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딜레마에 ‘정세균 위상’ 달랑달랑

민주당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김민석 최고위원의 거취문제로 인해 최대 난관에 봉착했다. 당 차원에서 처음 대응했을 때는 ‘검찰의 부당한 야당 탄압’이라며 강력 대응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법원이 확보된 증거를 제시하며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구속영장 집행을 위해 수사관들이 잇달아 당사를 방문했다. 더욱이 김 최고위원은 지난 21일 영장 집행에 대한 불응 방침을 철회하고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 나서기로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부에서는 복잡한 기류가 형성돼 연일 주판알을 퉁기고 있을 정도다. 자칫 민주당과 검찰 간의 정면충돌이 빚어질 것으로 보이는 ‘전투’ 내막을 취재했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혐의를 받고 있는 ‘김민석 사태’가 새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민주당 최재성 대변인은 지난 21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민주당 최고위원들이 신원보증까지 하면서 불구속 수사를 촉구했다”며 “그럼에도 검찰이 영장을 재청구 한다면 실질심사를 받겠다는 게 김 최고위원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민주당이 고수한 ‘강경모드’가 한풀 꺾인 기세다. 대신 단서조항이 붙는다. “법정에서 무죄를 밝히고, 야당 탄압이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실제 민주당은 김민석 최고위원을 구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있는 상태다. 불구속 수사를 요구하기 위해 ‘신원보증’을 서기로 했던 것으로 이는 매우 이례적이다. 그만큼 코너에 몰린 민주당이 극약처방으로 ‘최후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 대표는 물론 최고위원 전원이 김 최고위원의 검찰 수사에 협조하고 재판 출석을 날인된 문서로 보증하기로 한 것이다. 

강경모드 꺾인 진짜 속내
“야당 탄압 보여주겠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지도부 개개인이 정치적 생명을 건 것”이라며 “당이 ‘김민석 구하기’에 대한 여론과는 상관없이 정면대응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김 최고위원에 대한 구속영장 시한이 다가오면서 더 이상 버틸 경우 당의 위상이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이유에서다.

또 김 최고위원 때문에 당내 갈등도 확산될 조짐이다. 구민주계와 열린우리당 간의 갈등이 대표적이 사례다.


민주당 한 관계자에 따르면 A의원이 ‘입김’을 불면 단지 3분 정도만 김 최고위원의 상태를 살피고 있을 뿐 그렇지 않을 때에는 ‘무방비 상태’에 있다고 말했다. 자칫 김 최고위원의 사태로 당내 갈등이 확산될 수도 있다는 게 민주당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사실 정 대표는 강경투쟁과 관련한 여론 악화와 당내에서 제기된 ‘대응책 실패론’으로 인해 입장이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 대표 위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당내 의원과 당직자들 사이에서는 법 집행까지 막고 나선 것은 지금까지 유지해온 합리적 온건 성향의 이미지를 깨버린 정 대표답지 않은 선택이라는 것. 이 때문에 악수(惡手)를 둔 것 아니냐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악수가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촛불집회 등 한미FTA 체결을 놓고 농성까지 벌였지만 아무런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또 당 정체성 문제가 연일 거론되면서 민주당의 색깔을 제대로 내지 못했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를 입증하듯 민주당은 지난 10월 지방선거에서 대패했다. 기초단체장 2곳, 광역의원 3곳, 기초의원 9곳 등 14개 지역 중 5명의 후보를 냈으나 전북 임실군에서 무투표 당선된 기초의원 1명을 빼고는 모두 낙마했다. 후보를 5명밖에 내지 못한 것도 부끄러운 일인데, 충남·인천에서 참패한 것은 물론 텃밭인 여수에서도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패했다.

재보선은 조직력이 중요한데 여수에서 민노당에서 진 것은 조직력에서도 민노당에 밀린 것이라며 당 지도부의 리더십에 우려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당 지도부는 선거결과와 관련해서 선거 결과에 대해 어떠한 책임 언급이나 사과도 하지 않았으며 “최선을 다했지만 아직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 같다”는 김유정 대변인의 평범한 논평으로 대신했다.

이제 겨우 4개월을 넘긴 정세균 대표 체제에 대해 당내 비판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져 가고 있는 양상이다. 최근 지지율이 바닥을 달리고 있는데, 민주당은 반대급부조차 챙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에는 당을 이끌어갈 ‘스타플레이어’가 없다는 것도 지지율 하락의 원인 중 하나다.

비공개 난상토론
내부 의견 엇갈리기도


한나라당이 박근혜 전 대표, 정몽준 최고위원,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지사 등 차기 대권주자들이 즐비하게 포진해 있고 지지율이 40%대에서 50%까지 근접한 것과 반대로 제1야당인 민주당 지지율에 적신호가 켜졌다. 최근 당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종전보다 5% 정도 하락하면서 현재 당 지지율이 10%대 초반에 겨우 턱걸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 대표는 당 관계자들에게 함구령을 내리고 위기 상황 극복을 위한 해법 찾기에 나섰다. 지도부의 행보가 ‘비상시국’과 다름없다는 것이 민주당 당직자의 전언이다. 자칫하면 한자리수로 지지율이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도 예상된다. 정부·여당의 지지도 하락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사이익도 얻지 못하고 있다. 지도부에 대한 책임론이 불붙을 가능성이 높다. 눈에 띄는 차기 대권주자도 아직 없다는 것을 보면 정권 탈환이라는 지상목표 달성은 물 건너 간 듯한 양상이다.

나름대로 당력을 집중해 사퇴를 요구한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오히려 힘을 받아 자신들의 위상 강화에 나서고 있어 무기력하게 여당에 끌려 다니고 있다는 지적이 당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CBS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11월5일과 6일 전국 19세 이상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한 주간 정례조사 결과, 한나라당은 45.1%로 조사되었다. 전 연령층에서 지지율 1위를 차지한 한나라당은 20대와 50대 이상에서 특히 강세를 보였다.

성별로는 남성의 55.9%가 여성의 33.6%가 한나라당을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반면, 10.29 재보궐 선거 참패와 김민석 최고위원 영장청구로 논란을 빚고 있는 민주당은 전주 대비 5.5% 하락한 19.3%로 나타났다.

지난 11월17일 비공개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는 김 최고위원의 처리 문제를 놓고 격렬한 난상토론이 벌어졌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주선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최고위원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하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는 보증서를 검찰에 제출하자는 제안을 했다. 검찰에 불구속 수사를 촉구하기 위해 민주당 의원 전원이 의원직을 걸고 김 최고위원의 신원보증을 하자는 것.

이에 정 대표는 “각서로 검찰에 압력을 넣으면 중립성을 중시하는 검찰에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며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최고위원이 임시국회가 끝나면 검찰이 김재윤 의원도 구속을 시도할 것이라며 재차 요구하는 동시에 또 다른 최고위원도 동조하자 정 대표는 좀 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면서 짜증섞인 모습으로 토론을 끝내버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평소에는 회의를 진행하면서 좀처럼 감정을 표시하지 않는 정 대표가 이날은 매우 이례적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회의 참석자들이 회의를 끝내고 밝힌 일화다.

한편, 검찰은 11월17일 김 최고위원에 대한 사전구속영장 집행이 차질을 빚고 있는 것과 관련해 민주당을 비판했다. 서울중앙지검 김수남 3차장검사는 “김 최고위원은 이미 범법자가 됐지만 그를 붙들고 있는 민주당에 더 큰 실망감을 느낀다. 지금이라도 김 최고위원 본인과 민주당이 법 집행에 순순히 응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김 차장검사는 “법원이 영장을 발부한 범법자를 보호하는 것이 당론이라니 참으로 애처롭고 안쓰럽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김 최고위원이 사업가 두 명에게서 4억7000여만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것 외에 차명계좌에 추가로 2억~3억원을 입금 받은 사실을 추가로 확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 검찰은 김 최고위원이 작년 8월 중국에서 사업하는 박모씨에게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설 예정이라며 경선을 치르는 데 필요한 자금을 보내줄 것을 요청해 며칠 뒤 자신의 계좌로 2억원을 송금받은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추가 범죄 확인
사실과 다른 부분 찾아내

또 작년 12월에는 중국에서 사업하는 문모씨를 서울 여의도 커피숍에서 직접 만나 문씨 명의로 된 수표 15만 홍콩달러(1788만원 상당)를 정치자금으로 받았으며 올 2월부터 6월까지 14차례에 걸쳐 총 26만5000달러(2억5328만원 상당)를 차명계좌로 송금받은 사실도 밝혀낸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검찰은 김 최고위원이 문씨로부터 송금을 받을 때 자신이 직접 건네준 9명 명의의 차명계좌를 번갈아 사용했으며 2만 달러 이상 송금 때 적용되는 국세청 추적을 피하려 1만9000여 달러씩 송금 받은 것으로 파악했다. 특히 총선을 앞둔 2월 11차례에 걸쳐 집중적으로 송금됐으며 하루 6차례 각각 다른 명의 계좌로 분산 송금된 사실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김 위원이 문씨를 지난 2월 홍콩에서 만났을 때 자신의 차명계좌로 추적을 피할 수 있도록 돈을 나누어 보내달라고 부탁했다는 문씨의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문씨의 진술을 바탕으로 실제로 김 위원의 계좌를 추적한 결과 문씨는 2월21일부터 27일까지 10차례에 걸쳐 8개의 차명 계좌에 1만2200달러∼1만9700달러씩 모두 18만6900달러를 보냈던 것을 확인했다.

뿐만 아니라 검찰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김민석 최고위원이 그의 후원자인 문씨를 정치 재개 활동을 시작하고 난 뒤에서야 처음 만났던 것으로 추정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그동안 김 위원과 홍콩사업가인 문씨의 출입국 기록을 비교 분석한 결과 2007년 12월30일에 두 사람이 처음 대면했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12월30일은 바로 문씨가 여의도의 한 커피숍에서 김 위원한테 15만 홍콩달러(약 1790만원)을 건넨 날이다. 이에 따라 검찰은 문씨가 사전에 김 위원을 다른 사람한테 소개받고 전화 등 간접 접촉을 통해 정치 후원금을 주기로 약속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두 사람이 만난 시점은 둘 사이에 오간 돈의 성격을 규명하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돼 수사에서 김 최고위원의 혐의를 입증하는 주요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 최고위원은 “문씨는 정치활동 하기 전에 처음 만나 순수한 의미에서 나를 지원해준 키다리 아저씨와 같은 분”이라며 일관되게 자신이 일명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르는 문씨를 정치 활동을 다시 시작하기 전에 만났다고 해명했었다.

김 최고 위원은 문씨를 2006년 말 혹은 2007년 초에 처음 만나 유학비를 꾸준히 지원받았다고 말했었다. 검찰은 김 위원의 이런 진술의 신빙성을 확인하기 위해 김 위원의 차명계좌를 포함해 여러 개의 계좌 추적활동을 벌였다. 검찰은 김 최고위원이 문씨로부터 받은 돈이 불법 정치자금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만난 시점을 1년 정도 앞당긴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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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