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속 ‘취업사기’ 백태

뻗어 오는 검은 손길 “뿌리치기엔 절박해서…”


실직자들이 늘면서 이들의 절박한 심정을 노린 취업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유형도 각양각색이다. 대기업 간부나 유명인의 측근이라고 속인 뒤 취업을 빙자해 돈을 뜯는가 하면 기가 막힌 근로조건을 제시해놓고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피라미드회사들도 구직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수강료나 교제비 등을 요구하고 정작 취업약속은 지키지 않거나 퇴직금 등 목돈을 노린 취업사기도 비일비재하다. 이같은 사기가 횡행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하루라도 빨리 취업을 해야 하는 다급한 구직자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어서 다른 사기에 비해 비교적 쉽게 먹혀들어간다는 것이다. 구직자들을 두 번 울리는 취업사기를 분석했다.


오늘도 백수신세를 한탄하며 취업박람회에 가기 위해 지하철에 오른 29세의 이모씨.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이씨의 눈을 사로잡은 쪽지 한 장이 있었으니 그것은 급히 사원을 모집한다는 내용을 담은 자그마한 종이였다.

사무와 창고 입출고 관리 등의 업무를 맡는 내근관리직을 모집하며 월 급여는 150만원에서 220만원이라는 말에 솔깃해진 이씨는 취업박람회로 가는 길을 돌려 쪽지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어떤 일을 하며 취업하는데 필요한 자격조건은 무엇인지 물어보는 그에게 전화를 받은 직원은 일단 와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없지는 않았지만 절박한 자신의 처지를 다시금 환기한 이씨는 망설임 없이 회사로 발길을 향했다. 직원이 알려준 길을 따라 한 건물 지하의 작은 사무실에 도착한 그는 생각보다 더 초라한 회사의 규모에 실망했지만 지난 2년간의 설움을 생각하면서 사장과 대면했다.
나이와 학력 등 형식적인 질문을 하던 사장은 먼저 5일간의 교육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말로 운을 뗐다. 그리고는 대뜸 “우리 회사에서 취급하는 물건을 알기 위해서는 일단 구입해서 사용해 봐야 한다”는 말을 던졌다. 이어 사장은 “원래 60만원인데 회사에서 30만원을 지원해 주니 그리 부담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물건구입을 종용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그제야 자신이 말로만 듣던 취업사기에 걸려들었다는 것을 깨닫고 도망치듯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취업을 시켜준단 말에 속아 쓸모없는 물건만 살 뻔했던 그는 “구직자들의 절박한 심정을 이용한 사기에 걸려들 뻔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화통이 치민다”며 가슴을 쳤다.
이씨처럼 취업이 될 거란 부푼 꿈을 안았다가 취업사기에 걸려든 구직자는 적지 않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구직자 115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구직 중 취업사기로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무려 492명(42.7%)에 달했다.
이씨의 경우처럼 금전적 손해를 입기 전에 뛰쳐나오거나 비교적 적은 금액의 돈을 뜯기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취업사기에 걸려들어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억대의 돈까지 갈취당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목돈을 뜯어내는 취업사기유형 중 하나는 대기업 간부나 고위공무원 등을 사칭해 취업을 시켜주겠다며 돈을 요구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구직자에게 검찰직원이라고 속이고 돈을 뜯은 50대가 덜미를 잡혔다.
울산지검 수사과는 지난달 21일 검찰직원을 행세하며 대기업에 취업시켜 주겠다고 속여 금품을 받아 챙기는 등 사기행각을 벌인 혐의(사기)로 A(56)씨를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7월 구직자에게 “아는 사람을 대기업에 취업시켜 주겠다”고 속여 취업알선비 명목으로 12차례에 걸쳐 46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취업사기를 당한 사람들 중에는 평소 믿고 지내던 사람에게 피해를 입은 사례도 허다하다. 조모(66)씨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김씨에게 취업을 시켜준다며 2000만원을 요구했다.

취업난과 불황으로 실직자 늘면서 이들을 노린 취업사기 횡행
구직자 절반, 구직 중 취업사기로 피해 입은 경험 있다고 밝혀
대기업 간부 사칭, 다단계 영업 강요 등 각종 유형 사기 판쳐
지원하는 기업에 대해 꼼꼼히 알아봐야 피해 예방할 수 있어

연봉이 4000만원에서 5000만원에 이르는 회사의 임원을 잘 알고 있으니 2000만원만 주면 취업을 시켜주겠다는 조씨의 말에 속아 선뜻 2000만원을 건넨 김씨는 수년간 친분을 쌓아온 그를 경찰에 신고했고 결국 그는 사기죄로 징역 5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또 다른 취업사기 유형은 구직광고에 나온 내용과 직종, 고용형태, 근로조건 등이 현저히 다른 경우다. 근거 없이 높은 임금을 제시하는 등의 사기를 일컫는데 이 경우는 불법 다단계 판매회사일 가능성이 높다.
대전에 사는 K(26)씨도 이 같은 사기를 당한 케이스다. K씨는 인터넷으로 한 환경사업 관련 업체에 지원을 했다. 높은 연봉과 쾌적한 근무환경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원서를 제출하고 며칠을 전화기만 바라보던 K씨에게 회사로부터 최종면접을 보러 오라는 통보가 왔다. 구직활동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K씨는 가뭄에 단비 같은 전화에 뛸 듯이 기뻤고 한달음에 회사로 달려갔다.
하지만 찾아간 사무실은 정수기 등을 판매하는 불법 다단계 업체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꿈같은 첫 직장생활을 고대하던 K씨는 가슴에 생채기만 남은 채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K씨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높은 연봉을 제시하거나 높은 수익률을 보장한다고 광고하는 회사라면 일단 의심해 봐야 할 것”이라며 한숨을 토해냈다.


취업을 시켜준다는 명목으로 대놓고 목돈을 요구하는 회사도 있다. 지방에서 취업을 위해 상경한 오모(28)씨는 한 택배회사에 배달원 모집광고를 보고 지원했다. 합격통보를 받은 그는 보험료 등 보증금 500만원을 먼저 내야 취업이 가능하다는 사장의 말에 있는 돈을 모두 털어 회사 측에 전달했지만 그날 이후로 회사는 공중분해 됐고 사장은 돈만 챙긴 채 달아났다.
뿐만 아니다. 구인을 가장해 수강생을 모집하고 수강료를 뜯어내는 사례도 흔히 발생한다. 간호보조원 양성학원에서 간호보조원 모집광고를 내는 등의 수법이다.

급기야는 취업을 시켜준다고 속이고 윤락을 알선하는 사례까지 적발됐다. 부산에 사는 최모(33)씨는 지난해 생활정보지에서 ‘주부사원 모집, 30세 초반, 200~300만원 월급 보장’이라는 광고를 보고 혹해 연락했다가 뜻하지 않게 윤락업소의 접대부노릇을 하게 됐다.
최씨는 “평범한 판매일을 하는 줄로만 알았지 유흥업소에서 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
이렇듯 눈에 훤히 보이는 사기수법에도 취업이 시급한 구직자들은 쉽게 속아 넘어가고 있다. 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장기간 취업을 하지 못한 실업자들이 급한 마음에 취업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광고지 등에 나온 회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너무 좋은 조건이나 많은 급여를 제시할 경우 일단 의심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이같은 취업사기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선 사전에 꼼꼼히 알아보고 예방하는 방법 아닌 방법밖에 없다. 지원하기 전 지원하는 기업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모집직종과 자격요건 뿐만 아니라 회사의 설립연도와 자본금, 직원 수 등의 회사정보를 알아보는 정도의 노력은 들여야 한다는 것.
입사지원서를 내기 전 반드시 업무내용을 문의해보고, 자세한 설명을 피하거나 무조건 회사로 방문할 것을 요구하는 등의 경우는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
업체가 먼저 나서서 입사를 제의하는 경우에도 무턱대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사지원서를 어떤 경로를 통해 입수했는가 등을 확인한 뒤 담당자의 이름이나 연락처, 업무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혹시 당할지 모를 사기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피치 못하게 취업사기를 당했을 경우에는 경찰청이 운영하고 있는 ‘생계침해형 부조리 신고 센터’의 문을 두드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생계침해형 부조리 신고센터는 취업사기, 불법 직업소개 등 생계침해형 사범에 대해 신속히 대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이다.
백수신세에서 하루빨리 탈출하고 싶은 것은 모든 구직자의 바램이다. 그러나 아무리 절박해도 확인절차 없이 구직활동에 뛰어드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지원하려는 기업에 관한 세밀한 정보수집, 그리고 취업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함께 가진다면 취업도 그리 높은 장벽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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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모씨와 조직원 3명이 필리핀 현지 수용소서 탈옥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와 함께 보이스피싱 등의 범행을 함께한 조직원 포함 총 4명은 최근 필리핀 루손섬 남동부 지방 비콜 교도소로 이감됐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지난 4월 말, 현지서 열린 재판에 출석한 박씨와 일당은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수사 당국 관계자는 “박씨와 일당 3명이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구체적인 탈출 방식 등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던 바 있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간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왔다. 특히, 박씨는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는 후문이다. 박씨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박씨가 마닐라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필리핀 루손섬 비콜교도소 수감 보이스피싱 이어 마약 유통까지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 박씨는 새로운 마약왕으로 떠오르고 있는 송모씨와 함께 비콜 교도소로 이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비쿠탄 교도소에 수감돼있는 한 제보자에 따르면 “박씨의 텔레그램방에 있는 인원이 10명이 넘는다. 대부분 보이스피싱과 마약 전과가 있는 인물들로 한국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씨는 본래 마약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다. 송씨와 안면을 트면서 보이스피싱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교도소 내에서 마약 사업을 이어왔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경찰 안팎에서는 “새로운 조직을 꾸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일각에서는 이들이 비콜 교도소서 탈옥을 계획 중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비쿠탄 교도소 관계자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서 약 100만페소(한화 약 2330만원) 정도면 인도네시아로 밀항이 가능하다. 비콜 지역 교도소는 비쿠탄보다 탈옥이 쉬운 곳”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한편, 지난 7일 외교부와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측은 정확한 탈출 방식이나 사건 발생 일자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일축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