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 휴대폰 복제 파문’ 풀리지 않는 의문점 <넷>

‘연기 먼저 피워보고 ’진실게임‘은 나중에

톱스타 전지현이 휴대폰 무단복제로 문자메시지 내용 등이 타인에게 노출된 것으로 밝혀져 연예계가 충격에 빠진 가운데, 이번 사건에 소속사의 개입 정황이 확인됨에 따라 이를 둘러싸고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다. 소속사가 어떤 이유로 전지현의 휴대폰을 복제해 1년 넘게 도청해 왔는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지현의 사건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의문점을 추려봤다.


하나 재계약 히든카드?
전지현은 오는 2월말 소속사인 싸이더스HQ와의 계약이 만료된다. 일각에서는 소속사가 전지현과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재계약을 유리하게 진행할 목적으로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 전지현과 싸이더스HQ는 재계약 여부를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기획사와 연예인은 계약 만료 몇 개월 전에 소속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비해 전지현과 싸이더스HQ는 최근까지 구체적인 계약 논의가 오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연예 관계자는 “으레 재계약을 앞두고 연예인과 소속사의 미묘한 신경전이 있기 마련이다”라며 “전지현의 향방을 파악하고 그와 접촉하는 기획사를 사전에 알아내려는 목적이 아니었겠느냐”고 의견을 밝혔다.
해당 연예인의 사생활을 협상카드로 사용하려는 속셈을 지적하기도 했다.
다른 한 관계자는 “일부 소속사의 경우 연예인의 사생활을 문제삼아 계약 조건에서 우위를 점하려고 한다”면서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엔 일부로 몰카를 설치해 약점을 잡는 경우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톱스타들의 몸값은 드라마 출연료를 비롯해 CF, 영화 개런티에 이르기까지 한 해 매출액이 수 천만원에서 수십억원까지 높아졌다. 많은 스타들을 보유한 연예 기획사일수록 힘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연예기획사들은 톱스타와의 전속계약이 만료될 즈음이면 재계약의 의지를 보이며 안간힘을 쓰곤 한다.

둘 스캔들을 차단하라?
여배우에게 스캔들은 ‘독’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전지현 휴대폰 복제 파문 역시 자사 연예인의 스캔들 차단과 밀접하다는 주장이다. 전지현의 경우 배우보다 CF 스타로서의 가치가 높기 때문에 소속사 측에서 ‘스캔들=치명타’라는 공식을 세웠을 거란 이야기다.
그도 그럴 것이 전지현은 1997년에 데뷔한 이래 완벽한 이미지 메이킹으로 10년 이상 최고의 CF 퀸 자리를 지켜왔다. 그럼에도 불구 크고 작은 열애설로 구설에 올랐다. 지난 2004년 소속사 대표와의 뜻하지 않은 결혼설에 이어 지난해 9월에는 재미교포와의 열애설로 구설에 휩싸였다.
실제로 연예계 관계자들은 지난해 가을 일부 매체에 보도된 바 있는 전지현의 미국 열애설을 주목하고 있다. 당시 전지현 측은 이 같은 이야기에 대해 “어처구니없다. 친구 결혼식을 도와주러 미국에 들렀을 뿐이다”라고 부인한 적이 있다.     
매니지먼트사가 소속 연예인의 스캔들에 민감한 까닭은 무엇일까. 스캔들은 이미지에 치명타라는 구시대적 사고방식 때문이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기획사가 ‘광고주는 스캔들을 싫어한다’는 옛날 생각에 잡혀있다”면서 “소속 연예인이 스캔들에 민감한 이유는 결국 돈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소속사의 전근대적인 사생활 관리 시스템은 늘 존재해왔다. 전지현은 소속사라면 스타의 애정사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구시대적 논리에 희생당한 것이다”라면서 “특히 전지현의 경우 소속사의 대표격이다 보니 극단적인 관리를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재계약 유리하게 진행할 목적으로 일거수일투족 파악 의혹 제기
재미동포와 열애설 ‘진짜 이유’ 추측… 여배우에게 스캔들은 ‘독’

셋 전지현-소속사 2월 결별?

이번 사건이 터지기 전 전지현은 소속사와 무난하게 재계약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전지현과 소속사 대표 J씨는 오랜 기간 동고동락해오며 스타와 매니저의 모범사례로 불릴 만큼 끈끈한 유대관계를 자랑해 왔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전지현이 싸이더스HQ와 결별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복제폰 파문이 불거진 지난 19일에도 소속사는 “전지현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예전 같지 않은 사이임을 보였다.
최근 CF 퀸으로 꼽히는 한예슬이 싸이더스HQ로 이적하며 전지현의 입지가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까지 돌았다. 이런 상황에서 전지현이 더 이상 의리를 지킬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전지현이 자신을 발굴하고 할리우드 진출까지 성공시킨 J씨를 떠나는 것도 큰 부담이라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싸이더스HQ의 한 관계자는 “전지현과 아직 재계약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없었던 걸로 안다”면서 “전지현의 향후 행보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선택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경제불황으로 연예계 자금줄이 말라붙은 현실에서 전지현급의 ‘대어’를 영입할 회사가 쉽게 나올지도 의문이다.
대형 매니지먼트사의 한 관계자는 “전지현급의 톱스타의 전속 기간이 만료되면 연예기획사 어디라도 관심을 쏟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전지현 영입을 제안할 기획사가 몇 군데나 되겠느냐”며 “전지현이 싸이더스HQ와 결별한다면 다른 기획사로 옮기기보다는 독자적인 매니지먼트 회사를 세울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넷 회사차원에서 지시했나?
이번 사건의 최대 쟁점은 복제폰 제작이 회사 차원에서 이뤄진 것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의도에서 비롯된 것인지 여부다. 경찰의 첩보처럼 계약 만료를 앞둔 연예인의 동향 파악을 위해 복제폰이 사용됐다면 위법 행위로 처벌 대상이 될 뿐 아니라 도의적인 비난도 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국내 굴지의 연예기획사 대표가 복제폰까지 동원해 연예인의 사생활을 감시했다면 싸이더스HQ의 모회사인 SK로까지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여론이다. 그러나 J 대표가 복제폰 제작을 지시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또 담당 직원들이 보고하지 않고 복제폰을 만든 뒤 J 대표가 이를 뒤늦게 알았을 가능성 또한 있는 만큼 경찰 소환 조사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의 향방은 열쇠를 쥔 J 대표의 진술과 혐의 내용 입증에 따라 가려질 것이다. 이들이 복제폰 제작에 가담한 사실이 입증될 경우 정보통신비밀법 등이 적용될 전망이다.
경찰에 따르면 싸이더스HQ P씨 등 세 명은 작년 11월21일 심부름센터에 의뢰해 전지현의 휴대전화를 복제했고, 통화내역과 송수신 문자메시지를 본인 모르게 열람한 혐의를 받고 있다


연예인 사생활 침해…어디까지?
 “누군가 당신을 감시하고 있다?”
 
    
톱스타 전지현의 휴대폰 복제 파문이 일면서 관리를 빙자한 연예 기획사들의 연예인 사생활 침해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대형 연예기획사 10개사를 대상으로 실태를 조사해 연예인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10개 유형의 불공정 약관을 수정 또는 삭제할 것을 지시했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끌었던 조항은 ‘과도하게 사생활을 침해하는 조항’이었다. 이 유형의 예로는 ‘을은 자신의 위치를 항상 갑에 통보해야한다’(올리브나인, 웰메이드스타엠, 팬텀엔터테인먼트), ‘을이 출국할 경우에는 사전에 갑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IHQ), ‘을은 을의 신상문제, 사생활(신변, 학업, 국적, 병역, 교제, 경제활동, 사회활동, 교통수단 등)과 관련해 사전에 갑에게 상의해 갑의 지휘감독을 따라야 한다’(JYP엔터테인먼트) 등이 있었다.
당시 공정위는 “계약서에 해당 연예인의 사생활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조항이 포함되는 등 불공정계약 관행이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며 강력 시정을 요구한 바 있다.
연예인들이 수시로 자기 위치를 기획사 측에 보고하는 것은 기본 의무에 속한다. 일부 연예인들은 활동을 안 하는 시기에도 하루 2~3회쯤 전화를 해야 한다. 휴대전화 위치 추적도 양자 간 합의에 의해 이뤄지곤 한다.
미행도 한다. 흥신소에 의뢰를 하거나 로드 매니저가 직접 뒤를 밟는다. 연예인이 ‘엉뚱한 짓’ 안 하고 제때 잠을 자는지 확인하기 위해 로드 매니저가 집 앞을 지키는 경우는 더 많다.
영화배우 J씨의 매니저 출신인 A씨는 “연예인이 어느 정도 위치가 되면 매니저와 함께 다니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미행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나도 몇 차례 해봤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히 여배우가 남자를 사귀는데 그걸 매니저가 모르고 있으면 일 터지고 나서 수습하기 힘들다. 위기관리 차원에서 미리 파악을 해둬야 한다는 생각으로 미행한다. 일찍 집에 들어갔는데 배우가 다음 날 ‘피곤해서 못 일어나겠다’며 얼굴이 부어 있으면 그건 100% 문제가 있는 거다”라고 덧붙였다.
신인들의 경우 기획사나 매니저가 통장을 관리하기도 한다. 매니저 B씨는 “대형기획사는 그렇지 않지만 소규모 기획사에서는 그런 상황이 간혹 생긴다”며 “아주 드물지만 자금을 관리해주겠다며 여배우와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매니저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때문에 기획사들은 연예인과 로드 매니저가 너무 친밀한 사이가 되지 않도록 관리하기도 한다. 서로에게 이성으로서 호감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고 연예인이 갑자기 인기를 얻게 되면 뜻 맞는 로드 매니저와 따로 회사를 차려 독립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까지 연예기획사 대표를 지냈던 C씨는 “각 연예인들에게 붙여주는 로드 매니저는 통상 6개월, 짧게는 3~4개월에 한 번씩 교체했다”고 말했다.
연예인의 입을 통해 직접 알려진 ‘악덕관리’의 유형도 있다. 이는 특히 신인의 경우 종종 발생하는 사례로 연예인 데뷔를 미끼로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감금을 시키기도 하는 등 일부 연예기획사의 행태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도 했다.
실제로 가수 솔비는 지난 2007년 초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전 소속사의 부당행위를 밝히기도 했다.
솔비는 당시 방송에서 “고등학교 시절 여성 3인조로 데뷔시켜준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 엉터리 연예기획사에서 밥이며 청소를 하게 하고 외출도 하지 못하게 했다”며 “이후 함께 준비하던 두 명과 숙소를 탈출했고 나를 제외한 두 친구는 소속사와 소송까지 진행했다”고 고백했다.
이밖에 사생활에 대한 불법 비디오 촬영분을 보관, 이를 소속사 잔류의 목적으로 이용하는 연예기획사의 예도 이전의 여성 연예인 비디오 사건 등을 통해 공공연히 알려진 바 있다.
한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는 “아직도 연예인을 악덕 관리하는 행태가 남아있어 양심적으로 기획사를 운영하는 이들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며 “인권을 침해하는 소속사의 불법관행은 사라져야 한다”고 전했다.                           
 


다른 연예기획사들은?  
“우린 아냐!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펄쩍

톱스타 전지현 휴대폰 복제 파문과 관련해 전지현과 같이 한류 톱스타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있는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전지현 휴대전화의 복제는 엄연한 불법이다”라며 “하지만 이번 사건은 전지현 휴대폰 불법 복제 사건으로 봐야한다. 연예계의 관례로 해석될까봐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소속 연예인을 아무리 철저하게 관리한다고 해도 휴대전화 복제, 해킹은 도를 넘은 처사다”라며 “결코 연예인과 매니지먼트사에서 공공연하게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라고 피력했다.
국내 톱스타가 대거 포진한 또 다른 연예기획사 대표 역시 “소속사가 연예인의 휴대전화를 복제해서 감시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결코 관행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배우 매니지먼트만 15년을 해온 한 매니저는 “여배우의 경우 신변보호차원에서 배우와 매니저 상호 협의하에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신청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상호협의하에 진행되는 휴대전화 위치추적의 경우 사생활 침해라고 보긴 힘들다. 배우 역시 매니저로부터 보호받는다는 점에서 먼저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 연기자 매니지먼트사 대표 A씨는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소속사가 배우의 사생활까지 관여할 수 있겠느냐”며 “특히 톱배우들의 경우 매니지먼트사들은 말이 관리지, 떠받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휴대전화 무단복제는 처음 들었는데 어이없고 놀라울 뿐이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A씨는 “싸이더스HQ가 국내를 대표하는 매니지먼트사로 유명한 만큼 이번 일로 인해 대중들이 연예인과 소속사 간 관계를 오해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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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채 상병 특검법)이 야당 주도로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7월19일 사건 발생 10여개월 만이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반발하며 퇴장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서 ‘이태원참사특별법’을 합의 처리된 뒤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하며 채 상병 특검법 상정을 요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사건을 초동 조사하고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서 대통령실·국방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경찰 이첩 개입 의혹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를 수용해 의사일정 변경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고, 재석 168명 전원 찬성표로 가결됐다. 표결에는 야당만 참여했고, 국민의힘은 반발해 사실상 표결에 불참했다. 민주당은 원래 본회의 안건에 없었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기 위해 의사일정 변경을 우선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은 이번 본회의에 합의되지 않은 법안이 올라가는 것 자체를 반대해 왔다. 당초 김진표 의장도 여야가 합의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양당 원내대표를 의장석으로 불러서 마지막으로 중재를 시도했지만 5분 뒤 김 의장은 여러 가지로 고려한 끝에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양당의 마지막 협상도 결렬됐고, 국민의힘에서는 유일하게 자리에 남았던 김웅 의원만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방청 중이었던 해병대 예비역연대 법률 자문, 김규현 변호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년의 해병대 예비역들도 연신 눈물을 흘렸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야당이 강행 처리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로텐더홀서 규탄대회를 열고 “그간 우리 당은 이태원참사특별법에 합의 처리하는 조건으로 의사일정에 동의했다. (민주당과 김 의장이)채 상병 특검법을 애초에 처리하겠다고 했으면 저희는 오늘 본회의 의사일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모처럼 이태원법 합의 처리를 통해 협치 분위기가 조성되고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있는데 오늘 의사일정 변경까지 해서 채상병법을 처리하겠다는 것은 정치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채 상병 특검법 표결 시 본회의장을 퇴장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채 상병이 의사일정으로 상정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규탄대회 뒤 거부권 행사 건의와 관련한 질문에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국힘 퇴장 속 야당 전원 찬성 조각난 협치···대통령 또 거부?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 의사일정 변경안을 제출한 상태다. 이날 본회의는 이태원특별법 처리를 위해 여야 합의로 잡은 일정인 반면, 여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상황서 입법을 강행하기 위해 의사일정을 변경해 본회의 부의를 시도하겠다는 의도였다. 대통령실은 이날 야당의 강행 처리 예고를 예의주시하면서도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서 “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서 채 상병 특검법을 의사일정까지 바꿔가면서 일방 강행 처리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 표명은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실장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공수처와 경찰이 이미 본격 수사 중인 사건인데도 야당 측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특검을 강행하려고 하는 것은 진상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권에선 채 상병 특검법 자체의 법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이미 수사 중인 사안에 특검을 도입하는 배경에 정쟁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바라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서 진행 중인 수사가 끝난 다음, 그 과정이나 결과를 토대로 특검 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야당이 특검을 당장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대통령실은 무엇보다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해병대수사단에 수사권이 없어졌기 때문에 야권이 주장하는 ‘수사외압’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병대수사단이 기초 조사는 할 수 있겠지만, 관계자 수십명을 소환하고 연루자가 몇 명이고 하는 것은 법에 규정된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당시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의 ‘월권’ 가능성을 지적한 셈이다. “정치적 의도” 대통령실 발끈 또 과거 공수처 설치와 군사법원법 개정을 주도했던 민주당이 특검을 추진하는 모순을 거론하며, ‘참사의 정쟁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분위기다. 이날 정 실장은 “현재 공수처와 경찰서 철저한 수사를 진행 중이므로 수사 당국의 결과를 지켜보고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공수처와 경찰이 우선 수사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특검 도입 등의 절차가 논의되고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공수처는 민주당이 패스트트랙까지 동원해 설치한 기구다. 당연히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는 것이 상식이고 정도”라며 “지금까지 13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야당이 단독으로 주도한 이유도 있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서 윤 대통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수사를 왜곡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관련 정황은 이미 상당 부분 나왔다. 국방부는 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들의 혐의를 축소하려 했고, 경찰에 넘긴 수사기록도 매끄럽지 않은 과정을 통해 회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조율한 흔적도 엿보였다. 국민의힘은 특검법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서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공수처 수사가 1년 가까이 진척을 보이지 않으면서 야권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과거 대통령실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조그마한 사고’라고 언급한 사건도 국민적 분노를 유발했다. 지난 3월22일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 매체와 인터뷰서 ‘조그마한 사고’로 표현하고 “전 지휘관이 법적인 문책을 받는 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실언한 바 있다. 더구나 공수처는 지난해 8월 고발장을 접수한 이후 인력 부족, 수사 의지 등을 핑계로 현재까지 ‘수사 진행 중’이라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해병대를 비롯한 국민 여론도 특검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눈물 흘린 해병들 왜? 해병대예비역연대는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채 상병 특검법 상정과 통과를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 모여 “채 상병 특검법 통과, 박정훈 대령 탄압 중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같은)이런 세력들이 우리나라의 집권여당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은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이 나라의 안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국민의힘과 대통령은 민심을 외면하지 말고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하길 바란다”고 외쳤다. 해병대예비역연대에 법률자문을 하고 있는 해병대 출신 김규현 변호사는 “(국민의힘은)처음엔 ‘독소 조항이 있다’고, 지금은 ‘공수처와 경찰이 수사 중이니 그 수사가 끝난 다음에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과거 특검 때에는 (앞서)경찰·검찰이 수사를 안 했는가”라고 되물었다. 사실상 가장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방법은 법정 수사 기간을 최대 3개월로 정해놓고 있는 특검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병대 측은 이날 “3개월이 지나면 우리 군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안보에 전념할 수 있고, 정치권도 채 상병 문제를 일단락하고 지금 산적한 안보, 민생 정책을 논의할 수 있게 된다”며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수사를 기다리며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채 상병 문제로 정쟁을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국민의힘은 오후 2시에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전원 참석해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집회를 마친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 45명은 채 상병 특검법의 상정·통과 여부를 보기 위해 곧장 국회 본회의장으로 이동했다. 앞서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민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후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지난달 3일 본회의 자동 부의 요건을 충족했다. 여야는 지난 1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에는 합의했지만, 채 상병 특검법과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안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통한 것이다. 1년 가까이 진척 없는 수사 역풍 뻔한데···용산 선택은? 특검법 통과에 대해 대통령실은 야당을 향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수세에 몰린 대통령실이 야당을 지적할수록 부정 여론만 키우는 분위기다. 더구나 대통령실은 스스로가 수사 대상이 되는 사안서 ‘협치’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으나, 이로 인해 역풍을 맞게 되는 형국이다. 당장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용산의 뜻을 따를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어렵사리 여당 의원들을 단속하더라도 다음 달에 시작하는 22대 국회에서는 궁지에 내몰릴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신중한 모습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거부권을 행사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며 “김진표 국회의장은 합의 정신을 존중하는 분”이라고 일축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여야 합의 없이 거대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들에 대해선 ‘과도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젊은 병사의 죽음’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인 데다 야권과 언론이 국가안보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 등 대통령실 연루 의혹을 잇달아 제기한 상황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당의 총선 참패 한 달여 만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다. 국회 재표결 시 여당 이탈표도 우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 회담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의 적극적인 수용을 요구한 데 대해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것도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공수처는 특검 출범 여부와 별개로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 외압 의혹’과 관련된 핵심 인물들을 불러 조사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방부가 채 상병 사건을 회수하고 재조사하는 과정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대통령실 등 ‘윗선’으로부터 외압이 있었는지 의혹을 풀어줄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환조사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수사는 진행 중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는 지난 2일 오전 9시25분쯤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공수처는 박 전 직무대리를 상대로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재조사한 후 혐의자를 축소해 경찰로 넘기는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 등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