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없는’ 스타들의 강연료 시세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06.24 11:11:32
  • 호수 12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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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1분당 17만원짜리 ‘금마이크’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1분당 17만원을 버는 일이 있다면 사람들이 믿을 수 있을까. 최근 방송인 김제동의 고액 강연료가 공개되자 국민의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일요시사>가 스타강사의 강연료에 대해 알아봤다. 
 

▲ 강연 중인 방송인 김제동씨

최근 방송인 김제동의 강연료가 공개되면서 고액 강의료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5일 김제동은 대전 대덕구청이 주최하는 1시간30분 강연에 강사로 초청돼 1550만원의 강연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민들에게 1550만원이란 금액은 상당히 큰 액수다. 김제동은 평소 서민을 위한 연예인으로 이미지를 구축했기에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실제로 과거 김제동은 “판사의 망치질과 목수의 망치질이 동등한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등 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방송인이었다.

유명인이라…
희소성 때문?

대덕구의회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은 지난 3일 성명을 내고 “대덕구는 재정자립도 16%대의 열악한 재정 상태로 자체수입으로는 대덕구청 공무원 월급도 겨우 주는 실정인데 두 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1550만원을 주며 강사를 초청하는 것은 구민 정서와 동떨어지며 비상식적인 행태”라고 비판했다. 

이후 김제동의 고액 강연료 관련해 비판의 목소리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과거에도 김제동은 고액의 강연료를 받은 사실이 알려졌다.

무소속 이언주 의원실과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실의 조사 결과, 김제동에게 가장 먼저 ‘고액 강연료’를 지급한 지자체는 충남 논산이었다. 2012년부터 거의 해마다 타운홀 미팅 행사를 개최해온 황명선 논산시장은 2014년과 2017년 두 번에 걸쳐 김제동씨를 초빙해 각각 1000만원과 1620만원의 강연료를 지급했다. 


2014년 7월17일 충남 건양대 문화콘서트홀서 열린 김제동 초청 강연, 2017년 9월20일 연무읍 육군훈련소 연무관서 열린 참여민주주의 실현 2017 타운홀 미팅 강연의 주제는 둘 다 ‘사람이 사람에게’였다.

서울 강동구는 2016년 9월 강동아트센터서 김제동 초청 강연회를 열고 1200만원의 강연료를 지급했다. 이날 강연 주제 역시 ‘사람이 사람에게’로, 김제동이 논산에서 했던 강연과 동일했다.

서울 도봉구는 2017년 10월 구민회관서 김제동 초청 강연회를 열고 1500만원의 강연료를 지급했다. 이날 2시간 동안 진행된 강연 주제도 ‘사람이 사람에게’로, 앞서 김제동이 논산과 강동구서 했던 주제와 동일했다.

김제동 최소 1000만…탁현민도 1500만
공기관 초청해 고액 강연 ‘혈세를 펑펑’

서울 동작구는 2017년 12월18일 숭실대학교 한경직기념관서 ‘인문과 문화축제’를 개최하며 김제동에게 1시간40분짜리 강연을 맡겼다. 이날 오후 6시부터 7시40분까지 ‘잘가요 2017’을 주제로 토크콘서트를 진행한 김제동은 동작구로부터 1500만원의 강연료를 받았다. 

충남 아산시는 2017년 4월29일 ‘성웅 아산 이순신’ 축제와 2017년 11월16일 ‘아산 보육교직원 한마음대회’에 김제동씨를 강사로 불러 각각 1500만원과 1200만원의 강연료를 지급했다.

경기도 김포시는 2017년 11월30일 1시간30분짜리 강연에 1300만원의 강연료를 김제동에게 지급했고, 경북 예천군은 2018년 11월23일 역시 1시간30분짜리 강연에 1500만원의 강연료를 김제동에게 지급했다. 이들 지방자치단체가 지급한 강연료는 모두 시 예산서 충당됐다.
 

▲ 개그맨 김미화씨

제주도는 2017년 12월19일 문예회관 대극장서 ‘김제동이 풀어내는 지방분권 초청강연’을 열고 김제동에게 1500만원의 강연료를 도비로 지급했다. 이날 강연 주제는 앞서 김제동이 서울 강동·도봉구, 충남 논산 등지에서 가졌던 강연과 동일했다.

경남 양산시는 2018년 6월15일 양산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서 ‘김제동과 행복한 만남’이라는 북 콘서트를 열고 김제동에게 1500만원을 지급했다. 이 강연료는 한국지역난방공사 양산지사의 후원금으로 충당됐다.

김제동에 이어 탁현민 대통령 행사기획 자문위원도 그에 준하는 1500만원을 받는다고 스스로 밝혔다. 탁 자문위원은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저는 가능하면 사양합니다만 꼭 필요하다고 하면 학교는 100만원, 지자체나 단체는 300만원, 기업은 1500만원 균일가입니다”라고 게시했다. 

김미화
기 살어~

20일 자유한국당 유민봉 의원실은 전남 곡성군, 충남 공주·논산시, 광주시 동구·북구 등 5개 자치단체가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실시한 교양강좌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는데, 최대 강연료는 770만원인걸로 나타났다. 그 주인공은 개그맨 김미화. 그는 충남 공주시가 개설한 ‘공주시민대학’서 지난 3월12일 ‘웃픈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강성태는 ‘공부의 신이 말하는 학업 성취실천 전략’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해 700만원의 강연료를 받았다. 이외에도 방송인 왕종근·최민준 자라다 남아미술연구소 대표 385만원, 장경동 목사·개그맨 이용식·이경희 ‘이경희한의원’ 원장 363만원, 유현준 홍익대학교 교수 330만원 , 김병후 정신건강의학전문의 원장 297만원, 서경덕 성신여자대학교 교수·한명기 명지대학교 교수 294만8000원으로 조사됐다.

최근 2년간 열린 전남 곡성군 리더스 아카데미 강연서도 김미화가 배우 겸 아나운서 오영실과 함께 550만원으로 강연료 1위를 차지했다. 뒤이어 손숙 전 문화부장관이 500만원으로 2위, 소설가 김홍신 작가가 450만원을 받았다. 

이외에도 김봉곤 청학동 훈장 380만원, 오한진 을지대학병원 교수 370만원, 김태원 구글 글로벌 비즈니스 상무 350만원 이철환 작가 330만원, 탤런트 김성환·황교익 맛칼럼니스트·류종형 사상심리연구소 소장 300만원, 이요셉 한국웃음연구소 소장 250만원, 이만기 인제대학교 교수·임진모 음악평론가·윤항기 목사 200만원, 김연수 푸드테라피협회 회장 160만원, 태원준 여행작가·양국진 전문강사 100만원으로 파악됐다. 

100만원부터 
2000만원 까지

2018년~2019년 충남 논산서 진행한 논산시민아카데미에서는 조승연 작가가 495만원으로 1위를 차지했다. 가수 박지헌이 300만원으로 뒤를 이었다. 한비야 여행작가·임지호 요리연구가·김창옥 ‘김창옥 아카데미’ 대표·신병주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김태원 상무 우석훈 경제학자·진중권 동양대학교 교수·이지성 작가 280만원, 서경덕 교수 220만원, 장재연 아주대학교 예방의학과 교수 100만원으로 드러났다.

지난해와 올해 광주시 북구 희망아카데미 강연서도 김미화가 600만원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이호선 숭실사이버대학교 학과장 420만원, 박정자 연극인 340만원, 함익병 피부과원장 250만원, 이인철 변호사 230만원, 김남순 미래희망 가정경제 연구소장 120만원, 김용택 시인 100만원, 한상덕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80만원을 강연료로 받았다. 
 

▲ 김미경 강사 ⓒ경기도문화의전당

같은 기간 광주 동구 아카데미서 14명의 강사가 특강을 진행했다. 개그맨 박지선이 350만원으로 가장 많이 받았고 김미화·이용식·이혜정 요리연구가·서민 단국대학교 교수·김병후 정신과의원이 315만원으로 책정됐다. 뒤이어 박애리 명창이 300만원, 김형석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 120만원,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1000만원의 강연료를 받았다.   


이희선 한국스타강사연합회 사무총장은 “김제동씨의 강연료가 비싸게 보이지만 업계에서는 놀랍지도 않다. 김미경 강사, 유시민 작가 등 인지도가 있는 톱스타 강사들은 최소 1000만원이 넘어간다”고 말했다. 이어 “이름만 말하면 알법한 스타들은 2000만원을 넘어가기도 한다. 김제동씨의 강연 경험과 이름값을 고려해볼 때 1550만원이란 금액은 적정수준이지만 지자체나 청소년 행사 같은 경우는 더 저렴하게 책정된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해서 돈 버는구나~
직원 6명 동원해 자료수집도

최근 업계서 인기가 많은 강사들은 김미경 강사, 김창옥 대표, 장경동 목사, 권투선수 홍수환씨 등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에선 몸값 책정을 강사가 아닌 스타로 봐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한다. 이 사무국장은 “유명한 스타 강사의 경우 강연료를 전부 챙기지도 못한다. 김제동씨와 마찬가지로 직원 5~6명을 데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강연을 준비할 때 직원들이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역할을 한다. 김제동도 방송서 직원들을 지칭해 “6명의 식구가 있단 말이에요. 같이 살아야죠”고 밝힌 바 있다.  

연예인들에 대한 강연료와 출연료도 시장 논리에 따라 급이 정해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연 시장에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통하기 때문에 스타 강사들은 수많은 강연 제의에 취사선택하는 게 현실이다. 스타강사의 강연료는 부르는 게 값이지만, 강연료를 따지기보다는 명분이 있는 강연을 선호하기도 한다. 국가 및 기부 행사 등 강연료가 적더라도 홍보에 효과적인 행사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국회의원 및 장관급은 1시간 기준 최소 80만원 이상으로 측정되며 공기업 같은 경우는 무료로 강연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스타강사연합회 관계자는 “과거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이 처음 시행될 때도 강연료가 전체적으로 내려간 적이 있다. 이번 고액 강연료 논란으로 인해 또 다시 정체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어 “강연시장이 위축되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강의로 생계를 유지하는 전문 강사들이다. 강연 시장도 연예계와 유사해 상위 0.1%만 고액의 강연료를 받을 뿐, 대중들에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분들이 정말 많다”고 덧붙였다. 그는 “가수 들은 대학교축제서 2~3곡만 부르면 3000~5000만원의 수익을 얻는다. 이와 비교하면 김제동씨의 1550만원은 결코 비싸지 않은 금액”이라고 덧붙였다. 

가격 낮추면
욕먹는다고?

이번 강의료 논란에 대해 법륜 스님은 “이 문제는 그가 속해있는 연예인 그룹서 많이 받는지 판단해야 한다. 김제동씨가 300만원, 500만원 받고 강연을 한다고 하면 정말 다양한 곳에서 섭외가 온다. 김제동씨보다 인기가 없는 연예인들은 강연할 기회도 사라진다. 강연료는 혼자 정하는 게 아니라 주최측 형편에 맞게 금액이 형성된다. 혼자서만 마음대로 가격을 낮추면 덤핑에 해당돼 욕을 먹게 된다”고 말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속 기사>대학축제 섭외료 천차만별 
S급 가수 3000만원?

대학축제 라인업은 20대들이 좋아하는 가수를 단번에 알 수 있는 바로미터다. 축제의 제왕은 단연 ‘싸이’다. 그는 지난 5월 한달간 광운대학교, 경희대학교 등 5개 대학축제 무대에 등장했다. 볼빨간사춘기, 레드벨벳 등 여성 가수들이 4개 대학 무대에 섰고, 최근 군 복무를 마친 래퍼 빈지노, 학교폭력 논란으로 곤혹을 치른 잔나비 등이 3개 대학 축제 무대에 올랐다.

대형 콘서트급 축제 무대를 만드는 데에는 상당한 비용이 든다. 서울의 한 대학 관계자에 따르면 “S급 가수는 3000만원 이상, A급 아이돌 그룹은 2500만원 안팎 정도가 든다”며 “무대 설치비도 2000만원 정도가 들어 비용이 보통 1억원 이상 든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지방대 추가비용 500만원

지방대의 경우 이동거리와 동선으로 인해 가수 당 섭외비가 500만원 정도 더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예인 섭외는 각 대학 학생회가 담당하고 비용은 대학서 내는 것이 일반적인데 결국 학생들의 등록금이 사용되는 셈이다. 수도권 한 대학 학생회 관계자는 “축제 라인업이 좋아야 ‘학생회가 일 잘한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에 최소한 작년 수준보다 떨어지면 안 된다는 부담이 있다”고 말했다.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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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