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원 아들 자살로 본> 쌍용가 복잡한 가족사

‘안주인 체인지’ 족보 꼬일 대로 꼬였다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의 아들이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재계에선 유서가 발견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두고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다. 그는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그의 쓸쓸한 최후를 통해 대중의 기억서 사라진 비운의 ‘쌍용가 사람들’을 재조명해봤다.

‘쌍용가 3세’가 자살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15일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의 차남 지강씨가 자살했다고 최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지강씨는 15일 오후 7시20분께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자신의 오피스텔 화장실서 문고리에 목을 매 숨진 채 여자친구에게 발견됐다.

현장서 유서는 따로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이날 오전 2시30분께까지 여자친구와 연락이 됐다고 한다. 당시 김씨는 여자친구에게 문자메시지로 연락을 주고받다가 자살을 암시한 뒤 연락이 끊겼다. 가족들은 지강씨의 죽음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장례를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유서 발견되지 않아
조용히 장례식 치러

경찰은 “(지강씨가) 이전에도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고 타살 혐의점이 없어 자살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며 “(지강씨가) 자살할만한 동기가 있었는지 등을 수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강씨는 ‘비운의 황태자’다. 올해 34세인 지강씨는 쌍용그룹이 잘 나가던 시절 미국서도 학비가 가장 비싸기로 유명한 버몬트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앞날이 훤한 재벌 3세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외환위기(IMF) 당시 경영난을 겪은 쌍용그룹이 1997년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암운이 드리웠다. 지강씨는 그룹 해체 직후 학업을 중단하고 휴학했다. 이후 국내로 들어와 2002년 10월 친인척 등과 함께 자본금 1억원으로 기획이벤트와 쇼핑몰 등을 하던 동아시아회사를 창업했다.

지강씨는 동아시아회사 임원으로 재직하면서 2003년 8월 정보기술(IT) 업체 진두네트워크 인수를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수 중도금을 납입하지 못해 두 달 뒤 주식양수도 계약이 깨졌다. 지강씨는 동아시아회사에서 나와 특별한 직업 없이 투자활동을 해왔으나 크게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지강씨는 동아시아회사를 마지막으로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에 종사했는지 불분명하다”며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배경을 두고선 여러 추측들이 나오고 있는데 현재로선 수년간 직업과 고정소득이 없었던 점에서 생활고 또는 신병 비관 등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쌍용가 사람들’ 지금 어떻게?
그룹 공중분해 후 각자 생활
똘똘 뭉쳐있다 뿔뿔이 흩어져

지강씨의 자살 사건을 계기로 ‘쌍용가 사람들’도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쌍용그룹이 공중분해 된 이후 어디서 뭘 하며 지낼까 하는 의문에서다. 쌍용일가는 그룹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가 부도 후 뿔뿔이 흩어져 각자 생활하고 있다. 거의 모두 쌍용과 무관한 삶을 살고 있는 것. 3세들도 대부분 홀로 섰다.

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주는 부인 김미희씨와 사이에 3남3녀(인숙-의정-석원-의령-석준-석동)를 뒀다. 이들 2세 가운데 딸들은 ‘돈 걱정’없이 지내고 있다. 김 창업주의 장녀 인숙씨는 1964년 조병준 전 대한금속 사장의 장남 해형씨와 결혼했다. 


인숙씨는 미국 오클라호마대학서 신문학을 전공한 후 국민대 사회과학 교수와 학장, 불교여성개발원 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장식미술가로 활동 중이다. 

해형씨는 쌍용제지 사장 등을 지낸 뒤 따로 독립해 나라기획 회장으로 있다. 그의 부친 조병준씨도 김 창업주와 사돈관계를 맺은 후 쌍용양회 사장과 회장, 쌍용화재 회장 등을 지냈다.

인숙-해형 부부는 2남1녀(현진-현찬-은영)를 두고 있다. 현진씨는 언론인으로 있으며 현찬씨는 세계은행(WB) 산하 국제금융공사(IFC)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다. 현찬씨의 경우 1990년 정석원, 장호일과 함께 015B를 결성하고 1집 앨범에 참여한 바 있다. 은영씨는 국민대 예술대 강사 등 미술 작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화여대 음대를 졸업한 차녀 의정씨는 이관호 전 전북도립병원장의 차남 승원씨와 혼인했다. 무형문화재 궁중다례의식 보유자인 의정씨는 명원문화재단 이사장, 불교 조계종 중앙신도회장, 다도총연합회 총재 등을 맡고 있다. 지난 3월 국립민속박물관회 회장으로 선출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승원씨는 1990년대 쌍용그룹 부회장, 쌍용정유 회장, 쌍용양회 고문 등을 지냈다. 현재 국제스키연맹총회 집행위원, 대한스키협회 명예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의정-승원 부부는 3남1녀(용훈-진휴-성훈-원희)를 두고 있다. 

용훈씨는 학원사업을, 성훈씨는 컴퓨터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진휴씨와 원희씨는 부동산 사업 등 미국에서 기반을 잡고 있다.

3녀 의령씨는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다만 1971년 숙명여고를 졸업한 후 디자인 등을 공부하고 미국서 인테리어 사업을 직접 경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 관계는 확인되지 않는다.

문제는 쌍용가 2세 형제들이다. 이들은 가족사가 다소 복잡하다. 김 창업주의 3남 중 2명이나 이혼한 아픔이 있다. 그러면서 족보는 꼬일 대로 꼬였다.

“하나같이 적자·폐업”
3세들 개인사업 부진

김 창업주의 장남 김석원 전 회장은 엄한 가정교육 속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고 순탄한 성장가도를 걸었다. 미국 브랜다이스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김 전 회장은 1972년 쌍용양회 감사로 그룹에 첫 발을 내딛은 뒤 쌍용과 쌍용양회, 쌍용중공업 사장 등을 거쳐 1975년 쌍용그룹 회장에 올랐다. 

1996년엔 정계에 진출해 15대 국회의원을 지내다 1998년 그룹이 부도위기에 처하자 “구조조정을 직접 진두지휘하겠다”며 돌연 정치활동을 중단하고 경영에 복귀했다.

그러나 당시 회삿돈 수백억원을 횡령한 것으로 밝혀져 책임을 지고 경영일선서 물러나 2004년부터 쌍용양회 명예회장으로 있다. 이 와중에 김 전 회장은 개인적으로 감내하기 어려운 시련도 겪어야 했다.


그는 첫째 부인과 결혼에 실패, 결국 결별했다. 둘은 성격 차이 등으로 별거에 들어간 뒤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파경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1981년 박문순 성곡미술관 관장과 재혼했다. 초혼이었던 박 관장은 소규모 운수업을 하던 박남표씨의 장녀. 

김 전 회장은 수도여사대(현 세종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부산 대정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박 관장과 친척의 중매로 만나게 됐다.

당시 김 전 회장은 박 관장과 재혼 전 평소 자문을 구하던 역술인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는 후문이다. 첫 결혼에 실패한 만큼 재혼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역술인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김석원 회장과 자주 만나 집안 대소사와 경영 등 여러 가지를 의논했는데 본부인과의 이혼 문제도 있었다. 결국 둘은 갈라섰고, 김 회장은 혼처를 찾았다. 재혼에 대해 상담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김 회장이 교사출신의 박문순씨와 궁합을 봐달라며 찾아왔고, ‘좋다’는 조언을 했다”고 밝혀 세간의 시선을 끌었다.

3세들 대부분 힘겨운 홀로서기
창업주 3형제 중 장·차남 이혼
‘큰집’ 이복형제들 함께 사업도 

김 전 회장은 슬하에 4남1녀(지용-지강-지명-지태-지수)를 두고 있다. 이 가운데 장남 지용씨와 이번에 자살한 차남 지강씨가 본처와 사이서 태어난 자녀다. 나머지 3남 지명씨와 4남 지태씨, 외동딸 지수씨는 후처인 박 관장이 낳은 자식들이다.


지용씨는 1999년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손녀 유희씨(고 정몽필 전 인천제철 사장 차녀)와 수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식을 올렸다. 경기초교 동기동창인 두 사람은 과거 같이 등교할 정도로 단짝이었다.  

이들 부부의 자녀도 다름 아닌 경기초교를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녀의 신원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들의 측근과 회사, 학교 관계자 등에 따르면 현재 이 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라 한다.

지용씨는 2003년 10월 부동산 컨설팅과 주택건설업을 하는 올리브플래닝을 설립해 경영하고 있다. 지용씨는 이 회사 지분 40%를 보유한 대주주다. 부인 유희씨도 10%의 지분이 있다. 올리브플래닝은 지난해 24억원의 적자를 냈다. 지용씨는 대구MBC 지분(22%)도 있다.

눈에 띄는 점은 지용씨가 이복동생인 지명·지태씨와 함께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 업체인 태아산업을 경영 중이란 사실이다. 지용씨는 지분 34%로 최대주주, 지명·지태씨는 각각 24.9%씩 보유하고 있다.

1998년 8월 설립된 태아산업은 충북 음성에 2곳, 여주에 1곳 등 3곳의 고속도로 휴게소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405억원에 영업이익 8억원을 올렸지만, 1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지명·지태 형제와 지수씨는 나이가 20대 중·후반으로 아직 별다른 외부 행보가 감지되지 않고 있다.

김 창업주의 차남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도 이혼한 과거가 있다. 그룹이 와해되자 회장 자리를 내놓고 워크아웃에 들어간 쌍용건설 대표이사로 복귀한 김 회장은 1977년 이모 씨를 배필로 맞았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양측의 모친이 불교선도회서 만나 자녀들의 혼사를 얘기하다가 자연스럽게 성혼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의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미국 맨해튼 음대와 캘리포니아 예술대서 피아노를 전공한 이씨가 사업에 손대면서 사단이 났다. 이씨는 1993년 세원인테리어란 업체를 운영하다 100억원대의 부도를 냈다. 이 과정에서 사기 혐의까지 받았다.

부인 스캔들로 망신
3차례나 이혼 소송 

김 회장이 부인의 빚을 대신 갚아줬지만, 갈등이 깊어져 별거에 들어갔고 결국 파경을 맞았다. 김 회장은 2차례 이혼 소송을 냈다가 취하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1987년 3번째 이혼 소송을 냈고, 이씨는 300억원대 재산분할과 자녀 1인당 월 500만원의 양육비 청구소송으로 맞대응했다.

법원은 이듬해 김 회장이 이씨를 상대로 낸 이혼소송을 받아들인 반면 이씨의 청구소송은 기각했다. 두 사람은 2남1녀(지성-지운-지연)를 두고 있는데, 김 회장이 세 자녀의 친권자로 지정됐다. 이중 지성씨는 16세 때인 1996년 영국의 최고 명문인 이튼스쿨 고등학교 과정에 합격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김 창업주의 3남 김석동 전 쌍용증권 회장은 1986년 한상태 세계보건기구 명예사무처장의 딸 준희씨와 결혼했다. 그는 그룹 붕괴 이후 잇츠티비, 영화직물 등의 개인사업을 통해 재기를 꿈꿨으나 실패의 쓴맛을 봤다. 최근 또 다른 사업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진 그는 1남2녀(지호-지원-지영)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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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샘 시흥공장 그린벨트 훼손 의혹

[단독] 한샘 시흥공장 그린벨트 훼손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우리나라는 개발이 제한돼있는 토지가 있다. 해당 토지들의 개발을 위해선 지자체장의 승인이나 대통령령 승인이 있어야 한다. 부동의 가구 1위 기업인 한샘이 개발제한구역을 마음대로 훼손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상은 시흥 제1공장 부지 주변 필지다. 행정조치가 완료됐다고는 하지만 완전히 원상복구는 되지 않았다. 한샘은 주방·인테리어가구를 판매·제조하는 대한민국 부동의 1위 가구 업체다. 1970년 9월 한샘으로 창립한 뒤 1977년 국내 최초로 주방가구를 수출해 1979년에 수출 100만달러 돌파의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한샘의 2023년도 기준 매출액은 1조9669억원에 달한다. 영업이익은 19억4660만원이다. 최초의 공장 성장 시발점 한샘의 성장은 시흥 공장과 함께했다. 조창걸 명예회장이 자본금 200만원으로 은평구 대조동에 23.1㎡의 매장으로 시작했던 한샘은 1976년 시흥시 조남동에 최초의 공장다운 공장을 설립했다. 제1공장을 통해 한샘은 생산 체계를 크게 개선하며 큰 실적 향상을 이뤘다. 한샘은 현재 시흥과 안산 등에 4개의 물류센터·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당초 한샘 시흥 공장은 조남동 ▲594-1번지 ▲91-144번지 ▲91-145번지 세 곳의 필지, 약 1만4610㎡의 면적으로 지어졌다. 현재는 한샘은 91-117번지 매수해 총 1만8429.8㎡의 면적을 공장 부지로 사용 중이다. 등기사항전부증면서 확인 결과 한샘은 해당 부지 외 시흥 공장과 인접한 4개 필지 ▲조남동 91-163번지, 2076㎡ ▲조남동 91-165번지, 207㎡ ▲조남동 91-166번지, 109㎡ ▲조남동 산 57-1번지, 3273㎡도 소유하고 있다. 항공지도에 따르면, 한샘 시흥 공장의 정문 바로 앞을 3개의 필지 ▲조남동 91-163번지 ▲조남동 91-165번지 ▲조남동 91-166번지가 둘러싸고 있으며 산 57-1번지는 공장 뒤편 산과 맞닿아 경계를 이루는 형세를 나타낸다. 그런데, 가장 오래된 2008년 항공사진부터 지금까지 해당 필지를 야외주차장 및 자재 적재용으로 사용해 왔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점은 해당 필지의 지목이 모두 ‘임야’라는 것이다. 임야는 산림과 원야로 구성된 토지로, 공간정보관리법에서는 죽림지, 수림지, 암석지, 모래땅, 습지, 황무지, 자갈땅 등을 예로 들고 있다. 임야는 대부분 산림자원보호법에 따라 산림보호구역 또는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된다. 즉, 산림청의 허가 없이는 토지의 용도변경이나 개발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간혹 산림보호구역이나 지역이 아닌 임야도 있지만 이 역시 산림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토지의 용도변경이나 개발이 가능하다. 시흥 제1공장 주변 4필지 무단 개발 개발제한지역·공익용 산지에 해당 한샘이 야외주차장과 자재 적재용으로 사용한 필지는 모두 개발제한구역에 포함돼있다. 한샘이 산림청의 허가를 받지 않고 개발제한구역 땅을 개발해 무단으로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는 의심이 드는 사안이다. 실제로 시흥시 도시정책과는 해당 필지와 관련해 많은 민원을 접수했다. 민원은 해당 필지들의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12조 위반이 주된 내용이었다.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12조에 따르면, 개발제한구역에서는 건축물의 건축 및 용도변경, 공작물의 설치, 토지의 형질변경, 죽목의 벌채, 토지의 분할, 물건을 쌓아놓는 행위(적재) 또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1항에 따른 도시·군계획사업의 시행을 할 수 없다. 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건축물의 건축 또는 공작물의 설치와 이에 따르는 토지의 형질변경 ▲개발제한구역의 건축물로서 제15조에 따라 지정된 취락지구로의 이축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른 공익사업의 시행으로 철거된 건축물을 이축하기 위한 이주단지의 조성 ▲건축물의 건축을 수반하지 않는 토지의 형질변경으로서 영농을 위한 경우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토지의 형질변경 등 9가지의 경우만 예외로 하고 있다. 이렇듯 한샘의 4 필지 사용은 예외 사항에 포함되지 않는다. 산림청장 허가받았나 민원을 접수한 시흥시 건축과 개발제한구역지도팀은 2020년에 해당 필지에 관한 현장조사 이후 한샘에 원상회복 행정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한샘은 이에 불복하고 행정처분 취소소송을 감행했다. 재판부는 개발제한구역 지정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한 한샘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이행강제금 일부를 한샘에 돌려주도록 판단했다. 하지만 이는 시흥시의 행정조치가 잘못됐다는 판결이 아니었다. 법적 싸움 끝에 시흥시의 원상복구 행정조치는 진행됐다. 시흥시 개발제한구역지도팀에 따르면, 한샘은 행정소송 이후 2022년부터 2023년에 걸쳐 원상복구를 완료했다. 시흥시 개발제한구역지도팀 관계자는 “행정조치 이후 원상복구까지 불법으로 개발한 것을 모두 해체하고 폐기물 처리까지 완료해야 하는 만큼 많은 시일이 걸린다”며 “해당 필지(조남동 91-166번지와 산 57-1번지)는 지난해 11월 원상복구 이행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샘 관계자는 “해당 부지는 한샘이 소유하고 있거나 소유했던 땅으로 불법 점용한 적이 없으며, 해당 부지는 개발제한구역 지정 전과 동일한 상태로 복구를 완료한 상태”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한샘은 여전히 해당 필지들을 불법 점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시흥시가 원상복구 이행을 확인한 필지는 조남동 91-166번지와 산 57-1번지다. 하는 척 얼렁뚱땅 <일요시사> 확인 결과 조남동 91-166번지는 도로와 인접한 부분의 절반의 울타리만 철거됐으며 여전히 4~5대의 차량이 주차돼있는 상태였다. 해당 필지는 개발제한구역이면서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른 지역‧지구로는 도시지역, 자연녹지지역로 구분된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해당 지역에 4층 이하의 건축물을 지을 수 있지만, 개발제한구역이므로 건축물의 건축 및 용도변경 등이 불가능하다. 시장 혹은 도지사·군수 등의 허가를 받을 경우 가능하지만, 시흥시에서는 해당 부지의 주차장 사용을 허가해주지 않았다. 행정조치 이후에도 계속 불법으로 점용하고 있는 셈이다. 산 57-1번지도 마찬가지다. 항공사진을 분석한 결과 2008년부터 해당 필지를 덮고 있던 콘크리트는 2013년에 사라졌지만 자재가 적재돼있었다. 이후 2020년에 다시 콘크리트가 덮였다가 2022년 흙밭으로 복구됐다. 하지만 여전히 자재는 적재돼있다. 게다가 <일요시사> 확인 결과 조남동 산 57-1번지와 조남동 산 57-5번지가 개발제한구역이면서 공익용 산지로 지정돼있어 보전산지로 분류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산 57-5번지가 산지 그대로 있는 것과 다르게, 산 57-1번지는 콘트리트가 지반을 받치고 있으며 경계선에는 울타리가 쳐져 있다. 행정조치 완료? 완전 복구 안돼 한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공익용 산지를 마음대로 개발하면 산지관리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다”며 “해당 부지 명의가 한샘이더라도 시장 등 지자체의 허가 없이 개발하면 안되는 곳으로 구조물을 통해 공장부지와 평행을 맞추는 지반을 만드는 것도 허가가 필요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행정조치가 진행 중인 상황에 문제가 되는 필지를 매매한 정황도 포착됐다. 한샘은 조남동 91-163번지의 필지를 1985년 매입했다. 이후 야외주차장으로 사용하던 해당 필지를 2022년 11월4일 갑자기 팔아버렸다. 2022년은 한샘과 시흥시의 행정소송이 끝나고 행정조치가 진행되던 시기였다. 현재 해당 필지는 ㈜효경개발이 매수해 크레인과 덤프트럭 등 중장비 주차장으로 이용 중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원상복구에 많은 금액이 들어가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토지를 매매한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한 토지 전문가는 “일반적으로 야외주차장으로 사용하던 토지를 원상복구하는 데 많은 금액이 들어가지 않지만 해당 필지는 공익용 산지로 산지 조성까지 해야 해 상황이 다르다”며 “산지 조성에 들어가는 금액도 지불하지 않고 토지를 매매한 것은 이중으로 이익을 얻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샘 관계자는 “크레인 등 장비가 있는 부지는 한샘의 소유가 아니므로 저희가 알 수 없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문제의 필지 매매한 정황 한샘 측은 이번 불법 점용 의혹에 관해 개발제한구역 지정이 공장 설립보다 늦게 이뤄져 어쩔 수 없이 불법적인 개발로 분류됐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해당 필지들은 지난 1976년 12월에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됐다. 시기상 한샘의 공장 설립 이후에 묶인 셈이다. 하지만 산 57-1번지를 제외하고 나머지 필지들은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된 이후인 1985년 매입한 땅이라 불법임을 알고도 마음대로 개발했다는 지적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