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 지각변동 일으키는 대리운전 세계

“고객이면 남성 여성 가리지 않고 OK"
   대리운전도 이젠 ‘고품질 서비스 시대’


대리운전이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그저 ‘술 취한 손님 대신 차를 운전해주는 임시 일용직’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각 회사들이 체계를 갖추고 서비스 교육을 강화하는 등 나름대로 과거와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보다 높은 고객만족 서비스를 펼치려는 나름대로의 노하우도 쌓아가면서 대리운전 업계 전체가 동반 발전하고 있는 추세다. 운전자가 손님의 개인 전화번호를 빼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첨단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등 첨단 디지털화까지 진행되어 가고 있다.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대리운전업계에 대해 집중 취재했다.

엄격한 테스트 통과한 운전자가 고객만족도도 ‘따봉’
한달 꼬박 일해도 수익 100만원 안팎 “울고 싶어라” 
첨단 소프트웨어 통한 ‘임시번호 전송’ 눈에 띄네!
깔끔한 외모로 신뢰구축 형성 단골고객 확보 혈안


최근 대리운전 업계의 가장 눈에 띄는 변화 중의 하나라면 바로 첨단 소프트웨어를 통한 ‘임시번호 전송’이라고 하는 것이다. 일단 손님이 업체에 전화를 걸어 대리운전 기사를 부르게 되면 운전기사는 손님의 전화번호를 받게 된다. 그래야만 해당 지역으로 가서 손님과 통화를 하고 운전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화, 고객관리
새로운 변화들

하지만 대리운전 기사가 받는 손님의 전화번호는 실제 전화번호와 전혀 다르다. 손님의 번호가 ‘010-111-1111’이라고 한다면 운전기사가 받은 전화번호는 ‘0505-394-2438’과 같은 식이다. 그리고 일정 시간이 지나게 되면 이 임시 전화는 소용이 없어져 버린다.
이런 임시전화번호 전송은 대리운전 업체를 위한 운행관리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으로 가능하다. 현재 이 소프트웨어는 매우 많은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구매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임시 번호를 통해 손님과 운전자를 연결시키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운전기사가 일을 하다보면 여러 고객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확보하게 되고 이것은 향후에 운전기사가 손님을 가로챌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경쟁업체에서도 마찬가지로 운전기사를 통해 다량의 손님 개인 정보를 가로챌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운전기사가 손님의 개인 전화번호를 모르는 이상 이는 완전히 불가능하게 된다.

또한 이렇게 가상 번호를 사용하는 것은 손님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역할도 해준다. 아무리 대리운전이라고는 하지만 잘 모르는 낯선 사람이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 심지어 집의 정확한 위치까지 알게 되는 것은 찜찜한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용모와 복장 변화로
고객 확보 ‘전투화’

때로는 비용을 두고 손님과 운전기사가 마찰을 빚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향후 이러한 일들로 또 다른 ‘불상사’를 사전에 예방하겠다는 차원이기도 하다.
이 같은 최첨단 디지털 서비스로 무장하는가 하면 일부 업체들은 서비스 교육 등을 통해 보다 나은 이미지를 만들어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보여주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용모와 복장의 문제다.

한 대리운전 업계 관계자는 “대리운전은 초창기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로 인해 일정 정도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라면서 “밤에 일을 하는 것이고 거기다가 취객을 대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대리운전자에 대한 신뢰의 문제가 제기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따라서 양복을 입게 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모자를 착용하는 일은 철저하게 금지시키고 있다”며 “헤어스타일도 깔끔하게 해서 고객들에게 어느 정도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일부 손님들은 외모 상태가 불량하면 대리운전 자체를 맡기지 않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워낙 많은 경쟁업체들이 있다 보니 이런 것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고 귀띔했다.

서비스 위탁 교육을 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리운전을 하는 일부 기사들은 기존 직장에서 더 이상을 일을 하지 못하게 되어 대리운전을 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해당 업계의 ‘서비스 마인드’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 ‘그저 운전만 잘해서 집만 잘 찾아가면 되지 않는냐’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것은 대리운전이 성업하던 초창기의 일에 불과했다.

업체서도 인력관리
서비스 향상 유도

시대가 바뀌면서 고객에 대해서도 보다 차별화된 서비스가 점차 필요하고 이에 따라 아예 전문 업체에다 운전기사들의 친절 교육을 의뢰하기 시작했다. 이런 교육에 대해선 대리운전자들 스스로도 만족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리운전 3년차라는 이모(45)씨는 “사실 초창기만 해도 대리운전 기사들은 거의 ‘노가다’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며 “그 자체로 막노동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손님이 있는 곳을 찾아가고 돈 아끼려고 걸어 다니기도 하는 것들은 매우 힘들고 피곤한 일이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이어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서비스와 친절’까지 요구하고 있다. 역시 처음에는 이것 역시 매우 거추장스러운 일이었다. 대리운전기사가 운전만 잘하면 되지 않냐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속적인 서비스를 받은 후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일단 서비스를 한번 경험해본 고객들의 경우 우리 회사를 단골로 지정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기사들은 더욱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자랑했다.

아예 직원을 뽑을 때부터 엄격한 과정을 거치는 업체도 생겨나고 있다. 대리운전업체에선 다소 생소해 보이는 ‘인사부’를 두어 이력서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경력 관리를 하는가 하면 면접도 철저하게 봐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춘 인력을 뽑는 경우도 있다. ‘직원관리가 고객만족’이라는 신념 하에 애초 인력관리부터 철저하게 진행해 나간다는 얘기다. 
대리운전 업체 G사 한 관계자는 “모든 업종들이 ‘고객중심’, ‘수준 높은 서비스’를 지향하고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대리운전 업계만 그러한 트렌드를 모른 체할 수 없다”면서 “어떤 업종이든지 선발주자들은 대부분 이런 교육을 시키고 있고 여기에 뒤처지는 업체는 수익도 뒤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단골 고객을 관리하는 스킬도 점점 더 발달하고 있다. 신규 고객에게는 가격을 할인해주기도 하고 단골 고객에 대해선 따로 명단을 만들어 신속한 의사소통을 통한 철저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인근의 음식점, 주점 등과 네트워크를 형성한 ‘연계 마케팅’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손님들의 입장에서는 믿을 만한 음식점이나 주점에서 추천해주는 것이기에 보다 안심하고 대리운전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리운전 업계는 여전히 불황의 한파에 몸살을 앓고 있으며 대리운전 기사들 역시 낮은 수익에 고민할 수밖에 없다. 운전기사가 오후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일을 하면 하루에 벌 수 있는 돈은 3만5000원 정도. 한 달 동안 하루도 쉽지 않고 꼬박을 일을 해야 겨우 100만원 정도를 벌어들일 뿐이다.

그렇다고 밤낮이 바뀌는 생활을 그렇게 계속해서 견뎌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일주일에 3~4번 정도만 쉰다고 해도 수입은 100만원 이하로 뚝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최근의 경기 불황은 이런 수입을 더욱 줄여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아예 집에서 술을 먹거나 술 먹을 약속이 있는 날에는 차를 가지고 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불황 한파에 낮은 수익
대리운전자 한숨 ‘푹’

여기다가 이미 시장 자체가 지나치게 포화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IMF 이후 수많은 실직자들이 대리운전업계로 나오고 업체의 숫자 자체도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전국의 대리운전 업체 수는 약 9000여 개를 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고 기사의 숫자는 1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하루에 50만 건이 넘는 대리운전 의뢰가 있지만 이는 그나마 경기가 나을 때의 수치이고 최근에는 이마저 더욱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당연히 돈 나올 구멍이 없으니 대리운전 기사들의 수익률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다. 아직 고객들도 대리운전기사를 대하는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이 술을 많이 먹은 상태이다 보니 예의에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하고 기사들을 무시하는 발언도 한다는 것.
물론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풍토이기는 하지만 그들로 인해 대다수의 선량하고 서비스 마인드를 제대로 갖춘 대리운전기사들이 피해를 봐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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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채 상병 특검법)이 야당 주도로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7월19일 사건 발생 10여개월 만이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반발하며 퇴장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서 ‘이태원참사특별법’을 합의 처리된 뒤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하며 채 상병 특검법 상정을 요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사건을 초동 조사하고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서 대통령실·국방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경찰 이첩 개입 의혹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를 수용해 의사일정 변경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고, 재석 168명 전원 찬성표로 가결됐다. 표결에는 야당만 참여했고, 국민의힘은 반발해 사실상 표결에 불참했다. 민주당은 원래 본회의 안건에 없었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기 위해 의사일정 변경을 우선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은 이번 본회의에 합의되지 않은 법안이 올라가는 것 자체를 반대해 왔다. 당초 김진표 의장도 여야가 합의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양당 원내대표를 의장석으로 불러서 마지막으로 중재를 시도했지만 5분 뒤 김 의장은 여러 가지로 고려한 끝에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양당의 마지막 협상도 결렬됐고, 국민의힘에서는 유일하게 자리에 남았던 김웅 의원만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방청 중이었던 해병대 예비역연대 법률 자문, 김규현 변호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년의 해병대 예비역들도 연신 눈물을 흘렸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야당이 강행 처리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로텐더홀서 규탄대회를 열고 “그간 우리 당은 이태원참사특별법에 합의 처리하는 조건으로 의사일정에 동의했다. (민주당과 김 의장이)채 상병 특검법을 애초에 처리하겠다고 했으면 저희는 오늘 본회의 의사일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모처럼 이태원법 합의 처리를 통해 협치 분위기가 조성되고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있는데 오늘 의사일정 변경까지 해서 채상병법을 처리하겠다는 것은 정치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채 상병 특검법 표결 시 본회의장을 퇴장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채 상병이 의사일정으로 상정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규탄대회 뒤 거부권 행사 건의와 관련한 질문에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국힘 퇴장 속 야당 전원 찬성 조각난 협치···대통령 또 거부?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 의사일정 변경안을 제출한 상태다. 이날 본회의는 이태원특별법 처리를 위해 여야 합의로 잡은 일정인 반면, 여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상황서 입법을 강행하기 위해 의사일정을 변경해 본회의 부의를 시도하겠다는 의도였다. 대통령실은 이날 야당의 강행 처리 예고를 예의주시하면서도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서 “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서 채 상병 특검법을 의사일정까지 바꿔가면서 일방 강행 처리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 표명은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실장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공수처와 경찰이 이미 본격 수사 중인 사건인데도 야당 측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특검을 강행하려고 하는 것은 진상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권에선 채 상병 특검법 자체의 법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이미 수사 중인 사안에 특검을 도입하는 배경에 정쟁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바라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서 진행 중인 수사가 끝난 다음, 그 과정이나 결과를 토대로 특검 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야당이 특검을 당장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대통령실은 무엇보다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해병대수사단에 수사권이 없어졌기 때문에 야권이 주장하는 ‘수사외압’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병대수사단이 기초 조사는 할 수 있겠지만, 관계자 수십명을 소환하고 연루자가 몇 명이고 하는 것은 법에 규정된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당시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의 ‘월권’ 가능성을 지적한 셈이다. “정치적 의도” 대통령실 발끈 또 과거 공수처 설치와 군사법원법 개정을 주도했던 민주당이 특검을 추진하는 모순을 거론하며, ‘참사의 정쟁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분위기다. 이날 정 실장은 “현재 공수처와 경찰서 철저한 수사를 진행 중이므로 수사 당국의 결과를 지켜보고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공수처와 경찰이 우선 수사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특검 도입 등의 절차가 논의되고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공수처는 민주당이 패스트트랙까지 동원해 설치한 기구다. 당연히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는 것이 상식이고 정도”라며 “지금까지 13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야당이 단독으로 주도한 이유도 있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서 윤 대통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수사를 왜곡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관련 정황은 이미 상당 부분 나왔다. 국방부는 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들의 혐의를 축소하려 했고, 경찰에 넘긴 수사기록도 매끄럽지 않은 과정을 통해 회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조율한 흔적도 엿보였다. 국민의힘은 특검법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서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공수처 수사가 1년 가까이 진척을 보이지 않으면서 야권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과거 대통령실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조그마한 사고’라고 언급한 사건도 국민적 분노를 유발했다. 지난 3월22일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 매체와 인터뷰서 ‘조그마한 사고’로 표현하고 “전 지휘관이 법적인 문책을 받는 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실언한 바 있다. 더구나 공수처는 지난해 8월 고발장을 접수한 이후 인력 부족, 수사 의지 등을 핑계로 현재까지 ‘수사 진행 중’이라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해병대를 비롯한 국민 여론도 특검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눈물 흘린 해병들 왜? 해병대예비역연대는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채 상병 특검법 상정과 통과를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 모여 “채 상병 특검법 통과, 박정훈 대령 탄압 중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같은)이런 세력들이 우리나라의 집권여당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은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이 나라의 안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국민의힘과 대통령은 민심을 외면하지 말고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하길 바란다”고 외쳤다. 해병대예비역연대에 법률자문을 하고 있는 해병대 출신 김규현 변호사는 “(국민의힘은)처음엔 ‘독소 조항이 있다’고, 지금은 ‘공수처와 경찰이 수사 중이니 그 수사가 끝난 다음에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과거 특검 때에는 (앞서)경찰·검찰이 수사를 안 했는가”라고 되물었다. 사실상 가장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방법은 법정 수사 기간을 최대 3개월로 정해놓고 있는 특검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병대 측은 이날 “3개월이 지나면 우리 군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안보에 전념할 수 있고, 정치권도 채 상병 문제를 일단락하고 지금 산적한 안보, 민생 정책을 논의할 수 있게 된다”며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수사를 기다리며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채 상병 문제로 정쟁을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국민의힘은 오후 2시에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전원 참석해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집회를 마친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 45명은 채 상병 특검법의 상정·통과 여부를 보기 위해 곧장 국회 본회의장으로 이동했다. 앞서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민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후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지난달 3일 본회의 자동 부의 요건을 충족했다. 여야는 지난 1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에는 합의했지만, 채 상병 특검법과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안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통한 것이다. 1년 가까이 진척 없는 수사 역풍 뻔한데···용산 선택은? 특검법 통과에 대해 대통령실은 야당을 향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수세에 몰린 대통령실이 야당을 지적할수록 부정 여론만 키우는 분위기다. 더구나 대통령실은 스스로가 수사 대상이 되는 사안서 ‘협치’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으나, 이로 인해 역풍을 맞게 되는 형국이다. 당장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용산의 뜻을 따를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어렵사리 여당 의원들을 단속하더라도 다음 달에 시작하는 22대 국회에서는 궁지에 내몰릴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신중한 모습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거부권을 행사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며 “김진표 국회의장은 합의 정신을 존중하는 분”이라고 일축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여야 합의 없이 거대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들에 대해선 ‘과도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젊은 병사의 죽음’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인 데다 야권과 언론이 국가안보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 등 대통령실 연루 의혹을 잇달아 제기한 상황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당의 총선 참패 한 달여 만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다. 국회 재표결 시 여당 이탈표도 우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 회담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의 적극적인 수용을 요구한 데 대해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것도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공수처는 특검 출범 여부와 별개로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 외압 의혹’과 관련된 핵심 인물들을 불러 조사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방부가 채 상병 사건을 회수하고 재조사하는 과정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대통령실 등 ‘윗선’으로부터 외압이 있었는지 의혹을 풀어줄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환조사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수사는 진행 중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는 지난 2일 오전 9시25분쯤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공수처는 박 전 직무대리를 상대로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재조사한 후 혐의자를 축소해 경찰로 넘기는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 등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