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불황 선정성으로 극복

벗어! 벗어! 벗어야 뜬다고(?)

연예인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시청률? 광고주? PD? 파파라치? 세상에 무서울 것 없는 스타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대중의 무관심이다. 대중의 인기로 먹고사는 만큼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진다는 건 ‘밥숟가락’을 손에서 놓는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차라리 욕을 먹을지언정 어떻게라도 대중의 이목을 끌어야 하는 게 연예인들의 숙명이다. 최근에는 연예인들의 노출이 ‘인기몰이’를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고 한다. 남녀를 불문하고 연예계에서는 일단 맨살을 보여줘야 ‘뜨는’ 시대다. 여자들은 풍만한 가슴골과 아찔한 다리선을, 남자들은 우람한 가슴 근육과 빨랫판처럼 우둘투둘한 복근을 각각 자랑하는 데 여념이 없다.

경기 침체로 주머니가 한층 가벼워진 요즘 스크린에선 여배우들의 때 아닌 노출 경쟁이 한창이다. 가히 점입가경 수준이다.
지난 10월 중순 관객을 불러 모으기 시작한 <아내가 결혼했다>의 손예진은 두 집 살림하는 뻔뻔하고 도발적이면서 사랑스러운 캐릭터 주인아를 설득력 있게 소화해 냈다. 손예진은 극중 ‘첫 번째 남편’ 김주혁과 농도 짙은 베드신을 촬영했다.
문제의 장면에 대해 손예진은 “내가 부끄러워하면 스태프들이 불편해 할까봐 애써 태연한 척했다”고 설명했다. 손예진은 데뷔 후 최고 수위의 노출 연기까지 선보였다. 이런 진정성에 힘입어 <아내가 결혼했다>는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흥행 가도를 달렸다.

지난 11월13일 개봉해 현재 200만 관객이 관람한 <미인도> 역시 김민선과 추자현의 베드신으로 일찌감치 이목을 끌었다. 김민선은 <하류인생>에 이어 또 한 번 노출 연기에 도전했다. <미인도>는 남장 여자 윤복의 사랑에 초점이 맞춰졌다. 윤복 역의 김민선은 극중 가상 인물인 김남길과의 멜로 연기를 위해 상반신을 노출해 화제가 됐다.
김민선은 “배우로서 전환점을 맞고 싶었고 극 전개상 반드시 필요한 장면이라 고민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는 12월30일 개봉 예정인 <쌍화점>의 송지효도 파격적인 수준의 노출 연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올 연말 최고 기대작으로 거론되는 <쌍화점>은 고려말 비운의 왕과 그를 지키는 호위무사 수장의 이뤄질 수 없는 애틋한 사랑, 그리고 여기에 끼어든 왕비를 둘러싼 두 남자의 애증과 질투가 파란만장하게 펼쳐질 예정이다.
<색즉시공 시즌2>에 이어 <쌍화점>에 출연하는 송지효는 조인성과의 몇 차례 베드신을 위해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었다고 전해진다.
내년 초 개봉할 <박쥐>의 김옥빈 역시 과감한 맨살 노출로 촬영 단계에서 이미 화제가 됐다. 극중 남편의 친구인 신부 송강호와 불륜에 휘말리게 되는 치명적인 배역이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한 영화 제작자는 “불황에는 벗겨야 산다는 속설이 있다”면서 “최근 불경기에 콘돔과 소주 매상이 급증했다는 보도처럼 불황일수록 근원적인 것으로 회귀하는 욕구와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겨울은 특히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가 많이 개봉하는 시기”라며 “성인을 타깃으로 하다 보니 여배우들의 노출 연기가 부쩍 많아 보이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여배우들의 노출 연기가 눈요기가 아닌 작품성을 높이는 데 얼마나 기여하는지 지켜볼 일이다.
여배우들의 노출은 안방극장에서도 치열하다. 시청률 경쟁에서 한발이라도 앞서 나가기 위해 여배우들의 샤워신을 방영한다. 대부분 샤워신은 극 초반에 방송된다. 초반 시청자를 잡기 위한 미끼로 쓰는 전략이다. 여배우들은 시청률을 올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샤워신 정도는 흔쾌히 받아들인다.
차예련은 지난 7월30일 방송됐던 <워킹맘> 1회에서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등장해 섹시한 몸매를 한껏 과시했다. 이후 차예련의 비키니 입은 모습이 포털사이트 내 연예게시판은 물론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와 그녀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차예련은 <워킹맘> 첫 방송에 앞서 진행됐던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첫 대본 나왔을 때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다. 나 스스로가 글래머러스한 몸매가 아니란 걸 알기 때문에 비키니 입는 게 쑥스러웠다. 정말 태어나 처음 입어봤다”고 말해 뭇 남성들의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차예련의 섹시미는 3회분에서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방송분에는 차예련의 매끄럽게 뻗은 다리와 어깨부터 이어지는 뒤태라인이 비교적 오래 노출됐다.
이를 본 남성시청자들은 물론 여성시청자들의 시선까지 붙잡았다. 앞서 비키니신으로 큰 화제를 불어 일으켰던 차예련이 매혹적인 샤워신까지 공개해 앞으로 또 어떤 섹시미를 발산할지 시청자들의 기대와 관심이 한껏 달아올랐다.
최근 종영한 <내 여자>에서는 박정철과 박솔미의 욕조 목욕신이 방영되기도 했다. 이 장면은 태성(박정철)과 세라(박솔미)가 신혼여행을 떠나게 되고 그 첫날 밤 함께 목욕을 하는 장면이었다. 두 사람은 촛불로 장식된 욕조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서로를 끌어 당겨 안는가 하면 입을 맞추는 등 스킨십을 나눴다.

최근엔 남자 배우들의 샤워신도 자주 등장한다. 박시후는 <가문의 영광>에서 몸매를 과시했다. 그는 샤워신을 통해 10년 간 운동으로 다져온 상반신을 공개했다.
송승헌도 <에덴의 동쪽>에서 드라마 초반 샤워신 등을 통해 몸매를 뽐냈다. 홍콩에서 힘든 노동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동철은 거의 몸에 딱 달라붙는 민소매 차림이 많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상반신을 노출하기도 했다.
김성수는 또 <내 사랑 금지옥엽>의 자동차를 고치는 장면에서, 이서진은 <온에어>에서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는 장면을 통해 각각 터프한 남성미를 과시했다. 이들과 함께 연예계 대표적인 ‘몸짱’인 권상우, 조동혁 등도 군살 없는 상반신을 공개해왔으며 이범수는 별도로 자료를 내고 운동의 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방송가에선 “과거에는 여배우들의 노출만 화제가 되고 관심을 모았지만 최근에는 ‘몸짱’ 남자 배우들의 근사한 몸매 역시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여성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다”고 말한다.
샤워신은 마트에서 판매하는 물건에 작은 사은품을 끼워주는 것처럼 드라마 시청자를 유혹한다. 샤워신은 드라마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로 자리 잡았다.
‘전라노출’, ‘노골적인 섹스신’ 등의 카피는 영화 포스터에서 볼 수 있던 문구였다. 하지만 이제 식상할 정도다. 최근엔 안방극장에 이같은 마케팅이 확산하는 추세다. 이는 케이블 채널간의 과열경쟁으로 인한 시청률 확보 싸움에 원인이 있다.

추울수록 여배우들은 벗는다?… 손예진·김민선·송지효 ‘몸매 대결’
여배우 ‘샤워신’ 시청자 잡기 위한 미끼 전략… 남자스타도 당당 노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프로그램이 넘쳐나다 보니 좀 더 강도가 센 프로그램의 제작에 케이블 제작진이 열을 올리고 있다. 단순히 여배우나 여성 출연자들의 노출을 통한 선정성 부각뿐만 아니라 교양 프로그램을 빙자한 토크 프로그램, 정보제공 프로그램, 리얼리티 프로그램에도 이러한 마케팅을 택하고 있다.
케이블 채널의 선정성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방영된 케이블 성인물은 약 20여 편. tvN의 <독고영재의 현장르포 스캔들>, OCN의 <메디컬 기방 영화관>, <이브의 유혹>, <천일야화>, 슈퍼액션의 <서영의 스파이>, 채널 CGV의 <라디오 야설극장 색녀유혼>, <색시몽>, <파이브 걸즈>, 스토리온의 <이 사람을 고발합니다> 등이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스토리온’에서 높은 시청률로 방영되고 있는 <이 사람을 고발합니다>는 남편이나 아내를 고발해 온 이들의 사연을 재연화면으로 지켜보면서 패널들이 토의를 나누고 그에 대한 판결을 내는 토크쇼.
성관계 시간이 짧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불만이나, 노출 심한 아내에 대한 남편의 불만 등 지극히 사적인 부부관계를 들여다봄으로써 시청자들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Mnet의 <비키니 하우스>라는 프로그램에선 진행자들이 비키니 차림으로 연예뉴스를 진행해 방영 전부터 외설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케이블TV는 프로그램 편성에 있어서 ‘섹시코드’를 강조하고 있다. 심야 시간대 성인용 드라마와 영화를 집중 편성하는 것은 기본. 19세 이상 관람가 프로그램을 낮 시간에 재편성하는 것도 문제다. 재방, 삼방을 원칙으로 하는 케이블 TV 프로그램 특성상 성적인 코드를 다룬 드라마나 오락물이 낮 시간에 방영되는 것은 예사다.

몇몇 프로그램은 19세 이상 관람가임에도 온 가족들이 모여 TV를 보는 오전 6시부터 11시까지 편성되어 있다. 특히 19세 이상 관람가 드라마엔 매회 수차례의 정사신을 포함하고 있으며 ‘포르노급’ 알몸 노출과 성적 묘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이에 케이블 TV를 즐겨보는 청소년들에게 어떠한 악영향이 미칠지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케이블TV 프로그램의 ‘성(性)적 코드’에 대한 애착(?)은 앞으로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유독 케이블 TV에서 선정성 높은 프로그램들이 많이 제작되고 있는 것은 바로 시청률 때문이다. 수익성을 담보로 한 시청률 확보 경쟁이 케이블TV의 옐로우화를 부추기고 있는 것.
인터넷을 통해 야한 사진이나 동영상 등을 쉽게 접하게 되면서 대중들은 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게 됐고 케이블 TV는 바로 이러한 대중들의 심리를 정확히 파고들었다. 케이블 TV는 막대한 제작비, 스타급 연예인들의 캐스팅으로 무장한 공중파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섹스코드’를 생존 전략으로 택한 것.
방송통신위원회의 제재와 시민단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포르노물’에 버금가는 수위의 영상을 내보내는 것도 지상파에 쏠려 있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다.
그러나 ‘성적코드’를 강조했다고 해서 프로그램의 질이 형편없을 것이라는 판단은 오산이다. OCN의 <메디컬 기방 영화관>은 선정적이지만 고급스런 영상으로 품위를 높였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또 성이라는 소재를 자극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치료[治色]로 극화하고 아름답게 표현해 거부감을 없앴다는 평이다.
이처럼 선정적 소재일지라도 실험적인 측면에서 다가서거나 나름대로의 의미와 통찰을 부여한다면 충분히 작품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케이블 방송사 관계자들은 지상파 TV의 기득권에 맞서기 위해선 ‘선정성’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맹목적인 ‘성적 코드’ 추구는 결국 프로그램의 존립 근거를 무너뜨리고 시청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뿐이다. 더구나 최소한의 방송 윤리는 지켜야 하지 않느냐는 게 일반인들의 시각이다.
전문가들은 표현의 자유 등 케이블 TV 매체의 특수성을 적절히 활용, 실험적인 소재와 독특한 구성으로 시청자들의 욕구와 취향을 충족시킬 때, 케이블 TV의 진정한 전성시대를 맞을 수 있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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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