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 출신’ 국악방송 사장 미스터리

미르재단 사람들이 살아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2016년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대통령이 탄핵되고 특검 수사가 이뤄졌다.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었다. 이후 출범한 정부는 적폐 청산을 기조로 각계각층의 썩은 부분에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 하지만 국정 농단의 그림자는 여전히 사회곳곳에 드리워져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일반인 최순실씨와 국정을 논의했다는 의혹이 2016년 10월 한 방송사의 보도를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JTBC는 최씨의 태블릿PC를 입수, 국정 농단 의혹에 근거를 제시했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국정 농단이 사실로 확인되자 시민들은 거리로 나왔다. 촛불집회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인용된 이듬해 3월까지 이어졌다.

미르재단 의혹
게이트 시발점

최씨에 의해 나라가 좌지우지 되고 있다는 의혹은 앞서 2016년 7월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다. 당시 TV조선은 ‘2015년 10월 설립된 재단법인 미르(이하 미르재단)가 대기업서 돈을 모으는 과정에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개입된 정황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이후 미르재단에 대한 여러 의혹이 하나둘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미르재단 설립을 청와대가 주도했다는 대기업 문건이 발견되고, 설립 허가 과정이 3일 만에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이뤄진 사실도 드러났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대한 의문점이 본격적으로 다뤄지면서 국정 농단 사태는 차츰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각에선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대한 의혹 제기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세상에 알린 시작점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미르재단은 설립 당시 “문화라는 매개를 통해 소통되는 사회, 행복 충만한 사회구현과 나아가 국민행복은 국가발전을 목표로 창조문화와 창조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발판 마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포스코 등 16개 대기업은 미르재단에 486억원을 출연했다.

재단 이사 사임 직후 방송사 사장
채용절차와 시기 두고 ‘수근수근’

2015년 10월27일 미르재단 현판 제막식서 김형수 이사장은 “개별적으로 문화재단 등을 운영하던 기업들이 미르재단을 통해 다양한 협력 사업과 행사를 추진함으로써, 문화융성의 혜택을 전 국민들에게 돌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역시 2016년 10월 미르재단에 대해 기업들이 좋은 취지로 만들었고 잘 운영되고 있다는 뉘앙스로 발언했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하 특검)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이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공동이익을 위해 설립된 것이라고 결론냈다. 최씨가 기업들로부터 재단 출연금을 받아내는 과정서 박 전 대통령과 공모한 것으로 파악했다.
 

이후 법원은 박 전 대통령이 두 재단에 영향력을 행사한 점이 대부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법 형사4부는 지난 8월24일 박 전 대통령이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18개 기업을 상대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총 774억원의 출연금을 내도록 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출연금 강요
박근혜 유죄

미르재단이 국정 농단 사태의 발단으로 지목되면서 이사진에게도 관심이 쏠렸다. 박근혜정부 당시 ‘문화계 황태자’로 불린 차은택씨의 입맛에 따라 미르재단 이사진이 구성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차씨가 활동한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도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문화융성위원회 출신이 다수 미르재단 이사로 옮겨왔다는 주장도 나왔다.

문체부는 지난해 3월20일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설립허가를 직권으로 취소했다. 이후 올해 4월27일 미르재단에 대한 청산절차가 종결됐다. 출연금 486억원 중 잔여재산 462억원은 지난 2월과 4월 초, 두 차례에 걸쳐 국고로 환수됐다. 미르재단 등 국정 농단 사태에 연루됐던 인사들도 대부분 형사처분을 받았다.

미르재단 설립 주도 여부를 두고 최씨와 공방을 벌인 차씨는 포스코 계열 광고회사를 인수하려던 업체의 지분을 빼앗으려고 한 혐의 등으로 2016년 11월 구속됐다. 또 미르재단의 설립 당시 문체부장관이었던 김종덕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 작성 혐의로 구속됐다가 지난 7월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됐다.
 

미르재단 설립과 모금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은 김종 전 문체부 2차관은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와 공모해 삼성그룹과 한국관광공사 자회사 그랜드코리아레저를 압박, 영재센터 후원금을 받아낸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기업이 미르재단에 후원금을 내도록 강요했다는 혐의를 받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도 현재 구속수감 중에 있다.

반면 국정 농단 사태 당시 수차례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고도 여전히 승승장구하는 인사들도 있다. 미르재단 이사 출신인 송혜진 국악방송 사장이 대표적이다. 국악방송은 문체부 소관의 재단법인이다. 

국악방송 정관에는 방송을 통해 국악 및 한국전통문화예술을 국민에 홍보·보급·교육함으로써 국악의 진흥을 도모하는 한편, 한국전통문화예술의 발전 및 지역문화 복지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돼있다.

국정농단 관계자 대부분 ‘철퇴’
2016·2017년 국감에서도 거론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한 송 사장은 2015년 10월부터 2016년 7월까지 미르재단 초대 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명박정부 시절인 2010∼2012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3기 위원을 지냈다.

박근혜정부 때에는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전통문화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또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전통음악과 교수로도 재직했다. 국악방송에서는 편성제작팀장을 지냈다.

송 사장은 미르재단 이사 사임 직후 국악방송 사장으로 선임됐다. 전임 채치성 사장의 임기 만료로 공석이 된 자리에 송 사장이 온 것. 송 사장의 취임을 둘러싸고 무성한 뒷말이 쏟아졌다. 특히 미르재단 이사, 문화융성위원회 전문위원 경력 등을 둘러싸고 송 사장이 최순실 사단과 연관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국악계 한 관계자는 “문체부에 사장 후보를 추천할 때 복수로 올렸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송 사장의 경우 혼자 올라갔다는 말을 들었다”며 “채용 과정, 시기 등을 둘러싸고 국악계 내부서도 말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국악방송 홈페이지에는 ‘국악방송 송혜진 사장은 사임해야!’라는 제목의 글이 여전히 게시판에 올라와 있다. 자신을 블랙리스트에 오른 ‘아리랑학회’ 기미양이라고 밝힌 작성자는 “7월, 국악방송 사장에 ‘누가 오느냐’와 ‘왜 발령이 나지 않느냐’는 억측과 논란이 있었는데, 최근 보도로 보면 ‘최순실 마력’ 영향권에 영향을 받은 것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2년 연속 국감
지적 받았지만…

이어 작성자는 “미르재단 이사, 후임 교수 문제 등 현 국악방송 사장 송혜진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해야 한다”며 “국악방송은 우리 전통문화 정수를 지키고 전수하는 최전선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런 논란에 영향 받은 인물은 적격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송 사장에 대한 논란은 국정감사서도 이어졌다. 송 사장은 2016년 10월10일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교문위) 국정감사 자리에 참석했다. 

당시 교문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송 사장에게 “차은택씨가 추천한 미르재단 이사 중의 한 분이 송혜진 사장님 맞습니까?”라고 질의했다. 그러자 송 사장은 “아닙니다. 저는 차은택씨를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고 답했다.
 


송 사장은 그럼 어떻게 해서 미르재단 이사가 됐느냐는 질의에 준비팀서 인선했다고 들었고, 최종적으로 전화를 준 사람은 김형수 이사장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차씨와는 연락 한 번 한 적 없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고 주장했다.

또 미르재단 이사에 합류한 것을 두고는 “대기업서 문화를 세계로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전통분야 전문가로 참석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사회에 여섯 차례 참석했고 초기였기 때문에 여러 가지 미비한 점이 있어 규정 등을 개선해나가는 경험을 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최근(2016년) 언론 보도를 통해 상당히 많은 사실을 듣게 돼 저 개인적으로도 당혹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르재단 이사 사임 이유에 대해서는 “(2016년) 7월21일 국악방송 사장으로 임명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공공기관의 기관장 일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사퇴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답변했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도 송 사장에게 미르재단 이사 경력에 대해 물었다. 

조 의원은 “미르재단 정관을 보면 (2016년)10월20일자로 ‘이사 송혜진’ 이렇게 돼있고 도장도 찍혀 있다. 그리고 10월25일날 ‘취임승낙서 이사 송혜진’으로 도장이 찍혀 있다”며 “문체부서 법인설립신고 하면서 회의록을 10월25일 작성해 제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의원의 “(송 사장이)위증했거나 모든 서류가 조작된 것”이라며 “어떻게 된 것이냐”는 질의에 송 사장은 답변하지 못했다.

2017년 국정감사서도 송 사장의 미르재단 이사 경력이 거론됐다. 2017년 10월19일 교문위 국감서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은 미르재단 초대 이사, 문화융성위 1기 전문위원 등 송 사장의 경력을 열거했다.
 

신 의원은 “한국마사회 현명관 전 회장이 설립한 창조혁신단체에 안종범(전 수석)과 같이 이름을 올렸지 않느냐? 또 국정 농단의 연루 의혹자인 김상률 전 교문비서관 부인을 자신의 숙대 후임 교수로 추천했느냐”고 질의했다.

신 의원은 “지난해 국감서도 위증 의혹이 있다. 미르재단에 대해 10월26일 이후로 연락받았다고 했는데 실질적으로 10월20일에 이미 이사 취임했고 25일에 도장을 찍었다”며 “차은택씨하고도 문화융성위원회 활동을 7개월 간이나 (같이) 했는데도 일면식도 없다는 주장을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표적인 적폐, 위증 시도. 그런데도 아직까지 계속 그 자리에 계실 거냐? 스스로 용퇴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다그치기도 했다.

송 사장은 “여러 가지 의혹에 대해서는 일체 다 소상히 밝혀졌다. (차은택씨와)일면식도 없다는 점은 기타 재판 과정서도 다 밝혀졌기 때문에 그간 제기된 의혹과 저하고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고 위증 의혹에 대해서도 소상히 소명한 바 있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제가 미르재단 이사로 취임한 것은 전통문화 발전을 위해 전문가로서 참여한 것이고 현재 국악방송에 취임한 이후로도 전통문화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열심히 한다”
“적폐 청산해야”

문체부 전 관계자는 “미르재단 이사 출신 인사가 아직도 공공기관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게 놀랍고 의아하다”고 말했다. 국악방송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송 사장이 아직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국악계 내부에 팽배한 보신주의도 한몫했다고 본다”며 “목소리를 내야 할 국악계 인사들이 비겁하게 뒤로 숨어 진짜 적폐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차은택 친분 인사들 ‘문체부에 여전히?’

박근혜정부서 문화계 황태자로 불렸던 차은택씨와 가까운 인사들이 여전히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산하 기관장으로 재직 중인 사실이 확인됐다. 이들은 잔여 임기를 모두 채우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이 문체부와 해외문화홍보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미국 뉴욕 한국문화원장을 지낸 오승제 전 원장은 지난 8월 3년 임기를 모두 마치고 퇴임했다.

오 전 원장은 한 민간 광고기획사 임원 출신으로, 같은 광고기획사 출신이었던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과 차은택씨가 관여해 뉴욕 문화원장이 됐다는 의혹이 있어왔다. 

파리 한국문화원장 역시 차씨와 가까운 광고업계 출신 박재범 원장이 선발됐는데, 박 원장은 2016년 임명돼 내년 1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김 의원은 “문화계 국정 농단 세력과 가까운 인사들이 해외서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한국문화원장 자리에 가 있는 것도 모자라 임기까지 무사히 마치고 있다는 사실을 과연 국민들이 용납하실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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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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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