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대반격 막전막후

진흙 속에서 꽃 피울까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요즘 자유한국당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한국당은 탄핵정국 이후 줄곧 하락세를 걸었지만 최근 광폭행보를 보이며 재기를 시도하고 있다. 당 내외서도 그 움직임은 뚜렷하다. 한국당은 공공기관 채용 비리 의혹으로 국정 이슈를 선점하고, 당협위원장 교체 등 인적 쇄신에 시동을 걸고 있다. 동시에 정치적으로 중량감 있는 인사들과 접촉하면서 보수 진영의 통합과 몸집 키우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최고중진회의서 모두발언하는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롯된 탄핵정국을 관통하면서 힘을 상실했다. 국정 농단 사태로 여론의 비판이 들끓었고, 보수 진영은 새누리당(한국당의 전신)과 바른정당으로 분열됐다. 바른정당은 국민의당과 합당으로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을 창당했다.

탄핵 후 분열
국민적 외면

반면 새누리당은 당명을 한국당으로 교체해 명맥을 이어갔다. 한국당은 ‘박근혜 꼬리표’를 쉽사리 떨쳐내지 못했다. 한국당은 쇄신을 위해 박 전 대통령과 핵심 친박(친 박근혜)을 ‘정리’했다. 실제로 박 전 대통령은 출당 조치를 당했고, 서청원 의원은 탈당했다. 그러나 한국당을 바라보는 여론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지난 6월 지방선거 결과가 단적인 예다. 한국당은 6·13지방선거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게 크게 졌다. 한국당은 광역단체장 선거서 대구와 경북 그리고 무소속 후보가 당선된 제주를 제외한 나머지 선거구서 참패했다. ‘민주당 싹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한국당의 기세는 크게 꺾였다.

지방선거 이후에도 한국당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히 올해 최대 이슈로 꼽히는 남북 관계 개선과 비핵화 문제서 활로를 찾지 못했다. 비핵화를 바라보는 한국당의 시각은 남북 평화 무드를 지향하는 여론과 큰 차이를 보였다. 한국당의 주장을 두고 ‘낡은 대북 프레임’이란 비판이 제기된 이유다.


한국당은 정국 주도권 경쟁서도 큰 성과를 보지 못했다. 드루킹 특검과 국정조사 요구가 대표적이다.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단식농성까지 벌이며 드루킹 사건을 최대 쟁점 사안으로 부상시키고자 했다. 다만 결과는 가시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당은 지난달 있었던 국정조사를 통해 존재감을 한껏 키우는 데 성공했다. 한국당 유민봉 의원이 제기한 ‘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 의혹’이 결정적이었다. 김 원내대표와 한국당 의원 등 여러 관계자들은 서울시 국정감사장을 찾아 몸싸움을 벌이면서 여론의 시선을 한껏 끌어모았다.

한국당은 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 의혹에 대해 강경 대응하고 있다. 한국당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까닭은 정부와 여당을 향한 공세가 여느 때보다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서울교통공사는 서울특별시 산하 공공기관이다. 공공기관서 채용 비리 의혹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을 추진하는 문재인정부에게 뼈아픈 대목이다. 이번 달부터 예산정국이 펼쳐지는데, 핵심쟁점은 공공부문 관련 ‘일자리 예산’이다.

여야는 정부의 예산안이 발표된 시점부터 일자리 예산을 두고 갈등 조짐을 보였다. 이 가운데 공공기관 채용비리가 발생한 것이다. 일각에선 공공부문 일자리 정책의 동력 상실 가능성도 제기한다.

한국당, 지방선거 전후 연일 헛발질
채용비리 의혹 후 정국 주도권 잡아

여론 역시 한국당에게 유리한 편이다. 최근까지도 청년들의 일자리 세태와 관련, ‘청년 빈곤’이라는 화두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여론이 분노의 공감대를 형성한 까닭이다. 한국당은 이 상황에 발맞춰 ‘국가기관 채용비리 국민 제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당은 홈페이지를 통해 서울부터 제주까지 전국 17개 시도 비리제보센터를 설치해 제보를 받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에 국한되지 않고 범위를 넓혀 확실한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다.

한국당은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판을 키우고 있다. 민주당을 제외한 야3당(바미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의 협조도 구했다. 다만 민주당에선 감사 결과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통해 “감사원 감사가 대략 3개월 정도 걸린다고 들었다”며 “국회가 예산, 법안 심사로 매우 바쁜 시점인 만큼 휴지기인 12월을 거쳐 내년 1월에 국정조사를 해도 충분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지난달 23일 채용 의혹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청구했고, 감사원은 일주일 후 감사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도 본격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낙연 총리는 지난달 30일 정부서울청사서 열린 국무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공공기관 채용비리를 없애기 위해 신고센터 운영과 상시점검을 실시하기로 했다”며 “국민권익위원회 주도로 범정부 추진단을 설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공공기관 채용비리 근절 추진단’은 지난 2일 출범했다.

한국당은 채용비리 의혹으로 이슈를 주도하면서 당 내부를 향한 쇄신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한국당은 당협위원장 교체를 내년 1월까지 마무리할 예정이다. 당협위원장 교체가 인적 쇄신으로 불리는 까닭은 그 자리가 곧 국회의원 공천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태극기 집회 갖는 보수단체 회원들

당협위원장은 당원협의회 위원장의 줄임말이다. 국회의원 지역구별로 당원협의회가 있는데 이곳을 대표하는 사람을 당협위원장이라 부른다. 쉽게 말해 ‘한 지역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그렇다 보니 다음 공천서 비교적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당협위원장은 통상 현역 국회의원이나 차기 출마자 등이 맡는다.

국정조사로 반등
내친김에 쇄신까지

결국 당협위원장 교체는 다음 국회의원 공천을 받을 사람의 교체와 같은 맥락이다. 당협위원장 교체가 ‘물갈이’ ‘인적 쇄신’ 등으로 불리는 이유다. 한국당은 지난달 29일부터 전국 당원협의회 실태조사에 나섰다. 조사 대상은 전국 253개 당원협의회 중 사고 당원협의회 17곳을 제외한 236곳이다.

다만 당협위원장 교체에 따라 당 내외 갈등과 비판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현역위원장 교체가 있을 경우 계파 갈등이 터질 공산이 크다. 한국당 의원들은 최근 박 전 대통령 탄핵을 두고 한차례 계파 갈등을 겪었다. 친박과 비박(비 박근혜)의 해묵은 대결이다.

발단은 지난달 31일 열린 한국당 비대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였다. 친박계 홍문종 의원은 “탄핵에 앞장 서고 당에 침을 뱉으며 저주하고 나간 사람들이 한마디 반성도 하지 않고 돌아왔다”며 바미당 복당파를 비판했다. 홍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이 무엇을 잘못해서 탄핵을 받았나. 탄핵백서를 만들어달라”며 탄핵백서 제작을 요구했다.

비박계 정진석 의원은 “탄핵백서를 만들어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표결은 2년이 다 됐는데 시의적절한 아이디어는 아닌 것 같다”고 되받아쳤다.

그렇다고 해서 당내 계파에 눈치를 보고 원외 당협위원장을 대상으로 하기엔 무리가 있다. 원외 당협위원장의 교체가 주를 이룬다면 ‘빈껍데기 쇄신’이란 역풍이 불 수 있어서다. 한국당은 당협위원장 교체 이후 내년 2∼3월 전당대회에 돌입할 예정이다.


한국당은 보수 진영의 외연 확장에도 힘쓰는 모양새다. 한국당 전원책 조강특위 위원은 ‘보수단일대오’를 주장하며 바미당과의 통합을 시사했고, 태극기 부대의 수용 가능성을 내비쳤다.

전 위원은 지난달 4일 보수단일대오를 주장하면서 보수통합론에 불을 지폈다. 전 위원은 이날 국회서 기자회견을 통해 “내년에는 보수 통합 전당대회로 가야 되고, 보수단일대오로 가는 것이 국민의 뜻”이라고 밝혔다.

전 위원의 보수단일대오 발언은 바미당 손학규 대표의 격앙으로 이어졌다. 손 대표는 전 위원의 발언에 대해 “한국당과 통합이라는 건 전혀 없다”며 “만약 우리 당에서 갈 사람이 있다면 가라”고 받아쳤다. 이후 바미당 인사 중 누가 한국당행을 택할지 예측과 가설이 분분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지난달 17일 “바미당서 11명이 빠져나가 한국당으로 갈 것이란 소문이 여의도에 돈다”고 말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가운데 최근 바미당 이언주 의원을 두고 한국당행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 의원은 최근 ‘신보수의 아이콘’으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이 의원은 보수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에 출연해 ‘주사파의 실체를 직시해야’라는 주제로 문재인정부를 비판한 바 있다.

보수대통합
태극기도?


최근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천재’라고 부르기도 해 화제가 됐다.

이 의원은 지난달 22일 <일요서울 TV>에 출연해 “대통령제는 현대판 황제다. 현대판 황제가 되려면 외교, 국방, 경제까지 완벽하고 전지전능하게 알아야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있느냐”며 “독재를 했다는 측면에서는 비판을 좀 받지만, 박정희 같은 분이 역대 대통령 중에는 천재적인 분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의 잇따른 보수 발언은 그의 당내 행보와 맞물리며 한국당행의 현실화 가능성이 가시화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이 의원은 그간 당내서 남북문제를 두고 지도부를 직접 겨냥하는 등 불협화음을 보였다. 특히 이 의원은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안 동의 문제를 두고 이견을 보였다.

정치권서도 이 의원을 향한 의구심은 이어졌다. 민주당 손혜원 의원은 지난달 29일 자신의 SNS 페이스북에 이 의원이 ‘나라꼴이 독재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그때는(박정희, 전두환 시대) 경제라도 좋았는데’라며 게재한 글을 지적하면서 “지리하게 이어지는 처절한 러브콜입니다. 어서 노력한 만큼 화답이 있어야 할 텐데”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김경협 의원도 다음 날 자신의 SNS 페이스북을 통해 ‘정치적 주장과 진짜 속뜻’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김 의원은 이 의원의 ‘박정희 천재’ 발언을 “한국당으로 옮겨서 부산에 출마하고 싶으니 받아달라”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한국당이 태극기 부대를 끌어안을지도 주목된다. 전 위원은 지난달 22일 KBS 라디오 <정준희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서 태극기 부대를 언급하며 “나라를 걱정하는 분들이고 직전 대통령을 구속시켜서 추락한 국격을 걱정하는 분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물론 객관적으로 볼 때 조금 강경하거나 지나친 부분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분들 빼고 뭐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전 위원의 태극기 옹호 발언은 정치권을 한차례 떠들썩하게 했다. 한국당 내부서도 이를 두고 이견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비대위원장은 진화에 나섰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25일 국회서 열린 비공개 비대위회의 이후 “(전 위원이) 개인적 학자 또는 변호사로서 피력하는 게 있고, 조강특위 위원으로서 입장을 피력하는 부분이 있는데 구분이 잘 안 돼 혼란이 많은 것 같다”며 “저 같은 사람이 받아들일 때 (전 위원이) 조강특위 위원으로 발언하는 것인지, 평론가로서 발언하는 것인지 (다르게) 느껴지는데 일반 국민은 그렇지 못하다”고 언급했다.

인적쇄신·보수통합 두고 갑론을박
외부보고서 공개…당 재건 성공할까

전 위원의 태극기 발언은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정치 재개와 맞닿아 있다. 황 전 총리는 태극기 부대의 최대주주로 꼽힌다. 태극기 부대는 한국당의 차기 당 대표로 황 전 총리를 꼽고 있다. 황 전 총리는 최근 출판 기념회 등을 시작으로 문재인정부를 비판하면서 정치 재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황 전 총리는 지난달 28일 자신의 SNS 페이스북을 통해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기 순항 속에 우리 경제는 거꾸로 하강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며 “멀쩡한 경제를 망가뜨리는 정책실험들이 계속되고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정책 실패를 국가재정으로 덮으려고 하지만 재정 퍼붓기만으로 일자리,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어렵다”며 날을 세웠다.

황 전 총리가 한국당의 입당 러브콜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황 전 총리의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한편 한국당은 지난달 30일 국회서 의원총회를 열고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와 사회발전연구소에 의뢰한 ‘한국 보수정당의 위기와 재건’ 연구용역결과 보고서를 공개했다. 부제는 ‘한국당 선거 패배와 지지율 하락 원인 분석’이었다. 한국당이 줄곧 답보 상태에 머물게 된 원인을 진단하기 위해서였다. 김 비대위원장 체제 이후 공표된 ‘가치와 노선의 재정립’을 실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당은 ‘지지도와 위상 추락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것이란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보수정당 위기의 현실을 근본적 수준에서 진단, 희망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한국당의 강경한 대북·안보 정책을 고수한 점을 지적하면서 제1 보수정당으로서의 핵심가치를 ‘포용성’ ‘사려 깊음’ ‘진정성’으로 재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계파를 인정하는 집단지도체제 구축의 고려와 공천 제도 개혁, 인적 구조 개편과 새로운 정치세력의 유입도 언급했다.

다만 한국당 의원들의 참여도는 높지 않았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의총 후 “아까는 꽉 차 있었는데 지금 이제 한 40명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당의 지지율은 콘크리트 지지층 외에 외부 유입이 막혀 있다. 지지율이 연일 답보상태를 보이는 까닭이다. 향후 한국당의 재기 여부에 따라 지지율은 지금과 다를 가능성이 높다.

당 내부 진단
의원들 반응은…

지난달 29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CBS의 의뢰로 지난달 22∼26일까지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당 지지도서 한국당은 19.5%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반면 여당인 민주당은 42%를 기록했다. 이번 여론조사는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3만3128명을 대상으로 통화를 시도해 총 2505명이 응답했고 무선 전화면접(10%), 무선(70%)·유선(20%) 자동응답 혼용 방식, 무선전화(80%)와 유선전화(20%) 병행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서 ±2.0%p다. 응답률은 7.6%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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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