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장례식장 ‘바디백’ 미스터리

메르스 핑계로 유족에 바가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청주의료원은 충북도서 관리하는 지역거점 공공병원이다. 지방의료원은 영리보다는 지역 주민의 보건 관리에 그 목적이 있다. 하지만 최근 청주의료원이 공공병원의 목적을 간과하고 수익 창출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장례 과정에 불필요한 이송용 바디백 사용으로 부당이득을 얻고 있다는 의혹이다.

장례식장은 유족이 고인을 마지막으로 모시는 장소다. 부고를 들은 친지, 지인들은 장례식장을 찾아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한다. 유족은 문상객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한다. 장례식장은 고인의 영정사진 준비부터 시신을 장의차에 안치하는 일까지 장례의 모든 부분에 관여한다.

너무 비싼
장례 비용

2015년 기준 한국소비자원서 조사한 평균 장사(장례+장묘)비용은 1380만8000원에 이른다. 이는 한국소비자원이 2014년부터 2015년 3월까지 장례비용을 낸 경험이 있는 소비자 6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해 얻은 평균이다. 

1400만원에 육박하는 장사비에 대해서는 소비자(790명)의 68.7%가 “비싸다“고 인식했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장례비용이 저렴한 장례식장을 찾는다. 지역거점 공공의료원 장례식장은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시민들에게 값싼 비용으로 검증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평을 받아왔다. 우리나라는 ‘지방의료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국 시도서 34개 지방의료원을 운영하고 있다.


1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청주의료원도 그중 한 곳이다. 1909년 관립자혜의원으로 시작한 청주의료원은 충청북도 도립 청주병원(1925년), 충청북도 도립 의료원(1973년)을 거쳐 1983년 지방공사 충청북도 청주의료원으로 발족했다.

청주의료원은 3만8000㎡ 부지에 병원, 장례식장 등 7개 동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특히 장례식장은 청주의료원 의료 외 수익 중 주수입원이다. 

청주의료원 사정에 밝은 한 장례지도사는 “청주의료원은 장례식장 수익으로 운영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다.

실제 손병관 청주의료원 원장이 2015년 <충청투데이>와의 인터뷰를 보면 청주의료원은 장례식장 운영을 통해 흑자 달성에 성공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청주권 장례식장의 40%를 점유했다. 그 배경으로는 다른 장례식장보다 저렴한 비용이 꼽혔다.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특실을 포함 총 9개 빈소가 있다. 지난해 기준 팀장, 장례지도사, 조리원 등 총 22명이 근무 중이다. 2015년 1435건, 2016년 1487건, 지난해 1287건 등 3년 동안 4209건의 장례를 치렀다. 1년 평균 1403건, 월 평균 117건이다.

한 장례 전문기업 관계자는 “중소 장례식장은 한 달에 30∼40건의 장례만 치러도 장례식장 운영에 아무 문제가 없다”며 “매달 100여건 이상이면 정말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주중, 주말할 것 없이 늘 유족과 문상객으로 붐빈다.


문제는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이 지역 주민을 상대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다른 장례식장보다 값싼 장례비용을 강점으로 내세워 온 청주의료원으로선 뼈아픈 대목이다. 

지난 2016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공개한 33개 지방의료원 장례식장 운영 수익 자료에 따르면 청주의료원은 2015년 85억3700만원을 벌었다. 지방의료원 중 가장 높다.

지역 주민에
폭리 취해

대도시에 위치한 인천의료원(40억4300만원), 서울의료원(32억8500만원), 부산의료원(27억2500만원)보다 2∼3배의 수익을 올린 것이다. 지방의료원이 장례식장을 운영하며 지역 주민을 상대로 과도한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청주의료원은 장례 1건당 평균 순수익서도 594만원으로 충남 홍성의료원(711만원), 서산의료원(638만원), 대구의료원(627만원)에 이어 네 번째로 많았다. 청주의료원의 높은 수익률 이면에는 합리적 기준 없이 제각각 판매되고 있는 주요 장례용품 가격이 있다.

인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장례용품 중 높은 가격을 차지하는 수의와 관의 경우 구매 가격보다 수의는 평균 3.5배, 관은 평균 2.9배 이상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청주의료원의 경우 6만원에 산 오동 2단관의 판매 가격은 18만원에 달했고 3만9000원에 산 2호 수의의 판매 가격은 13만6000원으로 구매가의 3배가 넘었다.

인 의원은 “공공의료원이 장례비용서 막대한 폭리를 취하는 것은 영리보다 공공성이 우선시되는 설립 취지와 맞지 않다”며 “공공의료원들이 서민들을 상대로 지나친 영리사업을 할 것이 아니라 공공성에 맞게 합리적인 운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고나 감염환자에만 쓰는데
청주의료원은 모든 환자 왜?

이 같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서 장례과정에 필요하지 않은 용품으로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의혹이 또 다시 제기됐다. 문제로 지목된 용품은 이송용 바디백. 

F기업서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에 공급하는 바디백은 시신을 편리하게 운반할 수 있도록 고안된 제품이다. F기업은 현재 사단법인 대한장례지도사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남승현 대표가 운영하는 장례용품 생산업체다.

바디백은 밀폐용 비닐 포장재로, 감염 사체나 부패된 변사체 등의 감염이나 악취를 방지하기 위해 선별적으로 사용되는 용품이다. 일반적으로 쓰나미나 해일 등 시신이 많이 나온 사고서 사체를 보관하고 병원 등으로 옮길 때 사용한다.

하지만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의 경우, 바디백을 시신 안치에 사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감염 사체나 부패된 변사체 외에 지병이나 노환 등으로 사망한 시신에도 바디백을 사용했다. 다시 말해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서 장례를 치른 모든 시신에 바디백을 이용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판매비용으로 유족에게 10만원을 청구했다.


장례식장에 처음 시신이 들어오면 입관 전까지 사체를 안치해둔다. 스테인리스로 된 안치대 위에 칠성판을 깔고 그 위에 시신을 놓는다. 칠성판은 염습한 시신을 눕히기 위해 관 속 바닥에 까는 얇은 널판을 말한다.

장례지도사들은 칠성판 위 시신의 자세를 반듯하게 만들어 종이끈으로 묶는다. 이 과정을 수시라고 한다. 칠성판은 시신의 자세를 곧은 상태로 고정하기 위한 일종의 부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수시 과정을 마친 시신은 입관 전까지 1~2일간 안치냉장고에 보관된다. 

전국 대부분의 장례식장에서 진행하는 일반적인 시신 안치 과정이다.

하지만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시신을 바디백 안에 넣은 채로 수시 작업을 해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안치대 위에 먼저 바디백을 깔아두고 그 안에 칠성판을 넣어 시신을 고정하는 방식이다.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서 장례를 치렀던 한 유족은 “안치실에 들어갔더니 바디백이 이미 안치대 위에 세팅돼있었다”고 설명했다.

시신에 습기
지퍼 열어둬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감염 방지 등 위생 관리 차원서 사용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2015년 5월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사태 이후 시신을 위생적으로 관리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고, 바디백은 그 일환으로 사용되는 장례용품이라는 주장이다. 

또 시신을 직접 만지는 장례지도사나 유족의 건강을 위해서 사용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수십년 경력의 장례지도사나 공중보건학 교수의 의견은 달랐다.

한 장례지도사는 “전국 각지의 장례식장을 다녀봤지만 시신 안치에 바디백을 쓰는 곳은 청주의료원 뿐”이라고 말했다. 인천지역 장례식장 관계자 역시 “집에서 사망해 오랜 시간 방치된 독거노인 같은, 심하게 부패한 시신을 옮길 때나 (바디백을)사용하지, 그 외의 상황엔 사용하는 경우는 없다”고 단언했다.

공중보건학을 전공한 한 교수 역시 “이송용 바디백만으로는 감염을 막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메르스 사태 당시 시신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안다면 감염 방지를 위해 바디백을 사용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2015년 5월 바레인서 입국한 68세 남성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후 그해 12월 보건복지부가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에 따라 ‘메르스 상황 종료’를 발표할 때까지 186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당시 사망한 환자는 38명. 메르스는 사람 간 밀접접촉을 통해 전염되는 질병이라 전파 속도가 빨랐다.

정부와 병원서 가장 신경 쓴 부분도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로 인해 다른 사람이 감염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이었다. 확진 환자는 물론 의심 환자도 격리됐다. 이 과정서 사망한 시신은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화장 절차를 밟았다. 

당시 장례원칙에 따라 고인의 임종을 지키는 것은 물론 마지막 가는 길도 볼 수 없던 유족들이 울분을 토했을 정도.

메르스로 사망한 환자는 즉시 비닐로 감싸진다. 외부 오염을 막기 위해서다. 비닐로 싼 시신을 바디백에 넣고 이 바디백을 또 다른 바디백에 넣어 이중으로 감싼다. 바디백 표면은 소독하고 건조해 이동한다. 그리고 그대로 밀폐된 관에 배치, 화장 처리한다.

이 과정은 장사법에 따라 고인이 사망하고 24시간 이내 이뤄진다. 염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불에 태운다. 유족들은 화장터에 가더라도 마스크, 장갑, 고글, 보호복 등 개인장비를 착용해야만 배웅이 가능하다. 의심환자로 분류, 격리된 상황이라면 화장터에도 갈 수 없다.

감염 방지라 해명하지만
전문가 “실제 효과 없다”

이에 반해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의 바디백 이용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심지어는 시신을 바디백에 넣어 안치 냉장고에 보관하는 과정서 결로현상이 생겨 일부 상조회사에서 이의를 제기한 일도 있었다. 

안치 냉장고 온도는 영상 4∼5도로 유지된다. 시신을 담은 바디백 내부 온도와 차이가 있어 물이 맺히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문제를 제기한 공중보건학 교수는 “시신에 맺힌 물기가 오히려 장례지도사의 감염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이 같은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시신의 머리 부분 쪽 지퍼를 열어둔다는 의혹이 나왔다. 

실제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서 바디백을 사용하는 것을 본 한 장례지도사는 “얼굴 부분 지퍼를 열어둔 채로 안치 냉장고에 넣는 모습을 봤다. 감염을 방지한다면서 이게 무슨 코미디냐”고 반문했다.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요즘에는 사고사로 사망한 시신에만 사용하고 있다”고 해명하며 이전에는 모든 시신에 바디백을 사용한 사실을 시인했다. 

현재 바디백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자꾸 민원이 들어가니까…”라고 말끝을 흐렸다. 감염 방지와 위생 관리를 위해 바디백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주변 관계자들이 이를 문제 삼자 사용을 일부 중단한 셈이다.

실제 청주시 서원구청은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서 바디백을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장례용품별 사용 여부에 대해 정해진 규정이 없어, 바디백과 같은 위생용품 사용은 장례식장 영업자의 재량사항으로 판단된다”면서도 “다수의 장례식장이 감염환자나 사고환자 등으로 사망한 시신에만 바디백을 사용하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시신의 상태 등을 선별해 무분별한 바디백 사용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일각에선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서 바디백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인센티브 제도’를 들었다. 

청주의료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관계자는 “청주의료원 장례식장만의 독특한 제도”라며 “분기별로 목표를 정하고 이를 초과 달성할 경우, 초과액의 일정 부분을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로 준다”고 귀띔했다.

바디백 1개의 판매·사용 가격은 10만원. 한 달에 100건 이상 장례를 치르는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으로선 바디백으로만 매달 1000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린 셈이다. 1년으로 치면 1억원이 넘는다. 

이 관계자는 “수의나 관으로 가격을 부풀려 받는 것은 언론 등을 통해 많이 질타를 받았기 때문에 그러기 어렵다”며 “청주의료원 장례식장 입장에서는 바디백이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청주의료원 장례식장 관계자는 “성과급은 어느 회사에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되물으면서도 “(바디백 사용은)영리 목적으로 한 게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어 “전국 장례식장서 다 받고 있는 초렴료(시신을 닦고 자세를 잡는 행위)를 우리는 받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 제기에
일부 사용중단

한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바디백 사용에 대해 유족들에게 동의를 얻었다고 말하지만, 장례를 치르는 유족들은 경황이 없어 그저 장례식장을 믿을 뿐”이라며 “고인의 부고 앞에 장례용품을 하나하나 따지는 일도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런 유족의 마음과 메르스라는 국가적 재난을 이용해 효과가 전혀 없는 용품을 팔아 부당이득을 얻는 행위는 근절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청주의료원 ‘칠성판 흑역사’ "처음이 아니네?"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2010년 칠성판 재사용 문제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당시 장례식장 직원의 공익제보로 알려진 내부 사정은 충격적이었다.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유족들에게 매입단가 2500원의 칠성판을 1만원에 판매하면서 그마저도 재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족들에게 1만원씩 돌려줘

당시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칠성판을 73개 구매했다고 했지만, 판매는 792개에 달했다. 

719건은 사용했던 것을 다시 사용한 것은 물론, 많게는 10번씩 재사용하며 1만원씩 유족에게 받아 챙긴 것. 문제가 크게 불거지자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그 시기 장례를 치렀던 유족에게 일일이 연락해 칠성판 값인 1만원을 돌려준 것으로 확인됐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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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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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