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풍 몰고 온 4?11 총선] ③ 희비 엇갈린 야권 잠룡들

‘찻잔속의 태풍’으로 그친 ‘문풍’에 웃고 울고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4?11 후폭풍에 야권이 쓸려가는 양상이다. 대선의 전초전인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선전하면서다. 야권은 전국적 연대까지 형성하며 똘똘 뭉쳤지만 사실상 패배했다는 평이다. 하지만 총선 피바람에 잠룡들의 온도차는 미묘하다. 대세론을 구축하던 ‘문풍’의 파괴력이 ‘찻잔속의 태풍’으로 그치면서다. 무주공산이 된 야권 대선티켓을 두고 울고 웃는 잠룡들의 엇갈리는 희비쌍곡선을 들여다봤다.

여권의 자살골도 못 받아먹고 총선 말아먹은 야권

파괴력 약해진 문풍에 잠룡들 표정 미묘한 온도차

야권이 총선 성적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양새다. 그간 ‘내곡동 사저’ ‘디도스 파문’ ‘불법사찰 논란’ 등 정부여당에 대형악재가 겹치며 MB정부에 대한 민심이반이 가속화됐다. 총선을 앞둔 야권입장에서는 ‘천재일우’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때문에 야권은 바닥 치는 민심을 등에 업고 전국적 연대를 형성해 이번 4?11 총선에서 ‘압승’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장밋빛 전망 야권

총선정국서 죽 쒀


하지만 투표함의 뚜껑이 열리자 예상 밖의 결과가 쏟아졌다. 총선 개표 결과 새누리당이 152석, 민주통합당이 127석, 통합진보당이 13석을 확보한 것. 예상을 뒤엎고 새누리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하며 19대 국회 역시 현재와 같은 ‘여대야소’ 형국이 그대로 유지될 전망이다.

이 같은 결과에 야권 잠룡들은 촉각을 곤두세우는 눈치다. 이번 총선이 대선의 전초전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총선 성적표가 대선가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실제로 총선과 대선이 같은 해에 치러진 지난 1992년 상황과 비교하면 이번 선거의 충격을 짐작해볼 수 있다.

당시 15대 총선에선 민주자유당 149석, 민주당 97석, 통일국민당 31석, 기타 22석의 결과가 나왔다. 그해 12월에 실시된 14대 대선에서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잠룡들 간의 온도차가 느껴진다. 야권에서 대세론을 형성하던 ‘문풍’ ‘안풍’의 위력이 반감되면서다. 때문에 야권 잠룡들의 희비도 엇갈리는 모양새다. 먼저 낙동강벨트 형성으로 PK(부산?경남)공략에 나섰던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문풍’ 확장에 한계가 드러나며 대권가도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부산 사상에 출마한 문 고문은 손수조 새누리당 후보를 누르며 새누리당의 아성을 깼다. 하지만 PK지역에서 민주당이 얻은 의석은 단 3석이다. 자력으로 당선된 조경태 의원을 제외하면 문 고문과 민홍철 당선자 등 2명뿐이다. 10석 이상도 가능하다는 기대에는 한참 부족한 셈이다. 낙동강 벨트의 저조한 성적으로 문풍이 찻잔속의 태풍으로 그쳤다는 평이다. 때문에 문 고문의 대선주자로서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 상태다.

특히 박근혜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장이 이 지역을 5번이나 방문하며 문풍을 차단했다는 관측에 무게가 쏠린다. 때문에 문 고문은 자신의 정치고향인 부산에서조차 박 위원장을 넘지 못하고 지역구에만 갇혔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게다가 문 고문은 선거기간 부산에 발이 묶여 전국적인 행보를 하지 못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특히 자신의 비전을 보여주지 못해 대선국면이 본격화되면 내세울 콘텐츠가 없는 것도 흠이다. 이는 곧 대선주자 교체론의 빌미가 될 수 있어서다.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다른 잠룡들의 도전받을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다.


정치 1번지 접수한

정세균, 대권도 탄력

‘한미FTA 저격수’를 자임하며 적진의 심장인 강남을에 파고든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한미FTA 전도사’인 김종훈 새누리당 후보에 크게 패했다. 생사가 불투명한 불모지에 뛰어들며 희생정신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새로운 이미지가 구축됐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2000년 총선에서 부산에 출마했다 고배를 마신 뒤 2002년 대선에서 화려하게 재기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 역정을 정 고문이 벤치마킹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정 고문의 측근인 이종걸?정청래 후보를 제외한 대부분 측근들의 국회 입성 좌절로 당내에서 입지가 좁아졌다는 평이다. 때문에 향후 정 고문의 대권가도 역시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반면 정세균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정치1번지인 서울 종로에서 당선됨으로써 정치적 위상이 높아짐과 동시에 대선 가도에도 일단 청신호가 켜졌다. 특히 정 고문의 눈높이는 대선에 맞춰져 있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이 거쳐 갔던 종로입성을 두고 정 고문은 한층 고무된 상태다.

이번 총선에서 정 고문의 측근인사들 역시 선전하며 당내의 확고한 입지도 넓어질 전망이다. 수도권에서 당선된 신기남ㆍ오영식 ㆍ윤호중ㆍ이미경ㆍ전병헌ㆍ최재성 후보 등이 정 고문의 측근으로 분류된다. 광범위하게 포진한 친노 그룹까지 포함하면 정 고문의 대선 동력은 그만큼 더 강력해진 셈이다. 특히 이번 총선으로 정 고문은 ‘호남 터줏대감’에서 ‘전국 주자’로 격상됐다는 평이다. 하지만 정 고문은 당내 폭넓은 지지기반과 달리 대중적 인지도가 낮다는 점이 극복해야 할 과제다.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비록 비례대표 당선에 실패했지만 전국적으로 당이 선전하며 표정이 밝은 상태다. 유 대표는 통합진보당의 정당지지율을 20%로 장담하면서 비례대표 12번을 선택했지만 실제 지지율이 이에 미치지 못해 당선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이 선전해 제3당으로 자리 잡으며 정치적 리더십을 인정받게 됐다. 때문에 당내에서 지지율이 가장 높은 대선주자로서 적당한 시점에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에 출전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문재인?정동영 한풀 꺽이고 정세균?김두관 활짝 웃고

무주공산 ‘대권행’ 백가쟁명 혈투 예고된 야권리그전

이번 총선에서 백의종군한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지원 유세에 동참했기 때문에 총선 성적의 영향권 내에 있다. 손 고문은 특히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적극 공략에 나섰다. 민주통합당이 수도권 지역에서 선전한 점을 감안하면 손 고문은 반사이익을 나눠 가질 수 있게 됐다.

게다가 ‘친손학규계’인 이춘석·이찬열·송두영·신학용·양승조 후보가 당선되며 손 고문의 체면치레를 해줬다. 원내 기동력을 상당히 확보한 셈이다. 하지만 손 고문은 자신의 지역구(경기 분당을)를 물려받은 김병욱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원했지만 끝내 원내 진입에 실패함으로써 전체적인 표정이 마냥 밝지만은 않은 상태다.


야권 대선 주자 가운데 유일하게 총선에 관여하지 않았던 김두관 경남지사는 총선 결과의 직접 영향권에선 벗어나 있다. 하지만 PK지역에서 문풍이 미풍에 그치며 김 지사는 반사이익으로 최대 수혜자로 떠오른 상태다. 문풍 확장성의 한계로 친노 세력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김 지사에게 가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

PK를 근거지로 두고 있는 김 지사의 향후 대선 행보는 가변적인 상황이 된 상태다. 특히 김 지사는 동네 이장·군수부터 장관·도지사의 막강한 내공에 정치경험까지 더해져 공공연히 대선판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유력 잠룡으로 꼽혀왔다. 게다가 대선 출마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던 평소 움직임을 감안하면 적절한 시점에 행보를 본격화할 것이란 관측이 높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대선구도가 ‘박근혜 대 문재인’ 대결로 굳어지지 않는다면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이 높게 점치고 있다.

잠재적 야권 잠룡으로 분류되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 원장의 대권 가도는 상황이 녹록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안 원장이 투표 촉구를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시적 성과가 없다는 평이다.

총선을 이틀 앞둔 지난 9일을 포함해 연속적인 투표독려 메시지를 보냈지만 투표율이 54.3%로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 못 미치는데다가 오히려 지역감정이 악화하는 쪽으로 투표행태가 나왔다는 분석이다. 정치권 외곽에서 간접적인 정치를 하는 안 원장의 ‘신비주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때문에 안 원장의 향후 대선행이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더욱더 치열해진

야권 ‘안방리그전’


하지만 안 원장은 젊은 세대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때문에 야권 일각에서는 ‘안철수 대안론’이 확산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여야의 정쟁으로 ‘정치 피로증’이 쌓일수록 안 원장의 입지는 그만큼 커지게 된다는 분석이다. 때문에 대권도전이 점쳐지고 있는 안 원장의 향후 행보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총선 이후 대선정국으로 접어들며 야권에서는 무주공산의 대권행을 두고 본격적인 백가쟁명식 치열한 혈투가 전개될 전망이다.

특히 문풍과 안풍의 영향력 반감으로 야권 잠룡들의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가는 양상이다. 게다가 잠룡들의 갖은 승부수가 예측되며 ‘대권행’의 주인은 예측이 불가한 상황이다. 또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돌발변수에 대권행은 더욱더 안개국면이다. 이제 단 하나뿐인 대선티켓 확보를 위한 야권 잠룡들의 안방리그전은 피 튀기는 혈투가 벌어질 전망이다. 과연 어느 잠룡이 대선티켓을 확보하고 마지막까지 웃게 될지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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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