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안돼…여야 지도부 해법 찾아라”


MB, 박근혜 전 대표 중용…이재오·박근혜 화해 필수
제1야당 정세균 대표체제 무조건 힘 실어줘야 한다?
민주당·민노당·창조한국당 공조 등 범진보진영 대통합 절실

정치권 특히 요즘 국회 이대로 좋은가.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해머, 정, 전기톱, 소화기가 등장한 난장판 국회는 국민의 분통을 사게 하고 있다. 차라리 국회를 해산하는 것이 낫다는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과연 새 정치를 위한 정치 해법 찾기에 성공할지 여부에 귀추가 주목된다.

한나라당은 4·9총선에서 대승을 거둬 현재 173석이라는 의석을 보유한 거대 정당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전체가 혼돈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대선 총선 이후 친이·친박의 양대 세력으로 나눠져 있다. 요즘 정치권에서는 낮에는 친이계 밤에는 친박계로 둔갑한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대선, 경선 때 낮에는 친박계 밤에는 친이계였던 것과는 정반대다. 한나라당이 정치 중심을 잡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

한나라당 포용정치 필요
‘큰 정치해야 성공’

사실 한나라당은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으로 질긴 맥을 이어 왔다. 그리고 2007년 대선을 맞아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로 나눠졌다. 이명박계의 수장(首長)격인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4·9 총선 후 미국으로 갔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세력이 만만치 않아 틈만 보이면 귀국설이 나돌아 친박계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

한나라당의 3대 금기는 대운하 사업,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귀국, 경제각료 경질 등이라 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표라는 호랑이 꼬리를 잡고 있는 셈이다. 박 전 대표를 놓아버리면 한나라당은 그나마 집권여당의 구실을 못한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차기 대선 주자 후보 가운데 50% 이상의 지지를 얻고 있으며 호남에서도 22% 안팎의 지지를 받아 다른 어떤 대군 주자도 지지도에 있어 추월을 하지 못하는 상태다.

애초 경선 후 이 대통령이 당권을 주면서 화합의 틀을 만들었어야 한다는 것이 정치권의 일치된 견해다. 미국 대선후 오바마 당선자가 후보 라이벌이었던 힐러리를 국무장관에 지명했다는 사실을 되새겨봐야 한다. 


얼마나 큰 정치인가. 한나라당의 계파 싸움이 어떤 세력이든 ‘물먹는 세력’은 더 이상 밀리지 않기 위한 결사항전의 태세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의 해법은 어떤 것인가. 우선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를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큰 정치를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미국의 힐러리는 국무장관 수락 조건으로 대통령을 수시로 만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과 인사권의 부여 등 2가지를 제시했다.

이에 오바마 당선자는 “국무부 차관 1명의 인사권만을 허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를 총리로 기용하면 이 대통령은 경제 챙기기와 외고 국방의 통치권만 갖게 되는 셈이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거취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결자해지의 원칙으로 따지면 박 전 대표가 이 전 최고위원의 귀국을 건의하면서 이·박 극적 화합을 이뤄야 하는 것만이 큰 정치 해법이다. 물론 이 같은 대화합에는 한나라당의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이 뜻을 함께 해야 한다.

민주당은 정세균, 정동영, 손학규, 김근태, 노무현 386계 등 5개 파벌이 실존하고 있다. 때문에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한국 정치사에서 야당 60년사는 대부분 제1야당 중심으로 그 숨결을 이어왔다. 실제 한민당⇒민주당⇒민정당⇒신민당⇒민한당⇒신한민주당⇒ 통일민주당·평민당⇒민주당⇒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민주당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 야당이 지닌 생명력은 강인했다. 야당은 61년의 5·16쿠데타, 80년의 5·17사태를 거치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야당이라는 큰 맥을 이어가면서 생존했다. 한국의 호메이니옹이라고 할 수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근 민주당·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 등 야3당이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합 신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과거 야당은 김영삼(YS), 김대중(DJ), 김종필(JP) 3김이라는 지도자가 40년 동안 야당을 이끌어 왔다. 3김 시대 이후 3김 같은 카리스마는 없지만 제1야당 정세균 대표체제에 무조건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또 열린우리당계와 386들의 지지를 받으며 제1야당의 구원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정세균 대표는 특유의 허허실실으로 소리 소문 없이 당을 장악해 갔다. 문제는 그의 존재감이 대안부재론을 제1의 자양분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홀로서기 없이는 조만간 투자 매력을 모두 소진할 공산이 크다. 정 대표는 야당의 관리형으로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 대표가 중심이 되어 한광옥, 한화갑 등 소외되고 있는 정치원로를 끌어안고 총집결시켜 다시 한 번 야당을 새롭게 재건하는 것이 지금으로선 가장 합당한 선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야3당 통합론 대두
새로운 이념·세력 구축

민주당은 신년초 새롭게 내걸 당 정책 이념으로 ‘새로운 진보’로 당 노선 변경을 하기로 했다. 당의 이 같은 새로운 노선 채택에는 박상천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 조언과 충고를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표는 최근 당 모임에서 “민주당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을 내세웠는데 서민을 위한 정책은 있는데 중산층을 위한 정책이 없다”고 비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표는 “지금 시대 최대의 복지는 취직이고, 중산층으로 올라서는 핵심 계기가 집 장만”이라며 “민주당이 경제를 성장시켜 일자리를 창출할 방안과 서민 주택 마련 문제에 신경을 더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노동당의 강기갑 대표는 지난달 23일 진보신당을 포함한 범진보진영의 대통합을 제안했다. 그의 발언은 민주당이 최근 ‘새로운 진보의 길’로 당 노선의 변경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와 정치적 파장이 주목된다.

강 대표는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에 출연해 “광범위한 ‘반 이명박 연대’만이 이 대통령의 오기와 독선, 폭주를 막아낼 수 있다. (대통합은)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통합이 포함되겠지만, 지금은 그런 정도의 그림이 아니라 진보진영, 진보 단체의 대통합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강 대표는 “내년 상반기가 지나면 과거 (1987년의) 6·10 항쟁 이전의 ‘국민운동본부’와 같은 형태의 물결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진보진영의 모든 세력들은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는 취지의 제안과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대통합 불가피론을 폈다.

강 대표는 특히 진보신당과의 통합에 대해 “이미 민주노총 등 각계 단체에서 진보진영의 대통합을 구체적으로 요구해 오고 있다. (제안이 오면) 지역조직에서부터 상향식으로 구체적 논의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민주당의 진보개혁성향 의원들도 대통합 대상에 포함되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새로운 진보의 생각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끌어안는 큰 폭의 그림이 기본적인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의 핵심 인사는 “진보신당과의 통합에 주안점을 두고 있지만, 상대가 있는 만큼 당 대 당 통합을 서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반이명박 전선’을 함께 꾸려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논의가 진전될 수 있고, 대통합의 폭이 더욱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낮은 수준의 연합부터 점차 발전시켜 가겠다는 뜻이다.

민주당은 23일 정세균 대표 등 소속 의원 81명이 서명한 강 대표에 대한 선처요청 탄원서를 민주노동당에 전달하며 ‘공조’를 과시했다. 강 대표 쪽은 지난달 24일께 이 탄원서를 법원(진주지원)에 제출하기로 했다.

한편, 가깝게는 2009년 재보선, 멀리는 2010년 지방선거 2011년 대선 승자는 모두 지역 주민과 국민의 선택으로 승부가 결정된다. 한나라당은 재보선 지방 선거 결과에 따라 순탄하게 가느냐 아니면 위기에 봉착하느냐가 결정된다. 박 전 대표가 재보선과 지방선거에서 지원 유세를 할 것인지 여부도 한나라당의 과제가 될 전망이다.

재보선, 정치권 대변화
순탄하게 가느냐, 위기냐


이번에도 현재의 추세대로 간다면 재보선과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독점하지는 않을 것 같다. 국회의원 재보선의 경우 호남에서 2군데나 된다. 그렇다고 민주당의 진출도 쉽지는 않아 보인다. 2011년 대선에는 한나라당에서 홍준표, 박근혜, 정몽준, 이재오, 김문수, 원희룡, 박진 등이 출마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의 경우 애조 전 최고의 견제 극복, 대선후보 경선시 친박세력측의 밀집력과 이번 재보선에서 지원유세를 하느냐 안 하느냐가 한나라당 대선후보 등극 여부를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1년새 주가가 급등한 자는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다. 정권 교체기에 이명박 정부 창업 일등공신들이 자의 반 타의 반 물러나면서 생긴 권력의 빈틈을 메웠다.

그는 “미국엔 버락 오바마, 한국엔 버럭 준표”가 있다고 자신을 홍보하고 있다. 그는 현재 개각시 법무부 장관 추임이 거론되고 있으며 검찰 간부들도 그에게 줄 섰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정세균 대표는 지난 대표 경선에서 자신의 조직력의 확고한 결집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 후보는 당 대표와는 다른 만큼 낮은 국민적 지지도 회복이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정세균, 송영길, 문희상, 손학규 등이 유력하게 거론될 전망이다.
한나라당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명실상부한 ‘여권의 2인자’로서 올해를 맞이했다. 지난해 한나라당의 경선과 대선에서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이명박 대통령 탄생의 ‘킹 메이커’였다. 하지만 한 해가 저무는 지금 그는 무관(無冠)으로 이국만리에서 ‘유랑’ 중이다.

어쨌든 현 정치권 이대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을 망신시킨 국회도 원상회복시켜야 한다. 해머와 소화기를 연상시키는 정치문화가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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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