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 추천>3월의 맛있는 여행 - 전남 나주

맑은 국물에 넘쳐 나는 넉넉한 ‘남도의 인심’ 후루룩~

뜨끈한 국밥 한 그릇과 깍두기, 묵은 김치의 조화는 여행객들의 허기를 달래주는 데 더없이 좋은 상차림이다. 전남 나주시에 가면 ‘나주곰탕’이라고 하는 쇠고기국밥이 있다. 나주읍내에서 오일장날이 되면 소의 머릿고기, 내장 등을 푹 고아 우려내 팔던 장국밥에서 유래됐다. 곰탕의 ‘곰’이란 푹 고아서 국물을 우려낸다는 뜻을 지녔다. 나주곰탕은 소의 내장 가운데 맛이 좋다고 하는 곤자소니(소의 창자 끝에 달린 기름기가 많은 부위), 아롱사태, 양지머리 등의 고기를 넣고 오래 곤 국이다. 쇠뼈를 쓰는 다른 지역의 곰탕과 달리 고기로 육수를 내고 맛을 살리는 점이 나주곰탕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 밖의 나주 별미로 홍어와 장어구이가 있다. 영산포에 가면 홍어삼합이, 구진포나루에 가면 장어구이가 미식가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위치 : 전남 나주시 금계동 등

나주시로 가족여행을 간다면 별미기행에 앞서 시내의 나주목문화관부터 들러 역사를 공부해보자.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나주가 발달해온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다. 나주는 예로부터 곡창 호남의 상징이며 교통, 군사, 행정의 중심지였다. 조선시대의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나주를 서울(한양)과 닮았다 하여 작은 서울이란 뜻으로 ‘소경(小京)’이라 기록하기도 했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이 나주에 10여 년간 머물면서 오씨처녀(장화왕후)를 만나 2대 임금인 혜종이 태어났는데 후에 임금이 태어난 마을이란 뜻으로 ‘흥룡동(興龍洞)’ ‘어향나주(御鄕羅州)’라는 명칭이 생겼다.

나주 3대 별미 중
으뜸은 ‘나주곰탕’

나주는 고려 성종 2년(983), 전국에 처음으로 12개의 목(牧)을 두었을 때 목이 된 후 조선시대로 넘어와서 1895년 나주관찰부가 설치될 때까지 목사가 천여 년 동안 재임, ‘목사고을’이라 불리기도 한다. 전라도에서는 전주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고을이었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고장이라 음식문화도 발달했다. 나주곰탕, 영산포홍어, 구진포장어가 나주의 3대 별미로 손꼽힌다.

우선 금성관 앞 나주곰탕거리를 찾아가서 나주곰탕에 대한 이야기부터 들어본다. 나주읍성 안의 오일장을 찾는 장돌뱅이들과 주변 고을에서 장보러 나온 백성들에게 국밥을 팔던 것이 나주곰탕의 시초라고 한다. 흔히 곰탕 국물이 뿌연 것으로 알고 있는 데 나주곰탕은 말갛다.

나주곰탕의 국물이 다른 지방의 곰탕처럼 뽀얗지 않고 맑은 것은 소의 뼈 대신 양지나 사태 등 고기 위주로 육수를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물이 맑고, 달고, 시원하다. 쇠뼈는 갑자기 많은 손님이 몰려 육수가 다소 부족할 때 비방으로 사용될 뿐이다.

나주목문화관에서 몇 십 미터 떨어진 곳에 금성관이라는 나주객사가 있고 그 앞에 나주곰탕집들이 있다. 60년 전통을 자랑하는 남평할매집에 들어가면 커다란 가마솥에서 하얀 김이 피어나는, 모든 손님에게 시원하게 공개된 주방이 눈길을 끈다. 곰탕이 주문되면 주방장은 미리 밥을 담아놓은 뚝배기를 집어 든다. 그 다음 설설 끓는 가마솥에서 국물을 떠서 밥이 담긴 뚝배기를 서너 차례 토렴한다. 곰탕의 제 맛이 바로 이 ‘토렴’ 과정에 숨어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렴이란 무슨 뜻인가. 동아새국어사전에는 ‘건진 국수나 식은 밥 따위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여 그 국수나 밥을 데우는 일’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잘 삶아진 고기를 토렴한 뚝배기에 넣고, 노란 달걀 지단을 올리고, 대파를 한 국자 더 넣으면 국물이 식을 새라 손님상으로 재빨리 가져간다.

반찬이라고 해야 침이 절로 도는 김치와 깍두기가 전부이지만 진하고 고소한 곰탕에 이보다 더 잘 맞는 궁합은 없다. 뜨끈한 국밥 한 숟가락을 떠서 그 위에 빨간 김치나 깍두기 한 점을 얹어 먹으면 느끼한 맛은 전혀 없고 달콤하면서도 구수한 곰탕의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나주곰탕 전문 식당에서는 곰탕 외에 고기가 더 많이 들어간 수육곰탕과 수육도 맛볼 수 있다.

이번에는 나주시가지 남쪽의 영산포로 이동해서 나주의 두 번째 별미인 홍어를 맛보자. 홍어는 흑산도에서 잡힌 것을 최고로 친다. 영산포가 삭힌 홍어로 유명해진 사연은 이렇다.


임금님께 진상됐던
영산포 홍어도 별미

조선시대에 홍어는 임금님께도 진상됐다. 흑산도 홍어는 진상되기 위해 나주 영산포까지 뱃길로 운송됐다. 그런데 날씨가 습하고 더운 여름에는 운반과정에서 홍어가 변질됐다. 영산포 사람들은 변질된 홍어를 버릴까 하다가 깨끗하게 씻어 먹어봤다. 부패가 아니라 발효가 잘 된 홍어의 그 맛이 너무나도 묘했다. 이것이 바로 영산포 홍어의 유래가 되었다.

옛 영산포 선창 주변에는 나주만의 독특한 숙성법으로 삭힌 홍어 맛을 보여주는 홍어 거리가 조성되어 코끝을 자극한다. 자연 발효되어 독특하고 절묘한 맛을 내는 웰빙식품인 홍어회는 코를 찌르는 냄새, 알싸한 맛부터 계속 씹으면 박하향까지 퍼지는 독특한 맛이 매력이다. 알칼리성 음식이라 체질개선, 다이어트, 피부미용에 좋다고 한다.

홍어요리 중 인기메뉴는 홍어회다. 홍어회와 돼지고기, 김치를 함께 먹는 것을 ‘홍어삼합’이라 한다. 여기에 막걸리가 빠지면 섭섭하다. 홍어찜은 홍어요리 초보자들이 홍어회에 도전하기 전에 먹기 좋은 요리다. 이밖에 홍어의 애를 보리싹과 함께 넣고 끓인 홍어애보리탕은 맛이 깊고 시원하다.

나주의 세 번째 맛은 장어이다. 영산강의 열두 구비 중 아홉 번째 구비에 해당하는 곳이라는 구진포는 바닷물과 민물이 교차하는 곳으로 옛날에는 민물장어가 많이 잡혔다. 구진포에 장어음식점이 밀집한 것도 그런 사연 때문이다. 그러나 1981년 목포와 영암 사이에 영산강하굿둑이 생기면서 바닷물이 막힌 후로는 구진포의 장어는 매우 보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구진포 특유의 조리법은 여전히 살아 장어 맛의 명성을 오늘도 이어나간다.
구진포에서는 장어를 반으로 가르고 뼈를 제거한 뒤 석쇠에 올린다. 거의 다 익을 때쯤 장어를 집게로 집어서 양념장에 휙 담갔다가 다시 석쇠에 놓는다. 집게로 뒤집고 붓으로 양념장 찍어 바르기를 여러 차례 반복한다. 입 안에 넣으면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장어의 느끼한 맛은 가볍게 바른 양념장으로 없애 너무 짜지도 달지도 않다.

구진포 장어 먹고
나주영상테마파크 관광

곰탕과 홍어, 장어로 나주 별미기행을 즐기는 틈틈이 나주의 명소들을 탐방해보자. 영산강을 근간으로 하는 여행지들이 많다. 나주평야의 젖줄인 영산강은 담양군 용면 가마골에서 발원, 목포시 영산강하굿둑 사이의 131km 거리를 흐르는 하천이다.

광주광역시와 나주시가 만나는 곳의 영산강 위에는 승촌보가 놓여있다. 승촌보는 차로 건널 수 있으며 나주평야의 쌀알을 형상화한 디자인이 돋보인다. 보의 전망대에서는 광주 무등산, 영암 월출산, 나주 금성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보와 전망대 주변으로 소수력발전소, 어도, 축구장, 오토캠핑장, 옛날의 물길 등이 들어서 운동, 산책, 자전거타기, 캠핑 등을 즐길 수 있다.

나주영상테마파크 방면으로 내려가면 죽산보에 닿는다. 이곳에도 소수력발전소와 어도가 설치되어 있고 옛 물길도 복원되어 있다. 산책데크는 물론 자전거길도 시원스럽게 닦여 있어 초보자라도 자신감을 가지고 달려 볼 수 있다. 전망대를 겸한 통합관리센터 옆으로는 죽산보공원이, 반대편 강변 모래밭에는 계절 따라 꽃이 피어나는 대지예술공원이 조성되어 여행객들에게 편안한 쉼터를 내어준다.

나주영상테마파크 인근의 영산강 황포돛배 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석관정이라는 정자가 들어선 이별바위까지 내려갔다가 이곳 죽산보 수문 아래까지도 오를 수 있다.

드라마 <주몽> <일지매> <바람의 나라> 등의 촬영지였던 나주영상테마파크에는 ‘손끝으로 느껴보는 명화-즐거운 미술관’도 들어서 있어 어린이들이 좋아한다.


나주시의 체험학습 명소로는 천연염색문화관이 있다. 염색의 역사, 천연염색 이야기 등을 배운 뒤 천연염색법을 체험한다. 손수건과 티셔츠를 갖고 염색을 해본다든지 천연비누 만들기, 전통매듭 목걸이 만들기, 조각보 액자 만들기 등을 전문가로부터 배울 수 있다.

자료출처 :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여행정보>

♣당일코스
① 승촌보 → 나주목문화관 → 나주목사내아 → 금성관 → 천연염색문화관 → 나주영상테마파크 → 영산강 황포돛배 체험 → 죽산보
② 불회사 → 도래한옥마을 → 승촌보 → 금성관 → 나주목문화관 → 천연염색문화관 → 나주영상테마파크 → 죽산보

♣1박2일코스
① 첫째 날 :  불회사 → 도래한옥마을 → 승촌보 → 금성관 → 나주향교 → 나주목문화관 → 나주목사 내아(숙박)
② 둘째 날 : 나주향교 → 정렬사 → 완사천 → 영모정 → 천연염색문화관 → 영상테마파크 → 영산강 황포돛배 체험 → 죽산보

♣대중교통
KTX : 용산-나주(하루 4회 운행)
열차 :  용산-나주(하루 8회 운행)
고속버스 : 서울-나주(하루 6회 운행)

♣자가운전
① 무안-광주 간 고속도로 나주나들목 → 동신대학교 앞 → 목문화관과 목사내아 → 금성관 → 곰탕골목 → 영산포
② 호남고속도로 산월나들목 → 송정교 → 승촌보 입구 → 목문화관과 목사내아 → 금성관 → 곰탕골목 → 영산포

♣음식점
나주곰탕 전문
남평할매집(금계동, 061-334-4682)
나주곰탕노안집(금계동, 061-333-2053)
나주곰탕하얀집(중앙동, 061-333-4292)
탯자리나주곰탕(과원동, 061-332-3377)
미향곰탕(성북동, 061-334-2550)

홍어 전문
영산홍가(영산동, 061-334-0585)
영산포대박홍어(이창동, 061-335-5544)

장어 전문
대승장어(다시면, 061-336-1265)
신흥장어(다시면, 061-335-9109

♣주변 볼거리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나주배박물관, 나주호, 금성산, 남고문, 동점문, 구 나주역사, 나주향교, 도래전통한옥마을, 불회사, 운흥사, 죽림사, 남평향교, 경열사, 정렬사, 반남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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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악명 높은 보이스피싱 총책 탈옥한 ‘김미영 팀장’ 포착

[단독] 악명 높은 보이스피싱 총책 탈옥한 ‘김미영 팀장’ 포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정훈씨의 최근 행적이 확인됐다. 지난해 탈옥에 성공한 이후 1년여 만이다. 박씨와 함께 탈옥에 성공했던 인물은 총 3명이다. 이들은 올해 초까지 말레이시아로 여러 차례 밀항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박씨는 최근 필리핀 카비테 부근 한 시골 마을로 주거지를 옮겼다. <일요시사>는 지난해 초부터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정훈씨의 탈옥 가능성을 제기했다. 외교·수사당국은 현지 담당자가 철저하게 관리 중이라며 ‘소극 행정’으로 대처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 꼴이다. 1년이 지난 현재, 박씨는 필리핀 서부 지역 한 시골 마을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못 잡나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는 필리핀 카마린스 수르 교도소에서 탈옥한 이후 올해 초까지 총 세 차례 이상 말레이시아 사바주로 밀항을 시도했다. 이들이 밀항을 시도한 곳은 필리핀 남서부 잠비앙가와 민다나오 다바오 시티다. 잠비앙가의 경우 여행경보 4단계인 흑색 경보(여행금지) 발령 지역이다. 외교부의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 없이 흑색 경보 지역을 방문·체류하는 경우, 여권법 제26조 등 관련 규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잠비앙가는 우리나라 국민이 여행할 수 없는 곳인 셈이다. 박씨와 송모씨 등 ‘탈옥 멤버’들은 다바오 시티에서 두 차례 밀항을 시도했으나 실패해 잠비앙가로 이동했다. 잠비앙가에서 술루 제도를 통해 말레이시아로 이동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술루 제도로 이동하던 박씨 일당들은 필리핀 반군에 억류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박씨가 밀항을 시도한 잠비앙가를 비롯해 남부 민다나오 지역에는 이슬람 반군들이 주둔해 있다. 지난해 10월 말에도 무력 충돌이 발생해 최소 14명이 사망했다. 당시 민다나오 마긴다나오델수르주의 파갈룽간시에서 필리핀 최대 반군단체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의 두 지휘관과 수하 병력이 총기와 흉기로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1970년대부터 분리주의 무장투쟁을 벌여온 MILF는 2014년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었다. 이를 통해 정부가 민다나오섬에 설치한 이슬람 임시 자치정부인 ‘방사모로 과도당국(BTA)’과 ‘방사모로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지역(BARMM)’ 구성에 참여했다. 잠비앙가·민다나오서 ‘뒷돈 도주’ 시도 이슬람 반군에 억류 후 풀려나 마닐라로 MILF는 2019년 9월부터 평화협정을 이행하기 위해 무기 반납을 시작했지만, 무장 해제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여전히 총기를 보유한 MILF 병력은 수천 명 이상이다. 박씨는 반군들에게 마약 및 보이스피싱으로 벌어들인 돈 수천만원을 뇌물로 전달한 이후 풀려났다. 지난 5월 초 박씨는 송씨와 헤어진 후 필리핀 루손섬 카비테주 카비테 시티로 이동했다. 지난달 말에는 카비테 시티 외곽 한 시골 마을에 자신의 현지 부인인 A씨까지 불러 정착을 시도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그간 마닐라 타기그에서도 부촌으로 꼽히는 보니파시오 글로벌 시티에 거주했다. 현지인들은 보니파시오를 BGC 또는 글로벌 시티로 부른다. 필리핀의 청담동으로 불릴 만큼 고층 빌딩, 고급 주거지, 쇼핑 거리 등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보니파시오의 경우 냉장고와 에어컨 정도만 구비돼있는 콘도 한 유닛의 월세가 필리핀 돈으로 13만~15만페소(약 304만~351만원)에 달한다. 필리핀은 주차장도 주인이 따로 있기 때문에 주차장을 포함하면 월세도 10만원에서 15만원 정도 더 늘어나게 된다. 같은 도시에 위치한 원룸 형식의 콘도 월세도 5만5000페소(약 128만원)에 달한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경찰도 관련 첩보를 파악해 현지 수사당국과 공조 중이다. 아직 정확한 집 주소나 확실한 거주지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이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 넘게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 왔다. 수억 비트코인에 차명 주택 부동산 소유 현지 부인이 조력해 “지속적 현금 조달” 특히,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 그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게 “박씨가 마닐라에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하고 있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했다. 국내 정보기관은 박씨 일당의 움직임이 수상하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2023년 12월과 지난해 3월 두 차례에 걸쳐 필리핀 교정당국에 박씨의 탈옥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박씨가 탈옥한 것을 두고 필리핀 교정당국은 해당 교도소에 CCTV가 설치돼있지 않아 탈옥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일부 훼손된 철조망을 찾아냈다고 한국 정부에 설명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외교부와 경찰, 법무부 국제형사과 등이 일부 파견을 가 현지에서 한국 범죄자들을 관리하는데, 공문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범죄자와 면담을 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그저 공문만 보내는 것으로는 범죄자들의 탈옥을 막을 수 없다. 당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안 잡나 박씨는 A씨의 도움을 받아 오래된 교도소의 취약점을 파악해 탈옥을 계획했다. 사전에 철저히 ‘탈옥 계획’을 구상하고 보안이 허술한 교도소에 잡혔단 뜻이다. 말레이시아로의 밀항 준비도 A씨가 현금 조달을 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A씨는 박씨가 교도소에서부터 환전한 수억원 이상의 비트코인을 관리해 왔다. 박씨와 같은 교도소에 있었던 한 제보자는 “환전한 비트코인 외에도 A씨가 박씨의 차명 소유 자택 부동산 등 수십억원 상당의 재산을 보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