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게이트’ 터진다

검찰 수사망 참여정부 심장 정조준 내막

마침내 ‘몸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세종증권 인수 로비 의혹에 대한 실체가 조금씩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참여정부 심장부’를 향하고 있어서다. 검찰은 홍기옥 세종캐피탈 사장이 세종증권을 농협에 매각할 수 있게 도와준 명목으로 정화삼 씨 형제에게 30억원을 준 사실을 밝혀냈다. 이중 일부분의 돈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 씨 몫의 상가를 샀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정대근 전 농협 회장도 홍 사장으로부터 50억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또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그야말로 메가톤급이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참여정부 핵심 실세 인사들에게 로비를 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연일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민주당 관계자들은 “참여정부 게이트로 번지는 엄청난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관측하고 있어, 정치권은 초긴장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검찰의 사정칼날이 ‘참여정부 심장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노건평 씨, 홍기옥 세종캐피탈 사장, 정화삼 씨 형제, 정대근 전 농협회장,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청와대 전 행정관 등 노무현 전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인사들이 대거 검찰 레이더망에 포착된 것. 이들이 대거 연루된 것은 농협이 세종증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로비 의혹 때문이다.

정-노-정 ‘3각 커넥션’
검찰, 로비 흔적 찾았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홍 사장은 같은 해 4월 자회사인 세종증권을 매각하기 위해 당시 농협회장이던 정대근 전 회장에게 접촉했다. 그러나 세종증권 매각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홍 사장은 평소 알고 지내던 정화삼 씨 형제에게 농협의 증권사 인수 최종결정권자인 정 전 회장과 친분 관계가 있는 인사를 소개시켜달라고 요청했던 것. 정씨는 같은 해 6월 정 전 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노건평 씨를 소개시켜줬고, 노씨 등은 정 전 회장을 통해 농협이 세종증권을 인수할 수 있도록 도와줬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농협은 지난 2006년 1월 세종증권을 전격 인수했다.

노씨는 “홍 사장 등을 만났고, 정 전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가까운 데 사는 사람들이 연락을 할 테니 말 좀 들어봐라’고 이야기했다”고 만난 사실을 시인했다. 이는 노씨가 단순한 전화통화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개입했을 수도 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 가운데 검찰은 농협이 세종증권 인수 과정에서 홍 사장으로부터 정씨 형제가 ‘로비 성공’ 명목으로 30억원을 받은 것을 확인했다. 이중 일부가 노씨 몫의 부동산을 사는 데 사용됐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실제 검찰에 따르면 홍 사장에게서 로비 성공 사례금 명목으로 30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정화삼 씨는 2006년 5월 사위 이 전 청와대 행정관의 명의로 김해 내동에 위치한 A빌딩 상가 1층을 9억2000만원에 샀다. 또 정씨 동생 광용 씨는 A빌딩에서 성인오락실 ‘리치게임랜드’를 운영했고, ‘바다이야기’ 수사 당시 압수수색을 당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홍 대표가 A빌딩에 5억원의 근저당을 설정한 뒤 올해 3월 해지한 것은 이 상가를 정씨 마음대로 처분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노씨에게 로비 자금이 흘러갔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이와 관련, 검찰은 정씨 형제가 받은 30억 중 “절반 이상을 떼어주라고 했다”는 관계자 진술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정씨 형제 중 한 명에게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를 도와줬기 때문에 오락실을 사실상 동업했다”는 진실도 상당부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은 특가법상 알선수재혐의를 적용해 노씨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홍 사장이 정씨 형제 외에 정 전 회장에게 50억원을 전달했다. 세종증권 인수 과정에서 80억의 로비 자금 중 절반 이상이 정 전 회장에게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검찰은 정 전 회장의 50억 중 일부의 돈은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 부지 매각과 관련해 현대·기아차그룹으로부터 3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징역 5년형을 받은 정 전 회장이 또 다시 검찰 레이더망에 포착된 것.

실제 정 전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은 물론 참여정부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전해진다. 게다가 검찰은 지난 2005년 농협이 세종증권을 인수해 증권업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이를 승인하는 권한을 가진 농림부를 상대로 로비 흔적을 발견하고,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그 당시 농림부장관이었던 고 박홍수 민주당 사무총장이 타계함으로써 로비 정황을 규명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일각의 중론이다.

박연차-정대근 커넥션 의혹
박연차 게이트 터진다?

이처럼 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인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로 연관되어 있다. 세종증권 인수 로비 의혹 과정에서 홍 사장, 정씨 형제, 노씨, 정 전 회장 등이 로비의 중심에 서 있다면, 세종증권으로 인해 최대 수혜를 본 인사도 있다. 바로 박연차 태광 실업 회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 역시 검찰 레이더망에 포착된 상태다.

실제 박 회장은 실명 및 차명으로 2005년 2월부터 110억원을 들여 세종증권 주식 197만주를 샀다. 그해 12월 농협과 세종캐피탈이 세종증권 매각·인수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기 전달 보유주식을 모두 처분했던 것. 그 당시 5000~6000원이었던 주가가 1만5000천~1만7000천원으로 뛰었다. 박 회장과 부인 명의로 산 87만주, 지인 명의로 산 110만주에서 각각 94억·84억원(총178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겼다. 또 박 회장은 세종증권 주식을 처분한 돈 중 50억원을 농협의 자회사였던 휴켐스를 인수하는 데 사용했다. 이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른바 ‘박연차-정대근’간의 커넥션이다.

실제 농협은 2006년 6월 제시한 1777억원보다 322억원이 낮은 가격으로 휴켐스를 넘겼고, 이 과정에서 박 회장이 수십억원의 차익을 남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세종캐피탈, 정화삼 형제·정대근 회장 30억·50억 전달
정화삼씨 사위 10억원대 김해상가 소유…노건평씨 건물(?)
박연차 회장 세종증권 178억원 차익…200억 탈세하기도

또 검찰은 박 회장이 정 전 회장에게 20억원을 제공했다는 진술을 확보함으로써 수사에 탄력이 붙은 상태다.


이뿐만 아니다. 박 회장의 800억원의 비자금도 검찰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박 회장이 800억원의 비자금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정황을 포착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박 회장이 홍콩에 있는 유령회사를 만든 뒤 원자재 대금인 것처럼 위장, 600억원을 유출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국세청은 박 회장을 200억원대 탈세혐의로 고발한 상태다.

검찰 관계자는 “비자금 조성이나 탈세 목적보다는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거나, 해외 법인의 사업자금으로 사용하려 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또 정치권으로 돈이 유입됐는지 여부도 수사 중에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은 검찰 사정 칼날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게다가 세종증권 인수비리 의혹과 박 회장에 대한 수사를 대검 중수부에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검 중수부는 주로 정치인 등 고위층 관련 대형 비리 사건을 수사하는 부서다. 주요 수사 내용을 검찰총장에게 수시로 보고할 정도로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인사들이 대거 검찰 레이더망에 포착됨에 따라 참여정부 핵심인사들이 대거 연루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실제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이다. 노 전 대통령의 측근 안희정 최고위원에게 7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 벌금 3000만원을 선고받기도 했다. 게다가 봉하마을 사저의 터를 구입할 때도 박 회장이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정화삼 씨는 2000년 총선과 2002년 대선 당시 노 전 대통령 선거운동을 적극 도와줬고, 노건평 씨와 친분이 있을 정도로 노 전 대통령을 적극 후원했던 인물이다.

이 때문일까. 정치권은 ‘세종 게이트’가 ‘박연차 게이트’ 급기야는 ‘참여정부 게이트’로 확산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관측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여의도 정가 안팎에서는 민주당의 핵심인사들인 A씨를 비롯해 S·L의원 등이 대거 연루됐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정치권 ‘초긴장’
정치인 대거 연루?

실제 민주당 한 관계자는 “박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정치권 안팎에서는 김민석 최고위원 다음으로 A씨를 소환하기 위해 시기조율을 하고 있다는 말이 들리고 있다. 이는 ‘표적 수사’라는 역풍을 우려에 시간적 여유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 외에도 참여정부 핵심인사인 S·L의원 등도 대거 거론되고 있다”고 정치권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그는 “그동안 이들에 대한 연루 의혹만 계속적으로 불거졌을 뿐이지, 이번 박 회장의 사건으로 인해 그 실체가 드러날 것이라는 말들이 회자되고 있다”며 “심지어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어, 거물급 정치인들이 줄소환될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검찰의 사정 칼날이 참여정부 핵심인사 심장부를 조금씩 조여갈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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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