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공포’로 확 바뀌는 사회상

가뭄·홍수보다 더한 놈이 왔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반도가 미세먼지로 뿌옇게 뒤덮였다. 미세먼지 농도 매우 나쁨을 나타내는 붉은색이 지도를 물들였다. 미세먼지 사태가 연일 계속되면서 민심은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정부는 여러 미세먼지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재로선 백약이 무효한 상태. 국민들은 제각기 미세먼지 공포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고 있다.
 

▲ 최근 며칠 동안 한강을 휘감은 미세먼지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에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찍은 사진이 우후죽순처럼 올라오고 있다. 미세먼지 농도가 치솟았던 날의 사진과 평소 맑았던 때의 사진을 비교해 업로드한 이용자가 많았다. 배경은 같았지만 사진은 판이하게 달랐다. 최근 사진 속 하늘은 안개가 낀 것마냥 미세먼지로 자욱했다.

안개 낀 줄
뿌연 하늘

최악의 미세먼지가 장기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6일은 부산과 울산을 제외한 전국 15개 시·도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됐다. 수도권은 6일 연속이다. 20172월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제도가 시행된 이후 6일 연속은 처음이다.

강원도 영동 지역은 사상 처음으로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됐다. 수도권과 세종·충남·충북은 6일 연속, 대전은 5일 연속이다.

환경부는 지난 6전국 17개 시·도 중 15곳은 내일 초미세먼지 농도가 매우 나쁨으로 예보되거나 오늘 50/초과, 내일 50/초과 등이 예상돼 발령 기준을 충족했다고 전했다.


지난 5일에는 서울의 일평균 초미세먼지 농도가 135/까지 치솟았다. 연평균(25/)보다 5배 이상 높은 수치로 2015년 관측 이래 최고 기록이다. 올해 114일 기록한 최고 수치(129/)50일 만에 갈아치웠다.

지난 1일부터 5일까지 수도권에는 수도권 내일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시행. 외출 자제, 마스크 건강에 유의 바랍니다라는 안전 안내문자가 발송됐다. 5일에는 오전 650오늘 01시 서울지역 초미세먼지 경보 발령. 어린이, 노약자 등은 실외활동 금지, 마스크 착용 바랍니다라는 안내문자가 이어졌다.

일부 누리꾼들이 안내문자에 피로감을 호소할 정도다.

마스크는 불티나게 팔리고 공기청정기를 찾는 사람도 늘었다. 미세먼지에 좋다는 음식이 언론 등을 통해 소개되면서 판매량이 치솟고 있다. 미세먼지로 인한 호흡기 이상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미세먼지가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되고 건강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과거보다 미세먼지를 심각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세먼지 사태의 원인은 대기 정체 등 기상여건 악화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용승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장은 지난 6일 서울시청서 설명회를 가졌다.

이날 설명회서 신 원장은 최근 한반도 고농도 미세먼지는 일부 전문가들이 말하는 기후의 역습으로 해석되는 측면이 있다며 기상 악화를 주된 원인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올해 12월 초미세먼지 농도는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오염 확산에 영향을 미치는 풍속은 5년 중 최저, 세정에 영향을 주는 강수 일수 역시 5년 중 가장 적었다고농도 미세먼지가 나타날 수 있는 최악의 기상조건이라고 설명했다.

국외서 유입된 초미세먼지가 정체된 대기 상황서 퍼지지 못하자 고농도 현상이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중국 오염물질
한국에서 정체

보건환경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12월 서울의 초미세먼지 평균 농도는 37/로 최근 5년 중 가장 높았다. 하루 평균 농도가 35/를 넘는 나쁨일수는 23일로 지난 4년과 비교해 크게 늘었다.

같은 기간 베이징과 선양의 초미세먼지 농도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23% 증가했고 하루 평균 최대값과 나쁨일수도 늘었다.

분석 결과 중국 베이징과 선양서 고농도 미세먼지가 발생하고 1230시간 후 서울 미세먼지 농도가 올라갔다. 지난달 19일에는 베이징서 폭죽놀이 행사를 하고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가 올라갔다.

228일과 33일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이에 따라 보건환경연구원은 중국서 발생한 오염물질이 수도권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대기 정체는 이런 상황을 악화시켰다. 12월 시베리아와 북한 부근에 10상공의 제트 기류가 형성돼 북쪽의 찬 공기가 남하하는 것을 저지하면서 고온 건조한 날씨가 이어졌다.

미세먼지 농도 ‘매우 나쁨’ 지속
나빠지고 길어지고 공기질 ‘최악’

3월 초에는 고기압의 영향으로 한반도 주변 대기 흐름이 멈췄다. 여기에 북서풍을 따라 중국 산둥·요동 지역서 대기오염 물질이 국내로 유입되고 국내 정체가 반복되면서 고농도 미세먼지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미세먼지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화살은 정부로 향하고 있다. 확실한 대책을 내놓으라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일단 국회는 미세먼지를 국가재난 사태에 포함시키기로 합의했다.

국가재난으로 지정되면 긴급한 소요가 생겼을 때 예비비 등 국가 예산을 투입할 수 있다. 또 정부부처나 지방자치단체가 매뉴얼에 따라 능동적이고 효율적으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지난 6일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자유한국당 나경원,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긴급 회동을 갖고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등 미세먼지 대책과 관련 있는 법안들을 오는 13일 국회 본회의서 처리하기로 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 통과되면 국민 생명과 신체·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 조치에 미세먼지도 포함돼 현재와 같은 상황이 일어날 경우 국가가 안전관리체계를 확립하고 예방과 대비, 대응 등을 체계적으로 수행할 의무를 지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미세먼지 대책을 주문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6일 춘추관서 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이 중국서 오는 미세먼지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중국 정부와 협의해 긴급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회의서 미세먼지 해결을 위해 중국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인공강우를 공동으로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미세먼지 고농도 시 한중이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를 동시에 공동으로 시행하는 방안을 협의하라한중 환경장관회의서 인공강우 기술협력을 진행하기로 이미 합의했고, 인공강우에 대한 중국 쪽의 기술력이 훨씬 앞선 만큼 서해 상공서 중국과 공동으로 인공강우를 실시하는 방안을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또 한중이 미세먼지 예보시스템을 공동으로 만들어 대응하는 방안도 내놨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필요하다면 추경을 긴급 편성해서라도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 역량을 집중하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일, 조명래 환경부장관으로부터 미세먼지 대응방안과 관련된 긴급보고를 받고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에 대용량 공기정화기를 보급하는 데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말한 바 있다.

반면 중국 정부는 미세먼지 책임론을 부인했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6일 문 대통령이 주문한 미세먼지 한중 공조방안 마련에 대한 입장을 묻는 말에 관련 보도를 알지 못한다”며 한국의 미세먼지가 중국서 온 것인지에 대해 충분한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최근 서울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147/를 넘었지만 베이징에는 미세먼지가 없었던 것 같다는 말로 중국 책임론을 반박하기도 했다.

정부 차원 대책
중 “우리 아냐”

미세먼지 원인에 대한 우리와 중국의 입장이 엇갈리면서 대책 마련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또 정부서 내놓은 미세먼지 대책이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라 당장 눈에 보이는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뿐만 아니라 현재 시행중인 미세먼지 대책도 가시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미세먼지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각 시·도별로 비상저감조치를 내릴 수 있는 근거는 마련된 상태다. 하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엇박자를 내면서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발령으로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을 제한하고 있는 곳은 서울뿐이다. 그마저도 실효성 논란에 휩싸여 있다. 행정·공공기관 차량 2부제 역시 실제 효과는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미세먼지 피하기에 나섰다. 최악의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덮치면서 마스크 판매량이 급증했다. 인천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A씨는 미세먼지가 심하다는 예보가 나와도 마스크를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꼬박꼬박 착용한다. 목에 솜이 낀 것처럼 꽉 막힌 경험을 한 차례 했기 때문이다.
 

미세먼지·황사 방역용 마스크 제조업체는 말 그대로 물량이 폭주한 상태다. 생활용품점 다이소에 따르면 228일부터 34일까지 닷새간 미세먼지 대비용품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했다.

그중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로부터 미세먼지 차단 효과를 인증받은 KF80·KF94 인증을 포함한 마스크 제품은 전년 동기 대비 46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세먼지는 식약처 인증 표시 KF(Korean Filter)가 있는 제품을 사용해야 차단이 가능하다. KF800.6크기의 미세입자를 80% 이상, KF94는 평균 0.4크기의 입자를 94% 걸러낼 수 있다. 미세먼지 마스크는 일반 마스크와 달리 단가 자체가 높은 데다 성능에 따라 비용도 천차만별이다. 공기질이 연일 나빠지고 있는 상황서 마스크 빈부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주장을 마냥 우스갯소리로 치부할 수 없게 됐다.

지난 5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미세먼지 마스크를 국민들에게 무상공급 해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우리 국민들은 보통 편의점서 (미세먼지 마스크를) 구입하는데 KF마크가 있는 제품은 개당 3000원 정도였다고 했다.

마스크·공기청정기 불티나게 팔려
가격·성능 천차만별 …빈부격차도

그러면서 미세먼지 감소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도 필요하다. 중국과의 외교적 노력이나 환경부 차원서의 제도적 노력도 중요하다그러나 향후 수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미세먼지 오염서 당장 우리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점에서 미세먼지 마스크는 현실적으로도 가장 강력하고 비용 대비 효과적인 대책이다. 그러나 민간에 공급이 맡겨져 있고 실제 많은 국민들이 일회용이라는 사실을 잘 모른 채 사용하고 있다정부가 주도해 국민 보건을 위해 긴급하게 미세먼지 마스크를 대량생산해 국민에게 무료로 공급해줄 것을 부탁한다. 전 국민이 어렵다면 저소득층 노약자만이라도 우선적으로 무상 공급될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공기청정기도 가정용뿐만 아니라 차량용, 1인용 등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공기청정기 제조사는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는 상황이다. 대유위니아는 미세먼지 농도가 최악으로 치달았던 지난 1일부터 5일까지 5일 동안 위니아 공기청정기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85%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공기청정기는 가정서 한 대 이상 구매하는 비율이 높아 업계에서는 시장이 앞으로 더욱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세먼지 사태가 만든 신조어도 나왔다. 엄마를 뜻하는 빈부격차를 합한 맘부격차. 미세먼지가 심해지자 일부 엄마들이 자녀를 데리고 공기가 깨끗한 해외로 떠나 한 달 살기에 나선다는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사람들이 소외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9만원에 달하는 프리미엄 마스크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는 상황도 비슷하다. 심지어 미세먼지를 피해 이민을 생각한다는 사람도 있다.

노점상 등 자영업자들은 미세먼지 사태에 제대로 타격을 입고 있다. 특히 노점서 음식을 파는 사람들은 미세먼지 농도가 치솟을수록 손님 수가 줄어 울상이다. 서울 영등포 노점서 떡볶이 등 분식을 파는 B씨는 최근 말 그대로 파리를 날리고 있다. 퇴근 시간과 늦은 저녁시간에 노점을 찾던 손님들이 싹 사라졌다. 다른 노점도 손님이 줄긴 마찬가지다.

재래시장 상인들도 줄어든 손님에 한숨을 내쉬고 있다. 재래시장 특성상 손님들이 지나가면서 구경할 수 있도록 상품을 외부에 진열하는 경우가 많은데, 미세먼지가 그 위로 덮치면서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는 것.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시장을 찾는 사람이 늘 것으로 기대했던 상인들도 실망이 커지고 있다.

제조사 웃고
노점상 울고

전문가들은 이번처럼 미세먼지 사태가 장기화되면 소비자들의 소비패턴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미세먼지가 심해질수록 봄철 나들이 관광객도 크게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다이들이 밖으로 나와야 먹고살 수 있는 사람들에겐 미세먼지 자체가 치명타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미세먼지에 타격을 입고 있는 소상공인들은 정부의 발 빠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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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