7202주(6.34%)를 보유하고 있다. 유상증자 결과에 따라 500만주가 추가로 귀속된다면 박 사장의 승계는 사실상 매듭지어진 것과 다름없다는 해석이다.

주식 저평가에는 코로나19 외에도 실적 부진 영향도 컸다. 성호전자는 최근 3년간 악화일로를 걸었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성호전자의 연결 기준 매출액은 922억원, 913억원, 992억원이었다. 반면 영업이익은 8억원, 1억원으로 크게 줄었다가 지난해 -30억원으로 곤두박질쳤다. 순이익은 더 심각했다. 같은 기간 4억원서 -16억원, -50억원으로 고꾸라졌다.

성호전자가 손실을 본 건 5년 만이다. 회사는 2014년 8억원 영업 손실을 본 뒤 꾸준히 실적을 개선한 바 있다.

성호전자는 공시를 통해 상당한 손실을 기록한 이유에 대해 ▲판가 인하 등에 따른 기존 고객사 제품 수익성 악화 ▲신규고객사 제품 신개발에 따른 생산성 저하로 원가 상승 ▲원자재 공급부족에 따른 구매가 상승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성호전자는 지난해 매출액 992억원 가운데 매출 원가가 884억원이었다. 직전년도의 경우, 매출액 913억원에 매출 원가는 731억원이었다. 성호전자는 지난해 판관비를 23%가량 줄였지만 영업 손실을 피하기 어려웠다.

실적 악화
회복 난망

올해 성적표 역시 아직까지는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지난 1분기 성호전자는 연결 기준 191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24.9% 하락한 수치다. 같은 기간 3억원의 영업이익은 12억원의 영업손실로 전환됐다. 이어 6293만원의 순이익은 3억원의 순손실로 뒤집어졌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성호전자 2세 신사업 아이템은?

성호전자 2세 박성재 부사장은 지난 2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박재영 뱅크카드 이사와 휴대용 소독기 전문업체 ‘세니텍’을 설립했다.

박재영 이사는 이학철 고려해운 창업주의 외손자다. 이들은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생활 바이러스와 세균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했다.

세니텍은 현재 ‘브이가디언’이라는 휴대용 소독기를 판매하고 있다. 인체에 안전한 가시광선을 이용해 세균을 파괴하는 제품이다. 온라인을 통해 판매 중이다.

창업주는 두 사람이지만 사실상 회사는 박 부사장이 주도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세니텍의 본사 주소지가 성호전자와 같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일각에선 박 부사장이 신사업을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또 성호전자는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서 ‘전자상거래업’과 ‘소독기기 제조 판매업’을 추가하기도 했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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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