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자가 띄운 ‘소떡’ 원조 논란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08.05 09:45:47
  • 호수 12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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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주인 누구…국민간식 쟁탈전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소떡(소시지를 두른 떡) 디자인 특허권을 두고 두 회사가 정면충돌하고 있다. 특허권을 둔 제조사와 납품사의 양쪽 주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는 형국이다. 소떡 논란에 대해 <일요시사>가 알아봤다.
 

▲ 방송인 이영자가 소떡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 ⓒMBC

지난해 MBC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서 연예인 이영자가 휴게소서 소떡을 즐겨 먹는 장면이 나오면서 큰 화제가 됐다. 휴게소서 팔던 이 소떡은 편의점으로 진출하며 새로운 국민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 식품업계는 이 상품의 경쟁력을 찾기 위해 고민하다가 새로운 형태의 소떡을 만들어보자는 결론을 내린다. 

영역 확대
편의점 진출

지난달 19일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떡·빵 및 과자류 제조하는 A사에 근무한다는 직원은 국민청원에 글을 게시했다.

그는 “우리의 소떡 제품을 유통한 B사의 계열사 D사가 우리 몰래 특허청에 디자인 등록을 했다. 제품을 빼앗아간 것도 모자라 오히려 우리에 민사소송을 거는 등 파렴치한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탐욕에 눈이 먼 악덕 업체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국민청원을 하게 됐다”고 게시했다. 

이어 “B사가 발주한 5000만원 상당의 제품을 7월18일 기준 2개월이 넘도록 납품을 받아 가지도 않고 현재 재고에 쌓여있다고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B사는 이미 납품받은 제품에 대한 1억3000만원에 달하는 금액을 입금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A사는 해당 상품은 소떡을 비롯해 빵 및 과자류 제조업을 회사로 B사는 이 제품들 납품하는 회사다. 이 글은 ‘B사의 악행’이라는 제목으로 SNS와 커뮤니티 등에 일파만파 퍼졌다. 이에 네티즌들도 댓글을 달며 분노를 표출했다. 

특히 이 내용은 카페 위주로 빠르게 퍼져나가며 네티즌들의 질타를 받았다. 인******님은 카페에 “작은 기업이 큰 기업에 흔히 당하는 수법이다. 파악하기 힘든 저작권이나 특허권을 몰래 자기 앞으로 등록해 둔 다음 적당할 때 디자인권을 침해했다며 경고장을 보낸다”고 글을 올렸다. 

디자인특허권 등록 두고 엇갈린 주장 
한 단계 업그레이드로 이어진 소떡 열풍 

이어 “이번 소떡 사건은 지속적인 기업사냥꾼의 모습이 보인다. 자회사 측에 생산설비를 따로 차려 조금씩 납품이 되던 물건을 받지 않는다. 훨씬 규모가 작은 회사 입장에선 이게 갑질이라는 걸 알아도 동의를 할 수밖에 없다”며 “이번 사건으로 11명의 장애인이 근무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힘없는 기업을 괴롭히는 사건은 더욱 더 없었으면 좋겠다”고 썼다.

직원 28명 중 11의 장애인이 근무를 하는 A사는 B사에 “장애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지 말라”며 강력한 대응을 예고했다. 

휴게소서 소떡이 히트를 치자 B사 직원들은 상품 리뷰를 꼼꼼히 살펴보며 아쉬운 점을 파악했다고 한다. 기존 형태의 소떡은 한입에 먹기에 부담스러운 크기로, 입가에 양념이 묻는 등의 불편함이 있었다.
 

B사는 내부회의를 통해 소떡을 새롭게 만들고자 고심하다가 떡 안에 소시지를 넣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낸다. B사 관계자는 A사 측에 전화해 구멍이 난 형태의 떡에 비엔나 크기의 소시지를 넣을 수 있냐고 물어보며 점점 구체적으로 디자인을 잡아 나갔다.


인연서 
악연으로… 

B사 관계자가 A사로 찾아가 원하는 소떡의 디자인 개선을 요구하기도 했다. B사는 A사 관계자들과 회의를 진행할 때에도 그림을 그리며 설명했다고 말했다. 이때 B사는 A사에 아이디어를 제공했으니 특허를 진행한다는 것도 합의했다고 주장한다. 

특허청에 따르면 디자인 등록을 받기 위해서는 신규성, 공업상 이용 가능성을 충족해야 한다. 등록하려는 디자인이 출원 전에 대중에게 알려진 적이 없어야 하며, 해당 디자인의 물품을 다량으로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B사 관계자는 “A사는 OEM(주문자 위탁생산방식) 공장을 운영하는 회사다. 회사의 상품을 제작·의뢰해서 만들어주는 공장을 운영하는 회사”라고 강조했다. 이어 “A사가 우리에게 제품을 팔아달라는 게 아니라 우리가 A사에게 제작 의뢰를 한 상품만 만들어주는 회사인 것을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B사 측은 A사가 소떡에 욕심을 내는 이유는 떡이 들어가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했다. A사는 주로 떡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회사로 ‘떡 박사’라 불리는 회장이 있어 기술력이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B사는 샘플이 완료되는 시점서 디자인 특허를 신청했고, A사는 약 한 달 뒤인 납품이 진행되는 시점에 특허를 신청했다. 특허청은 똑같은 제품이라는 이유로 특허등록 출원을 반려한 상황이다.

B사 관계자는 “A사가 특허권에 욕심을 내는 이유는 다른 편의점에 납품하기 위해 한 것 같다”며 말했다. 이에 대해 A사 관계자는 “우리는 납품할 때 특허 신청을 했다. 양사가 샘플을 주고받은 시점인 한 달 전부터 특허 신청을 하면서 빼앗긴 셈”이라고 강조했다.

발주한 제품
가져가지 않아

지난해 10월 이 제품은 M 편의점서 출시돼 인기를 끌었는데 올해 1월부턴 C사 편의점서도 이 제품이 팔리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B사는 A사에 협의를 해놓고 경쟁 업체에 공급했다면서 항의했다. B사는 C사 편의점을 비롯해 각종 인터넷 사이트서도 소떡 제품이 판매되는 것에 대해서 A사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C사는 올해 4월 업체 간 특허권 분쟁으로 인해 판매를 중단했다.
 

편의점 관계자는 같은 상품이 경쟁 편의점서 팔리는 것에 대해 “유통사와 공급사 간 계약의 문제지, 전혀 문제가 될 부분은 아니다. 예를 들어 빙그레 우유 같은 편의점에 많이 판매하고 있지 않느냐”며 말했다.

이외에도 B사는 A사의 여러 주장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B사 관계자는 “특허권 분쟁을 두고 대기업의 갑질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A사가 더 오래됐고 공장도 훨씬 많다. 우리는 그 회사에 비해 신생이다. 어디가 더 대기업인지는 찾아보면 알 수 있다”고 항변했다. 


장애인사업장 강점 내세워 과한 요구?
양사 간 갈등… 법적 공방도 불가피

제품의 매출 실적이 좋아지면 직접 제조공장을 만든다는 A사 주장에 대해 “절대 아니다. 우리가 공장 세우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2017년 우리 회사는 공장을 세울 계획이 있었고 A사는 남은 재고가 있어 좋게 협의를 했다. 우리 회사가 공장 짓는 동안 OEM 공장을 찾아야 하는 상황서 A사를 만난 것이다. OEM 공장으로 계약하고 생산량이 줄어들지 않게 주문 제작을 많이 넣어 서로에게 도움이 되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A사는 발주한 물건에 대해 가져가지 않는다는 A사의 주장에 대해서는 “올해 6월말 계약을 마쳤다. 이후 마지막 물건 출고하기 전 사진을 찍어놓고 계속 그러는 것이다. 그쪽서 우리를 매도시켜야 하니까 그렇게 만드는 것 같다”고 억울해했다.

납품 금액 미입금에 대해 B사 관계자는 “이전까지 입금을 잘해왔다. A사가 말하는 비용은 이번에 소송을 진행 하다보면 피해 보상액을 이쪽에 청구해야 되는데, 법적으로 공탁금을 건 것”이라며 “그걸 마치 저희가 못 받은 것처럼 얘기하는 것일 뿐이다. A사 회장은 ‘자기 회사는 장애인사업장이기 때문에 혜택을 많이 받는다. 혜택을 나눠줄 테니 특허권에 대해 같이 나눠 갖자’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피해”
양측 평행선

B사는 특허권 분쟁사건이 사람들 입방에 오른 이후로 분위기가 많이 안 좋았다고 전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비방 전화가 오거나 불매운동하겠다는 악성 댓글도 달렸다. 양사는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야놀자 vs 여기어때  

숙박 O2O기업 ‘야놀자’가 종합숙박앱 ‘여기어때’ 운영사 위드이노베이션을 상대로 특허침해금지 및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야놀자가 지적한 건 여기어때의 ‘페이백’ 서비스다. 이 서비스는 야놀자의 ‘마이룸’ 서비스와 유사하다는 지적이다. ‘마이룸’ 서비스는 숙박업체가 위탁한 일부 객실을 판매하는 것으로, 구매한 이용자는 50% 할인 쿠폰을 받게 되고, 해당 숙박업체에 재방문 시 이용자는 할인쿠폰이 적용된 가격으로 객실을 사용할 수 있다.

야놀자는 2016년 6월17일 해당 비즈니스 모델을 특허로 출원하고, 이듬해 10월 등록을 끝마쳤다.

마이룸 서비스 따라한 페이백?

위드이노베이션은 같은해 9월 ‘페이백’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숙박업체로부터 위탁 받은 객실을 판매하고, 이용고객에게 50% 할인쿠폰을 발급해주는 서비스다. 

야놀자 측은 “여기어때의 페이백 서비스는 그 명칭만 다를 뿐 마이룸 서비스와 동일하다. 여기어때의 특허권 침해로 우리는 십수억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야놀자 김경환 법무법인 민후 대표 변호사는 “여기어때의 페이백 서비스는 야놀자의 특허 발명 각 구성요소와 구성요소 간 유기적 결합관계가 그대로 포함돼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여기어때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마이룸 관련 특허가 여러 가지가 있고, 아직 소장이 당사에 접수되지 않아서 구체적인 답변은 어렵다. 야놀자가 주장하는 특허는 페이백 서비스와 구성이 다르다”고 반론했다. <구>
 

<기사 속 기사> 식품업계 베끼기 

식품업계의 따라하기가 도를 지나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개 경쟁 업체의 인기 제품을 모방해 유사제품을 출시하는 게 관행이지만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 여름 비빔면 시장을 노린 라면 업체들의 신제품 경쟁을 살펴보면, 농심은 4월20일 ‘미역듬뿍 초장비빔면’을 시장에 내왔다.

여름 비빔면이 면과 비빔소스만으로 구성된 것을 탈파하기 위해 고심한 농심은 건더기 스프로 ‘미역’을 골랐다.

농심 연구원들은 초록색 미역 분말이 면발 개발에 들어가서 ‘알긴산’ 성분이 쫄깃한 면발 식감을 만든다는 점을 착안한 것.

비슷한 이름에 포장도 헷갈리게?

하지만 경쟁사인 오뚜기와 팔도는 같은 달 29일 미역초비빔면과 미역초무침면을 선보였고 삼양식품도 미역새콤비빈면이 공개됐다.  

전문가들은 표절을 방지하는 방법 중 하나로 특허권 등록을 꼽았다.

디자인 전문 업체 소프트리는 2013년 자사가 개발한 벌집 아이스크림에 대한 디자인 특허를 취득했고, 2년 뒤인 2015년 경쟁사와 부당 경쟁 행위 및 디자인 침해 소송서 승소할 수 있었다.

한 법조인은 “음식물 제조도 특허권 등록이 가능하다. 사안마다 다른 부분이긴 하지만, 제조 방법이나 기술에 대한 특허를 내서 받아들여지면 일정 부분 권리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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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