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1월 귀국설’ 나도는 내막

정계복귀 군불 때기…이미 연기나기 시작했다

<전북 전주 덕진의 내년 4월 재보선이 확정되면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정계복귀 수순을 밟을지를 두고 정치권에서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정 전 장관이 언젠가 정계로 돌아온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그 시기와 절차가 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그가 15, 16대 자신의 지역구였던 전주 덕진에 자리가 비면서 예상보다 일찍 고민이 시작됐다.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이 1월 말 해외 체류일정을 조기에 마치고 전격 귀국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장관의 전격적인 귀국은 사실상 4월 재보선 출마 여부를 최종 결정짓기 위한 것으로 보여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 전 장관은 2007년 대통령 선거에 이어 지난해 4월 총선에서도 패하자, 부인 민혜경 여사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정 전 후보는 미국 듀크대에서 객원연구원으로 머물고 있다. 그는 미국정치 및 에너지 관련 분야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대선 공약이었던 개성공단 중심의 ‘한반도 평화경제론’를 한단계 발전시킨 ‘한반도 제4의 물결론’으로 현지강연을 하는 등 최근 활동을 재개하기도 했다.
정 전 장관은 2008년 12월11일 뉴욕에서 열린 뉴욕코리아소사이어티 공개강연에 나섰다. 그는 이 자리에서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을 받자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내년에 중국으로 건너가 공부할 생각도 갖고 있다”며 말머리를 돌렸다. 하지만 출마 가능성 자체를 일축하진 않았다.
사흘 뒤인 12월14일에는 측근과의 전화통화에서 “미국발 금융 위기로 국내 서민경제가 심각한 데다, 남북관계까지 경색돼 심히 걱정”이라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고 한다.

정 전 장관은 12월31일 신년 메시지를 발표했다. 정치 현안에 대한 언급이 없는 짤막한 메시지였지만 4월 전주 덕진 재선거 출마 등 정치적 행보와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그는  UCLA, 스탠퍼드대 등 빡빡한 일정으로 순회강연을 돌며 “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으로 불과 10달 만에 10년의 성과를 잃어버리게 됐다”며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연일 비판했다.
국내 복귀와 관련해서 그가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은 한 전북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다. 그는 “때가 되면 참모들과 의견을 나눌 생각”이라며 묘한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 그러던 그가 마침내 ‘때가 됐다’고 판단한 것일까. 정 전 장관은 최근 측근 인사들과 신년인사차 나눈 전화통화에서 “1월 말쯤 귀국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게다가 이는 일시 귀국이 아니라 ‘국내 복귀’가 될 것이라는 뜻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정 전 장관의 미국비자 유효기간이 곧 끝난다는 점도 ‘1월 귀국설’에 힘을 실어준다.
정 전 장관은 지난해 7월 2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당초 일정은 미국 듀크대에서 6개월 유학한 뒤 중국 칭와대로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말까지 중국으로 건너가는 절차를 밟지 않았다. 중국행은 사실상 무산된 것이다. 이유는 있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외곽에서 지원하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 계속 미국에 머물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때문에 정 전 장관은 비자문제 때문에라도 이달 말까지는 귀국을 해야 하는 입장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정 전 장관의 귀국이 확정적이라면, 시기는 1월22일~24일 사이가 유력하다. 정 전 장관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을 본 뒤 설(26일) 전에 들어가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취임식이 한국시간으로 21일, 설 연휴가 24일 시작되는 감안하면 정 전 장관이 귀국할 날짜는 사흘 정도로 좁혀진다.
예상대로 1월 말 정 전 장관이 한국에 들어온다면 이는 정치권에 떠도는 그의 4월 재선거 출마설과 곧바로 직결될 전망이다. 비록 본인이 직접 출마를 언급한 적은 없는 상태지만 측근들을 통해 확산되고 있는 전주덕진 출마설의 실체가 조만간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정 전 장관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제기된 그의 재보선 출마설은 김세웅 전 의원의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금품제공과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12월24일 벌금 500만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상실한 김 전 의원의 지역구가 하필이면 전주덕진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 당시 캠프에서 특보로 활동했던 한 인사는 “전주 현지에서 출마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워낙 크다”며 그의 출마설을 뒷받침 했다. 측근 그룹에서는 그의 출마를 기정사실화 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조직의 핵심들에겐 이미 오더가 내려갔다”, “귀국해 곧바로 고향인 전북 순창과 전주를 방문할 것”, “전주의 두 지역구 중 한 곳은 정 전 장관이 맡고 나머지 한 곳은 중진거물 또는 참신한 신인이 짝을 지어 패키지 출마한다” 등 보다 진전된 얘기들이 나돈다.
그 이전엔 출마 가능성을 넌지시 암시하면서 “정치는 현실이다” “일단 원내진입이 중요하다” 등 주로 명분을 앞세웠던 것과 큰 차이가 나는 발언들이다. 
일각에서는 정 전 장관이 직접 출사표를 내는 것보다 측근들이 추대하는 모양새를 통해 자연스럽게 복귀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옛 지역구 전주덕진 ‘재보선 매물’ 등장
4월 재보선 통해 원내 재진입 시도설 솔솔

반면 정 전 장관의 덕진 복귀에는 적지 않은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우선 민주당 당내에서 그의 복귀를 부정적으로 보는 목소리가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인물이 나타나 여론의 조명을 받아야지 이미 대선과 총선에서 심판을 받은 사람이 복귀하는 것으로는 여론을 움직이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지난 연말과 연초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정 전 장관의 지지율은 5% 수준으로, 각 당의 ‘잠룡’들 중 5~6위권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압도적 지지율로 차기 대권 후보 1순위로 꼽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나 비정치인임에도 지지율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반기문 UN사무총장 등에 비하면 다소 초라한 성적표다.
지역에서도 대권주자였던 정 전 장관이 이런 상황을 타개할 생각은 않고 안정적인 텃밭에 안주하려는 데 대한 실망감과 덕진 지역구를 전유물화 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반발감 등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최근 대두된 정 전 장관의 인천 부평을 출마설이다. 이 지역은 원외 인사인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출마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곳. 안전한 전북을 노리는 것보다 ‘수도권에서 승부수를 던져야한다’는 정치적 의미가 담겨있다. 특히 여당 대표와의 전면전을 통해 18대 국회에 입성할 경우 얻게 될 자산이 더 크다는 이점도 조기 복귀에 비판적인 의원들에게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당내에서도 정 전 장관이 복귀하려면 수도권 출마를 통해 민주당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지지율은 여전히 10%대 초반으로, 지난 연말까지 20%에 안착하겠다던 정세균 대표의 목표 달성은 이미 물 건너간 상황이다. 그런 만큼 정 전 대표 같은 ‘거물’이 복귀해 침체된 민주당의 위상을 끌어올리고, 당에 활력을 불어 넣어야 한다는 얘기다.
당 일각에서는 지난 대선 때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정동영 전 장관의 정치적 위상을 볼 때 재보선보다 2010년 서울시장 출마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견해도 만만찮다. 최규성 의원은 “우리 당이 스타 정치인이 없다는 말을 듣고 있는데, 정 전 장관이 당연히 복귀해야 한다”면서도 “서울시장에 출마하거나 수도권 재보선에 출마하는 게 정도”라고 주장했다.
당 지도부는 정 전 장관 거취에 대해선 공개적으로 언급하길 꺼리고 있지만 호의적인 기류는 그리 많이 감지되지 않는다. 정세균 대표는 “그런 생각을 해볼 겨를이 없다”며 언급을 피하고 있고, 비서실장인 강기정 의원은 “당 지도부의 생각은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이미경 사무총장도 “지금은 당의 전투력을 높일 사람이 필요하다”고 반대의 뜻을 에둘러 표시하고 있다.

다만 박병석 정책위의장이 최근 사석에서 “정 전 장관이 수도권 재보선에서 치열하게 싸우겠다면 ‘YES’다. 그러나 손쉽게 당선될 수 있는 곳에 나가겠다면, 그건 ‘NO’다”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의 출마여부를 둘러싼 당내의 미묘한 기류를 보여주는 언급이다.
한 측근은 “출마했을 경우와 출마하지 않았을 경우에 대한 장단점은 내부적으로 검토가 끝났다고 봐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출마 득실에 대한 저울질은 이미 끝났고 최종적으로 정 전 장관의 결단만 남았다는 의미다.
정작 정 전 장관은 말을 아끼고 있다. 그는 얼마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내 언론들이 나의 말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니 무슨 말을 못 하겠다”며 자신의 진론에 관해 언급을 피했다. 그는 최근 국내에 있는 측근들에게도 함구령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정동영 캠프의 한 핵심 인사는 “정 전 장관이 ‘내 거취와 관련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말고, 특히 언론 접촉을 하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정 전 장관이 입을 열어 분명하게 뜻을 밝히기 전까지는 이 문제가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 전 장관이 당초 일정보다 앞당겨 귀국할 것인지, 본격적으로 정계에 복귀할 것인지, 4월 재보선에 출마할 것인지, 정치권의 눈과 귀는 당분간 정 전 장관에게 쏠릴 전망이다.


야인으로 돌아간 손학규 근황
싫다는데 왜 나만 갖고 그래?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과 더불어 언제 정계로 돌아올 것인지가 늘 초미의 관심사인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도 최근의 행보가 주목을 끌고 있다. 경기도지사 출신인 손 전 대표는 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정계복귀설이 다시 들리고 있다.
손 전 대표는 지난해 7월 있었던 전당대회 이후 부인과 함께 지인의 춘천 농가에서 닭을 키우고 등산과 독서로 소일하면서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손학규 대통령 만들기’를 목표로 하고 있는 지지층이 다시 결집을 서두르고 있는 모습이다. 손 전 대표의 지지모임인 ‘민생경제연대’는 지난 연말 서울 장안동의 한 음식점에서 송년회를 가졌다. 민생경제연대는 손 전 대표의 측근인 장준영 전 서대문연구소장이 대표를 맡고 있으며, 지난 대선 때 만들어진 후 2008년 초에 공식적인 창립대회를 갖고 활동을 재개했다.
민생경제연대 관계자는 이날 “송년회를 계기로 민생경제연대도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할 것”이라며 “향후 정동영 전 장관의 선거지원 조직에 대응하기 위한 성격”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민생경제연대를 필두로 대선조직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손 전 대표측은 손사래를 친다. 
손 전 대표의 한 측근은 “민생경제연대의 대표와 손 대표가 잘 아는 사이라 그런 식의 소문이 난 것 같다”며 “손 대표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모임”이라고 선을 그었다.
최근에는 수원 장안 출마설도 끊이지 않고 있다. 손 전 대표의 수원 출마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것은 경기기사를 역임했던 터라 여러 조건면에서 당선 가능성을 높이고 있기 때문. 물론 손 전 대표 측은 손사래를 치며 출마설을 적극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와 가까운 의원들의 방문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최근 한 중진의원이 손 전 대표를 만나 “돌아와서 당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며 그의 복귀를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손 전 대표는 “아직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거부했다는 후문이다.
비록 가능성은 낮지만 만에 하나 손 전 대표의 장안 출마설이 현실화될 경우 수원에서는 여야 전 당대표의 맞대결이 펼쳐지는 격전지가 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나라당 강재섭 전 대표의 출마설도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 전 대표 역시 출마보다는 총리 등 관료 쪽에 마음을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이명박 대통령이 기용하느냐에 따라 출마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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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