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운설’ 청와대와 풍수지리 대해부

“북악산에 살기 감돈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청와대와 풍수지리.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공약 중 하나인 ‘집무실 광화문 이전’이 무산됐다. 공약 파기에 대한 비난이 불거진 가운데 때아닌 풍수지리설이 고개를 들었다. 그간 풍수지리학자들 사이에선 청와대 터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었다. ‘흉지다’는 주장과 ‘그렇지 않다’는 반박이 치열했다. 양 측의 주장 모두 일리가 있기 때문에 궁금증은 증폭되고 있다. 청와대 터는 정말 괜찮은 땅일까?
 

▲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대 대선 당시 ‘광화문대통령시대’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소통 부재가 탄핵 정국을 야기했다는 진단에 따른 것이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이전, 대국민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 책자형 선거공보를 통해 “퇴근 후 시장에 들러 넥타이를 풀고 국민들과 소주 한 잔 나누는 소탈하고 친구 같은 대통령을 꿈꿔왔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11개월 만에 
없던 일로∼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 유홍준 자문위원은 지난 4일, 춘추관 브리핑서 광화문 이전 불가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유 위원은 이날 “집무실을 광화문 청사로 이전할 경우 청와대 영빈관과 본관, 헬기장 등 집무실 이외 주요 기능을 대체할 부지를 광화문 인근서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경호·의전이라는 게 엄청 복잡하고 어렵다는 사실을 문 대통령도 인지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2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던 광화문시대위원회는 그렇게 11개월 만에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야당의 비판은 거셌다. 야 4당은 이구동성으로 문 대통령의 공약 파기를 문제 삼았다.


자유한국당 이양수 원내대변인은 “집무실 이전 공약의 취지는 국민과의 상시적 소통이었지만 문 대통령은 취임 후 국민의 목소리조차 듣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바른미래당 김정화 대변인은 광화문 이전 공약을 “현실성 없는 거짓 공약”이라며 “국민을 우롱한 문재인정부는 국민께 사죄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범진보 진영도 예외는 아니었다. 민주평화당 김정현 대변인은 “공약을 못 지키게 됐으면 대통령이 우선 국민들께 경위를 직접 설명하고 사과하는 게 옳다”며 촉구했고, 정의당 정호진 대변인은 지난 5일 “국민은 면밀한 검토 없이 제시된 ‘공약(空約)’에 속이 쓰리다”고 비판했다.

여당은 강하게 항변했다. 더불어민주당 조승현 상근대변인은 “모든 이슈에 대해 정치공세로 일관하는 야당서 나라를 걱정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야 공방이 가열되는 가운데 청와대 터를 둘러싼 풍수지리설이 슬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광화문시대 무산되니 풍수 불쑥
민심 흉흉하니 흉지론까지 부상

논란에 단초가 된 것은 광화문시대위원회 유 위원의 발언이었다. 유 위원은 광화문 이전 공약 철회를 설명하던 중 “현재 대통령 관저가 갖고 있는 사용상의 불편한 점이 있다. 나아가 풍수상의 불길한 점을 생각한다면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풍수상 불길한 점의 근거가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유 위원은 웃으며 “수많은 근거가 있다”고 답했다.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이름을 떨친 유 위원은 풍수에 대해서도 나름의 식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풍수가 등장하면서 여파도 거셌다. 지천타천으로 청와대 터에 대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 문재인 대통령

물론 쟁점은 청와대 부지의 길흉 여부다. ‘청와대 흉지설’을 최초로 제기한 인물은 최창조 전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다. 최 전 교수는 자타공인 풍수지리 전문가로 풍수 관련 서적만 20권 넘게 집필했다. 최 전 교수는 행정수도 계획이 발표될 당시 ‘행정수도 불가론’을 내세우며 아홉 가지 이유를 들어 주목을 받았다.


최 전 교수는 저서 <한국의 풍수지리>를 통해 “청와대 터의 풍수적 상징성은 그곳이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터가 아니라 죽은 영혼들의 영주처이거나 신의 거처”라며 “사람이 신적 권위를 부여받았으니 나쁠 것도 없지 않느냐고 얘기할 수도 있으나 풍수에서는 결코 인사(人事)가 천도(天道)를 넘보는 일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코에 걸면…
귀에 걸면…

김두규 우석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는 최 전 교수의 불가론에 대해 반박했다. 김 교수는 지난 2017년 12월 <월간 조선> 칼럼을 통해 “최 전 교수는 조선총독들뿐만 아니라 역대 대통령들이 신적인 권위를 지니고 살다가 뒤끝이 안 좋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여기에 풍수술사들까지 덩달아 진지한 성찰 없이 그 내용을 확대시키면서 청와대 흉지설이 굳어졌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신의 거처, 즉 큰 사찰이나 성당이 들어서려면 풍수상 2가지 조건에 부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터는 흙산이 아닌 돌산이어야 하고, 좌우 산들이 이를 완벽하게 감싸줘야 한다. 김 교수는 두 번째 조건을 지적하며 “내백호와 내청룡의 지맥이 낮고, 서로 교차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터를 둘러싼 길흉 논란은 꽤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세종 15년의 풍수관리 최양선이 ‘경복궁 이전’을 주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현재 청와대는 경복궁 터의 일부다.

세종은 황희 등을 비롯한 신하들과 풍수가에게 직접 현장에 가서 확인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결론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결국 세종이 직접 북악산에 올라 살펴본 뒤 “경복궁은 길지”라고 결론내렸다.

현재 청와대는 풍수지리학서 이상적인 배치로 여겨지는 배산임수 지형이다. 청와대 뒤편 북악산을 시작으로 좌우엔 각각 낙산과 인왕산이, 청와대 앞에는 청계천이 흐르고 있다. 청와대 터는 길지 중의 길지라는 해석이다.

청와대가 명당이라는 주장에는 청와대 경내서 발견된 글자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0년대 청와대 관저 신축공사 도중 ‘천하제일복지’라는 글이 새겨진 바위가 발견됐다. 천하제일복지는 풍수지리상 최고의 명당을 일컫는 말이다. 바위에 새겨진 글은 약 300∼400년 전 쓰인 글로 추정됐다. 

“그걸 믿어?”
이견도 팽팽

청와대서도 현재 위치를 길지로 보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따르면 현재 위치한 지역은 ‘옛날부터 풍수지리학상 길지로 알려진 곳’으로 ‘890년 전 고려시대에 남경의 이궁이 있던 곳’이다. 남경은 고려 3경(개경·서경·남경) 중 하나를 뜻하고, 이궁은 임금이 왕궁 밖에서 머물던 별궁이다. 남경 이궁은 고려시대 숙종 때 지어진 것으로 당시에도 청와대 터는 명당으로 지목됐다. 

반면 청와대 흉지설도 만만치 않다. ‘칠궁’에 대한 주목이 대표적이다. 칠궁은 조선시대 왕을 낳은 후궁 7인의 묘다. 조선 숙종의 후궁 희빈 장씨도 여기에 있다. 후궁 7인은 모두 왕을 낳았지만 그들의 위패는 종묘에 모셔지지 못했다. 종묘에 모셔진 건 후궁이 아닌 왕비였다. 


현재 칠궁은 청와대 서남쪽에 위치해 있다. 그 연유로 몇몇 풍수학자들은 청와대 터에 ‘한’이 서려 있다고 주장한다. 후궁들은 왕자를 낳고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채 소외됐기 때문이다. 

청와대 터가 내시와 무수리의 임시 무덤으로 쓰였다는 주장도 있다. 또 일부는 이곳이 무인들의 무예시험장소와 전국 유생들의 과거시험 장소였다고 말한다.

청와대가 북악산 바로 아래에 위치한 점도 흉지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북악산은 화강암으로 이뤄진 바위산이다. 풍수학에선 바위가 크고 많은 산을 ‘살기’가 가득한 산으로 본다. 
 

▲ 신년 기자회견 갖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대통령의 말로가 모두 혼탁했던 것 역시 흉지론에 설득력 갖게 한다.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 참여했던 건축가 승효상씨는 지난 2017년 10월 청와대 내부 강연서 풍수지리를 신봉하지 않는다면서도 역대 대통령들의 후일이 좋지 못한 이유에 대해 "청와대가 풍수지리상 그리 좋은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지 않느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역대 대통령 중 그 누구도 임기를 순탄하게 끝내지 못했다. 수사와 구속은 물론이고 탄핵까지 그 결과는 암담했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48년 청와대에 들어왔다. 당시 청와대의 이름은 경무대였다. 이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지 2년 뒤 6·25전쟁이 발발했고, 전쟁이 끝난 뒤엔 4·19혁명이 있었다. 4·19혁명으로 하야한 이 전 대통령은 하와이로 망명해 5년 뒤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다음으로 윤보선 전 대통령이 선출됐다. 경무대의 이름이 청와대로 바뀌게 된 때이기도 하다. 윤 전 대통령은 1961년 5·16 군사 정변으로 대통령 자리서 물러났다.

역대 대통령 말로 비참…정말 터 때문?
“기운 탓 아닌 사람 탓” 경계 목소리도

군사정변을 일으킨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윤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정권을 잡게 됐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을 겪었고, 자신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의해 피살당한다. 

박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최규하 전 대통령이 선출됐지만, 1979년 신군부의 12·12사태로 최 전 대통령은 8개월 만에 물러나게 된다. 최 전 대통령은 역대 최단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이어 전두환 전 대통령은 정권을 장악했지만 다음 대통령인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수의에 고무신을 신고 나란히 법정서 재판을 받게 된다. 

김영삼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문민정부가 탄생했지만 IMF 사태가 터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세 아들의 비리 연루 사건으로 홍역을 치렀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됐다.

끝이…
가시밭길

다만 일각에선 청와대 흉지론에 대한 맹목적 신뢰와 확대 해석을 경계한다. 국내 풍수학 박사 1호인 이몽일 박사는 <영남일보> 칼럼을 통해 “새 대통령이 나오면 얼풍수들은 으레 그 사람의 조상 묘터는 말할 것도 없고, 생가터를 이 세상의 둘도 없는 대명당으로 미화한다”며 “그러다가 퇴임 시 정쟁이나 비리로 대통령의 위상이 추락되면 그것을 오롯이 ‘청와대의 터’ 탓으로 돌린다”고 비판했다. 이 박사는 “사람의 일을 탓하지 않고 땅을 탓할 때 풍수는 미신이 되고 만다”고 일갈했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집무실 이전 추진 왜?

청와대 집무실 이전은 오랜 기간 단골 대선 공약 중 하나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광화문 정부청사로 집무실을 옮기려 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청와대 집무실을 쓰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이 후보를 제치고 승리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행정수도로 집무실을 이전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경호, 의전, 예산 등을 이유로 집무실 이전은 무산됐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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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