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야동계 큰손’ 손정우

그 아비에 그 아들 ‘봐달라 징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운영자가 사회면을 장식했다. 운영자 본인은 물론이고 아버지까지 나서 법적 조치의 합당성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고등검찰청(이하 서울고검)은 ‘다크웹’의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W2V) 운영자 손정우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심사 청구건을 형사20부(강영수 수석부장판사)에 배당했다. 범죄인 인도란 조약을 맺은 국가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외국으로 도망친 용의자 신병 확보에 협조하는 절차다.

뒤틀린 욕망
인면수심 범죄

인도조약을 체결한 국가는 정치범을 제외한 범죄자 신병이 확보되면 인도할 의무를 진다. 범죄인인도법상 법원은 인도구속영장에 따른 구속일로부터 2개월 안에 인도 심사를 결정해야 한다. 심사는 단심이며 불복할 수 없다.

손씨의 아동 음란물 유포 행위는 지난 2015년 6월부터였다. 다크웹에 웰컴투비디오라는 사이트를 개설한 손씨는 10GB 분량의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공개하며 회원을 끌어모았다. 

개설 직후부터 이 사이트는 급속도로 커졌다. 관련 영상을 올리는 회원에게 다른 영상을 받을 수 있는 포인트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사이트는 활성화됐다. 개설 초 4000명 수준이던 회원은 사이트 운영 기간인 2년8개월 동안 128만명으로 불어났다. 공유 영상만 총 17만개에 달했다.


웰컴투비디오에 올라온 음란물에는 영유아 촬영물을 비롯해 폭행 등 가학적인 영상이 다수 포함됐다. 이 사이트 내 주요 검색어는 영유아를 뜻하는 단어로 채워졌다.

그의 범죄 사실은 지난해 10월 미국 법무부가 다크웹 이용자들에 대한 32개국 공조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알려졌다. 한국 경찰은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국세청(IRS)·연방검찰청 및  영국 국가범죄청(NCA) 등과 공조 수사를 진행해왔다.

해당 사이트 서버의 IP주소가 한국 통신사 것으로 밝혀지면서 수사망이 좁혀졌고, 2018년 3월에 수사당국은 충남에 거주하던 손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한다. 경찰 조사 결과 손씨는 4억원 이상의 수익을 본 것으로 밝혀졌다.

세계 최대 아동 음란물 사이트 운영
법정구속 만료 직후 다시 철창신세

미 법무부는 가상화폐로 아동 음란물을 수익화한 첫 사례라고 밝혔다. 이후 국제공조 수사를 통해 30여개국 이용자 330여명이 적발됐다. 40대 미국인에게 징역 15년형이 선고됐고, 한 영국 이용자는 22년형을 받고 복역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과 스페인, 영국 등에선 아동 23명이 구조됐으며, 피해자 중 3세 어린이도 포함돼있다고 영국 경찰은 밝혔다.

이 사이트는 영어로 운영되는 시스템이었음에도 불구, 실제로 검거된 핵심 이용자의 대다수는 한국 국적의 남성으로 밝혀졌다. 검거된 이용자들은 20대의 미혼 대학생이나 직장인이었고, 심지어 고등학교서 근무하는 기간제 임시교사와 공중보건의, 임기제(계약직) 공무원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더욱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손씨는 수사 당국에 붙잡히자 자신이 저지른 범행을 대부분 시인했다고 한다. 법원에선 자신이 어린시절 충분한 보호나 양육을 받지 못했음을 강조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을 배포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이를 영리 목적으로 배포한 경우 7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 손정우 부친의 청와대 청원글

1심 법원은 청소년성보호법상 음란물제작·배포 등 혐의를 받는 손씨에게 징역 2년·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해 손씨는 법정구속됐다. 손씨는 지난달 27일 만기 출소할 예정이었지만 서울고검이 오후 6시15분께 경찰을 통해 손씨 인도 구속영장 집행을 완료하며 서울구치소에 다시 구금됐다.

미국 집행기관이 한 달 내 국내에 들어와 손씨를 미국으로 송환할 것이 유력하다. 법무부는 지난해 4월쯤 미국 법무부로부터 손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 요청을 받아 관련 검토 및 협의를 진행해왔고 ‘국제자금세탁’ 부분에 대해 범죄인 인도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반성 못할망정
살겠다고 바둥

법원은 손씨가 구속된 날부터 2개월 내에 송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손씨의 미국 송환과 관련된 재판은 오는 19일 오전 10시 서울고법 형사20부(부장판사 강영수) 심리로 진행된다.

범죄 행위가 낱낱이 밝혀졌음에도 손씨는 의외의 선택을 통해 대중의 지탄을 받고 있다. 법원은 지난 3일 오전 10시30분경, 손씨에 대해 법원이 비공개로 구속적부심을 진행했다. 이는 손씨는 지난 1일 오후 자신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가 적법하지 않다며 법원에 구속적부심을 청구한 데 따른 절차였다.

구속적부심이란 피의자에 대한 구속이 합당한지 여부를 법원이 다시 판단하는 절차를 말한다. 

하지만 손씨가 낸 구속적부심은 같은 날 오후 기각됐다. 법원은 오전 10시45분쯤 심문을 마친 뒤 6시간30분 만에 기각을 결정했다.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판사 윤강열·장철익·김용하)는 “인도심사청구 기록과 심문 결과를 종합하면 청구인은 도망할 염려가 있고, 계속 구금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된다”며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손씨 아버지의 비틀린 부정이 피해자들에게 또 한 번 상처를 남겼다. 손씨의 아버지인 손모(54)씨는 청와대와 법원에 한국서 처벌을 받도록 미국 송환을 거부해달라는 취지의 청원과 탄원서를 제출했다. 

아버지 손씨는 지난 4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손정우 자국민을 미국으로 보내지 말고 여죄를 한국서 받게 해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아버지 손씨는 아들의 범죄를 ‘용돈벌이’라고 설명했다. ‘IMF 이후 경제적으로 어려워져 자기 용돈은 자기가 벌어보자고 시작한 일이다. 큰 집으로 이사를 하려고 돈을 모으려고 하는 과정서 범죄를 저지르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빠인 입장서 아들을 사지인 미국으로 어떻게 보내겠냐’며 ‘미국서 자금세탁과 음란물 소지죄로 재판을 받는다면 100년 이상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호소했다.

미국 감옥행?
뒤틀린 부정

그러면서 ‘아들이 음식문화와 언어가 다른 미국서 교도소 생활을 하는 것은 본인이나 가족에게 너무나 가혹하다’며 ‘아들은 학교에 다니지 않아 범죄의 심각성을 몰랐을 거다. 강도·살인·강간미수 등의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또 손씨는 이날 범죄인 인도 심사 사건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20부(강영수 정문경 이재찬 부장판사)에 A4용지 3장 분량의 자필 탄원서를 제출했다. 아버지 손씨는 탄원서에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아들이 식생활과 언어·문화가 다른 미국으로 송환된다면 너무나 가혹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자금세탁과 음란물 소지죄만 적용해도 50년, 한국서의 재판은 별개라고 해도 100년 이상이다. 뻔한 사실인데 어떻게 사지의 나라로 보낼 수 있겠나’라며 ‘부디 자금세탁 등을 (한국)검찰서 기소해 한국서 중형을 받도록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성범죄자의 부모가 자식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청원과 탄원서를 올리자, 반성과 사죄 없이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를 가한다는 지적이 들끓었다. 이런 가운데 운영자 손씨의 신상이 공개되면서 손씨를 향한 비난의 강도는 더욱 세지고 있다.
 


성범죄자들의 신상을 공개해온 인스타그램 계정 ‘엔번방’은 손씨의 얼굴을 공개했다. 지난 4일 손씨의 초등학교 졸업사진을 공개한 엔번방 운영자는 ‘동창 증언으로는 초등학교 때부터 다크에덴 프리서버를 만들어 운영할 만큼 컴퓨터 쪽으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손씨가 조선족이라는 소문이 난무했으나 혼혈은 맞으며 어머니가 중국 쪽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같은 학년 여자친구들에게 음담패설을 하고 중학교 때부터 비아그라 성인채팅 불법 사이트 총판 등을 하며 돈을 벌었다’며 ‘검정고시를 위해 방황하던 중 주변에 야동 사이트를 운영할 거라는 이야기를 남기고 잠적했다. 그 이후 집에서 웰컴투비디오를 운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가상화폐로 수익화 첫 사례
30여국 이용자 330여명 적발

손씨에 대한 미국 송환 절차가 이뤄짐에 따라 아동성범죄에 대한 형량이 무거운 미국에서 손씨가 어느 수준의 처벌을 받게 될 것인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다만 ‘이중처벌’ 가능성을 따져봐야 한다.

범죄인 인도법 9조에 따르면 ▲범죄인의 인도범죄 외의 범죄에 관해 대한민국 법원에 재판이 계속 중인 경우 ▲범죄인이 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나지 않았거나 면제되지 않은 경우 범죄인 인도 요청을 거절할 수 있다.

법무부 또한 ‘이중처벌’ 문제를 고려해 미국의 인도요청 대상 중 국내 처벌과 중복되지 않는 ‘국제자금세탁’ 부분에 대해서만 범죄인 인도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만약 미국 법원이 아동음란물을 배제하고 자금세탁 혐의에 대해서만 다룰 경우, 손씨가 여론의 기대처럼 수십년의 중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은 적다. 

미국 자금세탁방지법에 따르면 세탁된 금액이 50만달러 이상일 경우 징역 20년 이하, 50만달러 미만이면 징역 10년 이하가 법정 권고형이다. 세탁한 자금 또한 몰수되며 50만달러 이상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손씨가 비트코인을 통해 번 수익은 약 4억원으로 권고 형량은 징역 10년 이하다. 실제 지난 2018년 미국의 암호화폐 트레이더 토머스 마리오 코스탄조는 비트코인 거래를 통해 16만4700달러를 세탁한 혐의로 애리조나주 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5개월을 선고받았다.

손씨의 자금세탁 규모는 이보다 큰 만큼 그 이상의 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크다.

단순 자금세탁이 아닐 경우 형량은 더 높아질 수 있다. 지난 3월 미 연방법원은 암호화폐를 통해 15만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을 세탁한 주비아 샤나즈에게 징역 13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샤나즈에게 적용된 혐의가 단순한 자금세탁이 아니라 ‘테러리스트 지원을 위한 자금세탁’이었기 때문이다. 샤나즈는 해당 자금을 테러 단체 이슬람국가(ISIS)에 전달한 혐의로 기소돼 형량이 크게 추가됐다.

범죄 저지르고
미국은 무섭나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미 사법당국이 손씨를 아동음란물 제작·유포 혐의로 다시 기소할 경우도 따져봐야 한다. 미 사법당국이 손씨에 대해 제기한 혐의는 아동음란물 광고 및 배포, 국제자금세탁 등 총 9가지다. 미국서 아동음란물 광고의 최소 형량은 15년, 아동음란물 배포는 초범이 최소 5년, 재범은 최소 15년이다. 미국은 각 범죄의 형량을 합산하는 ‘병과주의’를 택하고 있어 손씨는 두 가지 혐의로만 최소 20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