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대미관계 숨통 틀 ‘미국통’ 박 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

“한미FTA 우리가 먼저 비준해야 한다”

박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은 집권여당에서 손꼽히는 ‘미국통’이다. 특히 버락 오바마의 차기 대통령 당선으로 이명박 정부와의 전략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대미통이 절실한 여당으로서는 가뭄 속 단비와도 같은 존재로 각광받고 있다. 그런 가운데 박 위원장은 지난 11월17일부터 국회 외통위원들을 이끌고 미국을 방문해 국익차원의 활발한 의원외교활동을 펼치고 돌아왔다.


국회 외통위 방미단 단장인 박 위원장은 7일(11월17-23일)이라는 방미기간 동안 단 한시도 쉴 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박 위원장은 “이번 방미는 빡빡한 일정을 강행군하면서도 여야가 일심동체로 초당적인 외교를 펼쳤다”며 “레임덕 세션을 활용한 시의적절한 방미였고, 국익차원의 현안에 대해 질적으로 조율한 의미있는 방미였다”고 평가했다.
한나라당 황진하, 민주당 문학진,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으로 구성된 방미대표단은 방미기간 중 리처드 루가, 척 헤이글 상원의원, 하워드 버먼 하원 외교위원장, 애니 팔레오마베가 하원 외교위 동아태 환경소위 위원장, 애덤 스미스 하원의원 등 상하원 주요인사는 물론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 싱크탱크 관계자 등을 면담했다.
박 위원장은 앞으로 미국과 전략동맹 및 글로벌 파트너십을 추구할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다음은 박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 먼저 이번 미국 방문의 의미와 활동을 간략하게 소개해 달라.
▲ 황진하 한나라당 간사, 문학진 민주당 간사, 박선영 선진과 창조의 모임 간사 등 초당적으로 구성된 외통위 대표단은 미국 의회의 대선 이후 임시회의 계기에 미국 오바마 신정부의 정책 방향과 한미동맹 발전 방향을 논의하고, 북한 핵문제와 한미FTA 비준 등 주요 현안과 관련한 폭넓은 의견 교환을 하기 위해 7일 동안 단 한 순간도 쉴 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이번 방미는 빡빡한 일정 가운데서도 여야가 일심동체로 초당적인 외교를 펼쳤다. 레임덕 세션을 활용한 시의적절한 방미였고, 국익차원의 현안을 실질적으로 조율한 의미있는 방문이었다.

- 미국 현지인들은 오바마 당선자에 대해 대체적으로 어떤 평가를 하고 있었나.
▲ 금번 방문 기간 중 면담한 모든 인사들은 오바마 당선자의 지도자적 자질을 높이 평가했고 오바마 당선자가 지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진취적 리더십과 겸손함을 갖추었으며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언변이 뛰어나며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좋게 평가했다. 아울러 워싱턴 정치 활동 경력이 짧은 것이 오히려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라는 전망을 하였다.

- 한미 FTA 비준 동의안 처리문제와 관련해 미국 현지 반응은 어떠했나.
▲ 이번에 만난 미측 인사 중 재협상을 거론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우리 역시 마찬가지 입장을 견지했다. 미측 인사 대부분은 미 의회가 반드시 비준할 것이라고 말했다.

- 대표단이 한미 동맹과 한미 FTA와 관련해 미국측 인사들에게 밝힌 입장을 요약한다면.
▲ 첫째, 한미 동맹은 양국에 정치적 경제적 전략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며 오바마 신행정부 하에서 동맹 존중과 다자협력의 새로운 틀 속에서 양국 관계가 더욱 강화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둘째, 북미 관계 개선이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을 주고 남북 관계 개선이 북미 관계 개선에 중요하다는 점과 이를 위한 한미 양국간 사전협의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 대표단은 남북대화를 통해 남북관계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를 위하여 우리 국회가 적극적인 역할을 주도할 것이라는 점과 한미 양국 의회가 긴밀한 대화를 통해 대북 정책에 대한 공조를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밝혔다.
셋째, 한미 FTA가 단순히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한미 동맹의 새로운 전략적 맥락에서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FTA로 인해 양국의 일부 국내 산업 분야가 어려움에 직면하는 측면이 있으나 이는 양국이 적극적인 국내 보완대책으로 해결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넷째, 만약 한국이 비준을 하고 미국 의회가 비준을 하지 않는다면 이는 양국 모두에게 기회의 상실인 동시에 미국에 대한 신뢰의 상실을 가져오게 될 것임을 지적했다.
다섯째, 한미 FTA 비준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양국 의원들간 정책협의 추진을 제안했다.

6박7일간 일정으로 국회 외통위 대표단 이끌고 미국 방문
여야 의원 모두 국익 위한 초당적 의원외교활동 성과 커

- 한미 FTA 비준과 관련해 미 의회와 오바마 당선자의 예상 행보는.
▲ 최근 심각한 경제 위기로 인해 미 의회가 한미FTA를 비준하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현지 의견이 대세였다. 내년초 오바마 신정부 진용이 갖춰지면 FTA 문제가 검토될 것이지만 비준 문제는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거론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기존 합의를 존중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며 한미 양측 모두가 이득을 볼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오바마 당선자는 근본적으로 자유무역주의자이며 시장개방, 자유무역, 국제화를 지지하고 있다.


- 한미 FTA 관련 미국측 인사들의 견해는 어떠했는가.
▲ 한국은 현재 미국의 7대 통상국이며 아시아에서 미국의 2번째 금융협력국가로 한미 FTA는 무역, 투자 증대, 일자리 창출 등 양구에 공통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다만 미국 신정부의 정책순위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금융위기 극복이 우선적으로 다뤄질 것이다. 오바마 당선자는 근본적으로 시장개방, 자유무역, 국제화를 지지하고 있으나 한미 FTA에 관해서는 다소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일부 인사들은 오바마 당선자가 선거운동 기간 중 한미 FTA에 대해 부정적인 언급을 했으나 앞으로 정부가 구성되면 입장이 보다 긍정적으로 바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반하여 일부 인사들은 어떤 형식이든 기존 합의에 수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한국의 선비준이 미국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미국측 인사들의 대체적 의견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 한미 FTA 결의안을 비준할 것이며 기존 합의를 바꾸지 않더라도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방안이 있다는 견해다.

- 한미 동맹과 관련해 오바마 정부측의 예상되는 정책 방향은.
▲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에서 미국의 국익 추구 및 지역의 평화 안정을 위한 한미 동맹 강화가 필요하며 양국이 실질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한국과의 동맹관계를 생각하고 한미관계를 더욱 강화시켜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동맹관계 발전을 위한 한국의 입장을 우선 경청하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그리고 국제무대에서 전략 동맹과 글로벌 파트너십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오바마 당선자의 정책 추진 전망은.
▲ 오바마 정부가 북한과의 적극적인 직접 외교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나 부시 정부 2기라는 성격 때문에 갑작스런 변화는 없을 것이며 차분하고 신중하게 일관성을 유지할 것이다. 오바마 당선자가 북한과 정상회담을 위해 바로 북한으로 달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차분하고 신중하게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북한의 주민을 굶주리게 하는 유화 정책이 아니라 북한 핵문제와 기아를 해결하고 북한의 진정한 변화를 유도하는 포용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 미국내 자동차산업 전망은.
▲ 오바마 정부는 자동차 문제와 관련해 어떠한 형식이든 적절한 체면을 살리는 조치를 기대하는 의견, 미국내 보호주의는 매우 지역적이고 민주당이나 오바마 당선자도 보호주의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의견, 미국의 자동차 업계가 한미FTA에 문제를 제기하고는 있으나 구체적으로 무엇을 요구하는지 불분명한 상태며, 최근 자동차 업계에 대한 구제조치로 한미 FTA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더 이상 높일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 한미 관계와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과 관련해 양측이 서로 제시한 내용이 있는 걸로 아는데.
▲ 우리측 대표단은 한미 양국의 실질적 협의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미국측도 이에 동의했다. 오바마 당선인측은 한미 동맹이 실질적인 동반자 관계로 나아가야 하며, 양국 현안에 있어 한국의 입장을 우선 경청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미국측은 한국과 전략동맹 및 글로벌 파트너십을 추구할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오바마 정부는 대북 직접 외교가 예상되지만 차분하면서도 신중하게 일관성을 유지할 것으로 본다.
 
- 이번 방미외교를 통해 한미간 최대 정책 현안이 순항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 우리측 대표단은 한미 양국의 실질적 협의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미측 인사도 이에 동의했다. 한미 FTA 비준안을 우리 국회에서 먼저 통과시키면 미 의회 인준에 모멘텀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한-EU FTA 조기체결도 미 의회 인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본다. 한국이 먼저 비준했는데 미국이 안 하면 양국 간 이익의 기회를 상실하는 것이며,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신뢰 상실로 이어져 결국 미국 리더십 재건 계획과 상치된다는 점을 확실하게 미국측 인사들에게 전달했다. 실제로 한국이 먼저 비준해야 미국내 찬성론자들이 미 행정부와 의회에 독촉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인사들도 있었다. 피해산업에 대한 예산을 빨리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부터 비준해야 한다. 부시 정부가 오바마 측의 자동차업계 지원 요청을 수용하는 대신 한국 등을 상대로 한 FTA를 처리하는 빅딜 가능성이 미국 재계와 공화당,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외통위 방미 대표단의 향후 활동과 과제는.
▲ 외통위 대표단은 금번 방미를 통하여 한미 FTA의 성공적인 비준을 위해 양국이 공통의 이익을 찾을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외통위 방미단은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외통위에 상정하는 문제를 포함하여 앞으로 FTA 문제를 국회에서 처리하는 방안에 관해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초당적으로 협력해 나갈 방침이다.


박 진 위원장 프로필
△ 청와대 비서관
△ 한나라당 서울시당 위원장
△ 17대 대통령직 인수위 외교·통일·안보분과 간사
△ 제16, 17, 18대 의원
△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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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