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모를 취업난에 백수신세를 면치 못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한편에선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1년도 되지 않아 뛰쳐나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신입사원 10명 중 3명은 1년 안에 사표를 던진다는 통계가 이를 말해준다. 이는 자신의 적성이나 능력은 고려하지 않고 여기저기 ‘묻지마 지원’을 한 결과다.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뚫었지만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근무환경과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견디지 못하고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지는 것이다.
지난해 2월, 서울 소재 명문사립대를 졸업한 최모(26·여)씨는 자타공인 메뚜기 직장인이다. 최씨의 이력서는 졸업한 지 채 2년도 되지 않은 사람이라기엔 꽤나 빡빡하다. 이유는 잦은 이직 탓이다.
900점이 넘는 토익점수에 두 번의 대기업 인턴쉽, 토론대회 수상이력, 면접 스터디, 어학연수 등 대학시절 취업을 위한 준비를 철저히 했던 최씨는 졸업을 하기 전 유명 홍보대행사에 합격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인생에 봄날이 계속되리라 믿었던 그녀는 입사한 지 일주일도 안 돼 큰 혼란에 빠졌다. 자신이 생각한 직장생활과는 모든 것이 너무나 달랐던 것.
대학시절부터 ‘기획’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던 최씨. 홍보대행사에서 일하고 싶었던 이유도 자신의 기획능력을 뽐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씨가 입사해 가장 먼저 맡은 일은 사수의 업무를 원활히 하기 위한 자료정리 정도였다고 한다. 신입사원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할 관문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학창시절부터 엘리트코스를 밟아왔다고 자부하는 그녀에게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자괴감과 허탈감에 빠져 회사를 다닌 지 2개월. 드디어 최씨에게도 꽤 비중 있는 업무가 맡겨졌다. 자신의 회사에 처음으로 홍보를 의뢰한 IT업체의 홍보 기획안을 짜는 것. 처음 맡은 업무다운 업무에 그녀는 며칠 밤낮을 정신없이 보내며 기획서를 작성했다.
며칠의 산고 끝에 나온 기획서는 자신이 봐도 꽤 그럴싸해 보였다. 이제까지 선배들이 해왔던 구태의연하고 식상한 기획이 아닌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중무장한 기획안이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날 아침. 최씨는 긴장감과 설렘을 안고 발표에 임했다. 프리젠테이션도 순조로웠다. 자신의 기획서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표가 끝나고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차가운 시선들이었다. 극찬은 아니더라도 ‘신선하다’ 정도의 평은 들을 줄 알았던 최씨는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적잖이 놀랐다. 싸늘한 반응에 큰 상처를 받았고 그 다음날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지고 말았다.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지 않는 회사에서 더 이상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 것이다.
적성·능력 무시하고 취업했다 1년 못 버티고 퇴사하는 이들 늘어
신입사원 10명 중 1명 1년 내 퇴사… 사회·경제적 손실 막심해
그후 한 달여간 여러 기업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봤지만 첫 번째 취업처럼 순조롭게 되지 않았고 궁여지책으로 최씨가 택한 것은 입시학원 강사. 대학시절 용돈벌이 삼아 했던 과외경험으로 중고생을 가르치는 일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도 쉽지만은 않았다. 우선 급여가 생각보다 적었다. 대학교에 다닐 때 한창 과외를 많이 했던 달 그녀가 받은 과외비는 300만원 가량이었다. 명문대에 다니는 데다 최씨에게 과외를 받은 학생의 성적이 많이 향상됐다는 입소문이 퍼져 일대에서는 나름대로 유명세를 떨쳤던 탓이다.
그런데 밤 11시까지 목이 터져라 강의를 하고 그녀의 수중에 들어온 돈은 과외비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최씨는 두 달여를 버티다 두 번째 사표를 던졌다.
그후 최씨는 보험회사, 광고회사 등을 전전했으나 모두 6개월도 채우지 못했고 결국 지난달부터 고등학생을 상대로 과외를 하고 있다.
최씨는 “취업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알지만 마음에 맞지 않고 조건에 맞지 않는 회사라면 열 번도 더 사표를 낼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매일 아침 9시에 출근을 하는 직장인들을 볼 때면 눈물이 날 만큼 부럽다”고 토로했다.
최씨처럼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몇 달도 되지 않아 뛰쳐나오는 직장인의 비율이 만만찮다. 잡코리아가 855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입사 1년 안에 회사를 그만둔 퇴사자의 비율이 30.1%에 달했다. 신입사원 세 명 중 한 명은 입사 1년 안에 회사를 떠난 셈이다. 이는 경제적 손실을 가져오기도 한다. 특히 신입사원 교육비를 날리는 기업들은 손해가 극심하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전국 532개 기업의 신입사원이 입사 후 업무 수행능력을 습득하는 데 걸린 평균 시간은 8.36개월, 평균 교육비용은 1인당 248만원인 것으로 분석됐다. 겨우 일 가르쳐 놓으면 딴 직장으로 새버려 남 좋은 일만 했다는 푸념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문제는 취업난이 지속되면서 ‘묻지마 지원’이 증가하는 양상이라는 것이다. 인크루트가 구직자 128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0.1%가 올해 9월 이후 묻지마 지원을 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 불황과 취업난으로 어느 회사라도 들어가고 보자는 구직자들의 절박함이 커질수록 ‘거리낌’ 없이 사표를 던지는 이들도 증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