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삼성가 비운의 황태자 이맹희

  • 정혜경 jhk@ilyosisa.co.kr
  • 등록 2012.02.21 11:40:34
  • 댓글 0개

잊혀진 ‘은둔의 제왕’…세상 밖으로 나온 이유 뭘까?

[일요시사=정혜경 기자] 삼성가 ‘비운의 황태자’로 불리는 이맹희씨의 이름이 연일 언론을 떠들썩하게 장식하고 있다. 최근 이건희 삼성 회장을 상대로 주식인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이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형, 이재현 CJ 회장의 아버지인 그는 오랫동안 잊혀진 존재였다. 간혹 혼외정사로 인한 친자확인 소송, 양육비 소송 등으로 구설수에 올랐을 뿐이다. 삼성가의 황태자로 조명 받다 일순간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그의 굴곡진 인생사를 <일요시사>가 공개한다.

사카린 밀수 사건 이후 삼성그룹 사실상 진두지휘
차남 이창희씨 모반 사건으로 이 창업주 눈 밖에

올해 81세인 이맹희씨는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부인 고 박두을씨와의 사이에서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일찍부터 삼성그룹 안팎에서 아버지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지목됐다. 삼남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겐 미디어 관련 계열사가 맡겨질 예정이었다.

맹희씨 삶의 변곡점은 1966년 9월 찾아왔다. 아버지 이 창업주가 이른바 ‘사카린 밀수 사건’에 연루되면서다. 이 일로 이 창업주는 삼성그룹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고 당시 중앙일보, 삼성전자 부사장 등 그룹 내 요직을 맡고 있던 맹희씨가 사실상 그룹을 진두지휘하게 됐다. 눈앞에 탄탄대로가 펼쳐진 셈이다.

이병철 창업주
8남매 중 장남

그러나 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맹희씨는 1971년 이 창업주의 눈 밖에 나면서 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야 했다. 이 창업주는 회고록인 <호암자전>에서 “장남 맹희에게 그룹 일부 경영을 맡겨보았다. 그러나 6개월도 채 못 돼 맡겼던 기업체는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맹희씨는 자신이 경영일선에서 밀려난 이유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 “6개월이 아니라 7년이었고, 물러난 것은 기업이 혼란에 빠져서가 아니라 몇 마디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였다”는 게 맹희씨의 변이다. 여기서 ‘복잡한 사정’이란 이 창업주의 차남인 이창희씨의 ‘모반’을 말한다.


당시 창희씨는 사카린 밀수 사건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고 6개월 정도 형을 살고 난 다음, 출옥 후 5년간 공식적으로 활동을 못하게 하는 법률상 제재조항으로 비공식적으로 제일모직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1969년말 맹희씨는 필립스와 합작 문제로 해외 출장길에 오른 상태였다. 왠지 기분이 이상해서 국내로 전화해 동생인 창희씨에게 “그동안 아버님께 문안을 드렸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시원찮았다고 한다. 무엇인가 숨기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황급히 일을 마무리 짓고 돌아왔다.

알고 보니 그 무렵 창희씨가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고 한다. 이 창업주 및 삼성의 조직적 비리에 대해 청와대에 투서를 했다는 것. 여기에는 이 창업주가 영원히 기업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 외화 밀반출 등 당시엔 특히 심각하게 여겨지던 경제범죄 사실도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이런 투서 내용을 처음 접한 것은 당시 중령 계급이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이는 박종규 당시 경호실장을 거쳐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달됐다고 한다. 당시 이 창업주는 전두환 등 정치군인들이 자신의 아들들을 ‘이용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 일로 이 창업주는 창희씨에게 불신을 품었다고 한다. 또 장님 맹희씨에 대해서도 비슷한 의심을 가졌다고 한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적어도 묵인은 했으리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맹희씨는 “하지만 지금도 나는 그 문제에는 절대 개입하지 않았다고 맹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후 이 창업주는 1972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회장 복귀 의사를 내비치며 경영 전반을 직접 챙기기 시작했다. 맹희씨는 “창희 사건의 여파로 아버지와 나 사이에 내부적으로 보이지 않는 금이 생겼다”며 “아버지는 나와 함께 출근하고 퇴근하면서도 나에게 늘 뭔가를 숨기는 것 같은 느낌을 풍기곤 했다”고 전했다.

1973년 어느날 이 창업주가 맹희씨를 불렀다. “너 지금 직함을 몇 개나 가지고 있냐”고 물었고 맹희씨는 “열댓 개는 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 창업주는 “네가 다 할 수 있냐”고 다시 물었고 “네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라”고 선언했다고 한다.


직함 빼앗은 일 계기
눈에 띄게 반항적

맹희씨는 당시 삼성전자, 중앙일보, 삼성물산, 제일제당, 신세계, 동방생명, 안국화재, 제일모직, 성균관대, 삼성문화재단 등에서 부사장, 전무, 상무 등 17개의 타이틀을 갖고 있었고 이 창업주는 연필로 직함들에 줄을 죽죽 그으며 삼성물산, 삼성전자, 제일제당의 부사장 직함 3개만을 남겨놨다고 전했다. 그 뒤 이 창업주는 그룹 회장으로 경영에 복귀했다.

이 일을 계기로 맹희씨는 눈에 띄게 반항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맹희씨는 당장 일본으로 떠났다. 이 창업주가 일본을 찾았을 때도 그는 공항에 마중조차 나가지 않았다. 또 이 창업주가 도쿄지점 직원들과 회식을 하며 지시를 하는데 제동을 걸기도 했다고 한다. 맹희씨는 이 창업주가 자신의 권위에 대한 반기를 든 것으로 판단, 관계가 더욱 멀어지게 됐다고 회상했다.

1975년 봄에 귀국하고 나서도 ‘반항’은 이어졌다. 겨울에는 사냥하러 다니고 여름에는 워커힐에서 말을 타는 생활을 했다. 맹희씨는 “그때라도 자존심을 죽이고 매달렸으면 어떤 형태로든 상황은 달라졌겠지만 차마 그러고 싶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후 1976년 9월쯤 이 창업주는 암수술 차 일본으로 출국하기 전날 밤, 가족회의에서 삼성의 차기 경영자로 삼남 건희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서 구두로 유언을 밝혔다. 삼남 건희씨에게 삼성을 물려준다는 내용 이외에 삼성의 주식을 형제들에게 나누는 방식에 대한 지시는 없었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맹희씨는 “그 말을 듣는 순간의 충격을 나는 잊지 못한다”며 “그 무렵엔 벌써 아버지와의 사이에 상당한 틈새가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언젠가는 나에게 삼성의 대권이 주어질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대권 받을 줄 알았는데 삼남 이건희 회장에 밀려
현재 베이징 초호화 주택 거주 대외 활동은 없어

1987년 이 창업주가 작고한 뒤 맹희씨는 해외로 떠났다. 그 이유에 대해 맹희씨는 “동생 건희가 정식으로 삼성의 총수가 된 마당에 그에게 부담을 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혹시 조금이라도 건희가 나를 부담스러워하면 그것이 바로 삼성의 경영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에 나는 솔직히 말하자면 외국에서 영원히 살면서 귀국하지 않을 생각을 했었다”고 했다.

맹희씨는 이후 5년여 동안 아프리카, 남미, 미국, 일본 등 여러 나라를 떠돌아 다녔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여러 나라를 다니며 노력했지만 한 곳에 6개월 이상 머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한다.

아버지와의 갈등, 동생들에 대한 이야기 등이 공개된 것은 지난 1993년 맹희씨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묻어둔 이야기> 등의 책을 내면서다. 맹희씨는 책 출간 이후 다시 은둔에 들어갔고 가족과도 연락을 끊고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자신의 장남인 이재현 CJ 회장의 딸이자 직계손녀인 경민씨의 결혼식에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맹희씨는 이렇게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간혹 혼외정사로 인한 친자확인 소송, 양육비 소송 등으로 구설수에 올랐을 뿐이다. 1961년부터 맹희씨와 3년간 동거하다 1964년 아들 이모씨를 출산한 것으로 알려진 배우 박모씨는 호적에 입적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혼자 아들을 양육해 오다 2004년 부산지방법원 가정지원에 친자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박씨는 이 재판에서 승소했고 대법원은 2006년 10월 박씨의 아들이 맹희씨의 친자임을 확정했다. 박씨는 이어 2010년 6월 서울중앙지법에 과거 양육비상환소송을 제기했고 최근 재판부는 양육비로 4억8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그 뿐 맹희씨의 거취는 베일에 싸여있었다. 그러나 이번 소송을 통해 맹희씨의 근황이 드러났다. 우선 맹희씨는 현재 중국 베이징 창핑구 후이롱관진의 별장에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베이징의 3대 별장촌으로 꼽히는 이곳은 비싼 가격과 완벽한 시설 및 주변환경 등으로 중국의 고관대작 들이나 최부유층들이 대거 몰려 사는 것으로 유명하다. 호수와 녹지공간은 물론 실내수영장, 골프연습장, 사격장도 갖추고 있다.

맹희씨는 베이징의 교민들과 접촉하거나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베이징 시내 한인들이 많이 사는 왕징이나 근처의 한국식당에서 식사를 하거나 쑨이 지역의 골프장에서 연습을 하는 모습이 이따금씩 포착될 뿐이었다.


맹희씨는 팔순이 넘은 고령에도 매우 건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에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한 소장을 작성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명하고 소송도 계속 진행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맹희씨가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소송을 준비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소송 준비 이유에
대해서는 함구

맹희씨는 아들인 CJ 이 회장 등 자식들과의 교류도 제한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 등 은둔생활에 익숙한 터여서 그의 이번 소송제기가 의외라는 것이 대체적 시각이다. 맹희씨가 이제 와서 소송을 준비한 이유는 대체 무엇인지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