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강’ 기죽은 야당 실상

여기저기 끼지 못하고…유령 취급?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거대 양당이 정기국회의 쟁점 이슈를 선점하면서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의 존재감이 미약해지고 있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은 새 지도부 체제를 중심으로 도약을 시도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바른미래당은 ‘당 정체성 논란’이 최근까지도 끊이질 않고 있다. 민주평화당은 현직 국회의원들의 ‘탈당설’이 제기되면서 뒤숭숭한 분위기다.
 

지난 20대 총선 결과 다당제 국회가 출범했다.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과 민주평화당(이하 평화당)이 등판하면서 국회는 다당제 체제가 됐다. 다당제 국회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낳았다. 다양한 정책적 목소리를 담을 수 있다는 기대감과 다당제의 이점으로 꼽히는 협의와 합의를 국회에 녹여내기 어렵다는 우려가 공존했다. 다당제 국회는 지방선거와 북한의 비핵화 등 굵직굵직한 이슈를 통과했고, 최근 정기국회의 문을 열었다.

출범 이후
연일 제자리

바미당과 평화당은 존재감을 좀처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10월 정기국회의 첫 일정인 대정부질문서부터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의 그림자에 가려진 형국이다. 

게다가 두 당 내부에선 정기국회를 관통하면서 잡음이 새어나오고 있다. 지지율은 연일 답보상태다. 바미당과 평화당은 정기국회를 통해 가시적인 전환을 모색하는 모양새지만 다소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바미당은 손학규호 출범 이후 내부 결속 다지기에 나섰다. 바미당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간 합당 이후 내부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선 당내 갈등이 후보 간 갈등으로 번졌고, 지방선거 참패로 이어졌다.


바미당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돌입해 당 재건에 나섰다. 이후 바미당은 지난 9·2전당대회를 통해 손학규 대표를 신임 당 대표로 선출했다. 손 대표는 취임 이후 첫 당직 인선서 사무총장에 바른정당 출신 오신환 의원을, 비서실장에 국민의당 출신 채이배 의원을 지명했다. 

전당대회 과정서 불거진 계파갈등을 불식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실제로 손 대표 취임 이후 당내 잡음은 어느 정도 줄어들었다. ‘최고참’인 손 대표는 당 전면에 나서면서 당내 갈등을 진화해 호평을 받았다.

다만 당의 완전한 화학적 결합은 요원해 보인다. 최근 바미당 내에선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동의 문제를 놓고 의원들 간 마찰이 있었다.

바미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지난달 6일 국회 본회의장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서 “여야 모든 정치 세력이 한뜻으로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동의안을 처리하고, 한국의 강력한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자는 대통령과 여당의 요청에 바미당은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김 원내대표는 비핵화의 진전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비준안 처리가 한미 동맹의 균열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우려도 경청할 가치가 있다”며 “국회 결의안을 채택하고, 이후 비준 동의를 논의하자”고 덧붙였다.

그러나 김 원내대표의 연설이 있던 날 바미당 지상욱 의원과 이언주 의원은 국회 비준 동의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지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한반도 비핵화 달성이라는 당의 정강·정책을 제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당 지도부를 비판했다. 이 의원 역시 “북한의 진정성이 의심스러운 상황서 국회가 힘을 실어줄 때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김 원내대표가 비핵화 진척 정도를 짚었음에도 불구하고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손 대표는 같은 날 소상공인·자영업자 직능단체 대표자들과 정책간담회를 가진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우리 의원들은 애국심과 애족심, 애당심을 가져야 한다”며 사실상 지 의원을 겨냥했다. 

민-한 거대 양당 그림자에 존재감 흐릿
바미당, 정기국회서도 당내 잡음 여전

이에 지 의원은 다음날 SNS 페이스북을 통해 “손 대표님께서 생각하시는 애국심, 애당심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다”며 공개 질의했다. 손 대표는 다음 날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지 의원의 공개질의와 관련된 질문에 웃으면서 “됐어, 됐어”라며 즉답을 피했다. 당 의원과 당 지도부가 서로 맞서는 양상이었다.

바미당 지도부는 진화에 나섰지만 최근까지도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동의 여부에 이견이 있었다. 당내 갈등의 중심에 섰던 지 의원은 지도부의 ‘재신임’을 묻기도 했다. 바미당은 지난 1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 열린 의원총회서 판문점 선언 비준동의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김 원내대표는 “판문점 선언 및 평양공동선언 비준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며 “마치 당장 처리를 해 줄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는데, 논의를 시작하자는 말을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내 이견과 갈등을 감안한 듯 ‘의결’보다 ‘논의’에 초점을 맞췄다. 

김 원내대표는 ▲판문점 선언 비준안 비용추계 재산정 ▲북측, 국회 비준과 동일한 효력 갖는 국내법적 절차 진행 ▲북한의 현재 핵 불능화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 등 세 가지 전제조건을 제시하며 비준동의에 있어 신중한 입장을 강조했다.

그러나 지 의원은 전제조건에 대해 “대한민국과 달리 북한은 김정은 1인 체제 국가다. 국내법적 절차는 사문화될 수 있는 소지가 많아 효력이 발생하기 어렵다. 핵 불능화의 노력이란 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씀을 주셔야 한다”라며 조목조목 따졌다. 

특히 “(김 원내대표가) 기자들한테 비준을 꼭 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다니신다는 얘기도 기자들을 통해서 들려온다. 해명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언급했다.

판문점 비준안
갈등 수면위로

그는 “원내대표님과 모든 당직자 분들도 개인의 의견이 마치 당의 뜻인 것처럼 오해가 되는 처신을 신중하게 해주시면 좋겠다”며 “또 그런 일이 생길 때는 신임을 여쭙지 않을 수 없다”고 날을 세웠다.


이번 사안을 통해 바미당은 완전한 결합을 이뤄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일각에선 “당 발전을 위한 건전한 갈등”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안의 무게감을 놓고 봤을 때 하나 된 목소리가 나오지 못한 점은 간과하기 어렵다.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동의 문제는 이번 정기국회의 최대 쟁점 중 하나로 꼽힌다. 바미당은 정기국회의 중대한 사안을 두고 불협화음이 짙어지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당 의원이 지도부를 향해 당의 ‘정강·정책’을 언급하며 비판한 것은 당내 통합이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평화당은 최근 일부 현역의원들의 ‘탈당설’로 뒤숭숭한 분위기다. 평화당 의원들의 탈당설은 지난 추석 연휴 전후로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그 중심에 선 인물은 평화당 김경진·이용주 의원이었다.

김 의원의 경우 추석 연휴 때 내건 귀성인사 현수막 사건이 도마에 올랐다. 통상 국회의원 현수막엔 당명과 당 로고, 당 고유색 등이 실린다. 그러나 김 의원의 귀성인사 현수막엔 당명, 당로고가 빠져있었다. 

당 고유색도 평화당을 상징하는 연두색이 아닌 파란색이었다. 김 의원의 현수막은 파란색 바탕에 ‘고향방문을 환영합니다. 국회의원 김경진 올림’이란 글자가 적혀있을 뿐이었다. 평화당 소속인 점도 드러내지 않은 채 ‘국회의원 김경진’이라고 명시했다. 
 

이를 두고 김 의원의 탈당설에 힘이 실렸다. 일각에선 현수막 바탕색이 파란색인 것을 두고 차후 행선지를 민주당으로 두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됐다.


이 의원은 지난달 27일 tbs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에 출연해 탈당설 내막을 공개했다. 이 의원은 “추석 명절 이전 본회의가 있었는데 저를 비롯한 김 의원과 몇몇 의원들이 본회의 도중에 모여 티타임을 가졌다”며 운을 뗐다. 

이 의원은 “티타임 중 바미당발, 평화당발 향후 정계개편은 어떻게 될지 가벼운 이야기들이 오고갔다”며 “다당제 체제가 필연적으로 양당 체제로 회귀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의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12월 기점으로
탈당설 솔솔!

이어 “그렇다면 12월 쯤 현실화될 것이기 때문에, 김 의원은 어차피 그리 될 바에야 조금 일찍 탈당이라든지 정계개편의 계기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 의원은 “향후 정계개편의 여부는 정기 국회서 선거제도 개편 여부에 달려있고, 이 부분에 대한 민주당의 의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란 이야기가 나왔다”고 덧붙였다. 평화당 의원들의 탈당 의사가 당장 확실시된 것은 아니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두 의원은 공통점이 제법 있다. 김 의원과 이 의원 모두 검사 출신이다. 김 의원은 광주지검서, 이 의원은 서울고검서 부장검사를 지냈다. 이후 두 의원은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나란히 2016년 총선에 출마, 국민의당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김 의원과 이 의원의 의정활동서도 이들의 공통점을 확인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이른바 ‘청문회 스타’다. 김 의원과 이 의원은 최순실 국정 농단 청문회서 활약한 바 있다. 김 의원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의 질의 과정서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며 여론의 조명을 받았다. 

그는 청문회를 통해 ‘쓰까요정’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 의원 역시 청문회서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장관에게 문화계 블랙리스트 존재 여부를 연이어 18번 질의해 자백을 받아낸 바 있다.

평화당 초선의원들의 탈당설이 불거지자 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 1일 YTN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과 인터뷰서 “(초선의원들이)지금은 탈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박 의원은 “약 한두 달 전부터 초선의원 몇 사람이랑 (탈당과 관련한)상의를 했다”며 “당내에 남아서 노선투쟁 같은 것을 해도 좋지만 탈당은 하지 말자고 했다. 그리고 정계개편서 어떤 기회가 오면 함께 당에서 노력해보자고 했다”고 밝혔다.

평화당, 현역 의원 탈당설로 어수선
선거개편 주장하며 분위기 반전 시도

맥락을 살펴보면 평화당은 선거제도 개편 여부를 정계개편의 시발점으로 볼 가능성이 높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통해 의원수를 늘려 교섭단체 지위 확보를 노린다는 해석이다. 바미당 역시 선거제도 영역서 자유롭지 못하다. 좀처럼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지 못하는 상황서 현행 선거제도로 총선을 맞이하기엔 무리가 있다.

지난 1∼2일 리얼미터가 tbs의 의뢰로 진행한 10월 1주차 주중집계에 따르면 바미당과 평화당의 지지율은 각각 6.0%, 2.5%에 불과했다. 이번 조사는 전국 만 19세 이상 유권자 1만2462명에게 통화를 시도해 최종 1003명이 응답을 완료했다. 응답률 8%,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바미당과 평화당은 이번 정기국회서 선거제도 개편을 중앙 이슈로 끌어오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두 당은 선거제 개편을 통해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모양새다. 

최근 바미당과 평화당은 정의당과 민중당, 녹색당 그리고 우리미래 등과 함께 지난 2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선거제 개혁 논의를 촉구했다. 이들 정당은 570여개의 시민사회단체와 정치개혁공동행동을 결성하고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이들은 “올해 정기국회에서도 지난 1년간처럼 정치개혁에 관한 논의가 표류한다면, 20대 국회는 명백히 퇴행적인 국회로 기록될 것”이라며 사실상 민주당과 한국당을 압박했다.

바미당 손 대표와 평화당 정 대표, 그리고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손 대표와 정 대표는 각각 바미당과 평화당의 수장으로 자리하면서 선거제도 개편을 전면에 내세운 바 있다. 이날 손 대표는 선거제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했고, 정 대표는 사실상 민주당과 한국당을 압박했다.

지지율 답보
돌파구 있나

최근 정 대표는 민주당 이해찬 대표, 정의당 이 대표와 함께 지난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방북한 당시 이야기를 꺼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대표와 평양 고려호텔 꼭대기 층 술집서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이 대표가)우리 사회를 개혁의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선거제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 다만 한국당은 선거제도 개편 논의를 위해 필요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들의 명단을 미루고 있는 만큼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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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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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