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끝나지 않은 ‘내츄럴엔도텍 사태’ 내막

바지? 실세? 대표님의 두 얼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2015년 ‘가짜 백수오’ 논란으로 시작된 내츄럴엔도텍 사태는 한국 사회에 큰 상흔을 남겼다.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위선과 탐욕 등 상류층의 민낯이 드러났다. 이 과정서 몇몇 사람들은 뜻하지 않게 유무형의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2019년 내츄럴엔도텍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이유정 전 헌법재판관 후보자

2015422일 한국소비자원은 시중에 유통 중인 백수오 제품의 상당수가 가짜라는 발표를 내놓으며 업계를 술렁이게 했다. 백수오 제품의 원료에 가짜 백수오로 불리는 이엽우피소가 섞여 들어갔다는 설명이다. 당시 백수오는 여성 갱년기에 효능이 있다는 입소문이 퍼져 한창 인기를 끌고 있었다. 내츄럴엔도텍은 즉각 한국소비자원의 발표에 반박했다.

가짜 백수오
인기 추락

하지만 2015430일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내츄럴엔도텍 백수오 제품에 이엽우피소가 혼입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던 내츄럴엔도텍 주가는 곤두박질 쳤고 제품은 홈쇼핑서 퇴출됐다.

내츄럴엔도텍은 논란이 시작된 지 2주 만인 201556일 대국민사과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빗발친 비난 여론이 무색하게 이후 검찰과 식약처는 내츄럴엔도텍의 손을 들어줬다. 20156월 검찰은 내츄럴엔도텍과 김재수 당시 대표이사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내츄럴엔도텍서 이엽우피소를 고의로 혼입했거나 혼입을 묵인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20178월에는 식약처서도 내츄럴엔도텍 제품의 무해성을 인정했다.


제품에 대한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2017년 이유정 전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과정서 내츄럴엔도텍은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 전 후보자가 가짜 백수오 논란이 불거지기 전 주식을 팔아 차익을 얻었다는 의혹을 받았기 때문.

이 전 후보자는 2013년 내츄럴엔도텍 비상장주식 1만여주를 구입했다. 주가는 가짜 백수오 논란이 불거지기 전까지 계속 오르다 한국소비자원의 발표 이후 10분의 1 수준으로 급락했다. 그런데 이 전 후보자가 가짜 백수오 논란이 일어나기 전 주식을 팔아 수억원대의 차익을 얻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이 전 후보자가 소속된 법무법인 이 당시 내츄럴엔도텍 관련 사건을 맡고 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내부정보를 이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유정 버핏’ ‘주식대박등의 꼬리표가 따라붙은 이 전 후보자는 결국 자진 사퇴했다.

서울남부지검은 지난 3월 이 전 후보자와 법무법인 원의 윤모 대표변호사, 김모 미국변호사 3명을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이하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내부정보 이용 혐의로 구속
이유정 변호사 공소장 등장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실이 남부지검으로부터 제출받은 공소장서 눈길이 가는 부분은 윤 대표변호사의 고등학교 후배라고 명시된 내츄럴엔도텍 대주주 김문학 프라바이오 전 대표의 존재다.

공소장에 따르면 김 전 대표는 내츄럴엔도텍과 법무법인 원을 연결한 사람이다. 공소장에는 김 전 대표의 소개로 법무법인 원이 내츄럴엔도텍의 해외 판권 분쟁과 관련한 사건을 수임했다고 명시돼있다. 또 김 전 대표는 식약처 발표가 있기 하루 전인 2015429일 윤 대표변호사와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김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 내부정보를 이용해 보유하고 있던 내츄럴엔도텍 주식을 처분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가 지난 17일,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됐다. 현재 그는 서울남부지방법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문제는 그가 홍보대행사 A업체와 대표 B씨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에관한법률위반(사기), 업무방해 혐의로 피소를 당했다는 점이다.
 

A홍보대행사는 연예기획사 마루기획과 프라바이오의 홍보·마케팅을 맡은 업체다. B대표는 김 전 대표가 홍보·마케팅 비용으로 주식을 제공하겠다, 양도하겠다고 수차례에 걸쳐 말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 주식이 지급되지 않아 홍보·마케팅 과정서 들어간 제반비용을 자신이 모두 부담했다는 것이다.

20155B대표는 김 전 대표, 힙합그룹 등과 미팅을 가졌다. 이 자리서 김 전 대표는 B대표에게 마루기획 소속 가수의 홍보·마케팅을 부탁하며, 제반비용으로 마루기획의 주식 지분 3%를 양도하겠다고 약속했다. B대표는 같은 해 8월에도 마루기획 주식으로 홍보·마케팅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약속을 확인받았다고 주장했다.

마루기획은 2007년 설립된 연예기획사로 워너원 박지훈, 노라조 등이 소속돼있다. 그룹 초신성, 가수 김종국도 마루기획에 몸담았던 적이 있다. 특히 김종국은 마루기획의 주식 10%를 보유한 주요주주기도 했다. B대표는 김 전 대표의 약속을 믿고 20156월부터 그해 말까지 마루기획 소속 가수에 대한 홍보·마케팅을 진행했다.

주식으로
시세차익

하지만 김 전 대표는 약속한 주식은 물론, 홍보·마케팅 비용도 지급하지 않았고 이 과정서 A홍보대행사와 B대표는 28000만원 상당의 손해를 봤다.

김 전 대표의 회사 프라바이오서 생산하는 제품에 대한 홍보 과정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김 전 대표는 B대표에게 다른 일은 하지 말고 프라바이오에만 집중해줄 것을 요청했다.

플라즈마 전문기업 프라바이오는 피부 관리기 프라뷰, 두피 관리기 프라헤어 등을 판매한다. 지난 3월 배우 고준희를 공식모델로 선정해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B대표에 따르면 김 전 대표는 프라바이오 제품 홍보의 대가로 아이카이스트홀딩스(현 프라바이오) 주식 3%30억원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A홍보대행사는 20163월 프라바이오 제품 프라뷰의 론칭쇼를 개최하는 등 홍보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당시 런칭쇼에는 마마무, 시크릿, 김종국 등 유명 연예인이 총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 네추럴엔도텍의 백수오

프라뷰와 프라뷰의 저가 보급형 플라베네를 홍보, 판매하는 과정서도 문제가 불거졌다. B대표는 김 전 대표로부터 플라베네를 독점 판매할 권한을 부여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플라베네는 불량이 많아 A홍보대행사 직원들은 제품을 직접 개선해가면서 고객에게 판매해야 했다. 제품의 질을 두고 본사에 항의했지만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고, 홈쇼핑으로 판매한 제품에 대해 고객들의 불만이 빗발쳤다는 주장이다.


직원들은 제품 불량률이 정말 심했다한 고객의 경우 제품에 계속 문제가 생겨 여러 번 교환해간 적이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B대표는 김 전 대표의 말을 믿고 모든 직원을 동원해 프라바이오에만 매달렸다. 직원들이 정말 고생했다이 과정서 사용한 비용은 727000만원에 달한다고 토로했다.

70억 들이고
전혀 못 받아

흥미로운 점은 B대표가 김 전 대표를 피고소인으로 지목해 사기,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소했음에도 마루기획이나 프라바이오 등에서 김 전 대표의 실체를 찾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B대표는 김 전 대표가 겉으로 드러나기보다 뒤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또 언변이 좋아 대화를 이끌고 상대를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실제 김 전 대표가 손을 뻗친 분야는 다양하다. 2004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필름과 <공동경비구역 JSA>의 명필름이 합병한 후 수공구업체 세신버팔로를 통해 우회상장에 성공한 MK픽처스라는 영화사가 있었다. 당시 세신버팔로의 대표가 김 전 대표였다.

명필름의 대표였던 이은 감독과는 고등학교 동창 관계로 알려졌다.


수공구업체, 영화사, 건강식품 판매업체, 연예기획사, 미용기기 개발·판매업체 등 김 전 대표가 관여한 것으로 보이는 회사는 가지각색이다. 하지만 마루기획이나 프라바이오의 등기부등본에는 김 전 대표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B대표는 김 전 대표가 전면에 등장하지 않을 뿐 관여한 회사서 실세였다고 주장했다.
 

B대표는 소속 가수와 제품을 홍보·마케팅 하는 과정서 마루기획이나 아이카이스트, 프라바이오 관계자를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김 전 대표가 사업 전반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직접 들었다고 말했다. 또 홍보·마케팅을 의뢰하고 돈을 지불하는 방식 등에 대해서도 김 전 대표가 직접 자신과 회사 직원들에게 설명했다고 전했다.

B대표가 김 전 대표를 고소하면서 검찰에 제출한 녹취록에도 마루기획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B대표와 김 전 대표는 홍보비용 지급 문제를 두고 언쟁을 벌인다. B대표는 김 전 대표에게 형님, 저 마루(기획) 때부터 믿고 일했어요. 마루(기획) 주식 준다 그래도 안 주는 거 그냥 믿고라고 말했다.

여러 사업 벌였지만
실체 발견은 어려워

김 전 대표는 그러면 니가 능력이 없는 거야, XX. 이 꼴로 해놨다 그러면은 어? 마루(기획) 얘기는 왜 해. 마루(기획)는 이 XX. 상장도 안 돼 갖고 지금 난리, 휴지 됐어, 휴지라고 답했다.

B대표와 마루기획 부사장과의 대화 녹취록서도 김 전 대표가 (마루기획) 대표 위에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B대표는 내츄럴엔도텍-마루기획-프라바이오까지 김 전 대표가 실세로 활동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회사의 사업 과정서 인맥이 묘하게 겹친다는 의혹도 꺼냈다.

지난 4월 김 전 대표의 재판 과정서 그가 내츄럴엔도텍의 펀드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법무회의에 자주 참석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그러면서 김 전 대표가 법무법인 원 소속 변호사들과 잘 알고 지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 프라바이오 모델 배우 고준희

법무법인 원과 마루기획의 연결고리는 엉뚱한 지점서 발견됐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법무법인 원 소속 이유정 전 헌법재판관 후보자는 당시 재산내역을 공개하는 과정서 마루기획 주식 1만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B대표는 2018년 여름까지 마루기획 소속 연예인으로 활동한 김종국에 대한 언급도 했다. B대표는 김 전 대표가 사석서 가수 김종국을 마루기획에 영입해 대표로 앉히고 주식을 상장하겠다는 말을 많이 했다김종국은 프라바이오 제품 프라뷰 홍보 행사에도 참석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실제 언론 보도 확인 결과 2017년 프라바이오 관련 김종국의 팬미팅이 열리기도 했다. 또 카레이서인 김 전 대표의 아들과 김종국이 함께 찍은 사진이 SNS에 올라와 있기도 하다. 20177월 올라온 사진서 김 전 대표의 아들은 김종국을 가리켜 종국이 형이라고 불렀다.

이리저리
얽힌 관계

B대표는 현재 블로그에 글을 올리거나 영상을 제작하고 1인 시위를 벌이는 등의 방식으로 김 전 대표를 비판하고 있다. 그는 내츄럴엔도텍 사태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여럿 있다고 들었다김 전 대표는 마루기획, 프라바이오 등의 회사로 제2, 3의 내츄럴엔도텍 사태를 일으킬 수 있는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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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