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여화장실 몰카 주의보

변태들이 대학에 가는 이유는?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학가에 ‘몰카주의보’가 내렸다. 당초 몰카 범죄는 지하철 화장실서 극성을 부렸다. 지하철 역사 내 화장실 벽에 난 구멍마다 의심의 눈초리가 쏠렸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몰카가 설치된 것으로 의심되는 화장실 사진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왔다. 최근 몰카 범죄의 전선이 대학가로 확대되고 있다.
 

대검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성폭력 범죄 중 지난 10년간 가장 급격한 증가세를 보인 게 ‘카메라 등 이용촬영’ 범죄, 이른바 몰카 범죄다. 전체 성폭력 범죄서 몰카 범죄가 차지하는 비율은 2007년 3.9%(564건)였지만, 2014년 24.1%(6735건), 2015년 24.9%(7730건), 2016년 17.9%(5249건)를 기록했다. 최근에는 몰카 범죄가 일상과 버무려졌다는 말이 나올 만큼 관련 이슈가 쏟아지는 추세다.

매년 크게 늘어
갈수록 가관

일반적으로 몰카 범죄라고 하면 지하철을 떠올린다. 사람으로 꽉 찬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을 들이대는 모습이나 역사 내 화장실에 설치된 초소형 카메라를 생각한다. 특히 지하철 역사 내 화장실은 실제로 몰카 범죄의 온상으로 불린다.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하기 위해 작게 뚫어놓은 구멍은 공포의 대상이 됐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그런 구멍 안에 집어넣어 카메라를 부수는 ‘몰카 찌르개’를 구매할 수 있는 곳을 공유하는 게시물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여자들은 가방에 송곳 하나씩을 들고 다녀야 한다’는 말이 최근 들어서는 마냥 우스갯소리로 소비되지 않는다. 그만큼 몰카 범죄가 만연해있다는 방증이다.

문제는 몰카 범죄의 전선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개강 시즌과 맞물려 대학가는 ‘몰카 범죄 주의보’가 내려진 상황이다. 각 대학은 몰카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학생들이 직접 나서서 학내 화장실을 점검하거나 경찰과 함께 몰카 색출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25일 서울대학교 여자화장실서 몰카를 시도한 1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2층 화장실에 몰래 숨어있던 고등학교 남학생 A군을 붙잡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A군은 이날 낮 12시30분께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고 여자화장실에 잠입했다가 이 학교 교수에게 들켰다. 학생들의 신고로 A군은 현장서 체포됐다.

경찰은 현재 A군에게 성폭력범죄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를 두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A군이) 어떤 의도로 여자화장실에 들어갔고, 실제로 몰카를 찍었는지 여부를 확인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과학대학은 A군의 체포 이후 해당 화장실을 폐쇄한 것으로 전해졌다.

성인게시판에 ‘○○대 직촬’
학교 측 ‘화들짝’ 경찰 고발

서울대서 몰카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7월 여성 중심 커뮤니티 ‘워마드’서 서울대에 몰카를 설치했다는 게시글이 올라오면서 학내가 발칵 뒤집어졌다. 워마드에는 7월29일 ‘서울대 중앙도서관 남자 화장실 몰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어 ‘학교본부 몰카’ ‘인문대 몰카’ 글이 잇따라 게재됐다. 

게시된 글이 실제 불법 촬영물과 관련된 내용인지는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사안이 확산됐고 서울대는 대응에 나섰다. 대학본부는 지난달 8일, 관악경찰서와 관악구청으로부터 장비와 인력을 지원받아 중앙도서관과 학생회관, 인문대, 자연대 화장실 등에서 몰카를 탐지했다. 탐지 결과 몰카는 발견되지 않았다. 
 


서울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학내 화장실 1700개 전체를 대상으로 몰카 설치 여부를 탐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대 총학생회도 강력히 대응했다. 이들은 지난달 13일 ‘서울대 몰카’ 게시글을 올린 회원 3명을 조사해달라는 총학생회장 명의의 고발장을 관악경찰서에 제출했다. 신재용 총학생회장은 “서울대 학내 불법촬영 카메라 설치와 유포 의혹을 받는 이용자 전부를 고발한다”며 “워마드에 올라온 글이 비밀게시판에 올라와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어 “경찰이 진상조사를 하고 음란물 유포죄와 명예훼손죄에 해당하면 엄히 처벌해주길 바란다”며 “학내 구성원의 불안과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경찰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또 “총학이 확인한 3건의 게시글 외에도 서울대 구성원을 대상으로 몰카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라며 “워마드 내 서울대 몰카 설치와 유포 의혹이 있는 게시글 모두를 조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워마드
미러링?

연세대도 몰카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다. 워마드에 연세대에 몰카를 설치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온 것. 

서울 서대문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달 12일 워마드에 ‘연세대 몰카 후드남’ 등의 문구가 들어간 제목의 게시글이 연달아 올라왔다. 연세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는 바로 다음날 고발장을 접수했고, 경찰은 음란물 유포 혐의로 내사에 착수했다.

연세대 총학 비대위 SNS에는 “8월13일 연세대 한 학우가 총학생회 페이스북 메시지로 워마드라는 사이트에 올라온 게시글의 캡처본을 보내왔다. 해당 게시글은 제목을 제외한 모든 내용이 ‘*’ 처리돼 직접 확인할 수 없었으나 제목의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연세 학우들이 범죄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돼 수사기관에 의뢰하기로 했다”고 올라왔다.

워마드발 남성 몰카 파문에 고려대도 자유롭지 못했다. 앞서 지난 5월 워마드에 고려대 남자화장실에서 찍힌 것으로 보이는 불법촬영 사진이 유포됐다. 고대 총학생회는 SNS를 통해 “금일 워마드에 고려대 캠퍼스 내 화장실서 촬영된 몰래카메라 영상(사진)이 유포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며 “경찰에 고발장을 제출하고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내용의 글을 게재했다.

총학은 “성별을 불문하고 몰래카메라 촬영 및 유포는 중대한 범죄 행위로 미러링이란 목적으로 결코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 저희의 입장임을 분명히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성평등센터 등 교내 관련기관과 협조해 사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는 한편 학내 화장실에 불법촬영 카메라가 설치돼있는지 전수조사 한다는 방침이다.

고대에서는 여성의 신체 일부를 몰래 촬영한 것으로 의심되는 30대 남성이 현행범으로 잡힌 일도 있었다. 지난 6월 서울 성북경찰서는 고려대 안암캠퍼스에서 B씨를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 위반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잡힌 B씨의 휴대폰에는 여성의 하체 일부분이 찍힌 사진 10여장이 저장돼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몰카 설치 가능성을 의심하고 열람실 등에 대한 탐지 작업도 벌였지만 카메라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 조사에서 B씨는 자신이 고대 졸업생이며 현재 직업 없이 열람실서 취업준비 공부를 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한양대 역시 워마드의 표적이 됐다. 앞서 5월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 총학생회는 SNS를 통해 “5월10일 오전 10시25분01초.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워마드에 ‘어제자 한양대 ㅇㄹㅋ캠 남자화장실 나사몰카 올린다’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업로드됐다. 

학생인권위원회는 “해당 사건에 대해 5월12일 오후 6시50분경 제보를 받았고 오후 7시경 안산 상록경찰서에 문의했다”고 전했다.

이어 총학은 해당 사건에 대한 고발장을 작성했고 상록경찰서에 협조 공문을 보내 캠퍼스 내 위치한 모든 공공 화장실을 대상으로 몰카 점검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우리 학교 모든 구성원들의 안전과 권리를 위해 가해자를 찾아낼 것”이라며 “해당 사안이 해결될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동국대에는 몰카 ‘망령’까지 등장했다. 학교서 찍힌 몰카 동영상 두 개가 12년 만에 다수의 음란사이트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 

동국대 총여학생회는 해당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고 있다는 내용의 제보를 받고 자체 조사를 벌여왔다. 총여학생회는 도입부에 학교 건물 외관이 또렷이 노출돼있고, 제목에 동국대가 적혀 있다는 점을 들어 이 영상이 학내 화장실서 몰래 촬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영상이 2006년 온라인상에 한차례 퍼졌던 동영상과 동일한 영상인 것도 파악됐다. 원정 총여학생회장은 “처음 유포 당시에는 디지털 성범죄가 본격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을 때라 제대로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한다”며 “이로 인해 동영상에 촬영된 피해자 다수가 현재까지도 자신이 몰카에 찍혔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할 가능성이 커보인다”고 설명했다.

동국대에선 몰카 의심 사건도 일어났다. 동국대 서울캠퍼스서 한 남학생이 여자화장실서 나오다 붙잡힌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지난달 13일 동국대와 관할경찰서에 따르면 이 남학생은 현재 한 단과대 학생회 간부로 활동하고 있는 C군이다. 

그는 지난달 6일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이 대학 사범대 건물 1층 여자화장실서 나오다 마침 이곳 도서관서 공부를 하고 귀가하던 체육교육과 한 남학생에게 붙잡혔다.

체육교육과 남학생은 C군에게 인적사항과 여자화장실서 나온 경위를 묻고 ‘캠퍼스 폴리스’에 바로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캠퍼스 폴리스는 사건현장 내부에 몰카 설치여부 등을 확인했다. 다행히 몰카는 설치돼있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C군은 사건 발생 이후 SNS 등을 통해 사과문을 게재했다. 그는 “당시 지인들과 충무로서 과음을 하고 집에 귀가하는 과정서 술을 깨기 위해 학생회실로 향했고 만취 상태서 학교로 올라가던 중 구토가 나 학림관 1층 여자화장실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그는 “화장실서 나왔을 때 한 학우가 붙잡고 여자화장실서 나온 경위를 물었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서 소속과 이름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면서 자리를 나왔다”고 해명했다.

학생들은
불안 떨어

한국해양대에선 고교생이 도서관 여자화장실서 몰래 촬영하다가 적발된 사례가 불거졌다. 부산영도경찰서에 따르면 D군은 지난 4월 해양대 도서관 여자화장실서 스마트폰을 이용해 한 여대생을 몰래 촬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 여대생은 화장실 안에서 우연히 위를 올려다보다 카메라를 발견하고 소리친 후 주변에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D군은 범행 직후 사진을 삭제하고 혐의를 부인했지만 여학생들이 화장실 앞에 설치된 CCTV를 근거로 추궁하자 범행을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D군은 경찰 조사에서 “시험기간에 대학 도서관으로 공부하러 갔다가 여성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다”고 진술했다. 

해양대는 사건 발생 후 몰카 범죄가 발생할 경우 경찰 신고를 당부하는 경고문을 부착했다.

졸업생·고교생이 찍기도
아무나 들어갈 수 있어서?

전남대 예술대학원서 누드모델 몰카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지난 5월 광주북부경찰서는 전남대 예술대학원 모델수업 과정서 누드모델을 몰래 촬영하거나 강제로 만졌다는 성추행 의혹에 대해 내사에 착수했다. 

지난 3월 말부터 5월까지 전남대 모델수업에 참여한 누드모델 E씨는 ‘나는 누드모델입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통해 수업 중 대학원생으로부터 몰카와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3월28일 오후 2∼5시 진행한 대학원 수업서 대학원생 F씨가 동영상을 찍었고, 그 동영상에 저의 나체가 찍혀있다고 몇몇 대학원생이 제보해줬다”며 “F씨에게 영상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고, F씨는 화를 내면서 영상을 지웠다. 이 과정서 지도교수는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 5월9일 대학원 수업서 F씨가 또 다시 저를 불러 사진 한 번만 찍으면 안 되냐고 물어와 당황스러움을 넘어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며 “수업시간 중 포즈를 취하고 있던 저의 몸을 자신이 원하는 포즈로 바꾸기 위해 다가와 몸을 만졌다”고 주장했다.
 

경찰조사 결과 F씨는 60대 여성 대학원생으로 밝혀졌다. 전남대는 “E씨가 F씨로부터 대면사과와 사과문을 받고 대자보를 자체 수거했다”고 밝혔다. F씨는 “나이 먹어 그림에 욕심을 부리다 피해자께 큰 실수를 범해 송구하다”며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한다”고 E씨에게 직접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대 예술대학장과 부학장도 피해자에게 사과했다.

앞서 홍익대학교서 전남대 사건과 비슷한 일이 있었다. 지난 5월 워마드 게시판에는 홍대 회화과 크로키 수업 중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 모델의 나체 사진이 올라와 논란이 됐다. 홍대와 학생회는 당시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백을 유도했지만 사진을 촬영하고 게시한 당사자가 나타나지 않자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조사 결과 사진을 유출한 것은 현장에 있던 동료 모델 G씨인 것으로 드러났다. G씨는 경찰 조사 과정서 쉬는 시간에 휴식 공간을 사용하는 문제를 두고 피해자와 다툼을 벌여 이 같은 행동을 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서 몰카 문제가 자주 불거지는 이유로는 높은 접근성을 꼽는다. 대학은 외부인이 들어가도 알아볼 수 없고 제재를 가할 근거도 없다. 도서관의 경우 졸업생도 사용이 가능하다. 실제 고대 도서관 몰카 사건을 보면 졸업생인 가해자는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도서관을 이용했다.

한편 홍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은 여성들이 거리로 나오는 데 결정적인 도화선이 됐다. 집회에 나온 여성들은 검찰과 경찰이 홍대 사건에 대해 ‘불평등 수사’를 했다고 주장했다. 몰카 편파수사 규탄 집회는 대규모 여성 집회로 발전, 여성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홍대 사건은
1심서 실형

지난달 12일 서울서부지법 형사6단독 이은희 판사는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로 구속 기소된 G씨에게 징역 10개월, 성폭력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이 판사는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인격적 피해를 줬고 사진 유포의 파급력을 고려하면 처벌이 필요하다”며 “남성혐오 사이트에 피해자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나게 해 심각한 확대 재생산을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G씨와 검찰은 현재 모두 항소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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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