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에도…’ 돈 챙긴 오너들 막전막후

직원들 보너스 못 줘도 오너 일가 배당은 팍팍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주가 하락과 실적악화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대 배당금을 지급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 행동주의 펀드들의 주주권 행사, 기업의 막대한 현금 보유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 등이 맞물리며 배당이 매년 확대되는 추세지만 '대주주 배불리기'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토니모리가 ‘실적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업황 악화와 연결 자회사의 부진이 겹치면서 적자규모가 더 커졌다. 다만 이런 상황서도 배당규모는 전년보다 확대돼 이목을 끌고 있다.  

회사 어려워도
주머니는 두둑

토니모리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66.06% 감소한 5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181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03% 줄었다. 당기순이익은 78억원의 적자를 기록, 전년 대비 41.75% 확대됐다. 특히 지난해 4분기 영업손실은 34억원에 달했다.

다만 같은 기간 매출액은 48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4% 증가했다. 

토니모리는 2017년 적자로 전환한 뒤, 실적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화장품 로드숍 시장이 하향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 연결 자회사의 부진과 각종 비용 부담까지 늘어나며 수익 감소로 이어졌다. 4분기의 경우 중국사업 구조조정의 영향으로 인한 재고자산 처리를 위한 1회성 원가 반영과 자회사인 메가코스 초기 가동에 따른 원가상승, 판매관리비 증가로 인해 적자규모가 커진 것으로 평가됐다.


실적악화에도 배당은 확대됐다. 토니모리는 이사회를 통해 지난해 회계연도에 대한 결산배당으로 주당 100원을 현금배당하기로 했다. 하지만 오너가(家) 배당 잔치 논란에 휩싸이자 지난 12일 배당 관련 내용을 정정했다. 새롭게 수정된 내용은 전 주주 대상이던 주식 배당금을 최대주주(특수관계인 제외)를 제외하고 차등 배당한다는 것이다.

이는 전년과 비교하면 대폭 늘어난 규모다. 토니모리는 지난해의 경우, 주당 50원을 소액주주만을 대상으로 차등 배당했다.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에 대해서는 배당을 실시하지 않은 셈이다. 이에 대해 당시 토니모리는 “주주우선 경영 이념과 영업적자를 감안해 내린 결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토니모리의 지분 66.13%는 배해동 회장(32.12%)을 포함한 특수관계인 4명이 보유하고 있다. 소액주주에 대한 배당만 이뤄지면서 총 배당금은 2억9116만원으로 책정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 주주를 대상으로 배당이 진행된다. 여기에 주당배당금도 늘어나면서 배당규모가 대폭 불어나게 됐다. 

이에 따라 오너 일가도 올해는 두둑한 현금을 챙기게 됐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소유 지분율로 계산할 경우 배 회장을 포함한 오너 일가 4명은 이번 배당으로 11억6647만원을 챙길 전망이다. 이 가운데 배 회장은 5억6647만원의 배당이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토니모리, 배당 대상 변경의 이유는?
국순당, 상폐 위기에도 배당에만 혈안

토니모리는 2006년 설립된 화장품 제조 및 판매사로 2015년 7월10월 코스피 시장에 상장했다. 

이러한 가운데 ‘백세주’로 유명한 국내 대표 전통주 전문기업 국순당의 배중호 대표가 ‘자기 배불리기’ 행보를 보여 세간의 빈축을 사고 있다.


국순당은 2015년 ‘가짜 백수오’ 파동으로 백세주 자진회수를 결정하면서 수익성이 악화됐고 후속작 부진, 업황 악화 등 영향으로 여전히 악화일로를 걷는 상황이다. 지난달 21일자로 공시한 ‘내부결산시점 관리종목 지정 또는 상장폐지 사유발생’ 서류서 지난해 별도 기준 매출액은 526억7900만원, 영업손실 27억5100만원, 순이익 151억7100만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국순당의 영업손실은 최근 4년 연속 이어지고 있는 상황. 실제로 2015년 83억500만원, 2016년 54억5600만원, 2017년 35억8400만원, 그리고 지난해까지 잇따라 영업손실을 내왔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이에 한국거래소는 최근 국순당에 대해 관리종목으로 지정할 우려가 있다며 외부감사를 거쳐 올해 실적이 확정되면 거래소는 국순당을 관리종목으로 지정한다는 계획을 전한 바 있다.

국순당은 올해도 흑자 전환에 성공하지 못하면 코스닥 상장 규정 38조 2항에 따라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이 된다. 심사를 통해 개선기간을 부여받거나 상장폐지로 지정돼 매매정리 후 공식적으로 증시서 퇴출된다.

또 국순당은 이날 현금·현물배당 결정 공시도 함께 냈다. 국순당은 결산배당으로 주당 260원의 현금배당을 결정했다. 시가배당률은 6.18%, 배당금 총액은 45억8377만8160원이다. 배당 기준일은 지난해 12월31일이다.

투자보다…
연구비도 줄어

지난해 9월30일 기준으로 배 대표는 국순당 지분 36.59%(653만3744주)를 보유하고 있다. 이어 배 대표의 아들인 배상민 상무 4.06%(72만4220주), 딸 은경씨가 1.33%(23만8110주)를 보유 중이다.

이번 현금배당을 통해 배 대표는 16억6800만원 상당을 배당 명목으로 챙기게 됐고 배 상무와 은경씨도 각각 1억8800만원, 6900만원의 수입을 올릴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영업손실이 이어지면서 회사는 최악의 경우 상장폐지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이지만, 정작 배 대표는 실적을 고려하지 않고 배당금만 올리고 있다는 점.

국순당은 2017년 1주당 170원의 현금배당을 실시했다. 2015년과 2016년 각각 50원의 배당을 책정했던 것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이 시기 배 대표의 보수도 인상됐다. 2015년과 2016년 8억1000만원 수준이던 연봉은 2017년 10억3600만원으로 전년 대비 28%나 뛰었다.

공기청정기와 가습기 등 생활가전 전문기업인 위닉스도 배당 논란에 휩싸였다. 최근 10년간 순이익의 절반가량을 배당한 것.
 

반면 연구개발(R&D) 투자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고 있어 미래성장동력 확보보다는 오너 일가의 주머니 채우기를 우선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위닉스는 오너일가인 윤희종 회장과 윤철민 사장이 각각 30.5%, 19.6% 등 5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배당액의 절반이 오너 일가 주머니로 들어가는 구조다. 

지난달 2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위닉스는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314억원의 순이익을 냈고 161억원을 배당했다. 윤 회장이 10년 동안 받은 배당금 총액은 59억1000만원이다.

윤 사장은 2014년부터 26억3000만원을 받았다. 윤 회장과 윤 사장 부자가 10년 동안 위닉스서 배당받은 금액을 합치면 총 85억4000만원이다. 최근 2년 사이 받은 배당금만 54억원에 달한다. 10년간 받은 배당금의 63%가 최근 2년 동안 받은 것이다. 

위닉스가 배당을 본격적으로 늘리기 시작한 것은 2017년부터다. 당시 113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는데 26.6%인 30억원을 배당했다. 주당배당금은 200원으로 최대 4배 뛰었다. 

지난해에는 18년 만에 처음으로 중간배당(주당 200원)도 실시했고 연말에도 주당 200원을 배당했다. 연간 기준으로 주당배당금은 400원이고 배당성향은 38.9%로 크게 높아졌다. 상장사 평균 배당성향(16%)보다 크게 높은 수준이다. 

대대적 정정
그래도 강행


위닉스 관계자는 “2018년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면서 배당이 확대됐다”며 “영업상황이나 이익을 고려해 배당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위닉스는 2016년 139억원의 순적자가 났음에도 주당 50원의 배당을 실시했다. 전년도에 171억원 적자를 내며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음에도 배당에 나선 것이다. 2011년에도 62억원 적자를 냈지만 주당 50원씩 6억원 이상을 배당했다. 

공교롭게도 위닉스가 배당에 활발히 나선 시기부터 연구개발비는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2013년과 2014년 42억원대로 고점을 찍었고 2015년 40억원, 2016년에는 36억원이 됐다. 

2017년 연구개발비는 38억원으로 소폭 늘었지만 매출 대비 비중은 하락했다. 2015년 매출 대비 2.1%였던 연구개발비 비중은 2016년 1.7%, 2017년 1.5%로 매년 떨어졌다. 지난해는 1∼9월 동안 1.2%로 더 낮아졌다.

세아그룹도 오너 일가의 배당을 대폭 늘려 빈축을 사고 있다. 회사는 기울어도 오너 일가의 부를 늘리면 그만이라는 식의 족벌경영 폐해가 곳곳서 드러나고 있는 것.

지난 1월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세아홀딩스는 지난해 매출 5조1766억원, 영업이익 1543억원, 당기순이익 985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2017년에 비해 8.0% 늘었지만,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전년에 비해 각각 43.8%, 53.4% 줄었다.

위닉스, 배당은 늘고 투자는 매년 감소
세아그룹, 실적 정정? 배당금은 챙긴다

철강사업 불황이 지속되면서 세아홀딩스의 영업이익이 급감한 것이다.

세아홀딩스는 자회사의 결산 과정서 일회성 요인이 발생했다면서 지난달 19일 지난해 실적을 대대적으로 정정공시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은 물론 자산총계와 부채총계, 자본총계, 자본총계 대비 자본금 비율까지 모두 8개 항목을 수정했다.

정정공시로 세아홀딩스의 지난해 영업실적 부진은 더욱 심해졌다. 세아홀딩스의 정정공시를 보면 지난해 매출은 5조1767억원으로 0.01% 증가에 그친 것으로 수정됐지만, 영업이익은 당초 공시 대비 23.9%가 감소한 1175억원으로 정정됐다. 같은 기간 순이익도 33% 줄어든 659억원이 됐다.

이에 따라 지난해 세아홀딩스의 매출은 전년 대비 8% 신장했지만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57.2% 줄었고 순이익은 전년 대비 68.8%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세아홀딩스 측은 “매출 또는 손익구조 30%(대규모 법인 15%) 이상 변경 공시 규정에 따라 실적을 공시했지만 자회사의 결산 과정서 일회성 요인이 추가되면서 정정공시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세아홀딩스는 이 같은 실적악화에도 불구하고 올해 배당금을 전년보다 25% 늘린 99억9775만원으로 확정했다. 배당규모는 실적 정정이 이뤄진 이후에도 수정되지 않아 오너 일가는 당초 결정대로 배당금을 챙길 것으로 보인다.

세아홀딩스는 배당금의 대부분은 지분이 많은 오너 일가 차지가 된다. 최대주주인 3세 이태성 대표를 비롯해 오너 일가가 79.8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태성 세아홀딩스 대표가 35.12%의 지분을, 이 대표의 어머니 박의숙 세아네트웍스 회장이 10.6%, 작은아버지인 이순형 세아홀딩스 회장이 12.66%, 사촌인 이주성 세아제강 부사장이 17.9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결산배당을 통해 오너 일가에 돌아가는 배당금은 79억8320만원에 달한다.

동전 양면 같은…
긍정적인 면도?

한 업계 전문가는 “지나친 배당은 기업경영을 위축시킬 수도 있지만 적절한 배당은 주가상승 등 오히려 기업의 가치를 향상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며 “이처럼 동전의 양면 같은 게 배당정책인 만큼 회사는 정치·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고 일관된 자세로 주주들에게 경영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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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