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천빙상장 ‘황제 대관’ 의혹

‘인천의 전명규’ 황금시간대 독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국 빙상계는 수십 년간 전명규 전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이 만들어낸 ‘빙상강국’이라는 빛에 취했다. 그 이면에 갑질과 파벌 그리고 독점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는 사실은 ‘금메달’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렵게 드러난 어둠은 그 근원을 알 수 없을 만큼 뿌리가 깊었다. 최근에는 인천 빙상계에도 ‘또 다른 전명규’가 존재해왔다는 소문이 불거졌다.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을 치른지 꼭 30년 만에 강원도 평창 일대서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하 평창올림픽)은 개최 전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국정 농단 사태로 모두가 실패를 점쳤지만 평창올림픽은 예상 밖의 성공을 거뒀다. 금메달 8개, 종합순위 4위라는 당초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질적 향상을 이뤄낸 대회였다는 평을 받았다.

성공한 대회?
어두운 진실

하지만 마냥 성공적이라고 하기엔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이하 대한빙상연맹)과 전명규 전 대한빙상연맹 부회장이 축제의 오점으로 남았다. 여타 대회와 마찬가지로 빙상 종목서 빼어난 성적을 거뒀지만 그 과정엔 논란이 가득했다. 진상조사 요구가 빗발쳤고 대한빙상연맹은 청산해야 할 적폐로 지목됐다.

지난 5월23일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가 합동으로 실시한 대한빙상연맹에 대한 특정감사 결과가 발표됐다. 평창올림픽 과정서의 여러 논란과 의혹을 밝히기 위해 실시한 감사였다. 감사 결과서 주목할 점은 ‘특정인물’로 지목된 전 전 부회장이 한국 빙상계에 끼친 막대한 영향력이다.

그는 권한도 없이 대한빙상연맹 업무에 개입했고 부회장으로 재임할 당시에는 권한을 남용해 국가대표 지도자의 징계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사임한 이후에도 대한빙상연맹 업무에 전 전 부회장의 입김이 미쳤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한국체육대학교(이하 한체대) 빙상장이 특정인들에게만 부당하게 대관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그 배후에 전 전 부회장이 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교육부의 추가 현장 조사 결과 의혹은 사실로 확인됐다. 

전 전 부회장은 빙상장 사용 허가 없이 전 한체대 조교가 자신이 지도하는 고등학생을 데리고 대학생들과 빙상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빙상계 관계자는 “전명규 전 부회장의 영향력은 한체대 빙상장서 나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훈련하려는 사람에 비해 빙상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서 대관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은 엄청난 권력이라는 설명이다. 

최근 전 전 부회장의 빙상장 대관 전횡과 똑같은 사례가 인천 빙상계서 일어났다는 의혹이 나왔다.

빙상장 운영 과정서 전횡 의혹
“마치 개인 사유시설처럼 사용”

선학국제빙상경기장(이하 선학빙상장) 운영 과정서 조성만 인천빙상경기연맹(이하 인천빙상연맹) 부회장이 ‘갑질 대관’ ‘대관 장사’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 

2015년 3월 개장한 선학빙상장은 인천에 딱 하나뿐인 빙상경기장이다. 주경기장(지상)과 보조경기장(지하) 등 두 면의 빙판에 7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다. 관람석은 3200여석 규모다.


앞서 2015년 2월 말까지는 동남스포피아 아이스링크장이 인천 유일의 빙상장이었다. 1993년 개장한 동남스포피아는 2004년 재정난으로 폐장될 위기에 처했지만 박대성 인천빙상연맹 회장이 인수하면서 명맥을 이어갔다. 동남스포피아에는 박 회장 외에도 조 부회장, 정○○ 이사 등 인천빙상연맹 관계자들이 포진해 있었다.

선학빙상장의 개장과 맞물려 동남스포피아의 폐장이 결정됐다. 선학빙상장은 인천시체육회(이하 체육회)가 인천시의 수탁을 받아 관리하기로 했다. 이때 동남스포피아 소속 강사는 물론 정빙기 운전원까지 선학빙상장으로 옮겨왔다. 

선학빙상장 관계자 A씨는 “시청 공무원과 체육회 관계자들이 있긴 했지만 그들은 허수아비였다”며 “실질적인 운영은 동남스포피아 출신 관계자들이 다 했다”고 전했다.

실제 선학빙상장 별동에 위치한 사무실에는 ‘(주)동남스포피아, 인천광역시빙상경기연맹, 인천광역시장애인빙상경기연맹’이라고 쓰인 대형 스티커가 지난해 4월까지 붙어 있었다. A씨는 “인천빙상연맹은 동남스포피아와 동격으로 보면 된다”며 “강사, 정빙기 관리, 매점 운영까지 돈이 오고가는 자리에 모두 동남스포피아 관계자가 있었다”고 말했다.

독점한 대관
장사했나?

또 A씨는 선학빙상장으로 넘어온 동남스포피아 관계자들이 빙상장 대관에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틈을 내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조 부회장과 그의 측근들이 빙상장 대관을 독점했다고 강조했다. 

대관은 선학빙상장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실제 ‘2017년 선학국제빙상경기장 수입 현황’에 따르면 매출 17억원 중 8억9000만원가량이 대관 수입이었다.

선학빙상장의 경우 지상에 위치한 주경기장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반인에게 개방돼있어 그 이후 시간대부터 대관이 가능하다. 지하의 보조경기장은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는 대관용이다. 지상은 쇼트트랙과 피겨 선수들이, 지하는 아이스하키팀이 주로 사용한다.

대관을 하려는 사람들은 오후 6∼8시 시간대를 가장 선호한다. 선수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 훈련하기에 좋은 시간대기 때문이다. 오후 8∼10시, 오후 10∼12시 시간대도 선호도가 높다. 

이보다 더 늦어지면 다음날 선수들의 학교 수업에 지장이 있어 피겨나 쇼트트랙 강사들은 오후 6∼12시 대관을 잡기 위해 혈안이 돼있다.

대관 업무에 밝은 빙상계 관계자 B씨는 “황금시간대 대관, 특히 지상의 주경기장을 독점한다는 것은 빙상 강습을 통한 수익 사업을 독점한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라며 “조 부회장과 그의 측근들이 오후 6∼12시 시간대를 차지하고 다른 강사들의 진입을 막았다”고 주장했다.

B씨는 2017년 2월 대관표를 예로 들었다. 오후 5∼6시에는 ‘인천빙상’과 ‘장애인꿈나무’가 대관했다. 장애인꿈나무는 인천장애인빙상경기연맹 박○○ 전무이사가 맡고 있다. 오후 6∼8시에는 ‘엘리트피겨’ ‘엘리트쇼트’ 등이 탄다.


B씨에 따르면 엘리트피겨는 인천시 소속 피겨선수팀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인천 등록 선수들과 타지역 선수 희망자, 개인 레슨생들로 이뤄진 사설 피겨클럽이다. 클럽 운영과 수업은 조 부회장의 제자이자 인천빙상연맹 이사로 활동해온 정OO씨가 맡고 있다. 오후 8∼10시는 ‘조성만’ ‘킬러웨일즈’ 등이 빌렸다.

B씨는 “조 부회장은 선학빙상장을 마치 개인 사유시설처럼 사용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조 부회장의 대관 독점 의혹이 인천 빙상계에서는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라고도 했다. 

선학빙상장서 대관 업무를 봤던 체육회 관계자 C씨도 조 부회장의 대관 독점 의혹에 대해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달마다 다음달 대관 일정을 정하기 위해 회의를 하는데 매번 비슷한 사람들이 왔다”고 덧붙였다.

직접 피해를 당했다는 사례도 나왔다. 또 다른 빙상계 관계자 D씨는 “대관회의 날짜를 도통 알려주질 않았다”며 “25일에 자기들끼리 미리 대관회의를 해놓고 내게는 29일쯤 돼서야 남은 자리를 잡으라고 통보가 왔다”고 토로했다.

측근들에게
좋은 시간대

D씨는 지하의 보조 경기장이나 오전 6∼10시 시간대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오전에는 선수들이 학교에 가야 한다”며 “그래도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시간대라도 잡아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조 부회장은 이 같은 의혹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전화통화서 “선학빙상장 개장 초기에는 대관이 다 차지도 않았다. 쓰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관내 소속 선수들이 그 시간대에 타게 된 것”이라며 “일단 우리 지역 선수들이 먼저 사용하고 남는 시간을 따지는 게 맞지 않느냐고 시에 주장해왔다. 어느 시도를 가도 자기 지역 선수들이 먼저 쓴다”고 해명했다. 

이어 “인천빙상연맹 관계자로서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며 “기존에 타던 선수들을 우선으로 하다 보니 의혹이 생긴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조 부회장의 대관 관련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다. 조 부회장이 개인계좌로 대관비를 받아 횡령했다는 의혹이 추가로 떠올랐다. 일반적으로 회의를 통해 대관 스케줄이 결정되면 신청서를 제출한다. 그럼 체육회에서는 허가승인 공문을 내려 보낸다. 이 양식에 체육회 수익금 통장 계좌번호가 적혀있다.

대관비는 시간당 평일 10만원, 주말 13만원이다. 2014년 8월12일부터 2017년 12월31일까지 체육회서 선학빙상장을 수탁 운영한 기간 동안 발생한 모든 대관비는 체육회 통장으로 입금돼야 했다.

하지만 실제 대관비의 일부가 조 부회장의 개인계좌로 입금된 사실이 확인됐다. 이 과정서 ‘이중대관’이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조 부회장이 대관을 독점한 뒤 사용하지 않는 시간대를 다른 강사들에 팔아 그 수익을 챙긴다는 의혹과 함께 나온 표현이다.

조 부회장의 개인계좌로 대관비를 보낸 적이 있다는 관계자 E씨는 “대관을 잡을 수가 없어 전전긍긍하던 중에 조 부회장이 대회 참석차 해외로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조 부회장이 잡아둔 시간대가 비어 타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자기한테 돈을 내고 타라’고 해서 개인계좌로 입금했다”고 언급했다.

수탁운영 동안 관리 엉망
인천시 “문제 없다” 답변

E씨가 조 부회장의 개인계좌로 돈을 넣은 시기는 2016년. E씨는 자신과 같은 일이 당시에는 많았다고 말했다. E씨에 따르면 조 부회장은 “(대관)빈 시간에 얘기해라, 타고 싶으면 얘기해라” 등의 말을 했고, 대관을 잡지 못한 강사들은 그의 개인계좌로 돈을 넣고 빙판을 사용했다.

조 부회장은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전해왔다. 그는 개인계좌로 대관비를 받은 적이 있다고 시인하면서도 “2016년 당시 체육회서 단체 이름으로만 대관비를 받았기 때문에 학부모와 강사들의 돈을 모아서 낸 것”이라고 해명했다.

편의상 자신의 계좌를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이어 “(대관비를)횡령했다면 개인계좌로 받은 돈을 (체육회에)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다 냈다”며 “그 돈을 개인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체육회가 수탁 운영을 하던 무렵 선학빙상장 대관비 관리는 엉망이었다. 선학빙상장이 민간위탁 시설로 전환되기 불과 몇 개월 전까지도 미납된 대관비는 1억원에 달했다. 선학빙상장서 대관업무를 봤던 체육회 관계자 F씨는 인수인계를 받고 황당했다고 했다.

2017년 8월 기준 대관비 미납 금액은 1억원에 이르렀고 이 중 절반 정도인 4000만∼5000만원이 인천빙상연맹 몫이었다. 약 4∼5개월 정도의 대관비가 밀린 것이다.

또 2017년 8월 대관표를 기준으로 7월 대관비를 추산하면 6800여만원인데 반해, 실제 잡힌 수입은 3400여만원에 불과했다. 약 3000만원이 누락돼있던 것. 인천시 체육시설관리운영조례에 따르면 체육시설 사용료는 사용허가를 받음과 동시에 납부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대관비를 내지 않으면 빙상장을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F씨의 말과 수입 내역으로 추정해보면 대관비를 내지 않고 빙상장을 이용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조 부회장은 “체육회서 청구서를 보내야 대관비를 내는데, (체육회서)공문을 몰아서 보내거나 누락된 일이 있었다”며 “또 청구서에 오차가 있어 이를 조율하는 과정서 대관비 납부가 늦어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F씨는 “이전 담당자가 결재한 날짜와 대관표를 비교해봤다. 청구서가 늦게 들어갔다는 건 말도 안된다”고 반박했다.

이어 “조 부회장의 해명대로면 인수인계 직후 인천빙상연맹서 대관비를 납부했어야 했는데, 1차, 2차, 3차 독촉 공문까지 보낼 동안 받지 못했다”며 “4개월여 동안 인천빙상연맹, 조 부회장과 싸운 끝에야 (대관비를)다 받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선학빙상장이 민간 위탁으로 전환되는 과정서 인천빙상연맹이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 마지 못해 미납금을 냈다는 소문도 돌았다.

돈 안 내고
마음대로?

당시 선학빙상장의 최종 관리주체였던 인천시청 체육진흥과는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소문일 수도 있고…”라며 “별도의 행정조치나 징계가 이뤄지진 않았다. 보통 그런 일이 있었다면 보고가 진행되고 상응하는 조치가 이뤄지는데 결손 처리한 게 없고 대관비에 따른 세입조치도 끝난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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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채 상병 특검법)이 야당 주도로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7월19일 사건 발생 10여개월 만이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반발하며 퇴장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서 ‘이태원참사특별법’을 합의 처리된 뒤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하며 채 상병 특검법 상정을 요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사건을 초동 조사하고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서 대통령실·국방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경찰 이첩 개입 의혹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를 수용해 의사일정 변경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고, 재석 168명 전원 찬성표로 가결됐다. 표결에는 야당만 참여했고, 국민의힘은 반발해 사실상 표결에 불참했다. 민주당은 원래 본회의 안건에 없었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기 위해 의사일정 변경을 우선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은 이번 본회의에 합의되지 않은 법안이 올라가는 것 자체를 반대해 왔다. 당초 김진표 의장도 여야가 합의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양당 원내대표를 의장석으로 불러서 마지막으로 중재를 시도했지만 5분 뒤 김 의장은 여러 가지로 고려한 끝에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양당의 마지막 협상도 결렬됐고, 국민의힘에서는 유일하게 자리에 남았던 김웅 의원만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방청 중이었던 해병대 예비역연대 법률 자문, 김규현 변호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년의 해병대 예비역들도 연신 눈물을 흘렸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야당이 강행 처리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로텐더홀서 규탄대회를 열고 “그간 우리 당은 이태원참사특별법에 합의 처리하는 조건으로 의사일정에 동의했다. (민주당과 김 의장이)채 상병 특검법을 애초에 처리하겠다고 했으면 저희는 오늘 본회의 의사일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모처럼 이태원법 합의 처리를 통해 협치 분위기가 조성되고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있는데 오늘 의사일정 변경까지 해서 채상병법을 처리하겠다는 것은 정치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채 상병 특검법 표결 시 본회의장을 퇴장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채 상병이 의사일정으로 상정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규탄대회 뒤 거부권 행사 건의와 관련한 질문에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국힘 퇴장 속 야당 전원 찬성 조각난 협치···대통령 또 거부?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 의사일정 변경안을 제출한 상태다. 이날 본회의는 이태원특별법 처리를 위해 여야 합의로 잡은 일정인 반면, 여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상황서 입법을 강행하기 위해 의사일정을 변경해 본회의 부의를 시도하겠다는 의도였다. 대통령실은 이날 야당의 강행 처리 예고를 예의주시하면서도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서 “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서 채 상병 특검법을 의사일정까지 바꿔가면서 일방 강행 처리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 표명은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실장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공수처와 경찰이 이미 본격 수사 중인 사건인데도 야당 측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특검을 강행하려고 하는 것은 진상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권에선 채 상병 특검법 자체의 법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이미 수사 중인 사안에 특검을 도입하는 배경에 정쟁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바라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서 진행 중인 수사가 끝난 다음, 그 과정이나 결과를 토대로 특검 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야당이 특검을 당장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대통령실은 무엇보다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해병대수사단에 수사권이 없어졌기 때문에 야권이 주장하는 ‘수사외압’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병대수사단이 기초 조사는 할 수 있겠지만, 관계자 수십명을 소환하고 연루자가 몇 명이고 하는 것은 법에 규정된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당시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의 ‘월권’ 가능성을 지적한 셈이다. “정치적 의도” 대통령실 발끈 또 과거 공수처 설치와 군사법원법 개정을 주도했던 민주당이 특검을 추진하는 모순을 거론하며, ‘참사의 정쟁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분위기다. 이날 정 실장은 “현재 공수처와 경찰서 철저한 수사를 진행 중이므로 수사 당국의 결과를 지켜보고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공수처와 경찰이 우선 수사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특검 도입 등의 절차가 논의되고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공수처는 민주당이 패스트트랙까지 동원해 설치한 기구다. 당연히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는 것이 상식이고 정도”라며 “지금까지 13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야당이 단독으로 주도한 이유도 있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서 윤 대통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수사를 왜곡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관련 정황은 이미 상당 부분 나왔다. 국방부는 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들의 혐의를 축소하려 했고, 경찰에 넘긴 수사기록도 매끄럽지 않은 과정을 통해 회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조율한 흔적도 엿보였다. 국민의힘은 특검법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서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공수처 수사가 1년 가까이 진척을 보이지 않으면서 야권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과거 대통령실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조그마한 사고’라고 언급한 사건도 국민적 분노를 유발했다. 지난 3월22일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 매체와 인터뷰서 ‘조그마한 사고’로 표현하고 “전 지휘관이 법적인 문책을 받는 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실언한 바 있다. 더구나 공수처는 지난해 8월 고발장을 접수한 이후 인력 부족, 수사 의지 등을 핑계로 현재까지 ‘수사 진행 중’이라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해병대를 비롯한 국민 여론도 특검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눈물 흘린 해병들 왜? 해병대예비역연대는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채 상병 특검법 상정과 통과를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 모여 “채 상병 특검법 통과, 박정훈 대령 탄압 중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같은)이런 세력들이 우리나라의 집권여당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은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이 나라의 안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국민의힘과 대통령은 민심을 외면하지 말고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하길 바란다”고 외쳤다. 해병대예비역연대에 법률자문을 하고 있는 해병대 출신 김규현 변호사는 “(국민의힘은)처음엔 ‘독소 조항이 있다’고, 지금은 ‘공수처와 경찰이 수사 중이니 그 수사가 끝난 다음에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과거 특검 때에는 (앞서)경찰·검찰이 수사를 안 했는가”라고 되물었다. 사실상 가장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방법은 법정 수사 기간을 최대 3개월로 정해놓고 있는 특검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병대 측은 이날 “3개월이 지나면 우리 군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안보에 전념할 수 있고, 정치권도 채 상병 문제를 일단락하고 지금 산적한 안보, 민생 정책을 논의할 수 있게 된다”며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수사를 기다리며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채 상병 문제로 정쟁을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국민의힘은 오후 2시에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전원 참석해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집회를 마친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 45명은 채 상병 특검법의 상정·통과 여부를 보기 위해 곧장 국회 본회의장으로 이동했다. 앞서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민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후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지난달 3일 본회의 자동 부의 요건을 충족했다. 여야는 지난 1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에는 합의했지만, 채 상병 특검법과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안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통한 것이다. 1년 가까이 진척 없는 수사 역풍 뻔한데···용산 선택은? 특검법 통과에 대해 대통령실은 야당을 향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수세에 몰린 대통령실이 야당을 지적할수록 부정 여론만 키우는 분위기다. 더구나 대통령실은 스스로가 수사 대상이 되는 사안서 ‘협치’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으나, 이로 인해 역풍을 맞게 되는 형국이다. 당장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용산의 뜻을 따를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어렵사리 여당 의원들을 단속하더라도 다음 달에 시작하는 22대 국회에서는 궁지에 내몰릴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신중한 모습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거부권을 행사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며 “김진표 국회의장은 합의 정신을 존중하는 분”이라고 일축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여야 합의 없이 거대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들에 대해선 ‘과도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젊은 병사의 죽음’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인 데다 야권과 언론이 국가안보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 등 대통령실 연루 의혹을 잇달아 제기한 상황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당의 총선 참패 한 달여 만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다. 국회 재표결 시 여당 이탈표도 우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 회담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의 적극적인 수용을 요구한 데 대해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것도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공수처는 특검 출범 여부와 별개로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 외압 의혹’과 관련된 핵심 인물들을 불러 조사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방부가 채 상병 사건을 회수하고 재조사하는 과정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대통령실 등 ‘윗선’으로부터 외압이 있었는지 의혹을 풀어줄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환조사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수사는 진행 중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는 지난 2일 오전 9시25분쯤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공수처는 박 전 직무대리를 상대로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재조사한 후 혐의자를 축소해 경찰로 넘기는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 등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