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금고 이사장의 이상한 공약

때가 어느 땐데…장기집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새마을금고 비상근 이사장의 연임 제한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이는 올해 3월 새마을금고중앙회장으로 선출된 박차훈 회장이 지지층인 현직 이사장들의 임기보장을 위해 내세운 ‘비상근 이사장 연임제한 폐지’ 공약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은 취임 이후 각종 금융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데다 그를 둘러싼 구설도 계속되고 있다. 이사장 선출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과 함께 해결책을 위한 조직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새마을금고법에 따르면 이사장의 임기는 4년 연임제로 2번 연임할 경우 최대 12년까지 직을 유지할 수 있다. 이사장의 임기제한이 있기 전까지는 무려 40년간 이사장을 역임한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이상한 공약
사실상 종신직

지난 2007년 정부서 새마을금고법을 개정해 한차례 연임만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2011년 ‘이사장 연임횟수 연장’에 대한 금고법이 국회에 상정, 2회 연임으로 바뀌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그러던 중 올해 3월 제17대 새마음금고중앙회장으로 선출된 박차훈 회장이 선거공약으로 ‘비상근 이사장 연임제한 폐지’를 내세워 각 새마을금고 이사장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당선됐다.

박 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비상근 이사장 연임제한 폐지’ 에 대한 설문조사를 각 금고에 실시해 71.8%(822개 금고)의 찬성을 얻어 금고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과 관련해 최근 관계자라고 밝힌 A씨는 “이번에 당선된 새마을금고 중앙회장이 선거 공약으로 ‘전국 새마을금고이사장 동시선거’를 통해 ‘임기를 연장’하고 장기적으로는 연임제한을 폐지하고자 했으나, 선거 공약 지지층인 현직 이사장들이 임기연장 혜택을 보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자 비상근이 이사장으로 전환 시 연임제한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뢰받는 기관 만들 것” 포부로 취임
부정선거 의혹에 ‘종신직’ 추진 잡음

즉 연임 제한에 해당되는 이사장들이 새마을금고법 개정 이후 임기가 만료되기 전 상근에서 비상근으로 전환하는 경우 연임 제한 없이 이사장 선거에 출마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A씨는 “사실상 종신직으로 이사장을 할 수 있도록 새마을금고법을 개정하는 것”이라며 “이 같은 개정은 새마을금고의 발전을 저해하고 이사장들의 사욕을 채워주는 악법이 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서민금융을 선도한다는 새마을금고가 이사장들의 종신집권을 위한 금고법 개정에만 치중해 본인들의 사리사욕만을 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이사장 선출 관련)선거법은 합리적인 방법으로 모두가 공감할 수 있게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지난 3일, 연임 제한 폐지는 새마을금고 신임 회장의 단순 공약 사업일 뿐 법률개정은 검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공식 입장이라고 밝혔다. 

새마을금고중앙회 측은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새마을금고 관계자는 “회장의 공약사항은 부정혼탁 선거를 예방하기 위한 동시선거 실시였다. 비상근이사장 연임 제한 폐지는 현재 전체 금고의 의견 수렴을 거쳐 검토 중이다. 아직 구체화된 것이 없다”고 전했다.

정부는 최근 새마을금고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원천 차단하고 금고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에 대한 금융권리 보호 강화에 나섰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12월 새마을금고법 개정에 따른 시행령 개정을 최근 완료, 지난 6월27일부터 시행 중이다. 

정부 개입했지만…
내부적 자정 필요

시행령에 따르면, 불공정거래행위의 유형과 기준을 정하고 과태료 부과기준을 신설해 금융기관의 우월적 지위 남용행위인 일명 ‘꺾기’를 상호금융권 최초로 법령으로 금지할 수 있도록 했다. 

‘꺾기’는 새마을금고가 여신거래를 하는 경우 차용인의 의사에 반해 예탁금, 적금 등의 상품 가입 또는 매입을 강요하는 행위를 뜻한다. 

개정 시행령에는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됨에 따라 불공정거래행위의 구체적 유형 및 기준을 정하고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과태료 부과 기준이 신설됐다. 

여신거래와 관련해 차용인의 의사에 반해 예탁금, 적금 등 금고가 취급하는 상품의 해약 또는 인출을 제한하는 행위, 제3자인 담보제공자에게 연대보증을 추가적으로 요구하는 행위 등을 불공정거래행위의 유형과 기준으로 정했다. 
 

불공정거래행위를 한 금고에게는 최대 2000만원, 임직원에게는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되 행위의 정도·횟수·동기 등을 고려해 감경·면제 또는 2분의 1범위에서 가중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새마을금고 내부 감시기구인 감사위원회의 위원을 이사회 선출에서 총회 선출로 개편하고 전국의 지역금고를 감사·감독하는 금고감독위원회를 신설하도록 법을 개정함에 따라 감사위원회의 외부위원과 금고감독위원회의 위원 자격 요건을 신설했다. 

감사위원회 외부위원 자격요건은 금고 또는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검사 대상 기관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경력이 있을 것 등으로 정했다. 금고감독위원회 위원의 자격요건은 금고 또는 중앙회서 감사, 감독 또는 회계 관련 부문서 상근직으로 10년 이상 근무한 경력이 있을 것 등으로 정해 전문성과 경험이 반영되도록 했다. 

이밖에 선거관리위원회 설치, 위원 결격사유 및 외부위원 자격요건, 위원장 선출방법, 관장 사무 등을 반영했다. 또 상호금융권 최초로 공명선거감시단을 법적 기구로 격상해 선거관리위원회에 설치하게 됨에 따라 그 구성과 운영 등에 관한 사항을 정했다. 

변성완 행안부 지역경제지원관은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새마을금고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의 금융 권리를 한층 강하게 보호하고 새마을금고 감독의 독립성과 객관성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계속 터지는 논란
갑질에 횡령까지

정부가 새마을금고 전반에 대한 수술 칼날을 들이댔지만 내부적 자정 노력 없이는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역 새마을금고서 갑질, 비리 등 논란이 끊이지 않으면서 정부가 지난해 12월 35년 만에 법개정을 통한 내부 감독체계 개선에 나섰지만, 이후에도 각종 논란과 의혹들이 터져 나오는 등 전혀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경북 구미의 한 새마을금고에서는 이사장이 결혼하면 퇴사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각서를 여직원들에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실제로 압박을 받은 여직원들이 사표를 제출했고, 수년간 이 새마을금고서 일했던 여직원들 중 결혼 후 그만둔 이들도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인천 서구의 한 새마을금고 이사장은 직원들에게 회식에 쓸 개고기를 준비하도록 시키거나 회식 참석을 강요해 구설에 올랐다. 이 지역 새마을금고 이사장은 또 손님들 사이에 여직원을 앉게 해 술을 따르게 했고, 직원들은 해당 이사장을 집단 고소해 경찰에 입건된 사건도 있었다. 

또 경기 안양 북부지역의 새마을금고 전 이사장은 직원에게 폭언과 폭설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이사장이 직원의 뺨을 때리고 정강이를 차는 등 무차별 폭행 장면이 담긴 영상이 지난해 9월 공개됐고, 새마을금고에 대한 비난 여론은 더욱 확산됐다.


대전지역 한 이사장은 아들의 채용 특혜와 횡령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아울러 특정 정당 가입을 압박하고 후원금 납부를 강요한 수원 팔달지역 임원, 10여년 간 여직원들에게 성희롱 발언을 이어온 부산 연제구 소재 새마을금고 임원도 논란의 중심에 섰다.

연달아 터지는 사건…신뢰 바닥
사실이면? 불명예 퇴진 가능성도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새마을금고는 올해 초 100억원 규모의 불법 대출 사건이 발생해 진통을 앓았다. 부산의 한 새마을금고서 자동차 담보대출 업무를 담당하던 직원 B씨는 지인 100여명에게 명의를 빌린 후 관련 서류를 위조해 100억원에 달하는 불법 대출을 받고 지난해 11월 잠적했다. 이 새마을 금고의 자본금은 160억원대이다.

비슷한 규모의 대형 금융사고는 2013년에도 있었다. 밀양 SM새마을금고 영업총괄부장 C씨는 3년간 30회에 걸쳐 고객이 예치한 돈 94억여원을 빼돌렸다. C씨는 컴퓨터 작업 등으로 잔액 증명서를 위조해 매 분기 실시되는 자체 감사를 피했고, 금고 총무 업무를 총괄해 동료가 이를 눈치채기도 어려웠다.
 

새마을금고의 금융사고액은 2013년 200억원을 넘어섰고 2014년 40억원대, 이후 10억원대로 줄어들며 개선 추세를 보였다. 그러나 올해 100억원 규모의 금융사고가 또다시 발생한 것이다. 또 대구 지역 금고에서는 이사장과 간부의 횡령 혐의가 적발돼 경찰 조사가 이뤄지는 등 지역 곳곳에서 잡음이 이어지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박차훈 회장의 어깨도 무거워지고 있다. 박 회장은 기관 신뢰 회복을 중점 과제로 지목해왔다. 새마을금고는 잦은 금융사고와 지역 이사장들의 갑질 적발로 신인도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이다. 

그동안 지역 금고서 각종 논란과 비리 문제가 계속해서 터지면서 내부통제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던 만큼 사상 첫 비상근회장인 박 회장에게 금융권서 기대하는 바는 컸다. 이에 부응하듯 박 회장은 취임 후 회장 직속 고충처리반 개설을 추진하는 등 지역 금고의 비리 차단에 나섰다.

불명예 퇴진?
좌불안석 이사장

하지만 제17대 중앙회장 선거를 앞두고 전국 대의원들에게 선물세트를 보낸 혐의를 받으면서 취임하자마자 신뢰도와 이미지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만약 박 회장을 둘러싼 의혹들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불명예 퇴진 가능성도 높다는 게 업계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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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