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회 청룡기 스타> 장충고 송명기

  • 전상일 기자 jsi@apsk.co.kr
  • 등록 2018.07.23 10:17:32
  • 호수 11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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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의 여의주가 보인다

[한국스포츠통신] 전상일 기자 = 청룡기 대회가 시작됐다.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선수를 딱 1명만 꼽으라면 주저 없이 장충고의 송명기(192㎝/98㎏, 우좌, 3학년)다. 지난 14일까지 2승을 거두고 있는 팀은 유일하게 장충고뿐이다. 그리고 2경기서 모두 세이브를 기록한 선수도 송명기뿐이다.
 

사실 송명기는 이번 시작 전 마음을 다쳤다. 서울권역 1차 지명서도, 청소년 대표팀서도 모두 탈락했기 때문이다.

“1차 지명에선 제 친구인 박주성이 뽑혀서 기분이 좋습니다. 건대부중 시절부터 친한 친구거든요. 그런데 청소년대표팀은 꼭 가고 싶었습니다. 일생에 한 번 있는 기회잖아요. 아마 초반에 제가 너무 못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번이 기회

억지로 밝게 웃고 있지만 그의 얼굴에 살짝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러나 고진감래라고 해야 할까. 마음을 비운 송명기가 이번 청룡기서 보여주고 있는 구위는 무시무시하다.

청룡기 64강 충암고전서 그는 2-1로 쫓기던 7회 무사에 올라와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3이닝 동안 10타자를 맞아 38개의 공을 던졌고 무려 5개의 삼진을 솎아냈다. 충암고는 장충고의 천적이다. 


장충고는 작년과 올해 단 한 번도 충암고를 이겨보지 못했다. 송민수 감독조차 “이날 경기가 가장 큰 고비인 것 같다”고 출사표를 밝힌바 있다. 그는 경기를 단단히 마무리한 후 아이싱을 하며 “너무 좋아서 날아갈 것 같았다”고 환하게 웃었다.

송명기의 맹위는 이날 경기로 끝나지 않았다. 청주고와의 2회전은 더 무시무시했다. 장충고의 낙승이 예상됐으나 김인철 감독이 이끄는 청주고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송명기는 “경기 전 청주고 애들이 배팅 연습하는 것을 유심히 보니까 호락호락하지 않더라고요. 짧게 끊어칠 줄도 알고요. 나가야 할 것 같아서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장충고 타선이 청주고 선발 최현진과 구원 김은빈에게 꽁꽁 묶였다. 또 한 명의 보루 김현수가 등판하지 못하는 상황서 송민수 감독이 기댈 유일한 구석은 송명기뿐이었다. 

사흘 만에 6회 무사 1, 2루서 다시 마운드에 오른 송명기는 지난 경기보다 더 무시무시한 투구를 선보였다. 직구로 청주고 타자를 거의 압도해버렸다.

비록 희생플라이로 한 점을 허용하긴 했지만 송명기가 등판한 이후 청주고 타자들은 단 한 명도 1루를 밟아보지 못했다. 4이닝 퍼펙트. 삼진이 3개 포함됐있음에도 투구 수는 고작 38개였을 뿐이다. 

2-1의 박빙의 경기였으나 송명기의 구위가 워낙 좋다보니 긴장감을 느낄 새도 없이 경기가 끝나버렸다.


송명기는 작년 겨울 투구 폼을 언더핸드서 오버핸드로 변경했다. 이제 투구 폼을 바꾼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 만큼 그 성과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 또한 동의했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분명 성과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정말 많이 익숙해진 것 같아요. 분명 앞으로 더욱 좋아질 것 같습니다.”

그에게 이번 대회를 어떻게 준비했는지 물었다.

“저는 청소년 대표팀에도 탈락했고 1차 지명에도 안 돼서 이번 대회를 중점적으로 준비했습니다. 지난 대회와 달라진 점은 벌크업입니다. 식이요법 조절도 하고 웨이트량을 늘려서 93∼4kg였던 몸을 의도적으로 98kg까지 불렸습니다. 공에 힘이 조금은 더 붙은 느낌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변화구가 추가됐다. 그는 올 시즌 초까지는 직구와 슬라이더를 사용하는 투피치 투수였다. 그런데 지난 주말리그 후반기부터 포크볼을 던지기 시작했다. 스플리터성의 반포크볼이다. 본인의 빠른 직구를 살리기 위해서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실전서 잘 쓰고 있습니다. 오늘도 몇 번 던져봤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잘 떨어져서 앞으로도 계속 활용할 생각입니다.”

지난 서울고전 TV중계를 통해 내딛을 때 왼다리가 열리는 투구폼 때문에 설왕설래가 있었다. 송명기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내딛는 왼발이 오픈되는 것은 사이드로 던질 때의 버릇입니다. 사이드로 던질 때는 몸의 회전력을 이용해서 몸을 빠르게 돌리기 때문에 그런 투구폼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오버핸드로 바꾼 지 얼마 안 되다 보니 이 부분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아직 제대로 고치지는 못했는데 캐치볼 때 닫아놓고 던지기 위해 차분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폼이 정석이기는 하지만 프로서도 왼발이 열리는 투수들은 많은 만큼 경기 중에는 의식하지 않고 던지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148 강속구 엄청난 무력시위
충암고, 청주고…무실점 행진

이번 대회서 장충고는 최악의 대진운을 받아들었다. 64강을 하는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서울의 강호 충암고와 1회전부터 만났다.

“소위 말하는 빡센(?)팀이랑 하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인터뷰도 들어오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는 전반기 때는 주로 선발로 뛰던 선수이기는 하지만 구원도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나오면 최소 3이닝 이상을 던지는 투수기 때문이다. ‘그냥 주자 있을 때 나가니까 긴장되고 재미있다’는 것 정도만 다를 뿐이란다.
 

송명기는 진짜 파이어볼러다. 보통 고교 투수들에게는 소위 수많은 뻥튀기 스피드가 붙는다. 그러나 송명기는 이미 공인된 스피드다. 지난 주말리그 서울고전(6월24일)서 147km/h(IB스포츠 기준 - 146km/h)을 찍었고, 이번 충암고전에선 148km/h를 연거푸 찍어댔다. 그가 구원등판하자 마자 찍은 스피드가 146-148-145-148-146이었다.

단지 최고구속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3이닝 이내 구원등판 기준) 145km/h 이상이 유지가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선발로 4이닝이 넘어가도 141∼143km/h 이상의 스피드가 꾸준히 찍히는 만큼 적어도 올해 2차 지명 후보군 선수 중에서 직구 스피드 하나만큼은 최고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정도가 된다.

또 다른 장점은 스피드가 아니라 유연한 몸과 예쁜 투구폼이다. 동양인 체형에선 190cm가 넘어가면 좋은 투구 매커니즘을 정립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송명기는 무려 192cm/98kg의 거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중심이동이 아주 자연스러운 예쁜 투구 폼을 가지고 있다.

아직 고교생이기에 여러 가지 부족한 면이 있기는 하다. 스피드에 비해 공이 가벼워 맞으면 앞으로 뻗는다. 공에 힘이 더 붙어야 하고, 자신의 우월한 신체조건을 더 잘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공을 좀 더 앞으로 끌고 나와서 던지기 위한 매커니즘 수정도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뻗어나가는 공을 던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단점이 없는 고교생은 없다. 단점이 있지만 발전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의 문제다. 그는 유연한 몸, 예쁜 투구폼, 큰 키와 긴 팔다리를 지니고 있어 프로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받으면 더 좋아질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폼은 수정이 가능하지만 강한 어깨, 체격, 유연성 등은 수정이 불가능하다.

1차 지명과 청대 발표가 끝난 후 송명기는 마음을 내려놨다. 아이러니하게 마음을 내려놓으니 제구와 스피드가 오히려 더 좋아졌다.

꾸준한 스피드

“청대도 안 되고 1차 지명도 안 된 만큼 청룡기만큼은 차지하고 싶습니다. 꼭 팀을 우승시키고 MVP를 받고 싶습니다. 만일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다면 고교시절 최종목표인 2차 지명 전체 3번 안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송명기는 무력시위중이다. 1차 지명, 청소년대표팀서 본인을 배제한 모든 이들에게 ‘야구’로서 그들이 틀렸음을 증명하려 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청룡기에만 집중하고 있는 송명기의 무시무시한 강속구 속에 저 멀리 청룡의 여의주가 어렴풋이나마 보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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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