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조세피난처' 통한 한국기업 역외탈세 실태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08.02 14: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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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 목적 '검은돈' 890조원 해외에 은닉돼 있다!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탈세를 위해 해외에 은닉한 한국기업들의 '검은돈'이 890여조원에 달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충격이 가시질 않고 있다. 이는 2012년 대한민국 1년 예산인 325조원의 두 배를 웃도는 액수로 우리나라 총가계부채(1000여조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천문학적인 세수가 새고 있어 탈세기업은 살찌지만 나라곳간은 비지 않을 수 없다. 이 주장은 영국의 '조세정의 네트워크'의 최근보고서에서 제기된 것으로 우리나라 기업이 조세피난처로 몰래 빼돌린 돈이 중국과 러시아에 이어 3위로 발표됐다. 한국기업들의 역외탈세(조세피난처를 이용해 탈세하는 행위) 실태를 살펴봤다.

해외 조세피난처에 숨겨진 한국의 비자금이 무려 7천7백90억 달러(한화 890여조원)에 달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그 여파가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조세피난처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는 영국의 시민단체인 '조세정의 네트워크'는 지난 22일 보고서를 통해 40여 년 간 전 세계 갑부들이 조세피난처(스위스, 룩셈부르크, 케이맨제도 등)로 빼돌린 돈이 21조달러(약 2경4000조원)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미국과 일본의 한 해 국내총생산(GDP)을 합친 것과 맞먹는 엄청난 규모로 전 세계 총생산의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 그중 한국은 1970년대부터 2010년까지 해외 조세피난처로 빼돌린 자산이 총 7790억달러(약 888조4500억원)로 중국(1억1890억달러), 러시아(7980억달러)에 이어 3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정 위기 불러온
'조세포탈' 잡아라

조세피난처에서 이루어지는 역외탈세는 국내 법인이나 개인이 조세피난처 국가에 유령회사를 만든 뒤 그 회사가 수출입 거래를 하거나 수익을 이룬 것처럼 조작해 세금을 내지 않거나 축소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해외에서의 소득은 노출되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한 것으로 그 과정이 은밀한데다 수법도 첨단ㆍ지능화되고 있다.

한편 보고서를 작성한 제임스 헨리는 국제통화기금 IMF, 월드뱅크 WB, 국제결제은행 BIS 등의 자료를 참고했다고 밝혔다. 이어 조세포탈 적발분야의 최고권위자로 꼽히는 유펜 와튼스쿨의 사이먼 박 교수(한국명 박중석)의 연구성과를 기초로 했다고 설명했다. 사이먼 박 교수는 미국 국세청이 이전가격 조세포탈프로그램 개발을 맡길 정도의 뛰어난 전문가로 수년 전 조세의 이전가격 문제를 한국에서도 제기했다.

지난 2008년 세계적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주요 국가들은 늘어나는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해외 모처로 빠져나간 갑부들의 검은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세계 1위 경제국가인 미국은 한해 국내총생산(GDP)이 약 15조달러인데, 그 2배가 조세피난처에 은닉된 것으로 추정돼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에 2008년 재정위기를 기점으로 하여 각 주요 국가들은 역외탈세 차단에 나서기 시작했다.


다음해 2009년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서는 조세피난처에 대한 제재조치를 위해 국제공조를 강화하는 선언문이 채택됐다. 이후 각국은 활발한 조세외교를 통해 조세조약 체결 및 정보교환 협정을 맺고 조세피난처에게 국제적 기준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각국의 압박에 대표적 조세피난처이자 자금세탁처로 알려진 독일의 리히텐슈타인과 이탈리아의 산마리노가 무너지며 난공불락처럼 여겨졌던 '금융비밀주의'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방은 스위스에서 터졌다. 스위스는 16세기부터 프랑스 왕가를 포함한 주요 귀족들을 상대로 은행업을 시작한 이래 은행 고객의 신분과 계좌정보는 철저하게 비밀을 지킨다는 원칙, 금융비밀주의를 고수하며 무려 500여 년을 철칙으로 삼아왔다. 그 결과 전 세계의 갑부들뿐 아니라 개발도상국의 독재자에서 마피아집단까지 스위스은행을 찾아, 말 그대로 '검은돈의 성역'이 되었다.

국내자금 '보물섬'으로 빼돌려 세금 피하고
장사가 될 만한 기업에 투자하여 이윤 얻고
이윤 발생하면 다시 보물섬으로 빼돌리고…

미국이 스위스은행을 상대로 칼을 뽑아 든 것은 지난 2009년, 미 재무부가 스위스 최대 은행 UBS가 미국 재산가들의 탈세를 도왔다는 정황을 잡고 고강도 세무조사를 진행, UBS에 7억8000만 달러라는 엄청난 벌금을 부과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미국 내 UBS 지점들을 모두 폐쇄하고 자산을 압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UBS를 압박했다. 결국 UBS는 굴복하여 미국인 갑부 수천 명의 계좌정보를 미국에 제공했다. 이어 스위스 정부는 자국 은행법을 OECD 기준에 맞추기로 하면서 금융비밀주의와 작별을 고했다. 500여 년간 지켜온 철칙이 무너진 것이다.

현재에 이르러 OECD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조세피난처 국가 또는 지역은 존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조세피난처가 사라졌을 뿐, 여전히 탈법적 조세피난처는 존재하고 있으며 아직도 금융비밀주의라는 빗장을 굳건하게 걸고 있다. 현대판 보물섬이나 다름없는 조세피난처에 세계 각국의 갑부들이 어느 정도의 검은돈을 숨겨두고 있는지 명확한 통계가 없는 실정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99%를 쥐어짜기보다 1%의 보물섬부터 없애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조세피난처를 통해 이루어지는 역외탈세만 잡아내도 각국에서 벌어지는 재정위기는 쉽게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카리브해 동부에 위치한 브리티시 버진아일랜드(영국령)는 인구 2만5000명가량에 불과한 작은 섬나라이다. 하지만 버진아일랜드에는 수십만 개의 기업이 등록되어 있다. 바로 역외탈세 목적으로 의심되는 세계 주요국 대기업들의 자회사들로 버진아일랜드에는 이들 기업들의 자회사(페이퍼컴퍼니)를 관리해 주는 회사들로 넘쳐난다.

이곳 버진아일랜드에 우리나라 기업들도 다수 자회사를 세워 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세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는 조세피난처로는 버진아일랜드를 포함해 케이만제도(미국령), 홍콩 및 싱가포르 등인 것으로 밝혀졌다.


현대판 보물섬
'검은돈' 넘치는 62개국

우리나라 국세청과 관세청은 경제거래가 활발한 국가 중 조세피난처 역할을 하는 62개국을 우범국으로 지정해 관리해 오고 있다. 하지만 해당 국가 및 지역과의 정보교환협정이 맺어져 있지 않거나 정보교환협정이 체결됐음에도 정식 발효가 미뤄지고 있어 유용한 정보를 캐내기가 불가능해 사실상 방관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지난 25일 대기업 전문 분석사이트 '재벌닷컴'에 따르면 국내 30대 재벌그룹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국제 핫머니의 조세피난처로 지목한 국가나 지역에 설립한 해외법인이 47개사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 재벌닷컴은 자산순위 30대 그룹의 해외법인(공기업 및 민영화 공기업 제외)을 조사한 결과 작년 말 기준으로 2224개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이 중 롯데, 삼성,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LG 등 15개 그룹은 OECD가 국제 핫머니의 조세피난처로 지목하고 있는 44개 국가 혹은 지역에 47개 해외법인의 주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룹별로는 롯데가 178개 해외법인 가운데 13개사를 조세피난처 지역에 두고 있어 30대 그룹 중 가장 많았다. 롯데는 버진아일랜드에 9개사, 케이만제도에 3개사, 모리셔스에 1개사 등의 해외법인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 해외법인은 모두 비금융 지주회사로 조사됐다. 이를 두고 롯데는 "롯데마트가 중국에 진출하면서 인수한 타임스와 롯데홈쇼핑이 중국사업을 위해 인수한 럭키파이, 호남석유화학을 인수했고 또다시 타이탄 등을 인수하여 기존 법인을 버진제도에 설립한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현대차는 케이만제도에 투자전문회사 4개사와 버진아일랜드에 부동산개발회사 1개사를 소유하고 있고, 현대중공업은 마셜제도, 버뮤다, 모리셔스, 파나마, 케이만제도 등에 1개사씩을 두고 있다. LG는 파나마에 컨설팅회사 등 3개사와 마셜제도에 자원개발회사 1개사를 설립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현대는 파나마와 버진아일랜드에 해운업 관련 법인 3개사와 1개사를 각각 두고 있다.

삼성은 케이만제도에 음원유통업체 1개사, 버뮤다에 보험회사 1개사, 파나마에 해운업체 1개사 등 3개사를 갖고 있고, 한화도 케이만제도에 태양광 관련 지주회사 2개사와 버진아일랜드에 태양광투자회사 1개사 등 3개사가 있다.

국내 재벌기업
해외에 유령법인 없으면 바보?

미래에셋은 중남미지역에 위치한 바베이도스에 특수목적회사(SPC) 1개사와 케이만제도에 투자전문회사 1개사 등 2개사를, 동양은 파나마에 원유 및 천연가스채굴회사 1개사와 케이만제도에 제조업체 1개사를 갖고 있다.

이밖에 GS가 파나마에 임대업체 1개사, 한진이 키프로스에 판매대리업체 1개사, CJ가 버진아일랜드에 비금융 지주회사 1개사, 효성이 케이만제도에 변압기 제조업체 1개사, 동국제강이 파나마에 운송서비스업체 1개사, 한진중공업이 키프로스에 투자업체 1개사를 각각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같이 조사대상 그룹이 조세피난처 지역에 보유하고 있는 47개 법인 가운데 비금융 지주업이나 자원개발업, 부동산개발 등 투자 관련 회사가 60%가 넘는 30개를 차지했으며, 제조업 관련 회사는 3개사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지난 24일 금융당국과 한국수출입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1968년부터 지난 3월까지 우리나라 대기업 및 갑부가 조세피난처 35곳에 투자한 것으로 '확인된' 금액만 약 24조7800억원으로 조사됐다. 또 조세피난처에 설립된 국내기업의 페이퍼컴퍼니는 사상 최대인 약 5000개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주요 투자 대상지는 싱가포르가 약 4조6600억원으로 가장 많고 말레이시아와 케이만제도가 각각 3조3700억원, 버뮤다 약 2조9000억원, 필리핀 약 2조8000억원 등이다. 이 기간 우리나라 국외투자 총액이 1966억달러(약 225조여원)인 점을 고려하면 전체 대외 투자액의 10% 이상이 조세피난처로 향한 것이다.


이어 관세청의 집계에 따르면 홍콩과 영국, 캐나다, 네덜란드, 케이만제도 등 대표적인 10개 조세피난처에 투자된 금액이 2007년 약 8조3000억원에서 2012년 약 14조5300억원으로 4년 새 약 6조 2000억원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 총생산 3분의 1, 우리나라 총가계부채와 근접한 액수
돈 주체 못하는 1%, 가난에 허덕이는 99% '부익부빈익빈' 가속

아울러 관세청이 적발한 국외 재산도피 및 자금세탁 사례도 증가했다. 적발된 재산도피는 2007년 13건 166억원에서 2010년 22건 1528억원으로 금액으로만 보면 10배가량 급증했고, 자금세탁은 6건 83억원에서 43건 924억원으로 11배나 늘었다.

이와 같은 조세회피 의혹에 대해 모든 그룹들은 일제히 반기를 들고 일어날 조짐이다. 특히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 '재벌개혁'과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에 나온 조사결과라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어 그룹이미지에 큰 타격이 오지 않을까 염려하는 눈치다.

일부 조세경제전문가들은 현재 확인된 숫자보다 더 많은 해외법인 존재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조세피난 국가에 진출한 30대 그룹의 '숨은 계열사'는 추적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세청도 역외탈세 조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6월 중순 국세청이 SK와 삼성물산, 금호석유화학의 역외탈세 실태조사를 위해 대표적 조세피난처 중 하나인 홍콩에 직원 6명을 극비리에 급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이들 대기업이 홍콩 법인 등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 역외탈세 혐의가 있을 것으로 보고 사전 조사에 집중하고 있다.


또한 스위스와 협의를 통해 개정한 한-스위스 조세 조약상 정보교환조항이 지난 25일부터 효력을 발휘했다. 이는 2010년 12월 정보교환조항이 담긴 개정 조세조약에 양국이 서명한 지 1년7개월 만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국세청은 스위스 은행에 예치된 한국인들의 계좌정보를 이름, 주소 등 인적사항 없이 계좌번호만 가지고도 정보제공 요청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국세청 역외탈세 세무조사에 획기적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 재산가들에게 스위스는 더 이상 '세금천국'이 아니게 된 것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일본·영국 등 77개국과 조세조약을 체결했다. 현재까지 조세정보교환협정이 체결된 조세피난처는 버뮤다, 사모아, 쿡 등 15개 국가 및 지역이지만 이 중에 쿡을 제외한 14개 국가 및 지역과 체결한 조세정보교환협정은 효력이 발효되지 않고 있다. 이에 정부는 이들 국가 및 지역과 맺은 협정의 효력이 하루라도 빨리 발효되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사태 심각성 절감한 국세청

해외 세무조사단 파견

그밖에 우리나라는 싱가포르와 벨기에,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호주, 말레이시아, 오스트리아 등 8개 국가와 금융거래정보제공을 골자로 한 정보교환조항을 개정했다. 역외탈세 조사를 차일피일 미루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급하게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보잉사와 씨티그룹사 등의 조세회피를 다룬 책인 <보물섬>의 저자 니콜라스 색슨은 "세법상 구멍은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가장 큰 이유는 국내에서 벌어지는 탈루행위는 어떻게든 찾아낼 수 있으나 역외탈세는 국가공조, 정보수집이 어렵고 해외투자로 탈바꿈하는 등 교묘히 위장하는 경우가 많아 조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큰 파문을 불러온 '조세정의 네트워크'의 조세피난보고서. 이를 두고 당분간 뜨거운 진실공방이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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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