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몰래’ 기무사 수상한 방첩활동 추적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7.09 10:37:35
  • 호수 11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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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가 생각난다…전두환 보안사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국군 기무사령부가 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자 가족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등 조직적으로 민간인을 사찰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 역시 민간인을 사찰했다가 간판을 바꾼 흑역사가 있다. 이번 세월호 사찰로 기무사가 해체의 기로에 섰다.  
 

국군 기무사령부가 세월호 참사에 조직적으로 관여한 문건이 발견됐다. 기무사가 사고 당시 세월호 유가족을 사찰하고, 팽목항 구조현장뿐만 아니라 단원고서도 기무활동을 벌인 정황이 확인됐다. 

국방 사이버 댓글사건 조사 태스크포스(이하 국방부 댓글 조사 TF)는 지난 2일 “국군 기무사령부의 사이버 댓글활동 등 여론조작 행위를 조사하던 중, 기무사가 온라인상의 여론조작을 넘어 세월호 사건에도 조직적으로 관여한 문건 등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세월호 180일
 기록’ 보니…

TF가 이번에 발견한 ‘세월호 180일 간의 기록’이라는 문건에 따르면 기무사는 사고발생 13일째였던 지난 2014년 4월28일 세월호 관련 현장상황 파악을 위해 TF를 구성했다. 같은 해 5월13일 참모장을 TF장으로 하는 ‘세월호 관련 TF’로 확대 운영해 10월12일까지 약 6개월간 운영했다.

기무사 ‘세월호 관련 TF’는 당시 참모장(육군 소장)을 TF장으로 사령부와 현장 기무부대원 등 60명으로 구성됐으며 유가족 지원, 탐색구조·인양, 불순세력관리 등으로 업무를 나눴다. 


특히 참모장은 기무사령관에게 직접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직위로서, 당시 이재수 기무사령관도 이 같은 사실을 보고받았을 개연성은 있다. 

TF 관계자는 “(조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확정적으로 말하기 제한된다”며 어느 선까지 보고가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이 전 사령관은 TF활동이 끝난 10월13일 이임식을 가진 후 3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또 발견된 자료에는 세월호 탐색구조와 선체인양 등 군(軍) 구조작전 관련 동정 보고 문건뿐만 아니라 ‘실종자 가족 및 가족대책위 동향’ ‘세월호 실종자 가족 대상 탐색구조 종결 설득 방안’ ‘유가족 요구사항 무분별 수용 분위기 근절’ ‘국회 동정’ 등 보고 문건이 포함돼있었다고 TF는 전했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 대상 탐색구조 종결 설득 방안’ 문건은 실종자 가족 대상으로 탐색구조 종결을 설득할 논리 및 방안이 서술돼있었다. ‘유가족 요구사항 무분별 수용 분위기 근절’ 문건은 유가족들이 무분별한 요구를 한다는 전제로 유가족들에게 국민적 비난 여론을 전달해 이를 근절하겠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았다.

세월호 사건 조직적 개입 의혹 
희생·실종자 가족들 사찰 정황 

문건별로 살펴보면 ‘실종자 가족 및 가족대책위 동향’문건은 실종자 가족과 가족대책위 대표 인물의 성명, 관계, 경력 등을 정리하고 성향을 강경·중도 등으로 분류했다. 또 구조 현장인 팽목항 뿐 아니라 안산 단원고에도 기무 활동관이 배치돼 1일 보고한 정황도 발견됐다. 

기무사는 가족대책위 대변인을 맡았던 유경근씨를 ‘강경’ 성향으로 분류하고 ‘경력(직업)’란에는 ‘정의당 당원’이라고 적었다. 유씨가 2013년 11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비방하는 글을 게시했고, 2014년 5월16일 세월호 유가족이 박 대통령을 면담할 때 유씨가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강하게 주장했다는 내용도 문건에 담겼다. 


국방부는 기무사의 이 같은 활동이 직무범위를 넘어섰다고 판단했다. 세월호 TF가 가동될 당시 기무사령관이던 이재수 전 육군 중장에 대한 조사도 불가피해 보인다. 지난달 30일로 약 9개월간의 활동을 종료한 국방부 댓글조사 TF는 이 사건을 군 검찰로 이첩하고 서울중앙지검과 공조해 수사할 계획이다.

댓글 활동 등을 통한 사이버 공간 정치 관여 의혹에 이어 민간인 사찰 정황까지 드러남에 따라 기무사에 대한 대대적 개혁이 이뤄질 전망이다. 일각에선 기무사를 해체하는 수준의 개혁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실 기무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의 대상이었다. 그만큼 권력의 중심에 있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리 할일이…
민간인은 왜?

기무사는 ▲군사보안 및 방첩 ▲군 및 군 관련 첩보수집, 처리 ▲형법상 내란·외환의 죄, 국가보안법 등 특정범죄 수사 ▲방위사업 관련 군사보안업무 지원 등의 임무를 수행 ▲군내 신원조사 ▲전군 보안기강 확립 ▲방산업체 보안지원 ▲군사기밀 유출자 색출 ▲군내 대테러 예방 등이 중점 업무로 군의 국정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전적으로 ‘기무’(機務)는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근본이 되는 중요한 일’과 ‘기밀을 유지해야 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기무사령부의 기무는 후자로 쓰인다. 즉 ‘기밀 임무’의 줄임말 정도로 보면 된다. 
 

실제로 국군기무학교서 고종황제의 특별기관인 ‘통리기무아문’의 기무에선 이름을 따왔다고 가르친다.

기무사는 군(軍) 내 유일의 정보수사기관이다. 1945년 11월 설치된 국방사령부 정보과, 1946년 1월에 설치된 남조선 국방경비대 정보과를 확대 개편해 1948년 5월 27일 창설된 조선경비대 육군정보국 정보처 특별조사과가 모체다.

정부 수립 이후인 1948년 11월에 조선경비대 특별조사대를 확대 개편됐다. 1949년 10월 육군 직할의 특무부대가 창설됐다. 1960년에 육군 방첩부대로 개칭, 1968년 9월 육군 보안사령부로 간판이 바뀌었다. 

국정원 오버랩
해체론 솔솔∼

1953년에 해군 방첩대가, 1954년에 공군 특별수사대가 각각 창설됐다. 1977년 9월에 육군, 해군, 공군의 첩보를 총괄하는 국군 보안사령부가 된다. 

군사정권 시기 보안사의 영향력은 군 대내외적으로 상당했다. 이는 본래 군 내부 및 군 관련 사항에 엄격히 제한돼야 할 수사권을 포괄적으로 적용한 결과였다. 군사정권 시절 보안사령관은 정기적으로 대통령과 독대 직접 보고를 했다. 국방부 직할부대임에도 국방장관도 건드리지 못하는 위치였다.


정보기관 중 권력 1위에 속하는 중앙정보부만이 보안사를 견제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된 10·26 사건 직후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씨가 중앙정보부장 서리까지 겸임하면서 국내의 모든 정보를 통제했다. 
 

전씨는 그 영향력을 활용해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게 정설이다. 당시 보안사의 정보력과 수사, 연행권이 박 전 대통령 사망 이후 전 전 대통령이 상황을 주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과정서 군 정보 업무를 넘어서 민간 사찰까지 주도했다. 언론 통폐합 및 언론인 강제해직(K-공작계획), 야당인사 정치활동 규제, 민정당 창당 심지어 국회의원선거 공천까지 보안사에서 기획했다. 

1980년대 이후에도 야당 정치인사, 재야인사, 학생운동, 노동운동 등에 대한 민간인 사찰을 계속해왔다. 유명한 녹화사업 역시 보안사령부의 작품이다.

군사 정권 시절 공포의 대상 
민간인 감시하다 간판 바꿔 
  

그러다 1990년 윤석양 이병의 양심선언으로 언론에 폭로된다. 윤 이병이 보안사의 사찰 대상 민간인 목록이 담긴 디스크를 들고 탈영해 그 목록을 공개한 사건이다. 이 목록에는 정계와 노동계, 종교계 등에 대한 사찰 기록이 담겨 있었다. 


심지어 당시 집권당 대표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찰도 강행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노태우정권 퇴진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보안사는 이후 기무사로 이름을 바꿨으며 그 역할이 축소됐다. 

그럼에도 기무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민간인 사찰 의혹이 불거졌다. 기무사에 규정된 기무의 활동 분야가 광범위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관련 규정에 따르면 기무의 활동 분야는 ‘방첩·군사보안·군 또는 군 관련 첩보수집·안보사범 수사’다. 현역 장병·군무원·방위산업체 종사자 등을 제외한 민간인은 조사 대상이 아니지만 ‘기타 필요한 경우’에도 가능해 첩보수집의 범위가 광범위하다. 

이 때문에 기무사 요원들이 민간인을 사찰한다는 의혹이 계속됐다. 민간인 사찰은 분명한 불법인이지만 끊이지 않은 이유는 기본적인 정보의 획득이 쉽고, 기무 요원들 간 경쟁이 그 과도하기 때문이다.

이명박·박근혜정부서 기무사가 이른바 ‘보수정권’ 재창출을 위한 활동에 개입한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어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실제로 국방부는 TF를 꾸려 기무사 개혁을 위한 방안을 만들고 있다. 

직무 범위 벗어나
고강도 수술 예고

기무사는 4000여명 규모의 조직에 불과하지만 정보기관 특성 때문에 사령관은 중장이다. 참모장과 처장, 부대장 등 장군들도 9명이나 된다. TF는 현재 이 같은 기무사 조직과 권한을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관련 규정을 개정해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금지를 명시하고 위반 시 처벌근거를 신설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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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채 상병 특검법)이 야당 주도로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7월19일 사건 발생 10여개월 만이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반발하며 퇴장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서 ‘이태원참사특별법’을 합의 처리된 뒤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하며 채 상병 특검법 상정을 요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사건을 초동 조사하고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서 대통령실·국방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경찰 이첩 개입 의혹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를 수용해 의사일정 변경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고, 재석 168명 전원 찬성표로 가결됐다. 표결에는 야당만 참여했고, 국민의힘은 반발해 사실상 표결에 불참했다. 민주당은 원래 본회의 안건에 없었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기 위해 의사일정 변경을 우선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은 이번 본회의에 합의되지 않은 법안이 올라가는 것 자체를 반대해 왔다. 당초 김진표 의장도 여야가 합의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양당 원내대표를 의장석으로 불러서 마지막으로 중재를 시도했지만 5분 뒤 김 의장은 여러 가지로 고려한 끝에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양당의 마지막 협상도 결렬됐고, 국민의힘에서는 유일하게 자리에 남았던 김웅 의원만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방청 중이었던 해병대 예비역연대 법률 자문, 김규현 변호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년의 해병대 예비역들도 연신 눈물을 흘렸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야당이 강행 처리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로텐더홀서 규탄대회를 열고 “그간 우리 당은 이태원참사특별법에 합의 처리하는 조건으로 의사일정에 동의했다. (민주당과 김 의장이)채 상병 특검법을 애초에 처리하겠다고 했으면 저희는 오늘 본회의 의사일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모처럼 이태원법 합의 처리를 통해 협치 분위기가 조성되고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있는데 오늘 의사일정 변경까지 해서 채상병법을 처리하겠다는 것은 정치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채 상병 특검법 표결 시 본회의장을 퇴장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채 상병이 의사일정으로 상정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규탄대회 뒤 거부권 행사 건의와 관련한 질문에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국힘 퇴장 속 야당 전원 찬성 조각난 협치···대통령 또 거부?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 의사일정 변경안을 제출한 상태다. 이날 본회의는 이태원특별법 처리를 위해 여야 합의로 잡은 일정인 반면, 여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상황서 입법을 강행하기 위해 의사일정을 변경해 본회의 부의를 시도하겠다는 의도였다. 대통령실은 이날 야당의 강행 처리 예고를 예의주시하면서도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서 “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서 채 상병 특검법을 의사일정까지 바꿔가면서 일방 강행 처리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 표명은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실장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공수처와 경찰이 이미 본격 수사 중인 사건인데도 야당 측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특검을 강행하려고 하는 것은 진상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권에선 채 상병 특검법 자체의 법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이미 수사 중인 사안에 특검을 도입하는 배경에 정쟁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바라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서 진행 중인 수사가 끝난 다음, 그 과정이나 결과를 토대로 특검 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야당이 특검을 당장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대통령실은 무엇보다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해병대수사단에 수사권이 없어졌기 때문에 야권이 주장하는 ‘수사외압’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병대수사단이 기초 조사는 할 수 있겠지만, 관계자 수십명을 소환하고 연루자가 몇 명이고 하는 것은 법에 규정된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당시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의 ‘월권’ 가능성을 지적한 셈이다. “정치적 의도” 대통령실 발끈 또 과거 공수처 설치와 군사법원법 개정을 주도했던 민주당이 특검을 추진하는 모순을 거론하며, ‘참사의 정쟁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분위기다. 이날 정 실장은 “현재 공수처와 경찰서 철저한 수사를 진행 중이므로 수사 당국의 결과를 지켜보고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공수처와 경찰이 우선 수사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특검 도입 등의 절차가 논의되고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공수처는 민주당이 패스트트랙까지 동원해 설치한 기구다. 당연히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는 것이 상식이고 정도”라며 “지금까지 13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야당이 단독으로 주도한 이유도 있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서 윤 대통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수사를 왜곡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관련 정황은 이미 상당 부분 나왔다. 국방부는 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들의 혐의를 축소하려 했고, 경찰에 넘긴 수사기록도 매끄럽지 않은 과정을 통해 회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조율한 흔적도 엿보였다. 국민의힘은 특검법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서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공수처 수사가 1년 가까이 진척을 보이지 않으면서 야권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과거 대통령실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조그마한 사고’라고 언급한 사건도 국민적 분노를 유발했다. 지난 3월22일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 매체와 인터뷰서 ‘조그마한 사고’로 표현하고 “전 지휘관이 법적인 문책을 받는 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실언한 바 있다. 더구나 공수처는 지난해 8월 고발장을 접수한 이후 인력 부족, 수사 의지 등을 핑계로 현재까지 ‘수사 진행 중’이라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해병대를 비롯한 국민 여론도 특검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눈물 흘린 해병들 왜? 해병대예비역연대는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채 상병 특검법 상정과 통과를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 모여 “채 상병 특검법 통과, 박정훈 대령 탄압 중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같은)이런 세력들이 우리나라의 집권여당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은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이 나라의 안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국민의힘과 대통령은 민심을 외면하지 말고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하길 바란다”고 외쳤다. 해병대예비역연대에 법률자문을 하고 있는 해병대 출신 김규현 변호사는 “(국민의힘은)처음엔 ‘독소 조항이 있다’고, 지금은 ‘공수처와 경찰이 수사 중이니 그 수사가 끝난 다음에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과거 특검 때에는 (앞서)경찰·검찰이 수사를 안 했는가”라고 되물었다. 사실상 가장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방법은 법정 수사 기간을 최대 3개월로 정해놓고 있는 특검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병대 측은 이날 “3개월이 지나면 우리 군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안보에 전념할 수 있고, 정치권도 채 상병 문제를 일단락하고 지금 산적한 안보, 민생 정책을 논의할 수 있게 된다”며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수사를 기다리며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채 상병 문제로 정쟁을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국민의힘은 오후 2시에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전원 참석해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집회를 마친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 45명은 채 상병 특검법의 상정·통과 여부를 보기 위해 곧장 국회 본회의장으로 이동했다. 앞서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민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후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지난달 3일 본회의 자동 부의 요건을 충족했다. 여야는 지난 1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에는 합의했지만, 채 상병 특검법과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안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통한 것이다. 1년 가까이 진척 없는 수사 역풍 뻔한데···용산 선택은? 특검법 통과에 대해 대통령실은 야당을 향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수세에 몰린 대통령실이 야당을 지적할수록 부정 여론만 키우는 분위기다. 더구나 대통령실은 스스로가 수사 대상이 되는 사안서 ‘협치’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으나, 이로 인해 역풍을 맞게 되는 형국이다. 당장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용산의 뜻을 따를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어렵사리 여당 의원들을 단속하더라도 다음 달에 시작하는 22대 국회에서는 궁지에 내몰릴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신중한 모습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거부권을 행사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며 “김진표 국회의장은 합의 정신을 존중하는 분”이라고 일축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여야 합의 없이 거대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들에 대해선 ‘과도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젊은 병사의 죽음’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인 데다 야권과 언론이 국가안보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 등 대통령실 연루 의혹을 잇달아 제기한 상황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당의 총선 참패 한 달여 만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다. 국회 재표결 시 여당 이탈표도 우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 회담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의 적극적인 수용을 요구한 데 대해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것도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공수처는 특검 출범 여부와 별개로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 외압 의혹’과 관련된 핵심 인물들을 불러 조사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방부가 채 상병 사건을 회수하고 재조사하는 과정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대통령실 등 ‘윗선’으로부터 외압이 있었는지 의혹을 풀어줄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환조사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수사는 진행 중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는 지난 2일 오전 9시25분쯤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공수처는 박 전 직무대리를 상대로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재조사한 후 혐의자를 축소해 경찰로 넘기는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 등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smk1@ilyosisa.co.kr>