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재계 '8월 괴담' 막전막후

  • 김성수 kimss@ilyosisa.co.kr
  • 등록 2012.07.10 14:3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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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불 안 가릴 잔혹한 칼바람 '카운트다운'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가뜩이나 유럽발 경제위기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와중에 사정라인의 움직임까지 심상치 않아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미 살벌한 으름장으로 선전포고까지 했다. 곧 '살생부'실체가 드러날 전망. 빠르면 이달 말이나 늦어도 8월까지 그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대기업 총수들의 재판과 판결도 8월에 몰려있다 보니 요즘 재계는 '8월 괴담'으로 흉흉하다.

2007년 12월28일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 이명박 대통령은 17대 대선 승리 열흘 만에 가진 국내 주요 대기업 총수들과의 간담회에서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주의)'정책을 선언했다. 당선인 신분의 첫 공식 일정이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경제정책을 추진해 성장 중심 정책을 펼 것"이라며 법인세 인하 등 규제 완화와 감세를 약속했다.

집권중반 분위기 반전
임기 말 끝까지 압박
 
재계는 술렁거렸다. 앞서 10여 년간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한 이유에서다. 이 대통령의 발언 직후 "역시 CEO 출신 대통령" "이제는 할 만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된 재계에선 MB정부와 코드를 맞추기 위해 "투자와 고용을 늘리겠다"는 화답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그로부터 4년6개월이 흐른 지금,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자취를 감췄다. 당초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다. MB정부가 '친기업'에서 '민생'으로 경제 정책의 초점을 바꾸면서다. 이 대통령은 임기 중반부터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재계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여왔다. 대기업들이 일자리와 투자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화를 자초했다는 분석이다.

검찰 등 사정라인이 노골적으로 '재벌 군기잡기'에 나선 것도 이때부터다. 당시 정부와 재계 사이에 드리운 암운은 지금까지 걷히지 않고 있다.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던 MB정부가 과거 정권과 달리 끝까지 압박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이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재계에 '사정 태풍'이 몰아칠 조짐이다. 검찰, 국세청, 공정위, 금감원 등 '대기업 저승사자'들이 총출동해 여기저기에 묻은 '먼지'를 털어낼 태세. 국내 내로라하는 그룹들이 '살생부'에 오르내리고 있다.


먼저 국세청이 칼을 빼 들었다. 지난해 부당한 세습과의 전쟁을 선포한 국세청은 이미 '대기업 손보기'에 나섰다. 대기업 계열사들에 대해 동시다발적으로 세무조사에 착수한 것. 현재 국세청은 삼성·현대차·LG·SK 등 4대 그룹 주요 계열사에 대한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칼 빼든 사정라인 대협공 "서열순으로 친다"
'가뜩이나 어려운데…' 정권 말 대기업 손보기

그 신호탄은 LG전자였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은 지난 4월 조사요원들을 서울 여의도 LG전자 본사에 투입,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국세청은 SK건설도 털기 시작했다. SK건설의 경우 심층(특별) 세무조사를 전담하는 조사 4국이 맡았다. 요원이 무려 100여명이나 투입됐다. 1999년 한진그룹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에 200여명을 투입한 이후 최대 규모다.

삼성엔지니어링·삼성SDI 등 삼성 계열사와 기아차·현대다이모스 등 현대기아차 계열사도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국세청은 4대 그룹 외에 포스코컴텍, 피죤, 삼표, 화승, 스타벅스, 국제약품, 유한양행 등도 도마 위에 올려놓은 상태다.

뿐만 아니다. 국세청은 재산의 변칙·편법적인 상속·증여가 의심되는 대기업 오너일가를 뒤지고 있다. 이를 위해 최근 법인세 신고 자료를 토대로 50대 그룹 오너일가의 주식 변동 및 지분 매입 자금 출처에 대한 집중 분석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몇년 사이 지분변동이 잦았던 그룹은 삼성, 현대기아차, LG, SK, 롯데, 한화 등이 꼽힌다. 실제 조사 대상엔 국내 주요 재벌그룹들이 대부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세청의 대기업 압박과 맞물려 공정위와 금감원 분위기도 예사롭지 않다. 두 기관은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조사를 본격화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 2일 대기업들에 대한 감시의 고삐를 죄는 '하반기 공정거래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우선 신세계·홈플러스·롯데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중소 납품업체의 수수료를 인하하는 대신 부당한 요구를 했는지, 판촉행사 비용을 과다전가 했는지 등을 중점 조사한다. 공정거래협약을 체결한 롯데쇼핑·홈플러스·이마트·신세계·현대백화점 등 10개 유통업체에 대해선 현장 확인을 실시한다.


'살생부' 실체 8월 드러날 듯
총수 재판·판결 8월에 몰려

특히 공정위는 대기업들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등의 감시를 위해 내부거래 공시의무 이행 현황을 수시로 점검한다. 그중에서도 시스템통합(SI)부문과 베이커리 업종에 대해 집중 감시·제재할 방침이다. 또 계열사가 단순히 거래단계만 추가하고 수수료를 받는 관행(통행세)을 근절하기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는가 하면 K-컨슈머리포트의 대상 품목도 커피, 세제, TV, 유모차, 청소기 등으로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중소기업 영역 침투, 일감 몰아주기 등 대기업의 불공정한 행태 개선에 국민적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며 "하반기에 담합 등 기업의 핵심 불공정행위에 대한 감시와 경쟁질서 확립에 주력하면서 국민적 수요가 많은 소비자 정책 분야 등에 역량을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감원도 이미 선전포고를 했다. 표적은 재벌그룹들의 보험사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삼성화재·동부화재·메리츠화재 등 대기업 계열 손해보험사들의 계열사 부당지원에 대한 테마 검사를 벌였다. 이 결과는 8월 중 발표될 예정이다. 금감원은 일부 손보사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사업비 부당 회계 처리 등의 혐의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적발 사안에 대해 강력하게 제재할 방침이다.

금감원은 최근 대형 생명보험사에 대해서도 부문검사에 착수했다. 계열사들의 부당지원과 불법적인 주주배당 여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조사 대상에 오른 곳은 삼성생명·대한생명·미래에셋생명·동양생명·교보생명·신한생명·ING생명·IBK연금보험 등 8개 생보사다.

"까불면 죽는다"
오싹한 선전포고

이번 검사는 ▲계열사 일감몰아주기 ▲국제회계기준(K-IFRS) 도입 이후 최초 공시되는 결산회계 ▲배당 결정과정 ▲공시이율 결정방법의 적정여부 ▲내부통제 장치 작동 여부 등이 주요 점검사항이다. 금감원은 "생보사 8곳에 대한 부문 검사가 끝나면 부당 내부 거래 혐의가 있는 또 다른 생보사에 대해서도 검사에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관심이 모아지는 쪽은 검찰이다. 검찰도 8월부터 ‘재계 군기잡기’에 나설 것이란 게 법조계의 대체적 시각이다.

검찰은 태광그룹, C&그룹, 오리온그룹, 한화그룹, SK그룹 등 수사 와중에도 꾸준히 대기업 내사를 벌여왔다. 검찰 안팎에선 전국 각 지검 특수부 등이 주축으로 기업들의 비자금 조성, 횡령, 재산 국외도피 등 각종 비리 정보를 싹싹 긁어 모아놨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재벌 오너의 '검은돈'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조만간 대기업 관련 비리 수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비자금 조성, 횡령, 재산 국외도피 등이 수사 대상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중수부가 정조준한 타깃은 5개 그룹 정도로 압축된다. 법조계 안팎에서 거론되는 '임기 말 제물'로 유력한 대기업은 A그룹이다. 검찰엔 '오너가 거액을 횡령했다' '정치권에 비자금을 제공했다' '수상한 돈이 해외로 흘러나갔다'등 A그룹의 비리 첩보와 제보가 수북이 쌓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너가 탈루로 마련한 자금을 차명으로 관리하고 있다' '옛 임원이 창업한 하청업체와 부당한 거래 중이다'란 의혹이 있는 B그룹도 검찰이 잔뜩 벼르고 있다는 후문이다. C그룹은 해외법인을 이용한 역외 탈세, 오너의 지분확대 비리, 친인척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D그룹은 하청업체 등을 통해 단가후려치기, 공사비 부풀리기, 리베이트 등으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E그룹은 불법 해외부동산 투자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내부 인사를 앞두고 있다. 늦어도 이달 중순 단행될 예정이다. 이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헐값 매입, 민간인 불법사찰, 저축은행 비리 등 대형 사건들을 잇달아 매듭지은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가 연루된 외화 밀반출 사건과 BBK 가짜편지 사건도 인사 이전에 결론이 내려질 전망이다.

국세청, 전방위 세무조사
공정위, 대기업 감시 고삐
금감원, 대형 보험사 타깃
검찰, 오너비리 털기 시동

현 정권의 마지막 검찰 인사는 12월 대선 등을 앞둔 탓에 소폭에 그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검사장급 이상 고위급도 마찬가지다. 서울중앙지검장을 비롯해 대검 중수부장, 대검 공안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 '빅4'는 유임 또는 순환보직 인사가 점쳐진다. 다만 지난 2월 정기인사 때 자리이동이 별로 없었고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깜짝 인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대기업 수사는 내부 인사가 있는 이달 이후인 8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대검 중수부 등은 새 수사팀을 구성하는 대로 주로 대기업 비자금이나 정치인 뇌물 사건을 다루는 특수수사 방향과 대상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사정라인의 동향이 심상치 않아 자체 정보망을 확대하고 있다"며 "폭풍을 머금은 '칼바람'이 언제 어디로 몰아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한 임원은 "유럽발 경제위기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기업들이 비상경영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며 "비용 절감, 인력 감축, 자산 매각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한 와중에 외풍까지 덮친다면 국제경쟁력 약화 등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와중에 총수들이 재판을 받고 있는 대기업의 경우 긴장감이 극도로 높아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대형 사건에 연루된 오너들의 재판과 판결이 8월에 몰려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는 사정 칼바람과 함께 재계에 '8월 괴담'이 도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동안 '질질'끌었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횡령·배임 사건은 다음달 마무리될 전망이다. 두달 전 재판부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오는 8월16일 선고한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은 지난 2월 김 회장에게 징역 9년에 벌금 1500억원을 구형했었다. 이후 재판부의 인사이동으로 선고가 미뤄졌다. 역시 횡령·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그의 동생 최재원 SK그룹 부회장에 대한 재판도 이르면 8월 중 1심 판결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과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도 판결을 앞두고 있다. 담 회장은 300억원대 회사 자금을 빼돌린 혐의로 지난해 6월 구속, 지난해 10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데 이어 지난 1월 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검찰의 항소에 따라 현재 3심이 진행 중이다. 1400억원대 회사자산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이 전 회장은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4년6월에 벌금 20억원을 선고받고 2심 중이다.

7월 중 검찰 인사
재편 후 드라이브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씁쓸한' 오너일가 재판도 8월 속도를 낸다. 상속 재산을 놓고 혈투를 벌이고 있는 삼성가 이맹희-이건희 형제의 공방전이 더욱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형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분쟁 중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공판도 진행되고 있다. 박 회장은 300억원 가량을 횡령하고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100억원의 손실을 회피한 혐의를 받고 있다.

대기업들은 유럽발 경제위기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여기에 사정라인의 움직임까지 심상치 않아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서초동'에 발이 묶인 기업들은 더욱 그렇다. 돌아가는 정황상 재벌그룹에게 2012년 8월은 '잔혹한 달'로 기억될 것으로 예고되는 가운데 각 기업들은 '8월 괴담'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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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