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2·28하노이선언

이번에 톡 까놓고 툭 터놓는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두 번째 세기의 만남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8개월여 만에 다시 만나게 된다. 장소는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서 베트남 하노이로 변경됐지만 의제는 동일하다. 북미는 실질적 비핵화 조치와 상응조치를 두고 다시 한 번 맞붙을 예정이다. 미리 보는 하노이선언. 두 정상이 서명한 합의문에는 어떤 내용이 담기게 될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베트남 하노이서 오는 27일부터 28일까지 1박2일 일정으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현지시각) 워싱턴DC 연방의회서 신년 국정연설을 통해 “대담하고 새로운 외교의 일환으로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향한 역사적인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며 2차 북미정상회담의 날짜와 장소를 모두 공개했다. 2차 북미정상회담 일정이 확정되면서 협상 의제에 대한 관심도 증폭됐다.

비핵화 조치
제재 완화?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서 제1차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했다. 그러나 1차 북미회담 이후 발표된 합의 내용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합의 사항은 선언적 수준에 그쳤고, 내용은 구체적이지 않았다.

양국은 1차 북미회담이 열리기까지 팽팽하게 맞붙었다. 과거부터 지속된 양국 간 불신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을 앞두고 정상회담 취소를 통보하기도 했다. 정상회담이 우여곡절 끝에 개최됐지만 북미 간 불신은 공동합의문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1차 북미회담 이후 북미 실무협상이 진행됐다. 다만 가시적인 성과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북미는 ‘선 비핵화 조치’와 ‘선 대북제재 완화’의 순서를 두고 줄다리기를 계속했다. 이후 약 8개월 만에 2차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된다. 양국이 정상회담을 개최할 만한 접점을 찾았을 것이란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번 2차 북미회담의 관건은 지난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와 그에 따른 미국의 상응조치다. 상응조치는 대북 경제제재 해제로 수렴한다. 북미가 비핵화 조치와 제재 해제라는 큰 그림 속에서 무엇을 얼마나 주고받을 수 있을지가 이번 2차 북미회담의 의의를 결정짓게 된다.

북미정상 재회…센토사서 하노이로
비핵화-상응조치, 얼마나 주고받나

북미는 두 가지 관건에 도달하기 위해 싱가포르선언 당시 합의한 내용을 토대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당시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선언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 ▲평화체제 보장 ▲북미 관계 정상화 추진 ▲6·25전쟁 전사자 유해송환 등에 공동 합의했다. 북미는 4개 항을 뼈대로 2차 북미회담서 구체적인 내용물을 채운 뒤, 비핵화 조치와 제재 해제를 향해 한 걸음 진보할 전망이다.

2차 북미회담에 앞서 북미는 실무협상에 나섰다. 1차 실무협상은 지난 6∼8일 평양서 열렸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2박3일간 방북해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와 실무협상을 벌였다. 이날 북한은 비건 특별대표에게 미국의 상응조치로 대북 경제제재 완화와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북미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 그리고 종전선언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건 특별대표는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을 방문한 문희상 의장과 여야 5당 대표단을 만나 이 같은 내용을 전달했다.

비건 특별대표는 이날 “10여개 이상의 문제를 논의했고, 싱가포르선언 이행을 위해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미가 2차 북미회담서 완전한 비핵화 등 4가지 공동합의사안이 담긴 싱가포르선언을 토대로 논의를 진행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또 10개 이상의 문제는 싱가포르선언이라는 뼈대 안에 채워질 구체적인 내용물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튿날 대표단은 워싱턴DC 인근서 열린 특파원 간담회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전했다.


바른미래당 정병국 의원은 “북한이 원하는 미국의 상응조치가 제재 완화와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북미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 종전선언 등 4가지 아니냐고 묻자 비건 특별대표가 ‘정확히 짚었다’고 했다”고 말했다.

4가지 상응조치는 경제발전과 체제안정, 그리고 평화체제 구축으로 압축된다. 대북 경제제재 완화와 개성공단·금강산관광은 경제발전에, 북미 상호 연락사무소는 체제안정에, 그리고 종전선언은 평화체제 구축에 해당한다는 해석이다.

4가지 사안
비핵 로드맵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안은 경제 분야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트위터를 통해 “북한은 대단한 경제 강국이 될 것”이라며 “북한은 다른 종류의 로켓이 될 것-경제로켓!”이라고 밝혔다.

지난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로켓맨’이라 칭했다. 당시 북미는 전쟁설이 거론될 정도로 첨예한 대립구도를 형성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북미회담을 앞두고 경제로켓을 언급한 것은 북미 관계의 변화와 함께 비핵화 조치의 원동력이 경제가 될 것이란 점을 강조한 것이다.

우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대북 경제제재 완화의 우선순위로 거론된다. 김 위원장 역시 개성공단 등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신년사에서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위원장은 개성공단 등의 재개를 위한 일련의 비핵화 조치를 내세웠을 것이란 분석이다.

경제제재 완화의 가능성이 돋보이는 이유로 회담 장소의 상징성이 지목되기도 한다. 2차 정상회담은 베트남서 열린다. 베트남과 미국은 과거 베트남전쟁으로 인해 대립 관계를 형성했다. 그러나 미군 유해 송환으로 시작된 양국 간 화해무드는 원조와 관계 정상화, 개혁·개방으로 이어졌다.

베트남이 성장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이번 2차 북미회담이 베트남서 열리는 만큼 미국서도 북한 경제와 관련된 사안을 지나치지 않았을 것이란 해석이다.

북미 상호 연락사무소도 눈여겨볼 만하다. 미국은 과거 북한에 연락사무소를 제안했지만 북한이 이를 거절한 바 있다. 수전 셔크 전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는 지난 12일(현지시각)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와의 인터뷰서 “미국은 몇 년 전, 연락사무소 개설을 제안했지만 북한이 거절했다”며 “미국과 북한이 개설에 합의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상호 연락사무소는 양국 간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로 평가된다. 비건 특별대표가 ‘정확히 짚었다’는 대목에 따르면 이번엔 북한이 먼저 북미 상호 연락소를 제안한 셈이다. 공동합의문에 상호 연락소가 담길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북미 간 종전선언도 조명을 받고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불발되면서 이른바 ‘4자(남북미중) 종전선언’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북미회담을 계기로 종전선언을 위해 베트남행을 계획했던 문재인 대통령도 국내 일정을 소화할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북미 간 종전선언에 관심이 집중되는 까닭이다.
 

▲ 스티븐 비건 미국 대표

홍현익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실장은 지난 13일 BBS 불교방송 <BBS 뉴스파노라마>에 출연, “북미 간 종전선언을 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홍 실장은 “미중 간에도 수교는 했다. 북미 간 종전선언을 하면 매듭이 지어지는 것”이라며 “작년에 평양서도 남북군사합의서로 (우리도) 종전선언으로 넘어갔다”며 4자 종전선언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다만 북미의 종전선언을 바라보는 입장차는 첨예하다. 북미 종전선언은 북미관계를 넘어서 남북관계와 한미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지만 평화협정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다. 북한이 종전선언 이후 평화협정을 위해 UN군사령부 철수를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편 미국 국방부는 지난 14일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철수와 감축은 논의하거나 계획된 바 없다”고 밝혔다. 우리 국방부도 전날 주한미군 주둔과 종전선언, 평화협정과 관계가 없다는 공식입장을 내놨다.

개성, 금강산
영변 핵시설…

북한이 미국에게 요구한 4가지 상응조치에 따라 미국은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는 영변 핵시설 폐기 및 검증, 대륙간탄도미사일 폐기 또는 반출, 풍계리 핵실험장 및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 사찰 등이 언급된다. 북미가 2차 북미회담서 해당 조치에 모두 합의한다면 사실상 비핵화 로드맵의 큰 그림이 그려지는 셈이다.

비핵화 로드맵은 영변 핵시설 폐기서 시작한다. 영변 핵시설 폐기를 시작으로 북한은 기존의 핵무기와 관련 시설을 신고하게 된다. 이후 신고내역에 대한 전문가들의 검증과 사찰이 진행되고, 완전한 핵 폐기로 나아가게 된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의 폐기 등과 풍계리, 동창리에 대한 사찰은 비핵화 로드맵의 과정 중 하나다. 이번 2차 북미회담서 영변 핵시설에 대한 합의 사항이 나온다면 비핵화 로드맵에 시동이 걸리게 될 공산이 크다.

비건 특별대표는 김 특별대표와 함께 이번 주 2차 실무협상을 가질 예정이다. 2차 실무협상에선 하노이선언의 초안을 작성할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는 지난 12일 “(비건 특별대표가)다음 실무 협상서 합의문 작성에 들어간다고 했다”고 밝혔다. 다만 “2주밖에 남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1차 회담 뼈대…하노이 선언문 작성
촉박한 협상 시간, 회의론도 고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같은 날 “(비건 특별대표가) 2차 북미회담 이후에도 실무 회담을 계속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비건 특별대표가 ‘특별대표가 된 이후 6개월 만에 북측을 처음 만났다’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 말에 따르면 비건 특별대표는 “내용상으로 다룰 시간이 없다. 실무 협상 뒤 2차 북미회담을 진행하고 협상을 더 해나가야 한다”고 털어놨다.

결국 비건 특별대표는 북미 간 의제 협상에 있어 큰 진전을 이뤄내지 못한 것으로 풀이됐다.

북미는 2차 북미회담 일정이 못 박힌 상황서 물리적인 한계에 어려움을 느끼는 모양새다. 당장 다음주에 2차 북미회담이 열리게 되지만 시간은 촉박하다. 북한이 요구한 4가지 상응조치와 비건 특별대표가 언급한 10여개의 의제는 2차 북미회담서 전부 논의되지 못할 공산이 크다. 결국 접점을 찾은 몇몇 의제만이 합의문에 담길 것이란 관측이다.

일각서 이번 2차 북미회담 결과를 싱가포르선언과 대동소이할 것이라 예상하는 까닭이다.

한편 2차 북미회담이 개최될 경우 예상하지 못했던 사안에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의 변수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김 위원장은 비핵화를 선언했고 경제발전을 언급하는 등 정상국가 이미지를 추구하고 있다. 사업가 출신의 트럼프 대통령은 예측불허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미 한 차례 정상회담을 거친 두 정상이 이번 2차 북미회담서 돌발행동을 보여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일각에선 2차 북미회담의 불발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지난 1차 북미회담 개최 과정서 트럼프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정상회담 취소를 통보했다. 북미정상회담이 좌초될 위기에 놓였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로 북미회담은 다시 정상 궤도에 올랐다.

담을 수 있는
만큼 담는다

2차 북미회담도 지난번과 같이 갑작스럽게 취소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관건은 이번 주 선언문 초안을 작성할 것으로 예정된 2차 북미 실무협상이 될 공산이 크다. 북미는 각각 상응조치와 비핵화 조치를 실현하기 위한 하부단계를 하노이선언문에 담을 전망이다. 이후 북미 간 실무협상을 지속하면서 3차, 4차 정상회담을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미리 보는 하노이 산책회동
속 깊은 대화는 걸으면서?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2차 북미정상회담서 산책회동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그간 1차 남북정상회담과 1차 북미정상회담서 각국 정상과 산책을 한 바 있다. 1차 남북회담 당시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도보다리서 산책하며 대화를 나눴다. 또 김 위원장은 1차 북미회담서 트럼프 대통령과 가벼운 산책을 했다.

김 위원장은 산책회동을 선호하는 모양새다. 정상국가 이미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이유로 분석된다. 김 위원장은 그간 ‘은둔의 지도자’로 불렸지만 잦은 노출을 통해 기존의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시도를 반복하고 있다.

이번 2차 북미회담은 베트남 하노이의 JW메리어트 하노이호텔서 열릴 공산이 크다. 해당 호텔은 여러 호텔 가운데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꼽힌다. JW메리어트 하노이 호텔은 인공호수가 호텔을 둘러싸고 있어 안보에 있어서도 최적의 장소로 거론된다.

정상국가 이미지 극대화
1차보다 많은 시간 할애

인공호수와 함께 호텔 주변에는 공원이 조성돼 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호수나 공원 주변을 거닐며 비공개 회동을 통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눌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산책회동은 지난 1차 북미회담의 산책보다 길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1차 북미회담 당시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보낸 시간은 1차 남북회담 당시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이 도보다리서 함께한 시간보다 짧았다. 북미 정상은 전례가 없던 만남이었던 만큼 긴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1차 북미회담 이후 친서를 주고받는 등 서로에 대한 신뢰를 지속적으로 표했다. 이번 2차 북미회담서 두 번째로 만나게 되는 양국 정상은 지난 1차 회담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으로 예측된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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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