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검증 끝난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10.01 10:42:24
  • 호수 11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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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엄함 벗고 젊은 감성 가동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드디어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섰다. 최근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에 오른 것. 현대차그룹의 유일한 승계자로서 그룹 내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며 ‘확고한 2인자’가 됐다. 업계선 한층 더 폭넓은 경영 보폭을 보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지난달 14일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부회장으로 승진한 지 9년 만이다. 옛 현대그룹서 분가한 1999년 이래 현대차그룹의 최종 의사 결정자는 늘 정몽구 회장이었다. 

1999년 입사
55개 계열 책임

그룹 관계자는 “정 회장이 글로벌 통상문제 등 복잡한 대외 변수에 더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며 “그룹의 미래 경쟁력 강화와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인사”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에는 원래 ‘총괄 수석부회장’ 자리가 없었다. 정 수석부회장과 윤여철 김용환 양웅철 권문식 현대·기아차 부회장, 우유철 현대제철 부회장, 정태영 현대카드·캐피탈 부회장 등 7명의 부회장이 각자 업무를 책임지는 형태였다. 

정 수석부회장이 이날 신설된 총괄 수석부회장 자리에 오르면서 정 수석부회장은 아래로는 나머지 6명의 부회장을 이끌고, 위로는 아버지 정 회장을 보좌하는 역할로 그룹 내 입지가 확대됐다.


이 때문에 현대차그룹이 올 연말 인사를 대폭 단행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이 그룹 내 6명의 부회장보다 높은 위치서 그룹 전반을 지휘하게 된 만큼 인사를 통해 계열사 장악력을 키우고, 이를 통해 계열사 간의 시너지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정 수석부회장은 현대차와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등 4개사의 등기이사를 맡았지만 현대차 경영에만 관여해왔다. 정 수석부회장은 1999년 현대자동차 이사로 경영 참여를 시작한 뒤 2001년 상무에서 전무로, 2003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05년부터는 기아자동차 사장으로 있다가 2009년 현대차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번 인사로 정 수석부회장은 그룹의 미래사업전략을 짜고 계열사 간 투자를 조율하는 업무를 책임지면서 계열사를 총괄하게 됐다. 자동차(현대·기아차,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등), 철강(현대제철 등), 건설(현대건설 등), 금융(현대카드·캐피탈, 현대차증권 등) 등 그룹 55개 계열사 전반을 책임져야 한다. 

지금까지 정 수석부회장은 현대차의 미래차 투자 등 주요 경영상황을 폭넓게 챙겼지만, 이번 승진으로 정 회장에 이어 회사 경영을 걸머질 명실상부한 ‘2인자’로서 그룹경영 전반에 직접 관여할 수 있게 됐다.

그간 정 회장을 대신해 문재인 대통령과의 기업인 간담회에 참석하는 등 대외 행보서 이미 그룹을 대표해왔지만 이번에 공식적인 직책으로 실질적 리더십이 뒷받침된 셈이다. 이 때문에 이번 인사로 현대차그룹이 ‘3세 경영 체제’에 한발 더 다가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으로 승진
9년 만에 후계자 이미지 벗어 


재계에선 정 회장이 위기 때마다 아들 정 수석부회장의 책임을 확대하며 경영능력을 키워온 점에 주목하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로 기존 산업이 위기를 맞은 시점에 정 수석부회장의 책임을 확대한 것 역시 정 회장의 신중한 결단이라는 의미다.  

정 회장은 2005년 기아차가 적자에 허덕일 때 정 수석부회장을 기아차 사장으로 임명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과감한 디자인 경영 전략으로 K시리즈를 선보이며 위기를 정면 돌파했다. 기아차는 2007년 영업적자 554억원서 2008년 3085억원으로 흑자를 이뤘다. 

정 회장이 정 수석부회장을 현대차 부회장으로 승진시킨 2009년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자동차 시장이 요동치던 때였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3 자동차 기업이 모두 파산 위기에 몰렸다. 정 수석부회장은 당시 공격적인 글로벌 경영으로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다.

또 정 수석부회장은 정 회장 대신 주요 신차 발표회 자리나 행사장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7일 인도에선 ‘무브 글로벌 모빌리티 서밋’의 기조연설을 맡아 “현대자동차를 자동차 제조업체서 스마트 모빌리티 설루션 제공 업체로 탈바꿈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지난 5월에는 헤지펀드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이 추진했던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분할·합병 방식에 반대한 끝에 직접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자율주행·커넥티비티·모빌리티·수소차·전기차 등 자동차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해외 투자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에만 미국·이스라엘·호주·중국·인도·싱가포르 등 11개의 해외 기술 기업에 투자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풀어야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먼저 가장 시급한 건 미국의 관세 폭탄이다. 정 수석부회장의 첫 대외 행보는 ‘미국행’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 대표단 일정도 마다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만큼 급박한 상황에 놓인 현재의 회사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룹 진두지휘 
경영전면 나서

지난달 17일 현대차그룹과 업계에 따르면, 전날인 16일 미국으로 출국한 정 수석부회장은 윌버 로스 상무부 장관 등 미 행정부와 의회 고위인사들과 만났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수입 자동차 관세 부과 문제에 대한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수석부회장은 이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남북 정상회담 때 대통령을 수행하는 방북단서도 빠졌다. 

미국은 현대·기아자동차의 최대 수출 시장 중 하나다. 미국 정부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수입 자동차가 미국 국가 안보에 위협을 줄 수 있다며 최대 25%의 관세를 물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관세폭탄'이 현실화할 경우 현대·기아차의 국내 공장 일부가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기아차 광주공장서 작년 생산한 전체 차량 49만2233대 가운데 미국 수출량은 37.37%(18만3959대)를 차지하고 있다. 쏘울 10만9146대(전기차 포함)와 스포티지 7만3717대가 광주서 생산된 미국 수출 주력 품목이다. 


특히 미국서 판매하는 쏘울은 광주공장서 전량 생산했다. 쏘울은 2009년 출시 이후 미국 시장서 닛산 큐브 등 기존 소형 박스카 시장 대표 모델을 제치고 작년까지 미국 엔트리 CUV(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급 판매서 부동의 1위를 지켜오고 있다. 관세폭탄이 현실화하면 차량 가격이 500만원가량 상승해 가격경쟁서 밀릴 수밖에 없다.
 

더불어 정 수석부회장은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큰 숙제도 있다. 경영 승계를 위해서는 지배구조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런데 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압박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지난 5월 29일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 임시 주주총회를 열 계획이었지만, 시장의 거센 반발로 계획을 잠정 중단했다. 엘리엇이 끼어들어 계획에 반기를 든 것이 시발점이었다. 

이로 인해 주주 신뢰에도 금이 갔다. 정 부수석회장이 엘리엇의 공세에 “흔들리지 않겠다”며 정면돌파 의지를 보였지만, 결론적으로 주주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1차 공세 이후 현대차그룹의 지분을 추가로 사들였다. 현대차 3.0%, 기아차 2.1%, 현대모비스 2.6%를 각각 보유 중이다. 이는 기존 5월 밝힌 것보다 각각 1.5%씩 늘어난 것이다. 

채비를 마친 엘리엇은 직접 지배구조 개편안까지 제시하며 또다시 현대차그룹 흔들기에 나섰다. 일단 현대차그룹이 난색을 표하며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총수일가 지분 30% 이상→20% 이상)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현대차그룹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응책 마련과 지배구조 개편을 동시에 진행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2014년 10조5500억원에 사들인 GBC 신사옥 부지가 4년째 놀고 있는 것도 문제다. GBC 신사옥은 정 회장의 숙원사업으로 지난 4월 서울시 환경영향평가를 조건부 통과했지만 국토교통부 수도권정비위원회서 지난해 12월, 지난 3월과 7월에 잇따라 퇴짜를 맞으며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계열사별 전략 
조율 역할 맡아

수도권정비위원회는 현대차그룹에 ‘인구유발 저감대책 보완 및 세부대책’ ‘저감대책 실효성 확보방안’ 등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이 삼성동으로 몰릴 경우 1만여명의 직원이 이주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분산대책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서울시는 이달 중 현대차그룹 측으로부터 보완책을 받아 재심의를 요청할 계획이지만 연내 착공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시공을 담당하고 있는 현대차그룹 계열사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 역시 사업 지연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해 인허가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만나 신사옥 건립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등 GBC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다. 

재계는 정 수석부회장이 그룹총괄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한 만큼 GBC 문제에 더욱 공을 들일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은 1970년 10월10일 서울서 정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현대를 창업한 정주영 명예회장이 할아버지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작은 어머니, 정몽준 전 국회의원이자 현대중공업 고문이 작은 아버지다. 형제로는 위로 정성이 이노션 고문, 정명이 현대커머셜 고문,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전무로 누나가 셋이다.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 정문선 현대비앤지스틸 전무, 정대선 현대비에스엔씨 대표,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장, 정지이 현대유앤아이 전무,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 정교선 현대백화점 부회장과 사촌지간이다. 

 자동차 위기 돌파 승부수 던져
“세계로∼” 글로벌 행보 가속화

정 수석부회장은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의 장녀 정지선과 1995년 결혼했다. 장인인 정도원 회장은 정 회장과 경복고 선후배 사이로 관계가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수석부회장 1983년 경복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86년 구정중학교(현 압구정중학교), 1989년 휘문고등학교(81회)를 졸업했다. 1993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대학 경영대학원서 MBA 과정을 마쳤다.

정 수석부회장은 일찌감치 현대차그룹의 후계자로 결정됐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사원부터 착실하게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바닥부터 시작하라는 정 회장의 지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1994년 현대정공에 과장으로 입사했으나 1년 만에 미국 유학길을 떠났다. MBA 학위 취득 후 일본 이토추상사 뉴욕지사서 2년간 근무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1999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2002년까지 국내영업본부 영업담당 겸 기획총괄본부 기획담당 상무를 맡았다. 

2002년 국내영업본부 부본부장 전무로 승진했고 2003년 현대기아차 기획총괄본부 부본부장 겸 기아차 기획실장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기아자동차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고 2009년부터 현대자동차 기획 및 영업담당 부회장 재직했다. 2005부터 지금까지 대한양궁협회 및 아시아양궁연맹 회장을 맡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은 재벌 3세인데도 소박하고 겸손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를 두고 할아버지인 정 명예회장의 밥상머리 교육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정 수석부회장은 정 명예회장과 아버지 정몽구 회장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다고 한다. 특히 아버지 정몽구 회장을 대단히 깍듯하게 모신다. 경영권 승계 얘기가 나오면 “아버지가 건재하신데 왜 그런 말이 나오냐”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경영 능력도 검증됐다. 제네시스 브랜드가 성공하면서 경영 능력에 대해 확고한 합격점을 받았다. 워커홀릭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일을 많이 하며 항상 오전 6시30분 출근하는 아침형 CEO로 꼽힌다.

현대차에 젊은 감성을 불어넣고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지난해 6월, 코나 신차 발표회서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나와 관심을 끌었으며 종종 직원들과 카카오톡으로 대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원들이 검정색 세단을 주로 이용하는 걸 알면서도 다크블루 색상의 에쿠스를 타기도 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2017년 7월14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오너 경영인으로서 정 수석부회장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김 공정위원장은 당시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회장이 정의선을 기아차 사장으로 임명하고 그룹 차원서 지원해 기아차를 회생시켰다. 정의선의 능력에 대해 시장에서는 의구심이 거의 없다”며 “그에 비하면 삼성이나 이건희 회장은 이재용에게 경영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는 게 부족했다”고 밝혔다. 

관세, 지배구조…
풀어야할 과제

한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가끔 골프도 함께 친 것으로 알려졌으며 골프와 테니스 실력이 수준급이다. 폭탄주 10여잔은 거뜬할 정도로 주량이 센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BBC의 자동차 버라이어티쇼 프로그램인 <탑 기어>를 즐겨 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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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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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