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호황’ 불황에 돈 버는 사업

무너진 경제…더 잘되는 장사는?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기해년 새해가 밝았다. 시대의 화두가 남북문제서 경제로 바뀌었다. 지난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 ‘먹고 살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 불황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물론 이런 상황서도 ‘나홀로’ 호황을 누리는 사업들이 있다.
 

▲ 로또 명당으로 알려진 한 복권판매점

결국 먹고사는 문제다. 경제지표가 하강곡선을 그리자 고공행진을 벌이던 대통령 지지율도 하락세를 탔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는 물론 기업서도 아우성이 나온다청년실업률 증가로 2030세대의 좌절감은 높아만 간다. 정부는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경제 체질을 바꾸기 위한 진통이라고 말하지만 당장 삶이 힘든 국민들에겐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경제 문제
시대 화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그랜드홀서 열린 신년회서 경제정책의 기조와 큰 틀을 바꾸는 일은 시간이 걸리고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가보지 못한 길이어서 불안할 수 있다왜 또 내일을 기다려야 하느냐는 뼈아픈 목소리도 들리지만, 우리 경제를 바꾸는 이 길은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8년은 우리 경제와 사회 구조를 큰 틀에서 바꾸기 위해 정책 방향을 정하고 제도적 틀을 만들던 시기였다“2019년은 정책성과를 국민께서 삶 속에서 확실히 체감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각계각층과 정부 주요 인사 300여명이 모인 자리서 문 대통령은 혁신을 통해 저성장 돌파구를 마련하고 경제 성장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문 대통령의 신년사에도 불구하고 올해 경제 전망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당장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자영업자들의 불만이 폭발할 기세다. 자영업자의 절반가량은 올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기존 직원의 숫자를 줄이거나 신규 채용 계획을 취소할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의 아르바이트 플랫폼인 알바콜에 따르면 최근 자영업자 회원 240명을 대상으로 ‘2019년 최저임금 인상 영향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2.7%영향이 있다고 답했다.

기존 직원의 근무시간 단축(17.8%), 기존 직원의 감원(17.0%), 신규 채용 계획 취소(12.5%) 등 과반에 가까운 응답자가 최저임금에 따른 변화를 시사했다. 7.3%는 폐점을 고려하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국세청과 소상공인연합회 등은 지난해 폐업한 자영업자 수가 사상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개업 대비 폐업 수를 나타내는 자영업 폐업률은 201677.8%서 지난해 90%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10곳이 문을 열 때 9곳은 닫았다는 뜻이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자영업자 폐업이 늘면서 중고가전 거래가 이뤄지는 서울 황학동 주방거리도 한산해졌다. 주방거리는 자영업을 시작하려는 사람과 끝내려는 사람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자영업이 활성화될 때는 중고 주방용품 거래가 활발히 이뤄졌지만 지금은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다.

기업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매출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1월 전망치가 92.7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BSI100보다 낮으면 앞으로 경기를 부정적으로 보는 기업이 더 많다는 의미다. 1월 전망치는 지난해 12월보다는 소폭 상승했지만 지난해 5100.3695.2로 떨어진 후 8개월 동안 100을 밑돌았다.

“못 살겠다”
괴로운 자영업


수출(92.1), 내수(93.5), 투자(95.5), 고용(99.7) 등 부문별 전망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나마 호조를 보였던 경제지표인 수출 실적도 올해 1분기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은 국내 938개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191분기 수출산업경기전망지수(EBSI)93.1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EBSI100 밑으로 떨어진 것은 20171분기(93.6) 이후 8분기 만이다.

하지만 암울한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는 것은 아니다. 일부 사업은 말 그대로 나 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경제 불황이 가져온 호황의 현장이다.

폐업 처리 = 최저임금 인상, 52시간 근무 등 현 정부의 노동 정책이 연착륙에 실패하면서 자영업자들의 입지가 좁아졌다.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이 두 차례 인상되는 사이 자영업자들은 직원과 아르바이트생을 줄이고 가족 경영으로 전환했다가 결국 문을 닫는 상황에 처했다.

사업은 열 때도 그렇지만 닫을 때 특히 처리해야 할 것이 많다. 김영란법으로 직격탄을 맞은 화훼업체는 수많은 꽃들이 폐업과 동시에 골칫덩이로 남았고, 식당은 각종 주방용품과 식기류·탁자·테이블 등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옷가게는 미처 팔지 못한 옷이 주인의 마지막 전리품이 된다. 이런 식으로 폐업하는 자영업자들이 늘어나면서 폐업 처리 업체가 각광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일부 폐업 처리 업체는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고 표현할 만큼 쏟아지는 일감을 반기면서도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망한 가게서 빼온 각종 집기류는 업체 한쪽에 쌓여 있다. 폐업 문의가 많을수록 처리 업체는 돈을 벌지만 이들 역시 또 다른 고충을 겪는다. 문을 닫는 자영업자가 늘면서 업체서 처리할 수 있는 한계 이상으로 중고 물품이 쌓인다는 점이다.

경제지표 하락·올해도 암울
그 속에서도 잘나가는 업종은?

중고 물품은 자영업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재구입을 통해 순환되는 구조인데, 자영업 경기가 워낙 좋지 않다 보니 개업하려는 사람들이 없어 물품이 쌓이고만 있는 것이다. 한때 자영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값싸고 상태 좋은 중고 물품을 사기 위해 찾는 곳으로 유명했던 서울 황학동 주방거리에 손님의 발길이 뚝 끊긴 게 이를 방증한다.

저가·중고 거래 = 경기 불황으로 소비자들의 지갑이 얇아지면서 저가·중고 거래로 눈을 돌리는 일반인이 늘었다. 가격 대비 성능을 뜻하는 가성비가 소비자들의 선택 기준으로 떠오르면서 다이소 등 가격이 저렴하면서 물건 종류가 많은 저가 업체가 각광을 받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저가 업체서 구입해볼 만한 물건을 추천하는 글이 하루에도 수차례씩 올라온다.

다이소는 일본의 ‘100엔 숍을 뿌리로 한 국내의 대표적인 저가 쇼핑몰이다. 다이소 매장 내 거의 모든 제품은 5000원 이하 품목들이고 2000원 이하의 제품 비중이 7080%에 달한다.

2016년 기준 다이소의 매출은 15600억원으로 2013년과 비교해 불과 3년 새 76.3%나 급증했다. 점포도 빠르게 증가했다. 2012850개 정도였던 다이소 점포수는 20151000개를 돌파, 지난해 기준으로 1200여개에 이른다.
 

▲ 최근 경기불황이 장기화되면서 학생들 사이에선 중고서점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고 가전 업계도 때아닌 호황을 맞았다. 소비자들이 새 제품보다 리퍼브(반품) 제품 같은 질 좋은 중고 가전에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고 가전 업계의 규모는 2017년 대비 15% 늘어난 20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소형 주방가전의 비중이 70%이지만 TV·냉장고·세탁기 등 대형 가전의 품목과 규모도 꾸준히 늘고 있다. 얼어붙은 소비 심리와 함께 제품의 내구성이 과거에 비해 좋아진 점이 중고 가전 업계의 성장을 이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성비 중시
고가품 관심

중고 책 시장은 여전히 성장세다. 알라딘, YES24 등 기업형 중고서점의 전국 매장 수는 80여개에 이른다. 읽지 않는 책을 팔고 싸게 구입하는 중고 책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반대급부로 새 책 시장이 침체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기업형 중고서점의 매장 수는 전체 중고서점의 20% 정도지만 매출액은 80%가량을 차지한다. 대학생들이 값비싼 대학교재를 중고서점서 구입하는 비율도 늘어나면서 호황을 누리는 중이다.

회원수가 1700만명에 달하는 인터넷 카페 중고나라 역시 불황일수록 호황을 맞고 있다. 현재 중고나라 카페에서는 쓸만한 중고 물품을 내놓고 현금을 확보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추세다.


중고나라뿐만 아니라 온라인과 모바일을 통해 구매자와 판매자를 연결해주는 업체도 늘어났다. 중고 거래 애플리케이션은 말 그대로 대박 행진 중이다. 일부 모바일 장터에는 1분간 중고 거래 물품이 4000여개가 올라올 만큼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명품 시장 = 중고 거래 건수가 늘어나는 만큼 반대로 명품 시장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경제가 어려우면 명품 소비가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이 무색할 정도다. 소비 심리가 위축된 가운데서도 고가 품목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어 소득 양극화만큼이나 소비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형마트를 비롯한 유통업계의 매출이 전년 대비 감소하는 흐름이 계속 나타나고 있지만 주요 백화점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겨울 세일기간 동안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의 명품 매출은 두드러지게 증가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매출 상승 품목이 일부 고가 품목으로 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청년실업률은 지난 20006.0%20179.5%로 상승했다. 일본이 20006.2%4.1%로 떨어진 것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되레 오른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30개국의 청년실업률도 201010.6%까지 치솟았다가 2017년 기준 7.6%로 떨어진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청년실업률 상승세는 도드라진다.

자영업 폐업 100만 시대
중고·명품·복권 불티

청년실업률이 치솟는 등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한 2030세대가 명품 등을 통해 확실한 행복을 얻는 방향으로 소비형태가 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불황 속에서 나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백화점 명품 코너의 큰손은 20대로 나타났다.

신세계백화점 명품 매출 중 20대 소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30.6%2년간 3.6배 이상 늘어났다. 30대의 비중은 16.7%로 전년 대비 2.9%p 하락했지만 2030대 소비자의 매출 비중은 전체의 약 47%에 이르렀다.

불황 상품 복권’ = 복권은 대표적인 불황 상품이다. 불황일수록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복권 판매액은 21705억원을 기록했다. 월평균 3618억원으로 2015년 이후 최고치다. 전체 판매량은 20153551억원에서 201638855억원, 201741538억원 등으로 증가했다.

월평균 판매액 역시 20152963억원, 20163238억원, 20173463억원으로 꾸준히 늘었다. 최다 판매월은 10월과 12월 등 하반기에 집중됐다.

가장 많이 팔린 복권은 로또였다. 2017년 한 해 동안 로또 판매액은 37974억원으로 전체 복권 판매액의 91%를 차지했다. 즉석복권이 2049억원, 연금복권이 1004억원, 인터넷복권이 512억원 순이었다.
 

숫자 1부터 45 6개를 맞히는 로또의 1등 당첨확률은 8145060분의 1이다. 평생 살면서 벼락에 맞을 확률과 비슷하다. 정부 독점 사업인 복권은 기재부 복권위원회서 발행·관리는 물론 수익금 배분 등을 총괄한다.

매출액 중 절반은 당첨금으로 지급하고, 40%는 복권 기금이라는 명목으로 저소득층 등 소외계층과 문화예술 사업에 지원한다. 복권을 '고통 없는 세금'이라 부르는 이유다.

복권 판매량의 증가는 경기 불황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사회를 달궜던 비트코인 열풍도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비트코인이 유행했을 당시 많은 사람들이 빚을 내면서까지 열풍에 합류하는 모습을 보였다.

비트코인에 대한 제재가 가해질 조짐이 보이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글이 우후죽순처럼 올라왔고, 한 청원글은 20만명이 넘는 국민의 동의를 받기도 했다.

일확천금
복권 판매↑

배달음식 = 배달음식 업계도 불황 속에 호황을 누리고 있다. 역대급 폭염이 덮쳤던 지난해 여름에도, 한파가 몰아쳤던 겨울에도 배달음식 업계는 특수를 누렸다. 1인 가구와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집에서 음식을 해먹기보다는 배달음식에 대한 선택 비중이 높아진 게 원인으로 꼽힌다. 게다가 배달음식 관련 애플리케이션이 많아 접근성이 과거에 비해 높아졌다. 삼겹살 등 예전에는 배달이 어려웠던 음식도 이제는 집에 앉아서 받을 수 있다.

배달 앱은 배달의민족, 배달통, 요기요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국내 배달 앱시장 1위 업체인 배달의민족은 2016년 연간 거래액 18800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2017년에는 약 3조원의 거래액을 달성했다. 월평균 주문 건수가 20161000만건서 1년 새 1700만건으로 증가했다. 전체 배달음식 업계의 규모는 15조원에 달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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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