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기획]<일요시사 선정> 2011 이슈메이커 50인③사회 10인

웃고 울었던 2011년엔 “내가 제일 잘나가~”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2011년은 사회 전반으로 다사다난했던 한해였다. ‘나꼼수’ 열풍으로 전국이 떠들썩했고 무상급식 투표는 정치·사회적 문제로 많은 대중들의 관심을 낳았다. 또 자살한 60대 여성의 사체를 성폭행한 고등학생의 범행이 드러나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지하철의 막말녀, 막말남 등장과 그들의 그릇된 행동으로 인성문제를 되짚어보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일요시사>는 지난 1년 동안 사회를 뒤흔들었던 화제의 인물을 중심으로 2011년을 뒤돌아봤다.

‘가카’와 정권의 실정에 ‘똥침’ 쏘는 ‘나꼼수’와 ‘더반의 여신’ 나승연
국민적 관심·공분 이끌어낸 <도가니> 공지영 작가와 ‘고공농성’ 김진숙

<대한민국 뒤흔든 ‘나꼼수’ 4인방>

2011년 대한민국은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에 열광했다. 팟캐스트 방송 부동의 1위에 이어 토크콘서트 전석매진 기록까지….

4명의 나꼼수 출연자(김어준, 정봉주, 김용민, 주진우)는 몇 달 사이에 연예인 뺨치는 유명인사가 되어 초절정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들이 내는 책들은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일제히 차지하고 있을 정도니 ‘지금은 나꼼수 시대’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지난 4월부터 등장한 나꼼수는 ‘2040세대’를 중심으로 키워져 온 불만과 분노를 외면하고 방치해온 무능한 정치권을 신랄하게 비판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현재 나꼼수는 평균 다운로드 200만 건, 조회 수 600만 건을 기록하면서 팟캐스트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으며 ‘쫄지마’와 같은 유행어를 양산하는 등 연일 화제를 낳고 있다.

나꼼수의 인기와 영향력은 기성언론의 대항마를 넘어 ‘신드롬’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세상을 음모적 시각으로 재단하고 무책임한 폭로와 조롱, 편파성에 대한 우려와 사회에 대한 다양한 책임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나꼼수는 ‘이명박 가카 헌정방송’을 목표로 2013년 3월까지 한시적 활동을 예고하고 있다. 한동안은 나꼼수 인기가 계속되리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각종 논란 속에서도 나꼼수 ‘4인방’ 잘~나가니 이런 관측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도가니> 신드롬 공지영>

영화 <도가니>의 원작자 공지영 작가는 장애인에 대한 성범죄와 관련 실화를 다뤄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를 일으켰다는 뜨거운 반응으로 화제의 10인에 선정됐다.

지난 9월 22일 개봉한 영화 <도가니>는 2009년 출간된 공지영 작가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공지영 작가도 덩달아 인기를 끌었다.

<도가니>는 몇 년 전 광주 인화학교에서 실제로 벌어진 장애아동 성폭행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영화가 갖는 극적인 요소와 유명 작가의 글 솜씨는 차치하더라도 <도가니>는 국민들의 심금을 울리고 분노를 사기에 충분할 만한 소재를 다루고 있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차별받는 계층이랄 수 있는 장애인, 그것도 어린 장애 학생들이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인권 유린을 당했다는 사실은 국민의 감성과 이성 모두를 흔들어 놨다.

도가니 열풍에 대해 공지영 작가는 “사람들이 승자독식이 이뤄지는 우리 사회를 보고 분노했지만 양상은 파편화돼 있었었는데 영화에서 약한 아이들까지 짓밟히는 것을 접하고는 분노가 결집했다”면서 “나의 분노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사람들이 더욱 목소리를 높이는 것 같다. 또 사람들이 ‘나도 언젠가는 저런 약자가 될 수 있다’고 느낀 것 같다”고 분석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의 주역 나승연>

지난 7월 6일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호소력 있는 프레젠테이션을 펼쳐 평창의 2018 동계올림픽 유치를 이끈 주역을 꼽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나승연(38) 평창유치위 대변인이다.

평창이 세 번째 도전에서 ‘환희의 눈물’을 흘리면서 나 대변인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더반의 여신’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화제를 낳았다.

프레젠테이션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 나 대변인은 유창한 영어와 불어를 구사하며 IOC 위원들에게 올림픽을 향한 평창의 뜨거운 열망을 호소력 있게 전달했다. 아울러 빼어난 미모와 매끄러운 연설도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앞서 지난해 4월 평창 유치위의 대변인으로 채용된 나 대변인은 1년 넘게 각종 국제 행사에서 ‘평창 알리기’에 앞장서왔다.

아리랑TV 앵커 출신인 나 대변인은 영어와 불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하는 재원이다. 나 대변인은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한 뒤 한국은행에서 1년간 근무했지만 1996년 아리랑 TV가 개국한다는 소식을 듣고 공채 1기로 입사해 4년여 동안 방송 기자로 활동했다.

방송 기자에서 평창의 입으로 변신한 나 대변인은 지난 IOC 총회에서 인상적인 프레젠테이션을 펼침으로써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는 평을 듣게 됐다.

<자서전 <4001> 출간한 신정아>

지난 2007년 학력위조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스캔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정아씨가 지난 3월, 자전 에세이를 내고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책 제목 <4001>은 신씨의 수인번호다. <4001>은 지난 2007년 일명 ‘신정아 사건’ 직후부터 최근까지 약 4년간 쓴 일기들 중 일부를 편집해 만든 에세이다.

신씨는 이 책에서 연인 관계였던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만남부터 파국, 동국대 교수 채용 과정과 불교계와의 관계, 정치권 배후설과 청와대와의 인연, 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부도덕한 행위 등을 언급해 파문을 일으켰다.

단순히 자기 고백이 아닌 개인의 ‘복수’라는 지적 속에 출간 목적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 뜨거운 논란이 됐다.

신씨의 자서전 <4001>은 세상에 공개된 지 2주 만에 수만 부가 넘게 팔리면서 수억원이 넘는 인세를 올리는 등 4년전 학력위조 파문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씨는 또 한 번 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당시 신씨는 학력 위조로 동국대 교수로 활동하고 미술관 공금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2007년 10월 구속 기소된 뒤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고, 지난 2009년 4월 보석으로 석방됐다.

<‘잡범’으로 전락한 ‘대도’ 조세형>

‘대도(大盜)’ 조세형이 60만원을 훔치는 강도짓을 해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그것도 출소한 당일 현장에서 다시 체포된 것.

조세형은 한 때 부유층의 재산만을 훔쳐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는 등의 행위로 ‘현대판 의적’이라 불리며 민심을 얻었던 인물이다.

197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대도’의 길을 걷기 시작한 조씨는 나름의 원칙을 세워 도둑질을 했다. 가난한 사람의 물건엔 손대지 않고,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나라 망신이란 생각에 외국인 집도 털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또 도둑질로 생긴 돈의 40%를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는 결심까지 했다. 이는 나중에 그가 대도로 불린 이유다.

무심코 은수저를 훔쳤던 5세 어린이는 어느덧 70대 노인이 되서도 제 버릇을 남 주지 못했다. 한때 대도란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았지만, 좀도둑과 장물아비 신세로 전락하더니 급기야 강도짓을 한 ‘졸범’으로 전락했다. 그것도 고작 60만원 때문에 말이다.

아직도 국민들의 뇌리 속에 ‘의적’으로 각인돼 있는 인물치곤 초라하기 그지없는 말년이다.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58) 선장도 10인의 이슈인물에 꼽혔다. 석 선장은 지난 1월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돼 치명적인 총상을 입고 수술 끝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석 선장이 속해있던 삼호해운 소속 화학물질 운반선 삼호주얼리호는 아랍에미리트에서 스리랑카로 향하던 중에 해적들의 습격을 받아 피랍됐다.

‘잡범’으로 전락한 ‘대도’ 조세형…여명 속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
도전하는 산악인 박영석 대장, 세상을 깨운 어머니 이소선 여사 ‘잠들다’

이후 피랍지점에서 2000km 떨어진 아덴만에서 활동 중이던 최영함을 급파해 인진 구출작전에 나섰고 수시로 경고사격, 심리전 등을 펼쳐 피랍 6일 만에 선원 및 인질들을 모두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석 선장은 퇴원 후 처음 가진 강연에서 “청해부대 작전이 시작되고 기관사가 엔진을 끄고 발전기도 멈췄다. 곧 비상전원이 들어왔고 이마저 나가는 순간 해적이 나를 쏴 빗맞는 바람에 목숨을 건졌다”며 “최영함으로 이송되고 오만 현지 병원으로 옮겨지면서 ‘여기서 정신 놓으면 난 죽는다. 아프지만 어떻게든 병원까진 간다’는 생각으로 고통을 참았다”고 피격당시 상황에 대해 털어놓았다.

<사라진 불멸의 산악인 고 박영석> 

산을 사랑하고, 산과 벗하고, 산에서 삶을 배우고, 그러다 결국 산으로 돌아간 영원한 ‘산사나이’ 박영석 대장. 그가 7번째 화제의 인물로 꼽혔다.

박 대장은 히말라야 8000m 이상 봉우리 14좌와 7대륙 최고봉(最高峰), 3극점(極點)을 모두 정복했다. 산악인들은 히말라야 14좌와 7대륙 최고봉, 3극점을 모두 달성한 것을 ‘그랜드 슬램(grand slam)이라고 한다. 박 대장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그러나 그의 도전정신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 9월12일 히말라야 3대 거벽 중 하나인 안나푸르나 남벽에 신루트를 개척하기 위해 원정길 도전에 나선 것. 박 대장 일행은 9월17일 안나푸르나 남벽 밑으로 이동, 18일 등정에 나섰으며 해발 6500m 지점에서 비박을 한 뒤 4일간 절벽에 매달린 채 식사와 잠을 해결하는 ‘알파인’ 방식으로 정상에 올라 반대편으로 하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안나푸르나 남서벽 출발점 근처에서 눈사태와 낙석을 만나 연락이 두절됐다. 대한산악연맹은 즉시 사고대책반을 꾸려 실종 추정지역에 대한 수색에 나섰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렇게 닷새가 흘렀고 수색작업이 종결됐다.

무전기 속 거친 숨소리가 산사나이 박 대장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흔적이었다. 결국 산사나이는 산에 잠들었다.


<‘노동자의 어머니’ 고 이소선>

‘노동운동의 대모’ 고 이소선 여사가 지난 9월 향년 81세로 별세했다.

노동의 자유를 외치며 민주화운동 선봉에 나섰던 젊은 청년 전태일. 1970년 11월 그는 근로조건 개선을 촉구하며 화형식이 거행된 거리 시위에서 불속에 투신해 2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우리는 그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기억하고 있고, 그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역시 ‘모든 젊은이들의 어머니’로 불렸다.

이 여사는 1970년 아들 전태일 열사의 분신 후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적극 나서며 노동운동의 대모로 불려왔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의 유족을 모아 민주화운동가족협의회를 창립해 초대 회장과 고문을 맡았으며 최근까지 노동운동이 현장마다 모습을 드러내 노동자들을 격려했고 40여년을 민주화 헌신에 힘쓴 인물이다.

<고공 크레인 위 309일 김진숙>

한진중공업 사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다.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에 입사, 용접공으로 일하며 노조활동을 주도하다가 1986년 직장을 잃었던 25년차 해고 노동자인 김 위원은 그동안 한진중공업 문제를 사회이슈로 부각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 위원이 수백일 동안 고공농성을 하고 김여진, 김제동 등의 ‘소셜테이너’가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한진중공업 사태가 부각됐으며 시민들은 ‘희망버스’를 타고 영도조선소 앞에 모였다.

이후 손학규, 정동영 의원 등 유력정치인과 시민사회단체, 언론까지 집중적인 관심을 가지며 한진중공업 사태는 일약 이슈로 떠올랐다.
 
목숨을 건 김진숙 지도위원의 고공투쟁 그리고 시민과 노동자들의 연대의 힘을 보여준 희망버스. 역사는 김 위원의 309일을 벼랑 끝에 내몰린 서민과 노동자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시간으로 기록할 것이다.

<‘트위터 대통령’ 작가 이외수>

화천 감성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소설가 이외수는 ‘트위터계의 대통령’으로 불린다. 팔로워가 100만명이 넘는 그는 국내 트위터 사용자 1위, 작가부문 1위, 팔로워 보유자 1위, 리스트 된 순위 1위에 올라있다.
 
트위터에서 수많은 ‘추종자’를 낳고 있는 이외수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의 작품은 평단에서 가벼운 문체, 내용이 없다란 혹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난해하지 않은,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들은 ‘140자 세상’ 트위터에서 더욱 빛을 내고 있다.

여기에 그의 수많은 작품에서 일관되게 보여온 인간에 대한 사랑론, 외모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인터넷 폐단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식이 트위터에서 가감 없이 전해지며 공감과 감동을 전해준다.

각박하고 올바름에 대한 판단기준이 흐려지는 세태에서 수많은 이가 그의 트위터를 찾고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이외수는 스마트폰 대중화와 맞물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소통의 시대정신을 상징하는 인물로 2011년 화제의 인물에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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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