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필승카드' 이해찬 민주통합당 신임 대표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06.11 13:4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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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악재에도 당권 거머쥔 '역전의 명수' "저력 빛났다!"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4·11총선 패배로 침울했던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이 6·9전당대회를 통해 되살아났다. 당 지도부를 뽑는 지역 순회 경선이 예상 밖 흥행을 일으키며 연일 사람들의 눈과 귀를 모았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당대표 경선에 나선 이해찬-김한길 후보의 치열한 대결이 있었다. '이-박 담합론'과 전화인터뷰 보이콧, 종북색깔론 등 다양한 악재에도 이해찬 대표가 당권을 거머쥘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선승리를 위해서는 그가 필요하다는 지지층의 결집이 있었다. 이해찬 당대표 체제가 출범함으로써 사실상 그의 후견인으로 활동했던 문재인 고문의 대세론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이해찬 후보가 지난 9일 극적으로 민주당 대표에 선출됐다. 선거 초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후보의 승리를 예상했다. 하지만 대선승리를 위한 '이해찬 당대표-박지원 원내대표'라는 이른바 '이-박 담합론'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또 지난 5일에는 생방송으로 진행된 YTN 라디오 <김갑수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한 이 후보가 전화인터뷰 도중 사회자의 질문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며 전화를 끊어버리는 방송사고를 일으키자 선거판세는 요동치기 시작했다.

대여 공세 본격화
대권행보 빨라져

그러나 이변은 없었다. 이러한 위기가 오히려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은 대선승리를 위해서는 '이해찬'이 꼭 필요하다는데 동의했다. 이로써 문재인 고문의 대권 대세론은 더욱 굳건해졌다. 문 고문 측 관계자는 "당 대표 경선은 대선 후보 경선의 전초전이 아니다"라며 거리를 두긴 했지만 이번 경선은 사실상 당내 대권주자 간 '그림자 경선'이라고 불렸다는 점에서 최소한 문 고문의 당내 입지는 한층 더 탄탄해졌다.

대권을 향한 민주당의 행보도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이-박 연대에 대한 비판 속에서도 이해찬 당대표-박지원 원내대표 체제가 확정되자 민주당은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정치10단의 이해찬을 당해내지 못할 것"이라며 벌써부터 대선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더군다나 박 원내대표가 취임하자마자 유력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을 향해 연일 맹공을 퍼부으면서 새누리당 내에서는 이-박 연대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해찬 승리에 문재인 대세론 '탄력' 대권레이스 본격화
'이-박' 꿈의 조합…"오직 '대선승리' 힘 모으겠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황 대표 입장에서도 김한길 의원이 차라리 수월했을 것이다. 이-박 체제의 완성으로 민주당 차원의 대선공세가 더욱 거세질 것 같아 걱정"이라고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대권주자들은 이미 이번 선거결과가 대선레이스에 미칠 이해득실을 계산하느라 바쁘다.

이 대표는 1952년 7월 10일 충청남도 청양에서 공무원이던 아버지 이인용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의 가계는 조선왕조의 왕족으로, 그는 조선 14대 왕 선조의 생부 덕흥대원군의 14대손이다.

이 대표는 청양초등학교와 덕수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길에 올라 용산고에 입학했다. 1971년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섬유공학과에 진학한 그는 학생운동에 투신하다 72년 섬유공학과를 중퇴하고 같은 해에 다시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가세가 기울어 어려운 환경을 맞았지만 막일 등으로 생계비와 학비를 조달하며 학업에 열중했다. 

그러나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투옥되고 또 1980년에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는 등 학생운동으로 투옥과 석방을 반복해 대학입학 후 14년 만인 1985년에야 서울대학교를 졸업(사회학 학사)할 수 있었다.

민주주의 '갈망'
14년 만의 졸업

이 대표는 그 과정에서 광장서적, 돌베개출판사 대표 등을 지냈으며, 1987년 <한겨레신문>의 창간 발기에 참여하기도 하는 등 출판인, 언론인 등으로 활동했다.


그의 본격적인 정치행보는 1987년 11월 평화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시작됐다. 1987년 말 DJ가 학생운동권 인사들을 두루 영입할 때 그도 평민당에 입당했다. 그는 바로 다음 해인 1988년 국회의원 총선거에 서울 관악구 평민당 후보로 당선돼 이후 내리 5선을 지냈다. 첫 당선 당시 그는 겨우 36세였다. 특히 1988년 5·18 광주청문회 당시에는 5공 관련자들을 논리정연하게 추궁해 일약 '청문회스타'로 떠올랐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제38대 교육부 장관을 지냈다. 장관 재임 시절 그는 교원비리 근절 및 무시험 대학입학 전형, 학급 정원 단축, 교원정년 단축 등의 개혁을 추진했지만 일명 '이해찬 세대'에 대한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주로 고교 평준화, 연합고사 폐지, 보충수업 폐지 등의 개혁안을 추진했는데 성급한 입시개혁이 결국 이해찬 세대의 학력저하를 불러왔다는 비판이었다. 또 교원비리 근절에 너무 과도하게 집착하면서 교사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렸다는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과감한 개혁정책은 학교 내 촌지 등 각종 비리를 척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노무현 정부에서도 신뢰를 얻었다. 2004년 제36대 국무총리로 임명된 것이다. 이 대표는 국무총리 재임 당시 19년 간 미결과제로 남아있던 원전폐기물처리장 설치를 성공적으로 해결하는가 하면 공공기관 지방이전안을 추진해 현재 세종시의 기반을 닦았다.

과감한 교육개혁
평가는 엇갈려

국무총리 정무비서관실 국장 출신인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은 이 대표에 대해 "역대 총리들은 대부분 의전총리, 대독총리에 그쳤는데 이 전 총리는 '밥값'을 제대로 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렇게 별다른 문제없이 2년가량 총리직을 수행하던 그는 안타깝게도 2006년 3·1절 골프파문으로 인해 총리직을 사퇴했다.

이에 대해 전남대 고용 교수는 "이해찬 대표는 사실 무척 소박한 사람"이라며 "골프사건 하나로 이미지가 훼손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이 대표가 총리로 재직할 때 하루는 총리 일행이 지나간다고 경찰들이 신호등을 길게 잡았다. 그러자 그는 퇴근길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친다며 혼자 뛰어서 횡단보도를 건너가 버렸다. 정책을 두고 토론할 때는 속칭 '갈매기 눈썹'이라고 불리는 날카로운 모습으로 집중하지만, 소소한 자리에서는 담배 한 대  피워가며 사람들과 담소하고, 청양 시골소년으로 돌아가 해맑고 수줍은 미소를 짓는 그런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야당 대통령 만든 진정한 '킹메이커' 
"18대 대선서 어떤 활약할까?" 벌써부터 이목 집중

유시민 전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역시 이 대표를 '사무사(思無邪)의 정치인'으로 표현했다.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삿되거나 간사한 언행을 하지 않는 사람이란 뜻이다. 유 전 대표는 "매순간 선택을 요구 받는 것이 정치인인데, 그는 스스로 정당화 할 수 없는 타협이나 아부를 절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1991년 첫 지방선거 당시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평민당 지도부가 돈 공천을 하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에서 나왔다. 또 2002년 여름 국민경선을 통해 선출한 노무현 후보를 지지율이 낮다는 이유로 낙마시키자는 의견이 팽배할 때도 그는 묵묵히 노무현 후보 선대위의 핵심 요직을 맡아 승리를 일구어 냈다. 선거에 지더라도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정치인의 바른 도리라는 단순한 원칙에 따른 행동이었다.


이 대표의 가장 우선적인 목표는 바로 정권교체다. 그는 "제가 가진 모든 경험과 능력을 제3기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데 쏟아 붓겠다"고 말했다.

또한 "대선 경선과정에서 엄정 중립을 지키고 공정하게 관리하겠다"며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높여 검증된 후보, 경쟁력 있는 후보가 우리당의 후보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당의 후보가 결정되면 후보의 당선을 위한 총력 지원체제를 구축해 반드시 대선 승리를 일궈내겠다"고 밝혔다.

앞으로의 행보는?
정권 교체 '총력'

이 대표 체제가 출범하면서 당내 대권주자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누가 민주당의 대권주자로 결정되든 '이해찬-박지원'의 든든한 후원이 있다면 해볼만 하다는 평가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거 총괄기획을 맡아 불리한 선거판세를 뒤집어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최초의 야당 출신 대통령이었다. 


이제 대선을 향한 민주당의 밑그림은 모두 그려졌다. 이 신임대표가 18대 대선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가에 벌써부터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해찬 대표 프로필>

▲ 1971 용산고 졸
▲ 1978 돌베개출판사 대표
▲ 1983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 1985 서울대 졸
▲ 1988 제13대 국회의원
▲ 1992 제14대 국회의원
▲ 1995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
▲ 1996 제15대 국회의원
▲ 1998 제38대 교육부 장관
▲ 2000 제16대 국회의원
▲ 2004 제17대 국회의원
▲ 2004 제36대 국무총리
▲ 2011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 2012 제19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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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