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대형 건설사들의 플랜B

새 먹거리 찾아 삼만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대형 건설사들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 들어서도 생존을 위한 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통적인 건설 이외의 분야에 투자하며 사업 다각화에 적극 나서는 등 과감한 도전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에 분주하다.
 

▲ 현대산업개발

건설업계에 따르면 대림산업은 최근 미국 크레이튼(Kraton)으로부터 ‘카리플렉스(Cariflex)’ 사업을 약 6200억원에 인수했다. 카리플렉스 브라질 생산 공장과 네덜란드 R&D센터를 포함한 것으로 생산제품의 원천기술까지 확보했다. 이와 함께 미국과 독일, 일본 등 글로벌 판매 조직과 인력, 영업권도 갖게 됐다.

계속되는 인수
모듈러 진출

카리플렉스는 이소프렌 고무와 이소프렌 고무 라텍스 제품을 생산한다. 이 제품들은 수술용 장갑이나 주사용기 고무마개 등 의료용 소재로 사용된다.

대림산업은 여천NCC 등을 통해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석유화학 기초제품을 생산하는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이번 카리플렉스 인수로 고기능 부타디엔 고무 생산 사업에 진출,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분야로 사업 확장을 가속화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사내이사 연임을 포기하며 경영 일선서 물러난 이해욱 회장이 석유화학뿐 아니라 에너지 디벨로퍼 사업 등을 주도하고 있어 신사업에 대한 투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아파트 브랜드 ‘자이’를 앞세워 주택사업에 주력하던 GS건설도 신사업 분야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다. 지난해 초에는 스마트팜을 사업목적에 추가한 데 이어 올해는 2차전지와 모듈러 부문에 투자하며 공격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 인사를 통해 허창수 GS건설 회장 장남인 허윤홍 사장이 신사업부문 대표를 맡으며 투자를 이끌고 있다.

GS건설은 올 초 2차전지 재활용 관련 사업에 진출, 2022년까지 1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2차전지서 니켈과 코발트, 리튬과 망간 등 유가금속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조성해 운영하는 것으로 전기차 보급 확대를 대비한 결정이다.

이와 함께 국내 건설사 중에서는 처음으로 미국과 유럽 선진 모듈러 업체 3곳을 동시에 인수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해외 모듈러 시장을 선점하고 각 사의 강점과 기술, 네트워크를 활용해 선진 모듈러 시장을 적극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부동산 규제 강화·불황 맞서 활로 찾기
대림산업, 수술 장갑 세계 1위 회사 인수

GS건설은 주총을 앞두고 ‘조립식 욕실 및 욕실제품의 제조, 판매 및 보수 유지관리업’을 사업 내용에 신설하는 정관변경을 안건으로 올리기도 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항공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지난해 말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컨소시엄(이하 HDC컨소시엄)이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하며 국적항공사를 품에 안았다. HDC컨소시엄은 4월까지 유상증자를 통한 신주 인수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당시 HDC컨소시엄은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보통주 6868만8063주(지분율 31.0%·구주)를 주당 4700원에 적용해 3228억원에 인수했다. 이와 함께 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하는 보통주(신주) 약 2조1772억원 규모(신주가격 5000원 적용)의 유상증자(제3자배정)에도 참여해 4월30일까지 신주(보통주)를 인수하기로 했다. 
 

▲ 대림산업

HDC현대산업개발은 약 2조원을 쏟아 아시아나항공의 지분 약 61.5%(구주+신주)를, 재무적투자자(FI)로 참여한 미래에셋대우는 약 15.3%의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앞서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미래에셋대우와의 지분구조를 8대2의 틀로 가져가겠다고 밝혔던 상황이다. 

HDC그룹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통해 건설 중심의 사업서 벗어나 항공사업을 활용한 다양한 신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동시에 재계 순위도 33위서 17위로 상승하게 됐다.  

HDC컨소시엄은 범현대가인 현대차그룹, 현대백화점그룹, 현대중공업그룹을 통해 항공물류 등의 강화를 추구할 수 있고, 이 밖에 다양한 시너지효과를 누릴 수 있는 신사업도 추진할 수 있다. 유통, 물류, 호텔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힐 수 있다.  

리츠사업 물꼬
골프장 운영

SK건설은 연료전지 주기기 제작업체인 미국 블룸에너지와 합작법인 설립을 마치고 이르면 올해부터 국내서 고체산화물 연료전지를 생산한다. 합작법인명은 ‘블룸 에스케이 퓨얼셀 유한회사’로 지분율은 SK건설이 49%, 블룸에너지가 51%다.

현재 경북 구미 공장서 생산설비를 설치 중이며 이르면 올해 안에 국내서 연료전지 생산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라고 SK건설은 전했다. 생산 규모는 연산 50MW로 시작해 향후 400MW까지 점진적으로 확대된다.

아울러 블룸 SK 퓨얼셀은 전문 강소기업과 협업을 통해 국산 부품의 우수한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활용할 방침이다. 협력업체 후보군 총 130여곳 가운데 약 10개 업체와 상반기 내 구매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SK건설은 “SOFC 국내 생산이 본격화된 뒤 블룸 SK 퓨얼셀을 아시아 시장을 상대로 하는 조달·생산·서비스 허브로 육성할 것”이라며 “국내 중소 부품업체의 수출 판로도 크게 확장하는 동반성장 롤 모델을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우건설은 리츠 사업에 진출했다. 대우건설은 부동산 간접투자기구인 리츠 산업에 진출해 건설과 금융이 융합된 신규 사업모델을 만들고, 회사의 신성장동력으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특히 AMC설립에 금융사를 참여시킴으로써 부동산 개발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자금 조달력과 안정성서 다른 AMC보다 경쟁 우위에 있다고 밝혔다.
 

▲ SK건설

대우건설은 개발리츠나 임대리츠에 직접 출자함으로써 디벨로퍼의 역할도 수행할 예정이다. 공사를 수주해 시공하는 단순 건설회사서 부지 매입·기획·설계·마케팅·시공·사후관리까지 하는 종합디벨로퍼 회사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존의 시공이익 외에 개발이익, 임대이익, 처분이익 등을 수취함으로써 사업 수익원을 다각화한다는 전략이다.

또 대부분의 국내 리츠가 임대주택 개발·운용이나 대기업의 부동산 자산관리 수준에 그쳤다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공모 리츠를 추진할 계획이다. 대우건설은 국내 개발사업뿐만 아니라 해외 개발사업에도 진출할 예정이며, 상업시설·오피스 등 다양한 실물자산도 매입해 운용할 계획이다.


관광업 인기
폐기물 처리도

부영그룹도 제주 더클래식CC&리조트, 무주 덕유산CC, 제주 부영CC, 순천 부영CC, 안성 마에스트로CC, 태백 오투리조트 등 국내 외 다수 리조트와 골프장을 운영하고 글로벌테마파크와 호텔 건립을 추진하면서 레저, 관광사업을 벌이고 있다.

스타트업과 협업으로 사업다각화를 모색하는 곳도 있다. 우미건설은 최근 공유주방 스타트업 ‘고스트키친’과 공유주택 수타트업 ‘미스터홈즈’에 각각 투자자로 참여했다.

전국의 신도시에 ‘호반써밋’과 ‘베르디움’ 브랜드 아파트 13만 가구를 공급하며 주택의 강자로 알려진 호반건설은 종합건설, 레저, 유통 등 신사업을 통해 지속 성장하고 있다. 

호반건설의 사업다각화는 2010년대부터 시작됐다. 2011년 KBC광주방송의 대주주가 돼 방송미디어 사업에 발을 들였고, 2016년에는 울트라건설(현 호반산업)을 인수해 사업 규모를 키웠다. 2017년에는 제주도 중문 관광단지 내 퍼시픽랜드를 인수하고 본격적인 레저사업 확대를 밝혔다.

2018년에는 리솜 리조트를 인수했고, 2019년에는 덕평CC, 서서울CC도 인수해 현재 국내 7곳, 해외 1곳의 리조트, 골프장을 보유하고 있다. 


호반건설 등 호반그룹은 종합레저 영역에 더욱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모양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리솜호텔&리조트 시설을 보수하는 동시에 중단된 제천 호텔동 공사를 재개했다. 지난 7월에는 스플라스 리솜의 플렉스타워(스파동)에서 그랜드 오픈식도 가졌다.

새롭게 선보인 스플라스 리솜의 플렉스타워(스파동)는 외관, 로비, 객실, 인테리어까지 감각적인 디자인을 갖췄다는 평을 듣고 있다.

또 지난해 6월에는 대아청과를 인수해 농산물 유통 사업에 진출했다. 대아청과는 가락시장 내 도매시장법인 중 하나로 가락시장에서 농산물 경매와 수의계약을 통한 농산물 도매 유통 사업을 하고 있는 회사다. 

GS건설, 올 초 2차 전지 재활용사업 가세
현대산업개발·SK건설 등도 사업 다각화

동부건설은 최근 건설폐기물 사업에 뛰어들었다.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업체인 WIK-용신환경개발 4개사를 인수한 에코프라임PE 사모펀드에 간접 투자하는 방식으로 진출했다. WIK-용신환경개발은 2016년 기준 일일 평균 처리실적이 6488t가량으로 업계 1위 실적을 보유한 기업이다.

동부건설 관계자는 “기존 건설업서 확장된 신사업 진출 차원서 투자를 했다”며 “높은 마진률과 견고한 현금창출능력을 보유한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업체 투자를 통해 안정적 투자수익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GS건설

태영건설은 최근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다. 태영건설은 지난 2004년 ‘TSK워터’ 설립을 시작으로 수처리·폐기물 처리·폐기물 에너지·토양 및 지하수 정화업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환경부문에서 연결기준 매출 5106억원, 영업이익 950억원을 달성했다.

계룡건설산업은 최근 주주총회를 통해 제로에너지 등 신사업 진출을 위한 정관 변경을 완료했다. 올해 제로에너지 관련 설계·시공·유지관리업을 사업 목적에 추가해 신사업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중흥그룹은 경제신문과 영자신문을 보유한 미디어그룹 헤럴드의 새 주인이 됐다. 중흥그룹과 헤럴드의 최대주주인 홍정욱 회장은 최근 홍 회장 및 일부 주주의 보유 지분 중 47.8%를 양수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중흥그룹은 주택사업에만 치중된 포트폴리오를 개선하기 위해 사업 다각화 대상을 물색해왔으며, 특히 언론사업 진출에 적극성을 보였다. 2년 전 호남 지역지인 <남도일보> 인수에 이어 최근 미디어그룹 헤럴드까지 품으면서 중앙 언론 진출에 대한 염원을 풀게 됐다.

건설로 역부족
신규사업 어디?

이처럼 건설사들은 올 초 신년사를 통해 신성장동력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정부의 부동산 시장 규제로 수주할 수 있는 정비사업 물량이 크게 감소하는 등 주택사업 환경이 녹록지 않은 까닭이다. 글로벌 경기 위축과 유가 하락 등 대외적인 변수도 많다. 대형 건설사들이 새로운 사업 분야로 눈을 돌리는 이유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프로젝트를 수주해 시공하는 것으로는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고, 정부 정책과 경기 등 외부 변수에 따른 영향이 큰 것이 사실”이라며 “수익성이 높은 개발 사업이나 그동안 하지 않았던 새로운 분야로 진출하며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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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