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대선주자 7인 현미경 검증 ③병역

기름만 부으면 타오를 휘발성 잠재된 주자 누구?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대선 주자들이 치열한 대권 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상대를 이겨야 웃을 수 있는 치열한 레이스에서 최후에 웃게 될 자는 누가 될 것인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요시사>는 여(박근혜·김문수·정몽준)와 야(문재인·김두관·손학규) 6인과 비정치권 주자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유력 대선주자로 선정해 검증하기로 했다. 그 세 번째로 대한민국 남자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병역에 대해 살펴봤다.

병역은 국민으로서 수행해야 하는 국가에 대한 군사적 의무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남북 분단의 현실에 따라 군복무가 법으로 정해진 의무사항이다. 때문에 병역은 대한민국 남자라면 특별한 이유를 제외하고 누구나 이행해야 한다. 

이러한 징집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우리나라 정서상 군 복무는 국가안보에 대한 책임뿐 아니라 특히 사회통합과 국민단합의 밑바탕이 되고 있다. 하지만 특권층의 병역비리가 사회적 고질병으로 자리 잡으며 병역은 민감한 사안이 되었다.

과거 대선정국에서 막강한 대세론의 주역이던 이회창 후보가 아들 병역의혹이 불거지며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했다. 병역기피 딱지가 붙으면 연예인들도 하루아침에 퇴출당하기도 한다.

이처럼 병역문제는 계기만 제공되면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있는 폭발력이 강한 사안이다. 때문에 고위공직자나 지도자가 되려면 병역검증은 필수다. <일요시사>의 현미경 검증시간 그 세 번째로 잠룡들의 병역과정을 들여다봤다.

#일본장교로 활동한 아버지 전력에 비판받는 박근혜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은 여자이기 때문에 병역에 관해 해당사항이 없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군 전력은 항상 도마 위에 올라 박 전 위원장의 발목을 붙잡는다.


박 전 대통령은 교사로 근무하다 그만둔 뒤 지난 1940년 만주의 초급장교 양성학교인 신경군관학교를 지원하여 합격하였다. 이때 그는 나이 제한에 걸려 1차에서 낙방하였으나 장교가 되겠다는 자신의 간곡한 편지를 보내 합격하게 된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2년간의 군사교육을 마치고 우등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육군사관학교 3학년으로 편입했고, 2년 뒤 제57기로 졸업했다. 박 전 대통령은 8·15광복 이전까지 주로 관동군에 배속되어 일본군 중위로 복무했다. 하지만 일본이 패망하자 박 전 대통령은 부산항으로 귀국했다.

이후 그는 1946년 9월 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전신)에 입학하여 3개월간 교육을 마치고 조선국방경비대 육군 소위가 되었다. 형 박상희의 영향을 받았던 그는 군부 내에서 비밀리에 조직된 남로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다 1948년 국군 내부 남로당원 색출 시 발각되어 체포되었으며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만주군 선배들의 구명운동과 군부 내 남로당원 존재를 실토한 대가로 무기징역을 언도 받았다. 이후 15년으로 감형되어 군에서 파면되었다. 하지만 한국전쟁 중에 현역으로 복적 되었다.

박 전 대통령은 한국전쟁 동안 주로 육군본부 정보국에서 근무하다 1953년 장군이 되었다. 1954년 제2군단 포병사령관, 1955년 제1군참모장, 1960년 육군군수기지사령관, 제1관구사령관,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을 거쳐, 1961년 제2군부사령관으로 재직 중에 군부쿠데타를 주도하여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에 대해 권영길 통합진보당 의원은 “만주에서 광복군을 토벌한 일본군 오카모도 미노루 중위(박정희)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고, 젊음을 조국 광복에 바쳤던 광복군 장준하는 박정희 독재권력에 죽임을 당했다”며 “독재자의 딸이 집권여당 총수로 대통령을 노리는 대한민국의 모습이여”라고 성토했다.

#재벌가임에도 당당하게 ROTC로 병역 이행한 정몽준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ROTC 13기로 병역을 이행하였다. 정 의원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3학년 재학 중에 학군후보생을 자원했다. 정 의원은 학생 신분으로 학도 군사 훈련을 받고 지난 1975년 졸업과 동시에 육군소위로 임관한 것.


재벌가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부분이 꺼려하고 힘들어했던 학군후보생을 자원하여 2년간 군사훈련을 받고 졸업과 동시 육군장교로 임관한 사실은 정 의원이 내세우는 자랑스러운 이력이기도 하다.

특히 1970년대 초 서울 상대 ROTC 13기 후보생 교육을 담당했던 사람이 바로 현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다. 때문에 두 사람은 당시에 깊은 인연을 맺었다. 정 의원의 큰아들 역시 학군 43기로 임관하여 장교 신분으로 병역의 의무를 이행했다. 정 의원은 또 막내아들 역시 ROTC를 보내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국가안보관은 적어도 ROTC 후보생 시절 심득했던 투철한 군인정신의 학습효과로부터 근원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정 의원은 지난 3일 “‘핵에는 핵’이라는 ‘공포의 균형’이 없이는 평화를 얻을 수 없다”며 북핵 보유 선언에 맞서 핵보유 맞불론을 폈다. 정 의원은 “안보정책에 대핸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때이며, 핵무기 보유능력을 갖춰서라도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고 핵보유론을 주장했다.

이는 정 의원이 김문수 지사 등 군 미필 후보나 여성인 박 전 위원장보다 분단된 현실에서 자신이 안보와 보수를 책임질 대안이라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핵에 핵으로 맞서면 상호 간에 핵무기 개발에 더 치중하게 될 것이고 생물·화학무기 등 군사비용의 확대를 초래하고 복지비용등을 군사비용으로 대체하게 될 수도 있어 논란이 분분한 상태다.

#중이염으로 면제받자 틈만 나면 의혹 제기된 김문수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질병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김 지사는 지난 1971년 대학에서 제적당한 뒤 장티푸스에 걸려 고향집으로 내려가 요양을 했다. 그 와중에 그는 보안사에 끌려가 강제징집 직전 신체검사에서 과거 중이염 수술 후유증이 발견됐다. 때문에 중이근치술 후유증으로 면제 판정을 받은 것.

하지만 김 지사의 병역면제를 두고 계속해서 의혹이 제기돼왔다. 중이염은 군대를 면제 받을 정도의 질병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중이염은 귀 가운데 고막이 일시적으로 터져 자연 치유되거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완치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5~6개월 이후에 재검을 받아 최종적으로 면제여부가 결정되는데 김 지사는 재검을 받지 않고 곧바로 면제를 받았다는 것.

특히 중이염으로 군대를 면제받을 정도라면 그 후유증으로 상당한 청력 장애를 가졌을 것으로 보이는데 김 지사는 청력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끊임없이 공격받아 온 사안이다.

이에 대해 김 지사 측은 “장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 국군보안대 요원에 끌려 강제징집된 뒤 국군 통합병원에서 중3 때 걸렸던 중이염이 악화돼 징집면제 판정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사람들은 배경이 좋아 병역을 면제받았는지 몰라도 김 지사는 너무 기본이 없어 면제받았다”며 “복무에 필요한 최소한의 건강마저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강제징집으로 특전사 갔다 최우수 표창까지 받은 문재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은 앞서 특수전사령부(특전사) 공수부대 군복을 입은 복무시절 사진이 인터넷상에 널리 유포되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문 의원은 1975년 8월 육군에 입대해 1978년 2월 육군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당시 문 의원이 군대 내에서도 생소한 공수부대에 차출된 것은 박정희 정권의 ‘강제징집’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문 의원은 자신의 저서 <운명>에서 “과거에는 데모하다 끌려온 학생들을 보안사 같은 곳에 배치해 활용했는데 요즘은 고생시키는 쪽으로 방침이 바뀌었다”고 알렸다.


박정희 정권은 강제징집을 통해 자신의 반대 세력을 힘든 곳 즉 학생운동자들을 전방부대로 보내거나 특전사와 같이 힘든 곳으로 보내 아예 학생운동을 근절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얘기다.

문 의원은 실제로 경희대 재학시절 유신반대 시위를 주도한 전력이 있다. 당시 ‘긴급조치 9호’가 선포되며 문 의원 역시 시위를 벌이다 구속됐고 동시에 학교에서도 제적됐다. 문 의원은 저서에서 “석방된 지 얼마 안 돼 입영영장이 나왔다. 신체검사도 안 받은 상태였다. 신체검사 통지서와 입영통지서가 함께 날아왔다. 입영 전날 신체검사를 받고 다음 날 입영하는 강제징집이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강제징집으로 목숨을 잃었던 수많은 젊은이들도 있었다. 문 의원은 아이러니하게도 특전사에서 가장 힘든 훈련 중의 하나였던 공수훈련을 비롯한 폭파, 침투 등 각종 훈련에서 두각을 보였다. 이에 전두환 전 대통령(당시 여단장)에 화생방 최우수 표창을 받기도 했다.

한편 문 의원의 장남 역시 2001년 12월 육군에 입대해 2004년 1월 육군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군대 입대 이전과 이후 삶이 180도 변한 김두관

김두관 경남도지사는 지난 1982년 육군에 입대해 1985년 병장 만기 제대했다. 김 지사의 아들 역시 육군병장으로 만기 제대한 상태다.

특히 김 지사에게 군대는 가치관의 변화가 오던 시기로 요약할 수 있다. 김 지사 스스로도 군대에서 겪은 경험과 운동권이던 친동생의 영향으로 운동권으로 진입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대학을 늦게 들어갔던 나는 4학년 때 군대를 가게 되었다”면서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은 이때 더 분명해졌다”고 회고했다. 김 지사는 군대가 가장 비민주적인 조직으로 불합리와 비효율의 천국이라고 바라봤다.

아무 잘못도 없이 집합과 그 뒤를 이어 얼차례를 받았고, 내무반 안과 밖에서 수많은 독재자들이 거닐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한 사회의 운영원리로써 민주주의의 제도화만큼은 분명히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김 지사의 생각이다.

특히 김 지사의 부대는 서울에서 가까운 의정부에 위치했다. 덕분에 김 지사는 외출기회가 생기면 고려대에 재학 중인 동생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당시 그는 대학캠퍼스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반정부 시위와 집회를 목격했고 학생운동의 지도부였던 동생으로 인해 학생들의 투쟁의 대의나 계획을 서로 토론할 기회를 가지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부터 김 지사는 대학과 군대에서 느꼈던 비민주적인 상황을 변화시키는 사회운동에 적극 동참하기로 결심을 굳히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김 지사에게 군 입대는 180도 다른 가치관을 심은 계기가 된 셈이다.

#군대서 낮은 사람에게 승복하는 법을 배운 손학규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역시 지난 1969년 육군에 입대해 1972년에 병장 만기 제대했다. 손 고문은 서울대학교 재학시절 학생운동을 한 탓에 징계를 받아 졸업이 안 됐다. 때문에 그 역시도 어쩔 수 없이 반강제적으로 군대에 끌려간 셈이다.

그는 한 책을 통해 군 생활에 대한 소회를 밝힌 바 있다. 특히 손 고문은 그의 군 생활 3년간의 경험이 현재 삶의 밑바탕이 됐다고 할 만큼 소중한 경험으로 간주하는 양상이다. 그는 군대를 통해 평소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고개 숙이고 마음으로 승복하는 걸 배웠다고 회고했다.

손 고문은 “그들에게 고개 숙이고 바짝 엎드려야 했다. 그것은 군대생활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현실이었다”고 밝혔다.

손 고문은 화려한 스펙의 소유자로 유명하다. 그는 서강대 교수와 3선의원·장관·도지사 등 화려한 경력에 정점을 찍는 수준이다. 때문에 손 고문이 귀족적일 것이라고 편견이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의 서민적인 태도에 놀란 적이 있는데 이러한 나의 모습은 군대생활을 통해 체득한 것이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젊은 시절 그 어려웠던 군대생활을 통해 익혔던 이웃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그 마음을 앞으로도 변함없이 유지할 것이다”며 “그것이 바로 그 시절 신이 내게 준 선물이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백신 개발하다 가족에게 군대 간다는 말 못한 안철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군의관으로 병역의무를 이행했다. 안 원장은 백신바이러스로 이름을 떨치기 전 의대를 나와 의사의 길을 걷고 있었다.

군의관은 바로 의대에 진학하여 6년을 수료한 의대생 및 의대졸업생 등이 복무하게 되는 직책이다. 때문에 안 원장은 군대 내 환자의 치료를 담당했던 셈이다.

특히 그는 지난 2009년 <무릎팍도사>에 출현해 “군대에 갈 무렵 미켈란젤로 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렸는데, 이에 대한 백신을 만들어 두지 않으면 3개월 동안 피해가 확산될 것을 우려했다”면서 “군의관(대위)으로 군대 가는 날 1991년 2월6일에 만들어서 PC통신으로 전송하고, 입대를 했다”는 일화를 밝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또 “내무반에서 다른 사람들이 입대 전날 가족들과 헤어진 얘기를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가족들한테 군대 간다는 말을 안하고 나왔다”고 밝혀 더욱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에 대해 안 원장의 아내 김미경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군대 가는 날 아침까지 백신 프로그램 업데이트하더니 허둥지둥 지하철 타고 서울역으로 달려가더라. 기차 태워 보내고 혼자 돌아오는데 무지 섭섭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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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