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공포> ‘풍전등화’ 재계는 지금…

‘올스톱’ 대한민국 경제도 비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코로나19) 여파로 재계에 ‘신 풍속도’가 그려지고 있다. 확진자가 크게 늘면서 후폭풍은 현재진행형이다. <일요시사>는 코로나19 급증 이후 크고 작은 변화에 대해 살펴봤다.
 

▲ 공항검역대에 설치된 코로나19 방역 시스템 ⓒ사진공동취재단

코로나19 피해 최소화를 위해 재계는 다양한 선택지를 고려하고 있다. 출퇴근 시간 변경과 재택근무가 대표적이다. 한정된 공간에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모이는 때를 피해 감염 가능성을 낮추는 방법이다.

보통 출퇴근 시간 변경은 1시간 정도 시차를 둔다.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을 기준으로 한다면 출근 시간을 오전 8시나 오전 10시로 변경하는 것이다. 퇴근 시간 역시 1시간씩 늦은 오후 5시 혹은 오후 8시다. 혼잡한 출퇴근 시간서 벗어나 감염 가능성을 어느 정도 낮출 수 있다는 평가다.

[재택근무]

SK그룹은 서울 서린동 SK 본사와 을지로 T타워에 입주한 계열사 임직원 출근 시간을 오전 10시로 미뤘다. 공공기관도 이에 동참한다. 서울시는 공무원과 산하기관 직원 출퇴근 시간을 오전 10시와 오후 7시로 각각 늦췄다.

업계 관계자는 “보통 출퇴근 시간이 비슷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린다”며 “불안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출퇴근 시간이 조정되면서 사람들과 조금이나마 거리를 둘 수 있어 이전보다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재택근무로 전환한 기업들도 눈에 띤다. 대표적으로 삼성과 LG, 현대자동차그룹이 있다. 삼성은 계열사 내 임산부 직원을 대상으로 시행했다. LG그룹은 초등학생 이하 자녀를 보살펴야 하는 직원과 임산부 직원에게 시한을 두지 않고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현대차그룹은 임산부와 기저질환자 등 면역력이 취약한 이들 중 희망자에 한해 진행했다.

반면 규모가 작은 회사에선 ‘그림의 떡’이라는 불만도 있다.

한 중소기업 근무자는 “사무실 근처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지만 별다른 조치가 없다”며 “재택근무가 충분히 가능한 업종인데 굳이 회사로 나와 출근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사업장 폐쇄]

아예 사업장을 폐쇄하는 곳들도 있다. LS그룹은 서울 용산 LS타워서 근무하는 직원이 코로나19 확정 판정을 받아 건물을 폐쇄했다. SK텔레콤도 본사 직원이 1차 검진서 양성 판정을 받아 서울 중구 T타워의 문을 닫았다. 하나투어도 코로나19 의심 직원이 발생해 서울 종로구 본사 건물을 임시 폐쇄했다.
 

업계 관계자는 “확진자가 발생했기 때문에 사업장을 폐쇄하고 방역처리를 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추가 확진자가 증가하는 만큼 몇 차례 폐쇄가 더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만큼 회사 차원서 입는 피해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피해가 심각한 지역인 대구와 경북에는 산업통상자원부서 지원에 나선다. 성윤모 산자부장관은 지난달 26일 “산업단지 입주 기업 원자재, 부품 수급 문제 등 애로사항을 유관기관 지원책을 활용해 해결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전국적 확산 완전 차단 어려움
선제적 대응에도…여전히 불안

코로나19 여파는 구조조정 바람을 불게 했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를 점치면서 피해가 예상되는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두산중공업은 지난달 20일부터 명예퇴직을 받았다. 대상은 만 45세 이상 직원들이다. 명예퇴직 결정은 2014년 이후 처음이었는데 규모만 2600명에 달한다.

에쓰오일도 부장급 직원들을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추진할 계획이다. 모기업 상황이 배경으로 작용했는데 최근 사우디 아람코는 실적 악화와 유가 하락 등으로 타격을 입었다.

항공업계는 더욱 심각하다. 앞서 일본 불매 운동이 노선 감소로 이어지면서 적잖은 타격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임금 삭감과 희망퇴직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항공업계 전체를 덮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주주총회]

코로나19 여파는 주주총회까지 퍼졌다. 주주들의 참여가 쉽지 않은 가운데 대부분 기업들이 의결정족수 확보에 골머리를 앓았다. 특히 대주주 의결권이 3%로 제한된 감사 선임 안건에 대한 부담이 컸다. 재무제표 승인 안건도 불투명했다. 대부분 기업이 결산을 12월로 두고 있어 이번 달 31일까지는 주총을 열어야 했다.

주총서 재무제표가 승인되지 못할 경우 상법, 자본시장법, 외부감사법 위반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사업보고서 제출 기한을 넘길 때는 한국거래소 관리종목 지정이나 상장폐지 위험에 저촉될 수 있다.

기업들의 애로사항이 불거진 가운데 금융위원회와 법무부는 지난달 26일 지원방안을 마련했다. 금융위 등은 재무제표(연결 포함)와 감사보고서, 사업보고서를 제출하지 못하거나 지연 제출할 경우 회사와 감사인에 대한 행정제재를 면제하기로 했다.

원활한 업무 처리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과 감사인은 오는 18일까지 금융감독원과 한국공인회계사회에 심사를 신청해야 한다. 이후 증권선물위원회가 이달 말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기준은 회사 결산일이 지난해 12월31일이어야 하고, 주요 사업장이 중국이나 국내 감염병 특별관리지역에 있어야 한다. 동시에 해당 지역서 중요한 영업을 영위해야 한다. 또 재무제표 작성, 외부감사 지연이 코로나19 영향을 받는 경우여야 해당된다. 감사인은 코로나19 또는 방역으로 사무실이 폐쇄돼 외부감사를 정해진 기한 내 완료하기 어려운 경우여야 한다.

금융위는 이를 신청하지 않은 기업 등이 사업보고서를 미제출하거나 지연할 경우 개별 심사를 통해 제재 수준을 결정할 방침이다. 제재 면제 대상에 해당된 기업은 1분기 보고서 제출기한인 오는 5월15일까지 사업보고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 

[공개채용]


기업들의 신입사원 공개채용 일정도 영향을 받았다. 통상 3월 초부터 상반기 채용 일정이 진행되는 점과 코로나19 확산 속도 등을 미뤄봤을 때, 일정 변동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11일 3급 대졸 신입사원 공채서 가산점을 획득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역량 테스트를 연기했다. LG그룹 역시 이공계 석·박사 유학생 채용 설명회를 취소했다. 신입사원 공채 일정은 4월 이후로 미룰 전망이다.

SK그룹도 공채 일정을 작년에 비해 2주가량 늦췄다. GS그룹과 CJ그룹은 채용 일정을 상황에 따라 연기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그룹은 계열사별로 채용 일정 연기를 검토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우선 채용 일정을 미뤘지만 코로나19 확산이 지속된다면 계획이 다시 변경될 수 있다”며 “공채가 시작되면 전국 각지서 취직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모이기 때문에 자칫하다가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속 폐쇄…일손이 없다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구직자들은 상당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구직자 44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61%는 ‘코로나19 여파로 상반기 구직에 불안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불안한 이유로 채용 연기(25.8%), 채용 전형 중단(24.2%), 채용 규모 감소(21.7%) 등이 꼽혔다.
 

▲ 현대자동차 코로나 선별진료소

각종 시험도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열릴 예정이었던 영어능력 평가시험 토익 정기시험은 전면 취소됐다. 영어시험 텝스 역시 오는 7일로 예정됐지만 코로나19 여파로 결국 취소됐다.

인사혁신처도 지난달 29일 예정이었던 2020년 국가공무원 5급 공채(행정고시) 및 외교관 후보자 선발 1차 시험(외무고시), 지역인재 7급 수습직원 선발 필기시험을 잠정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나홀로 호황]

코로나19 여파로 대부분 외출을 자제하면서 업계 전체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내수 경기가 꽁꽁 얼어붙으면서 피해를 보고 있는 업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7일 기자 간담회서 “코로나19 영향으로 실물 경제 위축이 벌써 나타나고 있다. 과거 어느 때보다 충격이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총재는 “가장 크게 위축된 것은 소비다. 관광, 음식·숙박, 도소매업 등 서비스업이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며 “1분기에 충격이 상당 부분 집중될 것으로 예상돼 1분기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대로 비대면 산업 등 ‘찜찜한’ 호황을 맞은 업계도 있다. 온라인쇼핑과 택배, 배달 업체 등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집 밖을 나서지 않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홈코노미(주로 집에서 여가를 보내는 이들의 소비)’를 가능하게 만든 기술 발전도 배경으로 작용했다.

‘배달의민족’은 일주일 만에(지난달 17∼23일) 주문 건수가 4.6% 증가했고, 지난달 21일부터 24일까지는 전주 대비 9% 늘어났다. ‘요기요는’ 지난달 1∼23일 동안 주말 전체 평균 주문 건수가 지난달에 비해 17%가량 올랐다.

이면도 있다. 업무량 폭증으로 택배나 배달 노동자들은 하루에 수백명과 마주치는 만큼 안전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동네 구석구석을 책임지는 이들 중 확진자가 발생하면 사태는 꽤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배달원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은 지난달 27일 온라인 기자회견을 통해 “택배·배달 노동 분야서 코로나19 예방과 확산을 막기 위한 구체적인 기준조차 찾아보기 힘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코로나19의 전국적 확산으로 시민들이 외출을 자제하면서 온라인 주문이 더욱 증가했는데, 물품을 전달하는 이들도, 받는 이들도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대부분 마스크 지급 정도에 그치고 나머지는 노동자 개인 책임으로 전가되기 일쑤”라며 “배송 차량 방역이나 배송 확인용 단말기 소독도 기대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유급휴가? 무급휴가?

코로나19로 입원되거나 격리되는 경우 감염병예방법 41조2항에 따라 사업주는 근로자에게 유급휴가를 줄 수 있다. 의무사항은 아니다.

다만 사업주가 국가로부터 유급휴가 비용을 지원 받는다면 근로자에게 유급휴가를 줘야 한다.

해당 유급휴가를 사유로 사업주는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다. 사업을 계속할 수 없을 때는 가능하다.

고용노동부는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에 유급 병가에 관련 규정이 있다면 이를 권고한다.

별도 규정이 없더라도 마찬가지다. 대규모 사업장은 대체로 권고를 따르지만 5인 미만 영세한 사업장은 사실상 사업주의 자의적 판단에 따르는 게 현실이다.

개원 또는 개학 연기로 아이나 학생들을 돌봐야 하는 근로자들은 가족돌봄휴가를 쓸 수 있다. 근로자 가족이 질병, 사고에 처해 있거나 자녀 양육을 위해서라면 연간 최대 10일을 쓸 수 있다.

가족돌봄휴가는 무급이지만 정부는 휴가 사용 장려를 위해 유급 휴가 전환을 검토 중이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은 지난달 27일 “가족 돌봄 휴가 유급제가 실시된다면 코로나19 발생 후 어린이집·유치원·학교의 휴원·휴교로 인해 자녀 돌봄에 큰 어려움을 겪었던 맞벌이 부부 등 양육자들이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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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