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끝’ 기지개 켜는 분양시장

휴가철을 맞아 잠시 휴식기를 가졌던 분양시장이 다시 분양 채비에 나서는 분위기다. 우선 아파트는 9월에만 전국에서 2만2646가구 분양이 예정되어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오는 9월 전국 아파트 분양 예정물량은 2만2646가구다. 수도권에서 1만3806가구, 지방에서 8840가구가 분양될 예정이다. 서울에서는 분양 연기를 거듭하던 서초구 서초동 ‘래미안리더스원’이 분양에 돌입한다. 삼성물산이 올해 강남권에서 공급하는 첫 아파트다.

수도권-지방
양극화 심화

분양물량이 가장 많은 지역은 경기도로 총 8033가구를 쏟아낼 예정이다. 경안시장 재개발을 통해 공급되는 광주 경안동 ‘광주금호리첸시아’, 송내제1-2구역을 재개발하는 경기 부천시 송내동 ‘래미안어반비스타’, 원곡연립2단지를 재건축해 공급하는 경기 안산시 원곡동 ‘안산원곡e편한세상’등 정비사업 물량이 다수를 차지한다.

지방에서는 부산이 2255가구로 가장 많은 물량을 공급한다. 부산 부산진구 전포동 ‘부산전포1-1e편한세상(1401가구)’이 대표적인 단지다. 

다른 지방에서는 ▲경북 2069가구 ▲전남 1510가구 ▲경남 1231가구 ▲광주 1092가구 등을 분양한다.


수도권과 지방의 분양시장 양극화는 점점 극명해지고 있다. 지난 6월 집계된 미분양 물량 6만250가구 중 84.67%인 5만2542가구가 지방에 몰려 있다. 2016년 초만 해도 엇비슷했던 수도권과 지방의 미분양 온도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구, 대전 등 일부 지방에서 청약 경쟁률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 외 지방은 미분양 아파트가 쌓이고 있는 실정이다. 워낙 많은 물량이 단기간에 공급되기도 했으며 지방 경제의 기반인 조선업·제조업의 침제가 주택시장으로 전이된 영향도 크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정부 규제 강화로 ‘똘똘한 한 채’를 보유해야 한다는 심리가 확산되면서 상대적으로 보유가치가 낮은 지방 아파트의 선호도 하락이 지방 미분양이 키웠다. 정부가 미분양관리지역을 지정해 관리하고 있지만 적극적인 수급 조절이 필요하다. 

여름 휴가철이 끝나면 수도권 대표 택지지구의 공급이 예정되어 있다. 한 부동산 정보업체에 따르면 연말까지 동탄2신도시와 위례신도시, 검단신도시, 감일지구 등 수도권 인기 택지지구에서 15곳 총 1만4166가구가 공급될 예정이다. 물량이 가장 많은 곳은 검단신도시로 7곳에서 총 8587가구가 공급된다. ▲위례신도시 3곳 2514가구 ▲감일지구 3곳 2222가구 ▲동탄2신도시 2곳 843가구가 뒤를 잇는다.

일반적으로 택지지구는 기본 생활 인프라가 체계적으로 갖춰져 수요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특히 민간택지 대비 저렴한 분양가로 공급되는 까닭에 분양 시장에서 인기 상품으로 통하기도 한다. 실제 올 상반기 수도권에서 세 자릿수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입증한 단지는 모두 수도권 택지지구 분양 단지였다. 

휴식기 끝내고 다시 분양 채비
9월 전국서 2만2646가구 예정

상반기 수도권에서 공급된 83개 단지 중 100 대 1이 넘는 1순위 청약 경쟁률을 기록한 단지는 ‘동탄역 예미지 3차(106 대 1)’와 ‘미사역 파라곤(104 대 1)’ 단 2곳에 불과했다. 2개 단지 모두 수도권 인기 택지지구 분양 물량이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대규모 택지지구 추가 지정이 중단되고, 일부 수도권 택지지구 내 아파트 공급이 마무리 수순에 들어가면서 그 희소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추세므로 얼마 남지 않은 수도권 택지지구에 입성하기 위해 수요자들이 하반기에도 청약 통장을 적극 사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방에서는 지방 5대 광역시에서 신규 아파트 4만여 가구가 쏟아질 예정이다. 지방은 서울 등 수도권에 비해 규제가 덜한 데다 입지가 좋은 곳에 공급되는 알짜 단지가 많아 실수요자라면 주목할 만하다. 부동산114 자료에 따르면 연내 지방 5대 광역시에서 4만1437가구가 공급될 예정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3만 2808가구)에 비해 약 26% 많은 수치다.

지역별로는 부산광역시가 2만320가구로 가장 많은 물량이 쏟아진다. 이어 ▲대구광역시 8647가구 ▲광주광역시 5221가구 ▲대전광역시 4658가구 ▲울산광역시 2591가구 등의 순이다. 이처럼 하반기 분양 물량이 몰린 것은 지난 6월 열린 지방선거 및 월드컵 이벤트를 비롯해 미등록 분양대행업 금지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또 연내 추가적인 금리 인상 우려가 있는 데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보유세 인상 등 시장 불안요소들이 산재한 만큼 건설사들은 서둘러 분양에 나서고 있다.

지방 부동산 시장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좋은 입지와 합리적인 가격을 갖춘 5대 광역시 아파트 물량은 수요자들에게 높은 인기를 끌었다. 상반기 5개 지방 광역시 1순위 청약경쟁률은 1만2065가구 모집에 31만2925명이 몰려 평균 25.94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는 같은 기간 수도권 1순위 경쟁률인 13.85 대 1을 크게 상회하는 성적이다. 아울러 1월부터 6월까지 전국에서 분양한 신규 아파트 경쟁률을 보면, 경쟁률 상위 5개 단지 중 4개 단지가 지방 5대 광역시에서 공급된 단지였다. 

대구광역시에서 분양한 ‘e편한세상 남산’은 191가구 모집에 6만6184명이 청약해 무려 346.51   대 1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e편한세상 둔산’도 평균 274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내년부터 보유세 인상이 시행되고 금리 인상 우려도 있다 보니 건설사들이 지방선거 및 월드컵, 여름 휴가철 등으로 미뤄졌던 분양 물량을 연내에 서둘러 공급하는 추세다. 부산지역의 경우 집값도 안정세로 접어들었고 하반기에 조정대상지역 해제가 점쳐지고 있어 신규 공급 단지들에 관심이 높다. 

저녁 있는 삶
어디 주목할까

다음으로 수익형 부동산 등 분양시장의 경우 워라밸 열풍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주목 할 필요가 있다. 지난 7월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 주52시간 근무제 실시로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밸’트렌드가 더 확산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덕을 볼 부동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저녁이 있는 삶’을 실현하겠다는 취지에서 근로시간이 단축된 만큼 향후에도 워라밸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워라밸이란 워크(Work), 라이프(Life), 밸런스(Balance)의 약자로 일과 생활의 균형을 잡아 삶의 질을 높인다는 의미다. 

한 인터넷 업체가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더라도 직장을 선택할 때 고려하는 1순위 요건으로 직장인의 55%가 ‘워라밸’을 꼽았으며 52%는 ‘워라밸 문화가 앞으로 더욱 확산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워라밸의 확산은 의식주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먼저 소비자들은 자기개발, 취미, 여가, 레저 활동에 더 큰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소비 패턴을 보일 것이다. 

이미 발 빠른 기업은 워라밸을 앞세워 활발한 마케팅을 하고 있고, 소비자들도 그 흐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변화는 우리 삶의 한 축을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나 수익형 부동산 시장은 이런 변화에 더욱 민감할 것으로 보인다. 주 52시간 근무, 워라밸 확산에 따라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자기 계발, 문화, 레저 등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곳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오피스 상권이다. 직장인들이 일찍 귀가하면서 회식 관련 업종, 유흥·오락 관련 업종의 고객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물량 가장 많은 지역 경기
‘워라밸’트렌드 더욱 확산

반면 거주지와 인접한 단지 내 상가와 주택가 골목상권, 아파트 밀집지역 항아리 상권 등은 반사적인 이익을 누릴 것이 기대된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와 집 근처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늘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주말에 가족과 함께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레저 수익 부동산(또는 레저형 수익 부동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주요 레저 수익형 부동산으로 바다·호수·수변 조망권 확보 상가, 레저형 세컨드 하우스, 수익형 펜션, 생활형 숙박시설 등이 있다. 

이렇다보니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거주하는 수도권에 공급되는 레저형 수익 부동산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몰리면서, 청약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지난 6월 경기 안산시에 위치한 단지 내 상가 ‘그랑시티자이 에비뉴’는 총 117개 점포 계약을 실시했다. 단 하루 만에 100% 계약을 완료했다. 이 단지는 계약 하루 전 진행된 입찰에서도 최고 82 대 1, 평균 약 16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바 있다. 지상 1~2층, 전용면적 약 30~40㎡, 총 123개 점포로 공급되는데, 그중 400m 길이의 안산 내 최초 수변 상가는 99개가 조망권을 확보해 특히 인기가 높았다. 


지난해 6월 인천광역시 송도국제도시 내 유명 휴가지로 꼽히는 송도센트럴파크 바로 옆에서 공급된 ‘송도 아트포레 푸르지오 시티’는 평균 8 대 1, 최고 60대 1의 청약경쟁률을 기록했다. 약 41만m 규모의 센트럴파크에서는 여름철 수상택시, 카약 등 수상레포츠를 이용할 수 있다. 선셋카페 전망대에서 야경을 즐길 수도 있다.

주택시장도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단지가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  퇴근 후 삶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공원, 산책로 등이 가까울수록 좋은데 공원과 인접한 단지는 주거 쾌적성이 높고, 조망권을 누릴 수 있어 삶의 만족도도 높기 때문이다. 

골목 뜨고
오피스 타격

한 부동산 전문가는 “주52시간 근무제 실시로 인한 워라밸의 확산은 이제 하나의 주요 트렌드로 부동산 시장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부동산의 수익성과 가치를 결정하는 주요 원인인 수요공급의 원칙을 잘 고려해 공급과잉 여부, 배후수요, 교통여건 등을 잘 따져 투자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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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