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재벌 금수저들의 ‘엘리베이터 승진’ 현주소

천방지축 황태자 설익은 주인 행세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제약업계의 3·4세가 대거 경영에 참여하면서 업계의 관심이 쏠렸다. 이른바 금수저라는 시각을 극복하고 경영성과를 도출해낼지에 관심이 집중됐다. 그들의 경영 성적표가 속속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들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내고 있을까.
 

▲ (사진 왼쪽부터)남태훈 국제약품 대표, 윤인호 동화약품 상무, 이상준 현대약품 대표

국내서 금수저 출신들이 가족 기업에 입사해 임원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CEO스코어데일리>에 따르면 오너 일가가 임원으로 근무 중인 77개 그룹 185명의 승진 현황을 조사한 결과 입사 후 임원에 오르기까지 평균 4.2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2세 저물고
3·4세 시대

이들의 입사 평균은 29.7세, 임원 승진은 33.9세로 집계됐다. 일반 직원의 경우 임원 승진 평균 나이가 51.4세인 점을 감안하면 금수저 출신들의 경영인 승진은 일반 사원에 비해 17.5년이나 단축되는 셈이다.

제약업계서도 엘리베이터 승진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제약업계는 다른 업권에 비해 연혁이 길다. 따라서 2세 시대가 저물고 3·4세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월 현대약품은 이상준 대표이사 사장에 대한 인사를 단행하면서 3세 경영체제를 맞았다. 이한구 대표이사 회장이 대표직서 물러나면서 자연스러운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이 대표는 현대약품 창업주 고 이규석 회장의 손자로 3세 경영인에 해당하는 셈이다. 이 대표는 동국대 독어독문과를 나와 미국 샌디에이고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현대약품에 입사한 것은 2003년이었다. 그가 임원직에 오른 것은 2008년 상무에 오르면서다. 입사 5년 만에 ‘별’이 됐다. 2012년 미래전략본부장을 거쳐 지난 2017년 신규 사업 및 R&D 부문의 성과를 근거로 신규 사업 및 R&D부문 총괄 사장직에 올랐다. 현재 그는 김영학 사장과 공동 대표체제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그의 성적표는 어떨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3분기 별도 누적 기준 1010억2046만원의 매출액을 시현했다. 전년도 978억4228만원 대비 31억7817만원 상승했지만 수익성은 악화됐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4억6075만원인 전년 동기에 대비 6억5489만원이 감소했다. 경영 수장 1년차의 성적표로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오너 일가 4년 만에 임원 승진
제약업계는 지금 세대교체 중

이 대표에 대한 승계 상황은 현재진행형이다. 회사를 장악할 만큼 확실한 지분이 없기 때문이다. 현대약품의 지분율을 살펴보면 이한구 회장이 17.88%로 최대주주 신분이다. 이 대표는 2대주주이긴 하지만 지분이 4.92%에 불과해 아직 회사에 대한 장악력이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따라서 이번 현대약품 성적표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일 수 있다.

일성신약의 경우 가족 세습경영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일성신약은 현재 2.5세 경영 체제를 갖추고 있는 모양새다. 일성신약은 1954년에 설립돼 1985년 한국거래소에 상장했다. 윤병강 창업주 시대서 ‘윤석근’ 시대로 넘어간 뒤 그의 딸 윤형진 상무이사가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윤석근 대표이사의 경우 3분기 기준 8.44%로 최대주주 신분이지만 윤 상무(1980년생)가 8.03%로 지분 차이가 크지 않은 상황이다. 

윤 대표의 동생은 윤덕근 상무이사로 재직 중이다. 특히 지난해 윤 대표의 두 아들 종호·종욱씨를 사내이사로 선임하면서 가족 경영체제를 공고히 했다. 가족 경영의 결과는 어떨까. 지난 3분기까지의 성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해당 기간 매출액은 453억6083만원으로 전년 511억8434만원 대비 58억2350만원 감소했다. 영업이익의 경우 16억1663만원으로 전년 22억7334만원보다 6억5671만원이 줄었다.

무리한 승계 한계?
불황 따른 결과?


국제약품도 남태훈 대표의 3세 경영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남 대표는 1980년생으로 창업주 고 남상옥 회장의 손자이자 남영우 국제약품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미국 메사추제츠 주립대 보스턴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국제약품 계열사 효림산업을 거쳐 2009년 국제약품 마케팅부 과장으로 부친 회사에 입사했다.

이후 기획관리부 차장, 영업관리부 부장을 역임했다. 이후 영업관리실 이사대우를 거쳐 2013년 판매총괄 대표이사 부사장에 오르면서 경영 전면에 등장했다. 4년 만의 부사장 진급은 동종업계서도 상당히 빠른 축에 속한다는 평가다.
 

그의 체제 아래서 국제약품은 비교적 고른 성장세를 기록했다. 최근 3개년 매출을 살펴보면 2015년 1176억원, 2016년 1206억원, 2017년 1233억원의 매출을 시현한 것.

그러나 국제약품이 리베이트 논란에 휘말리면서 이 같은 호성적은 빛이 바랬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0월 국제약품은 2013년 1월부터 2017년 7월까지 4년간 전국 384개 병·의원 의사에게 42억8000만원 규모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를 받았다. 경기남부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남 대표를 비롯해 이들로부터 리베이트를 수수한 의사 등 관련자 총 127명을 입건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영업직원들에게 특별상여금이나 지원금, 출장비 등을 예산으로 처리해 영업부서에서 실비를 제외한 지급금을 회수하는 수법을 통해 자금을 모았다. 조성된 자금은 의사 등에게 리베이트 형식으로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올해 매출마저 감소하면서 그의 경영능력에 의문부호가 찍힐 전망이다. 지난 3분기 누적 연결기준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875억5955만원, 27억1921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8억1462만원, 2억1944만원 감소했다. 향후 그의 경영자로서의 능력에 의심이 따라다닐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수장되자 적자 행진
리베이트 사건 빵빵

동화약품은 올해 4세 경영 체제에 시동을 걸었다. 동화약품은 지난 신년인사를 통해 윤인호 이사를 상무로 승진시켰다. 윤 이사가 입사한 지 4년 만에 상무로 진급한 것이다. 윤 이사는 미국 위스콘신 메디슨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2013년에 동화약품에 합류했다. 재경·IT실 과장을 거쳐 이듬해 중추신경계팀 차장, 2015년 전략기획실 부장, 2016년 전략기획실 생활건강사업부 이사 등으로 입사 후 매년 진급했다.

이로써 동화약품은 4세 경영인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윤 이사는 기업 내 오너 체제를 처음 갖춘 윤창식 명예회장의 증손자다.

다만 승계를 위한 지분 정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동화지앤피는 지주사격으로 동화약품을 지배하고 있다. 동화약품의 주요주주 지분율을 살펴보면 동화지앤피가 지분 15.22%로 최대주주 신분이다. 윤 회장은 5.18%를 가지고 있으며, 우호지분으로 분류되는 가송재단은 6.39%를 쥐고 있다. 윤 이사는 0.88%로 장악력이 높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윤 이사가 가지고 있는 동화지앤피의 지분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없다. 따라서 승계작업을 위해 경영능력 검증이 필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 이사가 상무에 오르고 매출은 성장세를 나타냈지만 수익성은 다소 아쉽다는 평이다. 지난 3분기 별도 누적 기준 매출은 2312억1644만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1920억2866만원 대비 391억8777만원 증가한 것. 다만 영업이익은 78억884만원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 111억3055만원보다 33억2170만원 뒷걸음질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영업이익이 감소한 원인은 판관비 증가 영향이 컸다. 지난해 654억897만원의 판관비를 지출해 전년도 598억1625만원보다 55억9271만원이 증가했다. 따라서 영업과 마케팅 파트를 맡고 있는 윤 이사의 능력에 눈길이 쏠린다. 윤 이사는 향후 판관비 효용성 제고를 위해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신신제약은 2세 경영체제로 전환했다. 신신제약은 신년인사에서 이병기 이사를 대표이사로 선임했는데 그는 창업주 이여수 회장의 아들이다.

오너 일가의 승진치고는 1957년생인 이 대표의 나이가 적은 편은 아니다. 이 대표가 전자공학 관련 진로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 학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미시간대학교서 컴퓨터공학 석사, 산업공학 박사 과정을 거쳤다. 이후 명지대학교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한국학술진흥재단 책임전문위원과 대한산업공학회 이사 등을 맡았다.

이 대표의 회사 장악을 위한 지분율은 낮다. 오히려 이 회장의 사위인 김한기 부회장이 이 대표의 지분을 웃도는 상황이다. 신신제약의 지난 3분기 기준 지분구조를 살펴보면 이 회장이 25.6%로 최대주주 신분이다. 뒤이어 김 부회장이 12.6%의 지분으로 2대주주 신분이다. 이 대표는 3.6%로 김 부회장보다 9%p 적다. 재계에선 이 대표가 회사의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추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하고 있다.
 

▲ 이병기 신신제약 대표(사진 왼쪽)와 허승범 삼일제약 부회장

신신제약의 지난 3분기까지의 누적 매출은 487억9140만원으로 전년 동기 476억4537만원 대비 11억4603만원 증가했다. 그러나 수익성은 악화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24억8247만원, 22억7466만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12억4065만원, 6억8609만원 감소했다.

삼일제약은 허승범 삼일 부회장 체제로 굳혔다. 지난 7월 삼일제약은 최대주주가 허강 회장 외 8명에서 허승범 부회장 외 8명으로 변경됐다고 밝혔다. 허승범 부회장의 보유 주식수가 62만2926주(11.33%)서 72만8758주(11.21%)로 증가하면서 허강 회장의 지분율 9.95%(64만7052주)를 넘어섰다.


후계구도 
뒤바뀔 수도

허 부회장은 허 회장의 아들이자 고 허용 명예회장의 손자로 3세 경영인이다. 1981년생으로 미국 트리니티대학을 졸업, 지난 2005년 삼일제약 마케팅부에 입사해 회사에 합류했다. 이후 기획조정실장, 경영지원본부 등을 거쳤다. 2013년 3월 대표이사에 오르면서 경영 전면에 얼굴을 비쳤다. 이는 제약업계서도 최연소 수준의 대표이사 진급이다.

지난 2014년 3월 대표이사 부사장에 오르면서 경영 영향력을 넓혔고 같은 해 9월, 사장직을 꿰차면서 초고속 승진을 했다. 올해 부회장직으로 승진하면서 회장직 진급만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다.
 

경영인으로서 허 부회장은 지난해 악몽같은 한 해를 보냈다.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은 920억3781만원으로 전년도 967억5806만원보다 47억2025만원 감소했다. 특히 영업이익이 급감하면서 당기순손실로 전환했다. 영업이익은 13억701만원을 기록, 전년 동기 38억5328만원 대비 25억4627만원 감소했다. 그 여파로 2016년 8억8660만원이었던 당기순이익은 12억6656만원 당기순손실로 전환했다.

무리한 투자 수익악화
욕설 파문으로 아웃도

올해도 부진한 모습이다. 지난 3분기 누적 기준 712억483만원으로 전년 663억690만원 대비 48억4414만원 증가하는 데 성공했지만 당기손익뿐 아니라 영업이익마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영업손실 37억6777만원, 당기순손실 55억8009만원 수준으로 집계된 것. 이에 따라 허 부회장의 경영능력에 의심의 시각이 불가피해진 상황으로 그가 어떤 카드를 내놓을지 관심이 쏠린다.

윤재승 대웅제약 전 회장은 구설에 휘말리면서 회장직서 물러나야 했다.

지난 9월 윤 전 회장의 욕설이 담긴 녹취록이 한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녹취록에 따르면 윤 회장은 직원의 보고가 마음에 들지 않자 “정신병자 XX 아니야. 이거? 야. 이 XX야. 왜 이렇게 일을 해. 이 XX야. 미친 XX네. 이거 되고 안 되고를 왜 네가 XX이야”라는 말을 쏟아냈다.

직원의 설명에도 “정신병자 X의 XX. 난 네가 그러는 거 보면 미친X랑 일하는 거 같아. 아, 이 XX. 미친X이야. 가끔 보면 미친X 같아. 나 정말 너 정신병자랑 일하는 거 같아서”라며 욕설 섞인 말을 했다.
 

당시 그의 형과 경영 후계자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한 뒤 올라선 회장직이라 더욱 허무하다는 평이 뒤따랐다. 대웅제약의 창업자인 윤영환 명예회장은 슬하에 3남1녀를 뒀다. 윤 회장 위로는 첫째 형 재룡, 둘째 형 재훈 전 부회장이 있다.

지난 2009년 윤 명예회장은 1997년부터 12년간 대표이사직을 맡아 대웅제약을 이끈 윤재승 회장 대신 차남 윤재훈 전 부회장에게 회사 경영 전반을 넘기면서 차기 후계자로 낙점하는 듯했다. 

그러나 3년 후인 2012년 윤 명예회장은 윤 회장을 다시 대표로 앉히면서 후계자 자리는 윤 회장에게 돌아왔다. 재계에선 윤 전 부회장이 회사를 이끄는 동안 대웅그룹의 전체적인 실적이 부진한 것이 후계자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후 2년 뒤 2014년 9월 윤 회장이 공식적으로 회장직에 오르면서 회사를 이끌어왔다. 그러나 5년 만에 욕설 논란으로 회장직서 물러나게 되면서 경영인으로서 아쉬움을 남겼다.

경영 능력
시험대 올라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제약업계에는 최근 2세 경영인 시대를 넘어 3·4세 경영으로 접어들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업계 전반의 부진으로 이들 경영인들은 자신의 경영능력을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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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