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VS 검찰’ 사생결단 치킨게임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8.20 16:31:18
  • 호수 11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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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면 따윈 없다 ‘이판사판 난장판’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누가 이길까. 법원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재판 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재판 거래 의혹 진상규명에 나섰다. 하지만 법원은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을 잇달아 기각했다. 검찰은 재판 거래의 핵심 관계자인 현직 판사를 포토라인에 세웠다. 법원과 검찰의 치킨게임이 한창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 1부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재판 거래 의혹을 수사 중이다. 특수 1부는 과거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과 정운호 법조 비리 등 반부패 사건을 전문으로 한다. 검찰 내부에서도 에이스 중 에이스로 꼽힌다. 검찰이 특수 1부를 내세운 건 법원을 상대로 철저한 수사를 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치고받고 
사법전쟁

하지만 법원은 영장 기각이라는 ‘철옹성’이 있다.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판사들을 보호하고 있는 형국이다. 검찰은 지난달 25일 이례적으로 사건에 관련된 전·현직 판사들에 대한 압수 수색 영장을 법원이 기각한 사실을 공개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오전 10시쯤 출입기자단에 492자 분량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전날 청구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등의 자택·사무실에 대한 압수 수색 영장을 법원이 지난 21일에 이어 또 기각했다는 내용이었다. 

검찰이 비밀리에 청구하는 압수 수색 영장 기각 사실을 공개하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다. 검찰은 “이번엔 범죄 혐의가 다수 추가됐는데 기각됐다”고 했다. 사실상 김명수 대법원장 요청으로 시작된 이번 수사에 법원이 협조하지 않고 있다는 강한 불만의 표시였다.


법원도 이날 오후 1시45분 장문의 해명자료를 냈다. 200자 원고지 10장 분량이었다. 

대법원은 “검찰 수사팀은 현재 대법원 청사 내에 별도로 마련된 공간서 전·현직 법원행정처 차장 등이 사용하던 컴퓨터 저장 장치서 다량의 문건 파일을 빼내고 있다”며 “이 중에서 수사 필요성이 없는 파일을 제외하고는 검찰에 제공할 예정”이라고 했다. 

법원 내부에선 “검찰의 언론 플레이가 도를 넘었다”는 말도 나온다. 수사를 방해하는 것처럼 여론전을 펴면서 법원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검, 대법원 재판거래 의혹 수사
법, 압수수색 영장 잇달아 기각

지난 3일까지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은 총 22건이다. 그러나 이 중 받아들여진 것은 2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지난달 22일 압수수색), 그리고 외교부(지난 2일 압수수색)뿐이었다. 

지난해 9월,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공개한 ‘2017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청구된 압수수색 영장은 총 18만 8538건, 이중 법원이 발부한 영장은 16만8268건으로 발부율로 따지만 89.2%다. 
 

그러나 검찰이 법원, 전현직 판사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발부율은 22건 중 2건, 10%가 채 되지 않는다.


검찰은 현직 판사를 포토라인에 세워 반격했다. 8일 법관 사찰 의혹 문건을 작성했다는 의혹 등을 받고 있는 김모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를 소환해  누구의 지시로 문건들을 작성했는지, 윗선은 어디까지 개입돼 있는지 등을 조사했다. 

검찰이 이 사건 수사 착수 이후 현직 판사를 공개 소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부장판사는 2015년 2월부터 지난해 초까지 법원행정처 기획제1·2심의관으로 일하면서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칼럼을 기고한 판사를 뒷조사한 것으로 보이는 ‘차○○ 판사 게시글 관련 동향과 대응 방안’문건을 작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자존심 건 
기싸움 팽팽 

또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법원 내 모임과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선거 동향을 파악해 개입을 시도하거나 긴급조치 배상에 관한 대법원 판례를 깬 판사의 징계를 추진하는 내용의 문건 등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문건을 다수 작성한 혐의도 있다. 

이외에도 김 부장판사는 인사이동 날인 지난해 2월 자신이 쓰던 법원행정처 공용 PC서 문서 파일 2만4500여개를 삭제해 공용서류 등을 손상한 혐의도 받고 있다.

특히 검찰과 법원이 정면으로 부딪히고 있는 사건은 문모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 스폰서 의혹 건이다. 이 사건은 검찰이 임종헌 전 차장을 압수수색하면서 확보한 이동식저장장치(USB)서 부산 건설업자 뇌물 사건 항소심에 개입을 검토한 내용이 담긴 문건을 발견하면서 드러났다. 

이 문건은 2016년 9월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실이 작성한 것으로 ‘건설업자 정씨 항소심서도 무죄가 선고되면 검찰이 문 판사 비위 사실을 외부로 유출할 우려가 있으니 종결된 변론을 재개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검찰은 스폰서 배후로 지목된 건설업자 정모씨 사건 재판기록 열람등사를 신청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거부했다. 대법원은 열람·등사를 허용하지 않은 이유를 검찰에 제시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 전 판사가 향응을 받는 비위를 저질렀음에도, 이를 확인한 법원행정처가 별다른 징계 없이 사건을 마무리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특히 법원행정처가 정씨의 1심 사건은 물론, 항소심서도 개입해 재판 결과를 챙겼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행정처 윤리감사관실과 문 전 판사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철옹성 사수
자존심 싸움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재판부가 밝힌 기각 사유는 “법조 비리와 관계없는 별건 수사”라는 것. 이번 기각이 처음이 아닌 탓에 검찰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검찰은 이례적인 영장 기각이라며 반발했다. 

검찰 관계자는 “언제부터 법원이 별건 수사라고 밝히며 영장을 기각했느냐”고 하소연했다. 실제 수사팀은 브리핑을 통해 “지금까지 제공되고 있는 자료들이 압수수색도 못할 정도의 소명자료인지 이해하지 못 하겠다”며 “초기 단계의 압수수색 영장인데 다른 사건의 영장 발부 비중과 차이가 너무나도 크다”고 반발했다. 

검찰은 우열곡절 끝에 지난 15일, 문 전 부장판사와 정씨의 주거지·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이날 오전 부산에 있는 문 전 부장판사와 사건에 연루된 정씨 자택과 사무실에 검사와 수사관들을 보내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업무일지 등을 확보했다. 

하지만 법원은 사건에 연루된 그 밖의 전·현직 판사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은 또 다시 모두 기각했다. 

수사 방해 여론전 펴고
현 판사 포토라인 세워

서울중앙지법 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문 전 판사의 행위나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관련 문건들이 재판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며 “추상적 가능성만으로 압수수색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검찰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실이 문 전 판사의 향응 수수 및 정씨 비호 등 심각한 비위를 알고도 규정을 어기고 조치하지 않은 점이나 법원행정처 문건 작성 내용 등은 이미 확인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영장전담법관이 ‘법원행정처 문건들이 재판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고 예단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이 과정에 관여한 전·현직 판사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모두 기각한 것은 대단히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법원의 연이은 영장 기각으로 내부 비판도 나오고 있다. 

법원 내부 게시판인 코트넷에 영장전담 판사들을 향한 법원주사의 비판 글이 올라왔다. 법률 전문가가 아닌 법원내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시각이라 울림이 더 크다는 평가도 나온다.

자신을 법원주사라고 밝힌 A씨는 “어제도 허언석(허경호/이언학/박범석) 영장전담 판사는 검찰의 압수수색영장 청구를 기각했다”며 최근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이 기각한 것에 대해 비판했다.

내부에선
자제론도

A씨는 “허언석 영장전담판사님은 국민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 있나요?”라며 “사법 농단을 주도했던 박병대 등 최강의 특권세력이 쉽사리 척결되기는커녕 반드시 되살아날 것이라고 예측하시는 건 아니겠죠? 막강한 결정권을 휘두르지만, 평범한 일반 국민조차 납득하기 어려운 기각사유는 실소를 자아낸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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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