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 제주도 무슨 일이…

천혜의 섬이 공포의 섬으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천혜의 섬 제주가 실종, 살인 등 각종 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관광지로 사랑받아온 제주의 이미지가 강력범죄 발생으로 ‘공포의 섬’으로 추락하는 모양새다. <일요시사>가 그동안 제주서 일어난 강력 범죄들을 집중 조명해봤다.
 

잠시 편의점에 다녀온다고 나선 후 행적이 묘연했던 최○○씨의 시신이 1주일 만에 발견됐다. 지난 1일 제주지방경찰청은 제주 서귀포시 가파도 서쪽 1.5㎞ 해상서 최씨의 시신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최씨의 실종 장소는 제주시 구좌읍 세화포구, 시신이 발견된 가파도와는 정반대편이다. 경찰은 범죄 가능성까지 두고 폭넓게 사인을 규명 중이다.

최씨는 지난달 10일경 아들과 딸을 데리고 세화포구서 캠핑을 하던 남편을 찾아왔다. 최씨의 남편은 6월 중순경부터 세화포구서 캠핑 중이었다. 그러다 지난달 25일 최씨는 남편과 저녁 식사 후 오후 11시5분경 세화포구 인근 편의점서 소주 1병과 김밥 등을 구입해 방파제에서 혼자 술을 마신 것으로 보인다. 그사이 최씨는 친언니 등에게 전화통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범죄의 섬?

최씨의 실종 소식이 전해지자 대대적인 경찰 수색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최씨가 신고 나간 것으로 추정되는 슬리퍼가 한 짝은 바다서 다른 한 짝은 육지서 발견되면서 실족사에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휴대폰 등 개인 소지품이 공중화장실서 발견되자 범죄 가능성에 대한 의혹이 불거졌다. 경찰이 지난달 29일부터 사건을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해양전문가들은 최씨가 실종됐던 1주일간의 해류를 근거로 세화포구서 사망한 시신이 가파도서 발견될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설명했다. 

한 전문가는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연안해류를 짐작하기 쉽지 않지만 단 1주일 만에 (해류가) 시신을 섬의 정반대 방향으로 옮겨놓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이 같은 해석이 알려지자 최씨가 범죄 피해를 입은 후 육로나 해로를 통해 가파도 근처로 옮겨진 후 바다에 유기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잇따르고 있다. 여기에 제주에 머물고 있는 예맨 난민에게 의심의 눈초리가 향하는 등 구설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전 국민의 관심을 받을 만큼 떠들썩한 강력범죄가 제주서 자주 일어나는 데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종 30대 여성 시신 발견
충격적인 강력범죄 잇달아

지난 2월에는 제주의 한 게스트하우스서 20대 여성관광객 A씨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일어났다. A씨는 2월7일 오후 혼자 해당 게스트하우스에 왔다가 다음날인 8일 새벽 살해된 것으로 추정됐다. 부검결과 사인은 목이 졸려 숨지는 경부 압박 질식사였다. 

사건 용의자인 한정민씨가 경찰을 피해 도주한 끝에 자살하면서 충격을 안겼다.


가족들의 실종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해당 게스트하우스를 조사하는 과정서 용의자 한씨와 수차례 면담했지만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한씨는 10일 오후 경찰을 따돌리고 항공편을 이용, 서울로 잠입해 서울과 수도권 등지서 도주행각을 벌이다 14일 충남 천안시의 한 모텔 욕실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한씨는 도주기간 동안 피해 여성의 렌트카를 이용하고, 자살 전날 성매매를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해당 게스트하우스 투숙객을 준강간한 혐의로 기소당한 일도 밝혀졌다. 사건이 일어난 게스트하우스는 임시 휴업 끝에 폐업했다. 

지난해 4월 개업 이후 10개월 만이었다. 저렴한 비용으로 젊은 관광객들의 이용이 많았던 게스트하우스는 안전 문제가 불거지자 타격을 입었다.

지난 2016년에도 도민은 물론 전 국민을 놀라게 한 사건이 제주서 일어났다. 2016년 9월 제주시 연동 소재의 모 성당서 60대 여성이 중국인 천궈루이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천씨는 피해 여성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외국인이 저지른 ‘묻지마 범죄’에 도민 사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또 범행 동기를 묻는 질문에 천씨가 “누군가 내 머리에 칩을 심어 조정하고 있다”고 진술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공분이 커졌다.

천씨는 “중국에 돌아가지 않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둥 비합리적인 진술을 이어갔지만 경찰은 그가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데 무게를 뒀다. 실제 천씨가 사건 당일 이전에 흉기를 산 점, 대상을 물색한 점, 범행 장소인 성당에 2차례 미리 방문한 점 등 범행을 계획한 정황이 드러났다.

재판부 역시 천씨가 치밀한 계획 끝에 피해 여성을 살해했다고 봤다. 지난해 4월 광주고법은 이 사건에 대해 천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원심의 25년형보다 형량이 늘어난 판결이었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천씨의 범행은 수법이 매우 계획적이고 잔혹하다”며 “범행 동기와 수단, 결과 등을 종합해보면 망상장애적 심신미약 상태서 범행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원심의 형이 가벼워서 부당하다”고 판시했다.

인구 대비 범죄율 1위
서울, 경기보다도 높아

2012년 제주 올레길 살인사건도 도에서 강력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언급될 만큼 충격적이었다. 2012년 7월 제주 올레길서 여성관광객 B씨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피의자는 도에 살던 강성익씨. 강씨는 두산봉 올레1코스서 B씨가 나타나자 나무 뒤편으로 끌고 가 성폭행을 시도하다 B씨가 반항하자 목졸라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강씨는 B씨를 살해한 후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했다. 이 과정서 훼손한 시신 일부를 제주시 한 관광지 버스정류장 의자에 갖다 놓는 등 대담한 행각을 벌이기도 했다. 

2013년 대법원은 강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징역 23년과 정보공개 10년, 전자발찌 착용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제주 올레길 살인사건은 이후 걷고 산책하는 관광풍토를 아예 바꿔버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문제는 과거 사건 외에도 비슷한 류의 강력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제주 성당 살인사건서 피해 여성의 장례미사를 집전했던 강우일 제주교구장은 당시 급격히 증가하는 방문객으로 몸살을 앓는 제주의 현실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강 주교는 “손님을 부르려면 공간과 시설, 일손, 질서를 잡을 사람들까지 확보하고 초대해야 하는데 단칸방에 온 동네 사람과 지나가는 길손들마저 불러들인 결과가 지금 제주의 현실”이라며 “인구 60만 정도인 작은 섬에 서울 인구에 맞먹는 1200만명의 타지인이 찾아와 머물고 갔고 그 결과 강력범죄율 1위, 1인당 쓰레기 투기량 1위 등의 지경에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실제 제주는 인구 10만명당 범죄 건수를 나타내는 ‘전체 범죄 발생비’가 전국서 가장 높은 지역이다. 지난해 제주서 발생한 범죄는 3만여건으로 전국 범죄건수의 2% 남짓에 불과하지만 인구수 대비로 따지면 전국 평균은 물론 서울이나 경기 지역도 웃돌았다.

관광객 때문?

일각에선 외부서 유입되는 관광객, 무사증 입국 제도로 비자 없이 머무는 외국인 수의 증가 등을 범죄율 상승의 원인으로 꼽는다. 무사증 입국 제도는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된 11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 국민이 30일간 비자 없이 제주에 머물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제주서 외국인에 의한 범죄가 잦아지면서 무사증 제도에 대한 개선 요구 목소리가 높지만, 제도를 폐지하면 중국 청년층 관광객이 감소해 관광 산업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도 있어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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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