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들의 아귀다툼 전모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7.30 10:38:33
  • 호수 11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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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찌르기 바쁜 똥별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2018년 7월24일, 국회 본관서 열린 국방위원회(이하 국방위)전체회의 도중 국방부장관과 국군기무사령부 간부들이 대립하는 초유의 ‘하극상’이 발생했다. 이날 양측의 공방은 국회 인터넷 방송을 통해 그대로 생중계됐다. 송영무 국방부장관의 체면과 리더십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 

이는 송 장관이 국방부 수장으로 내정됐을 때부터 우려됐던 상황. 해군 출신인 송 장관이 군 조직 내 주류인 육군사관학교(이하 육사) 출신 육군 장성들을 제어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였다. 송 장관은 육사들의 반란에 축출 직전까지 몰렸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송영무 장관과 기무사 간부들의 대립을 지켜본 군 민심은 흉흉하다. 대체로 공개석상서 장관과 부하가 대립한 이번 사태를 곱잖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해병대 출신 국회 관계자는 “(생중계를) 보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며 “군대의 상명하복을 떠나서 비정상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굳이 수직적인 군 조직 문화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정상적이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지적이다.

군내 하극상
물먹은 송


이날 국방위 전체회의서의 핵심 쟁점은 과연 송 장관이 지난 9일 주재한 국방부 실·국장 간담회서 기무사가 작성한 위수령 검토 문건을 거론했는지 여부였다. 당시 송 장관을 비롯한 실·국장, 100기무부대장 등 14명이 간담회에 참석했었다. 국회 국방위원들은 그날 간담회서 송 장관이 위수령 검토 문건에 대해 어떤 판단을 했는지 질의했다.

증인 신분으로 국회에 불려온 100기무부대장 민병삼(육사43기) 대령은 “(송)장관은 7월9일 오전 간담회서 ‘위수령 검토 문건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내가 법조계에 문의해보니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며 “다만 직권남용에 해당되는지 검토해보기 바란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저는 현재 36년째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이다. 따라서 군인으로서 명예를 걸고, 양심을 걸고 답변 드리는 것”이라고 증언의 신빙성을 강조했다.

민 대령의 증언을 예상치 못했는지 회의장에 있던 송 장관의 얼굴색이 변했다. 송 장관은 자신의 발언 시간에 “(민 대령의 증언은)완벽한 거짓말이다. 대장까지 지낸 국방부장관이 거짓말을 하겠나. 장관을 그렇게 얘기하시면 안 된다”고 민 대령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함께 배석한 국방장관 군사보좌관인 정해일 준장도 “민 대령이 뭔가 혼동한 것 같다. 지휘관의 발언을 각색해 보고하는 것에 경악스럽다”고 주장했다.
 

기무사 간부와 송 장관의 진실공방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지난 3월16일 이석구(육사41기) 기무사령관이 송 장관에게 계엄령 검토 문건을 첫 대면보고한 시간을 놓고도 서로의 주장이 엇갈렸다.

송 장관은 대면보고 시간이 5분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송 장관에게 대면보고한 이 사령관은 20분간이라고 주장했다. 


정해일 보좌관은 “송 장관이 9일 오전 10시 국방운영개혁 관련 합동부대 토의에 참석했고, 이 사령관은 10시38분에 국방부 본관 2층에 도착했다. 10시59분부터 5분간 보고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송 장관의 손을 들었다.

그러나 상황은 송 장관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듯하다. 송 장관 등 국방부 측과 민 대령 등 기무사 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가운데 기무사 측은 민 대령이 간담회 내용을 복기해 기무사에 보고한 ‘장관 주재 간담회 동정’ 문건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문건에는 송 장관이 ‘위수령은 잘못된 것이 아님. 법조계에 문의하니 최악의 사태에 대비한 계획은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함’이라고 발언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 국회서 발발
기획된 하극상? 곧바로 증거 제출

국방부는 즉각 “간담회장에선 노트북은 안 되고 수기 메모만 가능하다. 민 대령이 자신의 메모 내용과 개인적 해석을 더해 발언을 왜곡해 기록한 것”이라며 민 대령이 복기 내용에 대해 반박했다. 

또 송 장관이 해당 발언을 했다는 지난 9일은 위수령 폐지 절차가 진행 중일 때인데 송 장관이 위수령을 언급한다는 것은 시기상으로도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지난 4일 국방부는 군사정권의 잔재인 위수령 폐지 절차에 착수했었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문재인정부 청와대는 사태의 발단이라고 할 수 있는 기무사의 ‘촛불집회 계엄령 검토 문건(이하 계엄령 문건)’ 등이 군 조직 내 주류 지휘관들의 ‘이너서클’서 논의됐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즉 청와대가 ‘하나회’ ‘알자회’ 등 사적 네트워크를 통해 권력을 잡으려는 군 사조직의 부활, 내지는 새로운 사조직의 탄생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군·검 합동수사단을 꾸릴 때 육군을 배제하도록 한 것이 그 증거라는 분석이다.
 

계엄령 문건은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이 작성을 지시했다. 육사 38기인 그는 육사 출신 사조직 알자회의 핵심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알자회는 육사 34기부터 43기까지 120여명이 활동하는 군내 사조직으로 지난 1992년 해체됐으나, 이명박·박근혜정부서 기무사령관과 특수전사령관 등의 요직을 이전 알자회 멤버들이 차지하면서 사실상 모임이 부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알자회 부활?
합참의장 패싱

군 외부에선 “알고 지내자”는 뜻에서 알자회라고 이름지어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군 내부에선 멤버들끼리 알짜 보직을 주고받아 ‘알짜회’로 불린다고 한다.


박정부 당시 군과 청와대 안보 라인은 사실상 육사 출신들이 장악했었다. 

장준규 당시 육군참모총장(이하 육참총장)과 조현천 기무사령관, 한민구 국방부장관을 비롯해 청와대의 김관진 안보실장, 박흥렬 경호실장 등은 모두 육사 출신이다.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과 박흥렬 전 경호실장은 육사 28기 동기고, 한민구 전 장관은 31기, 장준규 육참총장은 육사 36기다.

박정부 당시 육사 출신들은 촛불집회 당시 계엄령 발동을 검토하면서 육사 출신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지난 20일 공개한 ‘계엄령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보면 전국 비상계엄 발령 시 계엄사령관에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하는 안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사실상 서열 1위인 합참의장을 배제하려던 계획이다. 세부문건 중 ‘계엄사령관 추천 건의’를 보면 ”계엄사령관은 군사대비태세 유지 임무서 자유로워야 하며, 현행작전 임무가 없는 각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현행작전 임무서 비교적 자유로운 육군(참모)총장, 연부사령관(연합사 부사령관), 합참차장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기무사는 셋 중 육군참모총장에게만 ‘적합’ 판단을 내리고 나머지 연부사령관, 합참차장에 대해서는 ‘부적합’ 판단을 내려 사실상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이 돼야 한다는 취지로 문건을 작성했다.

들통난 계획
비육사 축출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사령관은 현역 장관급 장교(장성)를 국방부장관이 추천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합참에 따르면 현재 계엄에 대한 준비와 실행, 훈련 등은 모두 합참 소관이다. 

계엄에 대한 평시 준비뿐 아니라 실제 계엄 상황이 발생하면 합참의장이 사령관이 되는 매뉴얼이 존재하는 것이다.

또 한민구 전 국방부장관이 지난해 4월19일 국방부 전비태세검열단 업무보고를 받은 자리서 계엄사령관을 합참의장서 육군참모총장으로의 변경을 검토해보라는 지시를 내린 국방부 내부 문건이 발견됐다. 

시기상 기무사에서 세부문건이 작성된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기무사 계엄령 세부문건 작성→한 전 장관 계엄사령관 변경 지시의 순으로 진행됐을 가능성이 크다. 공조 수사를 벌이고 있는 국방부 특별수사단과 서울중앙지검 등 군·검 합동수사단은 최근 한 전 장관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군·검 합동수사단은 한 전 장관에게 내란 음모 혐의 등을 적용했다.
 

정황을 종합하면 이명박·박근혜정부 때 주류로 올라선 육사 출신들이 육사 출신을 중심으로 계엄사령부를 편성하기 위해 3사관학교 출신인 이순진 당시 합참의장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려 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의 계엄 전국확대 시도와 매우 흡사하다.

지난 1979년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12·12군사쿠데타로 자신들과 대립했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끌어내리고 육사 출신 신군부에 협조적이던 이희성 육군 대장을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에 앉힌 바 있다. 당시 쿠데타는 육군 내 육사 출신 사조직인 하나회 장성들이 주도했다.

문건 작성도, 지시도 알자회
목적은 ‘기무사 개혁’ 저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집권당시 전성기를 누렸던 하나회는 김영삼(YS)정부가 들어선 뒤 쇠퇴의 길을 걸었다. 최초의 문민정부가 들어섰던 1993년, YS는 취임 9일 만에 하나회 청산에 돌입했다. 이는 대통령의 측근들조차 모를 정도로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당시 YS는 권영해 국방부 장관을 불러 육군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을 예편하도록 지시했다. 하나회 몰락의 시작이었다. 이어 수도방위사령관, 특전사령관 등 하나회가 차지했던 군 요직을 비하나회로 채웠다. 이는 오늘날 YS의 최대 업적 중 하나로 꼽힌다.

이후에도 군 사조직을 혁파하려는 시도는 꾸준했다. 군사재판서 사형까지 언도받은 바 있는 김대중(DJ) 대통령은 집권한 후 기무사 개혁을 추진했다. 기무사의 방첩 기능을 제외하고 나머지 일반정보, 대전복 임무 등의 핵심 기능을 해체한 후 그 지휘권을 합참 정보본부에 귀속시키는 안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독대보고를 폐지함으로써 정보의 민주적 유통이라는 부분적 개혁을 이뤄냈다. 그러나 기무사 내부 개혁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육사 중심의 군 사조직은 기무사 개혁을 철저히 거부해왔다. 이번 송영무 ‘하극상’ 사태도 결국은 기무사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의 저항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송 장관은 기무사 개혁에 강한 의지를 보여왔다. 약 1년여 전 송 장관은 자신의 취임식을 마친 후 국방부에 기무사와 사이버사에 대한 개혁안을 마련하라는 방침을 전달했다. 방침에는 국민들로부터 정치적 오해를 사거나 사찰로 오해받을 수 있는 기무사의 동향정보 수집을 막기 위한 조치들이 포함됐다.
 

기무사 내에서 군 인사 정보와 동향 파악을 담당했던 1처를 없애는 안을 검토하라는 지시도 내려졌다. 송 장관은 평소 자신의 참모진에게 “임기 동안 ‘송영무가 기무사 개혁만큼은 해냈구나’하는 말을 듣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송 장관은 국방부장관에 임명되기 전부터 기무사 개혁에 적극적이었다. 참여정부 시절 합참전략본부장을 지낸 시절에도 기무사의 권위적인 모습과 월권행위 등을 지적한 것으로 알려진다. 2012년 제18대 대선 후보였던 문 대통령과 국방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눌 때도 기무사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는 후문이다.

기무사 개혁
반대 이유는?

정치권에선 육사 34기부터 43기까지가 주축인 알자회의 부활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경고해왔다. 사드(THAAD) 발사대 추가 반입 보고 누락 사태가 벌어졌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홍익표 의원은 알자회를 배후로 지목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파문이 한창일 때 같은 당 박범계 의원은 “알자회가 살아나고 있는데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안봉근 전 비서관이 봐주고 있다는 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박 의원은 이모영 한미연합군 부사령관, 조현천 기무사령관, 조정설 특전사령관 등을 알자회 멤버로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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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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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