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마비의 계절 ‘전라도 맛기행’ - 무안

“세발낙지 한번 맛보러 오시랑께요~”

[일요시사= 박상미 기자]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다. 신선한 먹거리가 쏟아져 나오는 가을, 입이 호강하는 것은 비단 말(馬)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천고아(我)비’라는 우스갯소리가 말해주듯 먹거리 여행의 적기는 다름 아닌 바로 지금이다. 음식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전라도 중에서도 무안은 먹거리 여행지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별미의 보고(寶庫)다. 식도락가들의 발길이 연일 이어지는 전남 무안으로 맛기행을 떠나보자


전라남도 무안군에는 다섯 가지 별미가 있다. 세발낙지·양파한우·명산 장어구이·사창 돼지짚불구이·도리포 숭어회가 바로 그 유명한 ‘무안5미’다. 전국 최대 양파 산지이기에 무안 어느 식당에서든 차려내는 ‘양파김치’도 5미에 질 수 없으니 ‘무안6미’에 들어도 손색없다. 그 중에서도 전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영예의 주인공은 그 이름도 유명한 무안 ‘세발낙지’다.

함평만(일명 함해만)에 펼쳐진 현경면과 해제면 일원의 무안 갯벌은 2008년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다. 국내 연안습지로는 전남 순천만 갯벌에 이어 두 번째다. 240여 종의 무척추동물, 36종의 유용 수산생물, 79종의 식물성 플랑크톤, 38종의 조류, 45종의 염생식물이 무안 갯벌의 주인이다. 현경면 해운리에서 해제면 송석리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달리다보면 무안 갯벌을 줄기차게 만날 수 있다.

생명의 보물창고
생생한 무안 갯벌

특히 이 갯벌에서 잡히는 낙지는 최상의 별미 대접을 받는다. 게르마늄이 다량 함유된 세발낙지는 무안의 갯벌에서 잡히는 것으로 그 맛이 뛰어나다. 여수, 장흥, 고흥 등 남해안 지역에서는 통발어업으로 낙지를 잡는데 비해 무안에서는 주낙(줄낚시)이 주류를 이룬다. 물론 어민들이 삽자루를 메고 갯벌로 들어가서 잡는 낙지가 최상급이다. 계절적으로 보면 더운 여름을 지나 가을철에 잡히는 낙지가 맛이 가장 좋다. 겨울이면 수확량이 줄어 값이 비싸진다.

무안읍 버스터미널 안쪽 골목에 낙지를 판매하는 노점상과 점포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이 거리를 일러 ‘무안낙지골목’이라고 하는데, 약 20여 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다. 이곳의 낙지는 식당이나 가정으로 팔려나가 낙지볶음, 낙지비빔밥, 낙지회무침, 낙지연포탕, 낙지호롱, 기절낙지 등 다양한 낙지 요리로 변신한다. 일부 낙지 전문 식당들은 이 골목시장을 거치지 않고 낙지잡이꾼들로부터 직접 낙지를 사들인다.

낙지비빔밥은 낙지를 재료로 한 요리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서민 음식이다. 낙지 값이 비싸기 때문에 제 값 주고 많이 먹기 어려운 서민들로서는 낙지비빔밥이라도 감지덕지다. 토막 낸 낙지 한 주먹을 올리고 콩나물이며 시금치 등을 얹어 보기 좋게 색을 낸 다음 고추장을 넣어 쓱쓱 비벼 먹는 낙지비빔밥. 해물 좋아하는 사람들은 낙지비빔밥 앞에선 전주비빔밥이나 진주비빔밥은 명함도 못 내민다며 극찬을 쏟아낸다.

낙지호롱서 기절낙지까지
낙지 요리의 진수

낙지회무침도 요리 과정이 매우 간편하다. 살짝 데친 세발낙지를 기본 재료로 삼아 양파, 오이, 대파, 당근, 풋고추 등을 썰어 넣고 고춧가루로 버무리면 낙지회무침이 완성된다. 낙지회무침은 한 번 먹어보면 그 맛을 잊지 못 해 ‘매운맛이 집 나간 입맛을 불러들인다’고도 불리는 별미다. 이 맛이 너무 자극적이라서 싫다면 낙지물회도 좋다. 새콤달콤한 육수에 데친 낙지를 넣고 얼음 몇 개 동동 띄우면 시원한 낙지물회가 완성된다. 간밤의 음주로 지친 속을 달래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다.

낙지연포탕은 특별한 양념 없이 낙지를 맑은 국물에 끓여낸 탕을 말한다. 연포탕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데에는 다양한 설이 있다. 국물이 끓으면 낙지가 날것일 때보다 조금 더 부드러워져서 연포탕이라고 부른다고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데 이외에도 익은 낙지의 발이 곱게 퍼져나간 모습이 연꽃을 연상시킨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등 두어 가지 설이 따라다닌다. 이름이야 어떻든 낙지가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을까? 낙지연포탕을 맛본 사람들은 환상의 맛을 경험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낙지호롱은 조금 독특한 과정을 거치는 요리다. 만들 때 나무젓가락이 꼭 필요하다. 세발낙지를 나무젓가락에 돌돌 만 다음 불에 구운 뒤 깨소금이나 쪽파를 뿌려 상에 낸다. 머리부터든, 다리부터든 편한 대로 훑어서 잘근잘근 씹어 먹는데 이 또한 넋을 빼앗는 맛이다.

돌돌 말아 잘근잘근
제사음식 낙지호롱

옛날 이 지방에서는 낙지호롱을 제사상에도 올렸다. 뼈 없는 것이 어째 제사상에 오르느냐고? 그래서 호롱을 이용한다. 호롱은 볏짚의 전라도 사투리. 몇 가닥 뭉친 볏짚은 낙지의 뼈가 되었다. 볏짚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나무젓가락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기절낙지 또한 무안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미의 반열에 든다. 말 그대로 기절한 낙지를 먹는 것이다. 낙지를 어떻게 기절시킬까? 보통 산낙지를 씻을 때 바닷물을 사용하지만 기절낙지를 만들려면 민물을 사용한다. 머리(실은 몸통)를 떼어낸 낙지 다리 부위를 민물에 씻으면 낙지는 기절한 듯 꿈틀거리지 못한다. 먹물이 들어 있는 머리는 잘 구워서 기절 상태의 다리와 함께 손님상에 낸다. 자, 이제 낙지를 살릴 차례. 젓가락으로 낙지 다리를 집어 배, 양파, 고춧가루 등으로 만든 비법 양념에 찍는 순간, 낙지 다리가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물론 산낙지보다는 움직임이 덜 활발하고 빨판의 힘도 약하지만, 접시 위에서 꼼짝 않고 있던 낙지 다리가 용을 쓰니 그게 바로 기절낙지다.

이밖에 지방에 따라 갈비와 낙지를 함께 넣어 만든 갈낙탕, 불고기와 낙지를 넣은 불낙전골, 낙지와 각종 채소를 한데 넣어 끓이는 낙지전골, 수제비에 낙지를 넣은 낙지수제비 등이 미식가들의 입맛을 유혹한다.

먹거리 외에도 낙지를 포함한 갯벌생물들의 세계를 한자리에서 공부하기 좋은 학습장이 바로 무안생태갯벌센터다. 전시관 안의 초대형 낙지 조형물은 이곳을 찾은 관람객들 사이에서는 절대 스쳐지나가서는 안 될 포토존으로 인기만점이다. 칠면초 등이 자라는 생태체험장과 실내전시관을 모두 관람한 다음 학예연구사로부터 낙지의 습성에 대해 여러 가지 재미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갯벌생물을 보여주마
생태갯벌센터

“낙지는 칠게, 조개, 고둥, 작은 물고기, 갯지렁이 등을 먹으며 지능이 높아 갯벌에서는 대적할 상대가 없습니다. 낙지는 돌 틈이나 뻘 속에서 굴을 파고 숨어 있다가 다리를 이용해서 먹이를 잡아먹어요. 사람이 다리를 잡아당기면 도마뱀이 꼬리를 잘라내듯 자신의 다리를 잘라내고 도망치기도 합니다.”

1년 중 낙지가 가장 많이 잡히는 계절은 언제일까? 바로 음력 9월15일(중구사리) 전후다. 그렇다면 한 달 중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시기는? 그믐에는 어획량이 거의 없고 보름을 전후하여 어획량이 많다. 낙지는 야행성 생물이기 때문에 보름달빛을 받으면 더 활발하게 움직인다.

무안의 여러 어촌체험마을에서는 낙지잡이를 포함한 갯벌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이들 마을은 갯벌 체험, 어패류 잡기 체험, 어장 체험, 갯바위낚시 체험 등을 바탕으로 계절에 맞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체험과 관련된 도구는 모두 마을에서 지급하지만 개인용 세면도구와 함께 두꺼운 양말은 참가자가 직접 준비해야 한다. 갯벌 체험은 하루 두 차례 반복되는 밀물과 썰물에 맞춰 진행되기 때문에 하루에 한 번만 가능하다. 매일 시간이 바뀌므로 사전에 체험 가능 여부와 가능 시간을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좋다.


생생한 어촌 체험
송계마을·감풀마을

송계마을은 서해안에서도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도리포와 가깝다. 썰물 때라야 제 모습을 드러내는 섬으로 이동해서 갯벌 체험을 진행하기 때문에 작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묘미를 즐길 수 있다. 감풀마을은 갯벌을 달리는 트랙터를 타고 마을 앞바다로 나가는 갯벌 체험과 마을회관 주변에서 진행되는 농촌 체험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감풀마을에서는 야간에 마을 앞 갯벌에서 횃불을 이용해 게를 잡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송계마을과 감풀마을 주민들은 ‘맨손어업’의 달인들이다. 낙지며 굴을 담는 통 하나에 삽자루 하나면 그만이니 맨손어업의 달인이라는 말이 딱 맞다.

자료출처 :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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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